-
-
소통하는 신체 -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선다는 그 위태로움에 대하여
우치다 타츠루 지음, 오오쿠사 미노루.현병호 옮김 / 민들레 / 2019년 3월
평점 :
지금처럼 몸을 경시하는 시대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몸을 학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표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몸을 학대하는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나 한다.
내부에서 외부에서 신체를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상황이 지금 우리 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우치다 타츠루의 책 제목이 흥미를 끈 것은 바로 '소통하는 신체'라고 이름을 지었기 때문이다.
말로가 아니라 신체로 소통을 한다는 것, 말로는 가까이 오라고 하지만 몸으로는 밀어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또 자신의 몸이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 신호를 읽지 못하고 위험한 곳으로 계속 나아가는 경우는 얼마나 많은지.
그만큼 신체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지만 오히려 신체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수준에 처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소통하는 신체에서 가장 멀어진 곳이 바로 학교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를 밀어내고 있는 형국, 이것이 지금 우리나라 교육이 처한 상황 아니던가. 말로는 교사와 학생이 서로 소통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현장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말로는 번드르하게 그렇게 표출하지만 몸은 서로를 밀어내고 있기에, 학교에서 학생과 교사는 소통이 되지 않는 관계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츠루는 교사의 역할에 대해서 선수를 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선수를 친다는 것은 따라올 마음을 품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는데...
학생에게 선수를 치는 것, 한 발 앞서 있는 것, 학생들로 하여금 "이 사람은 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거지" 뭘 하려는 거야?"하고 의문을 품게 해서 뒤를 좇아오도록 만드는 것, 교사의 역할은 단지 그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교사가 하는 일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56쪽)
그런데 과연 지금 우리나라 학교에서 이런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까? 교사는 한 발 앞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친절하게 모든 것을 명확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는 존재가 바로 지금 우리나라 교사인 것이다.
나는 여기에 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 하는 교사는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다. 답을 알려주지 않는 교사이기에 온갖 비난에 시달릴 것이다. 학생은 고사하고 학부모부터 가만히 있지 않는다.
이러니 교사는 아주 친절하게 모든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는 역할에 머무른다. 학교의 학원화. 아니 학교든 학원이든 정답 알려주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지는 한참 되었다. 이렇게 정답을 알려주어야 하니, 학생들은 몸을 움직여서는 안된다. 몸을 구속하게 된다.
다른 활동을 모두 차단당한 상태에서 주어진 정답을 찾는 활동만을 하는 학생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몸을 괴롭힐 수밖에 없다.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타투 열풍(이미 우리 사회에는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에 학교에까지 문신을 한 학생들이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다)이나 또는 자해 활동들이 늘어난 것이 바로 그 이유다.
타츠루의 말을 계속 들어보자.
자신의 신체를 지배하여 그것에 고통을 주는 사람은 다르게 말하면 그 외에는 지배하고 고통을 가할 수 있는 것을 소유하지 못한, 그야말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소녀들을 거기까지(성매매를 의미한다) 몰아붙인 것에 대해서는 학교나 가정, 사회 전체의 책임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간은 자기 신체를 마음대로 손상시킬 권리가 있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 '나의 신체'는 성매매 따위는 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71쪽)
제가 문신이나 피어싱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고통을 참는 경험을 자기 몸에 강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누구에게도 존경을 받을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의 가난한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아무리 난폭하게 취급해도 괜찮은 자원'이 자기 신체인 것입니다. 감각만 차단해버리면 자신의 신체는 아무리 상처를 입거나 혹사당해도 불평을 하지 않습니다. (79-80쪽)
우리나라 학생들이 처해 있는 상황이 이 상황에서 얼마나 멀리 있는지. 바로 우리나라 학생들 이야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자신의 신체를 학대해서 감각을 차단하는 상황으로 몰리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무엇을 알려줘야 하는가.
최근에 놀이에 대해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의 신체를 살리는 길이고, 그것이 아이들을 살리는 길이라는, 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는 길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신체에 관심을 갖고 관점을 확장하면 죽음으로까지 나아간다. 죽음에서 자신을 바라보게 되고 현재를 살아가게 되는 것, 죽은자들과도 대화를 할 수 있게 되는 경지... 책은 이렇게 자신의 몸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죽은 자들까지 나아간다.
소통하는 신체가 눈 앞에 존재하는 물질적 존재인 신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렇게 신체를 죽음으로까지 확장하고, 그것을 통해서 소통하는 신체를 말하는 것은, 결국 우리가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 나아가는 교육, 그것이 필요할 텐데... 거기까지 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자신의 신체 감각을 유지하는, 신체와 말이 따로 놀지 않는 그런 교육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죽은 신체 속에 온갖 잡다한 지식만을 집어넣어, 결국 몸과 마음이, 신체와 뇌가 따로 노는, 자신의 몸을 위험에 쉽게 빠뜨리는 사람들로 우글거리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두고두고 생각해보고 고민해 봐야 할 주제라는 생각이 든다. '소통하는 신체'라는 주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