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적 인간 - 시와 예술의 힘에 대하여
고영직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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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예술을 몸에 새긴, 그것을 인문이라고 한다면, 인문적 인간은 다른 말로 하면 예술적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무늬를 지닌 인간이 바로 인문적 인간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인문은 사람의 무늬다. 사람의 무늬가 무엇일까?

 

사람이라는 말에서, 삶을 안다는 말을 유추해내는 사람도 있고, 사람 인(人)에서 서로 기대는 존재임을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람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말로 정의하든, 사회적 동물이라고 정의하든, 홀로 살아가는 존재는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라는 말에는 이렇게 함께 함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인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의 무늬는 바로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 서로 만들어가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 관계를 인식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고영직은 이 책에서 시와 예술을 통해서 인문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원하는 세상은 비빌리힐스(비빌里Hills)다.  얼핏 읽으면 미국 부자 마을인 비벌리 힐스(= 베벌리 힐스라고 읽는다고 한다. 나는 비벌리 힐스가 더 친숙하다. 영어로 Beverly Hills 이렇게 쓴다고 하니...) 를 떠올리는 말인데...

 

두 가지 효과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는 미국 부자 마을처럼 사람들이 잘 사는 마을을 연상시키는 것-그렇다고 돈이 많은 부자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다른 의미에서겠지만 풍요와 행복을 떠올려야 한다는 것-과 도대체 무슨 뜻이지 하고 생각을 하게 하는. 이 말의 뜻을 이 책 뒤에 있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비빌 언덕'이라는 우리말에 마을(里)과 언덕(Hills)을 뜻하는 한자와 영어를 조합해 재미있게게 표현하고자 한 말이다. "마을(里)에는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 내지는 "마을(里) 자체가 비빌 언덕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함축하고자 한 조합어이다.

  우리 사는 삶터가 '비빌리힐스'가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네 삶터는 서로가 서로에게 '있어줌'의 존재론을 구현하고, 내면의 야생성을 회복하는 장소의 혼으로서 제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323-324쪽)

 

이 비빌리힐스야 말로 인문학이 살아 있는 마을 아니겠는가. 비빌리힐스를 만든 사람들 몸에는 인문이 새겨져 있지 않겠는가. 고정된, 이미 새겨져서 어찌할 수 없는 무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면서 더 만들고 칠하고 고쳐가는 그런 무늬들.

 

이 무늬를 만들어 가는데 사람만큼 큰 역할을 하는 존재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만들어가는 무늬. 그런 사람들과 사람들을 이어주는 존재가 바로 시를 비롯한 예술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예술은 자신의 내면으로만 침잠해 들어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내면을 넘어서 밖으로 향해야 한다.

 

예술은 결코 자위 행위가 아니다. 자위를 넘어 서로를 위로해주고 즐겁게 해주는 행위여야 한다. 그런 시와 예술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것이고, 이런 예술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예술비평만 하지 않는다. 예술과 사회, 사회와 사람이, 사람과 예술이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하나로 맞물려 있다. 이 맞물림을 통해 무늬가 만들어진다.

 

이런 무늬를 인식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적 삶이다. 그런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인문적 인간이다. 저자 고영직은 바로 그런 세상을 꿈꾼다. 아니 거창하게 세상이라고 할 것도 없다.

 

바로 자신이 살아가는 곳에서부터 시작하고, 자신이 만나는 사람부터 시작하는 것이니, 그가 꿈꾸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마을이다. 마을, 사람 무늬, 즉 인문적 인간들이 살아가는 장소인 것이다. 인문적 인간들이 살아가는 마을, 그 마을이 바로 '비빌리힐스'다.

 

고영직이 꿈꾸는 '비빌리힐스' 아직은 멀리 있다. 그러나 멀리 있다고만 해서는 안 된다. '비빌리힐스'는 누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여기에 있는 우리들이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이 지금-여기에서 만들어가야 함을 깨달은 인간, 그 인간이 바로 인문적 인간이고, 그런 깨우침을 시와 예술을 통해서 할 수 있다는 것, 해야만 한다는 것이 고영직의 주장이다.

 

다양한 글이 실려 있지만, 그 글들이 추구하는 목표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곳을 '비빌리힐스'로 만들자. 다른 누구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그래서 어디에도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지금-여기에 있는 '나우토피아'를 만들자는 것. 그런 일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이고, 그런 사람이 인문적 인간이라고.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이다. 가끔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받으면 기분이 좋고, 고마운 마음이 든다.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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