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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제목을 보고 언뜻 공자가 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
이 말을 과정으로 생각했다. 도를 듣자마자 죽는 것이 아니다. 아침이라는 출발점에서 도를 들었다면 그것을 실행해야 한다. 적어도 낮동안 도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다음에는 죽어도 좋다. 이미 도를 실천했으므로.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책의 시작을 알리는 글이자 제목이 된 글이다. 공자가 한 말과 유사성을 느끼며 읽었다. 그렇다. 도를 듣는 것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 다른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글쓴이는 말하는 이유를 읽고 공자의 말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게 됐다.
결국 도나 죽음이나 우리가 현재를 잘 살아가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현재를 잘 살기 위해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해야만 한다. 글쓴이는 죽음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시절에 아침을 열 때는 공동체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넷째, 정치인들이 말하는 가짜 희망에 농락당하지 않을 수 있다. 다섯째, 공포와 허무를 떨치기 위해 사람들이 과장된 행동에 나설 때, 상대적으로 침착할 수 있다. 그렇게 얻은 침착함을 가지고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자신의 생과 이 공동체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보는 거다. (19-20쪽)
그렇다면 이러한 시절은 무엇일까? 인용한 글의 앞부분에 나와 있다.
고도성장을 통한 중산층 진입, 절대악 타도를 통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과거 수십 년간 이 사회에 에너지를 공급했던 두 약속에 대해 사람들은 이제 낯설어하게 되었다. (19쪽)
우린 이런 세상에 산다. 목표가 명확하지 않은 세상, 무엇을 이루겠다는 꿈을 잃어버린 세상, 그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생각한다면 잃을 것보다는 얻을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책 제목을 보면 언뜻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 책 같지만, 주제가 모두 죽음은 아니다. 글쓴이가 여러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 글도 있고, 정치나 교육에 대한 글들도 있다. 또한 글쓴이가 신춘문예 영화평론으로 당선된 적도 있다고 하는 만큼 영화에 관한 글도 있다.
글 한편 한편이 생각을 많이 하게 한다. 좋은 글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생각을 하게 하고, 글에서 언급된 책들을 찾아보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 그것은 좋은 책이니.
이 책 역시 그렇다.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대해서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가령 '결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이들을 위한 세 가지 주례사'를 보면 결혼 생활에서 얼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사람들이 주장하기 힘든 말... 그것도 결혼식장에서. 그러나 얼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얼굴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얼굴빛은 유복한 생활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고, 사적인 행복에 안주하지 않고 보다 넓은 '공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깃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50쪽)
그러니 결혼할 사람들을 앞에 놓고 주례사를 말할 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너희들 얼굴이 중요하다고, 그러니 얼굴을 잘 가꾸라고. 어떻게? 사적인 것을 넘어 공적인 것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너희들 부부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 얼굴이 아름다워질 거라고... 그렇다. 이런 사람의 얼굴이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얼굴에서 어떤 아우라가 나올 테니...
이런 글들이 많다. 읽으면서 행복해지는 순간이다. 또 글이 잘 읽힌다. 그러니 더 좋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 말은 과정에 있다. 끝이 아니다. 삶은 바로 죽음과 함께 가므로, 죽음을 생각하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