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행위를 했다고 알려져 있는 시인. 일제말에 많은 시인들이 친일의 길로 들어섰는데...

 

  살기 위해서, 작품 활동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변명을 한 시인들도 있지만,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작품활동을 이어간 시인도 꽤나 됐다.

 

  노천명이 친일 행위를 얼마나 반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제시대에 활동했던 몇 안 되는 여자 시인이었기에 더 눈에 띠는지는 모르겠는데...

 

  노천명이 친일행위를 반성했다는 글을 본 기억은 없고, 이 책의 말미에 있는 연보에 보니, 시대적인 상황은 노천명으로 하여금 이 시집의 초판본에 '승전의 날, 출정하는 동생에게, 진혼가, 흰 비둘기를 날리며' 등의 친일적 시들을 담게 하였으며, 후에 이 시들은 다시 삭제되지만 어떻게 변호해도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된다(287쪽)이라고 글이 실려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중고서점에서 노천명 시집을 구입했다. 친일이라는 딱지가 있지만 어렸을 때 읽은 것이 강력한 접착제처럼 마음 속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전 책받침에 쓰여 있었던 노천명의 시. 아마 교과서에서도 배운 기억이 있는데... '남사당'이던가. 교과서보다는 늘 갖고 다니던, 또 친구들이 쓰던 연습장, 공책의 겉표지에도 있었던 시가 더 마음에 남아 있었다.

 

'사슴''이름없는 여인 되어'

 

두 시는 워낙 유명하니 굳이 인용은 하지 않지만, '이름없는 여인 되어'를 다시 읽으니 자신이 지닌 유명세로 겪은 고난에 대한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슷한 감정을 담은 시가, '이름없는 여인이 되어'보다는 더 직설적으로 '유명하다는 것'이라는 시에 나와 있다.

 

6.25때 피난하지 못해 부역을 했고, 그 죄목으로 20년형을 선고받고 감옥 생활을 한 노천명. 20년형이라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석방이 됐으니, 채 1년도 안 된 감옥생활이었지만, 아마 이름 없는 여인이었다면 그런 감옥생활도, 또 친일도 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석방된 이유가 유명한 시인이었고, 관계에 또 문학계에 알고 있는 힘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피난가지 못해 부역을 한 죄를 묻기에는 이승만 정권도 부끄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다만, 이름없는 여인이 아니라 이미 유명한, 이름 있는 여인이었기에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그런 모습을, 자신이 하는 행동이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지를 생각하는 그런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황현의 글을 인용하면 '난작인간식자인(難作人間識字人)'인 것이다. 인간세상, 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말하는, 지식인의 책무를 말한 황현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일제말에 친일 행위를 한 노천명을 변명할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 전집은 좀 아쉽다. 분명히 친일작품을 발표했다고 연보에서 알려주면서도 전집에서는 그런 작품들을 빼버렸으니 말이다. 어떤 설명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가령 그 작품들을 구할 수 없다든지 하는, 그것도 없이 수록하지 않았으니, 전집이라는 이름이 좀 무색하다.

 

또 노천명의 작품세계를 다 보여주는데도 아쉬움이 있고. 길지 않은 감옥생활이지만, 그 감옥생활에서 본 비극. 어쩌면 노천명보다 이름없는 여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 바로 이 시에 나타나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우리가 겪은 비극이고, 이름없는 여인들이 겪어야 했던 비극이다. 노천명이 노래했듯이 '여왕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그런 여인들.

 

   모녀의 출감

 

엄마는 트럭을 타고 형무소 묘지로

아기는 승용차를 타고 고아원으로

모녀는 이렇게 소원이던 출감을 했다

 

엄마가 감방에서 애기를 낳던 날 밤엔

비바람이 우짖고 뇌성벽력을 하더란다

 

징역 삼 년을 다 못 산 어느 날 저녁

봉화(奉化) 아주머니는 이렇게 출감을 했다

 

노천명, 사슴(노천명 전집1.시). 솔 1997년. 1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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