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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자폐인 이야기 - 개정판
템플 그랜딘 지음, 박경희 옮김 / 김영사 / 2011년 12월
평점 :
자폐라고 하면 "레인 맨"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고, 거기서 자폐인의 역할을 했던 더스틴 호프만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성은 영에 가깝지만 숫자에는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는 사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살지만, 어느 분야에서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가 자폐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자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각자 다른 모습을 보인다고 하니.
꼭 어느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자폐인인 것은 아니다. 사실 주변에서 만나는 자폐인들은 어느 분야에서 뛰어나다기보다는 다른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존재다. 의사소통도 안 되고, 그렇다고 무언가를 잘하지도 못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도 되는. 게다가 가끔 보이는 폭력적인 모습까지.
다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폐인들이 사회 생활을 잘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버려야겠다는 마음을 지니게 됐다.
자폐인들도 다른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 소위 보통사람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사회 생활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어떤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과 고만고만한 자질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꼭 자폐인이라고 해서 다르게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자폐를 딛고(이 말도 좀 이상하지만, 자폐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문을 열고 열린 공간으로 나온) 가축 도구 디자이너로 성공한 템플 그랜딘의 이야기...
한 사람의 성공담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그가 겪어야 했던 어두운 현실을 생각하면서 읽으면 더 좋을 것이다.
어린 시절,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폭력적인 모습도, 또 남들이 전혀 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한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학교에서 퇴학 당하기도 했던 템플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동물들이 안락함을 느끼는 공간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
여기서 한 가지 명심할 것은 템플의 어머니가 보여준 행동이다. 자식에 대한 믿음. 자식을 포기하지 않고 교육시킨 것. 이해해 주려고 노력한 것. 자식을 위해 해야 할 일을 끝까지 한 것. 이것이 템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만이 템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템플은 살아가면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들을 통해서 자신의 앞에 있던 문들을 하나하나 열어젖히게 된다.
문... 템플은 문에 대해서 고착적 증세를 보인다. 그렇다. 문이다. 자폐인들은 자신의 앞에 문이 있음에도 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템플은 문을 열고 나아가려 했다. 그 문이 성장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 과정을 통해서 자폐인들에게 문을 열고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템플은 책 뒤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대담에서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자폐증 아이가 바깥세상과 연결돼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즉 바깥세상에 관심을 끊은 채 자기안의 세계에 빠지게 내버려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223쪽)
그가 문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은 외부세계로부터 나를 차단시키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나를 외부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문을 의식하고 그 문 밖으로 나아가려는 행동, 그것이 자폐인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행동을 하도록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는 없지만 누구도 해보지 않으면 결과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통합교육을 강조하고 있는데, 말로만 통합교육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학교라는 공간. 보통 학생들도 견디기 힘든데, 자폐나 또는 다른 증세가 있는 학생들에게는 지옥과 다름없을 수가 있다. 또 입시에 찌들리고 있는 교육현실과 아직도 30명에 육박하는 학생들로 인해 개별 학생들 한명 한명을 신경쓸 수 없는 교사들까지 생각하면 학교에 있는 모든 학생들에게 가장 힘든 공간은 학교일 것이다.
이러한 학교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통합교육은 고사하고 다른 교육조차 힘들 것이다. 그 점을 생각하게 하는 템플 그랜딘의 자서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