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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12 - 위기로 치닫는 제국 ㅣ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12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4년 2월
평점 :
급격하게 쇠퇴기로 접어드는 시기를 다룬 것이 12권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공공심 쇠락, 극한 직업, 기독교 융성
1. 공공심 쇠락
한 나라가 쇠퇴기에 접어드는 것과 반비례하는 것이 바로 공공의식이다. 공공심이라고 하는 것, 공적인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줄어드는 것. 아니 공적인 의무보다는 사적인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는 시대가 바로 쇠퇴기다.
공적인 의무를 방기하는 것, 로마 역시 마찬가지다. 카라칼라 황제로 시작하여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즉위하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12권에서 무엇보다 먼저 로마 쇠락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공공심의 쇠락이다.
공적인 일에 참여하려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 의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러니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 또는 '나라야 어떻게 되든 나만 잘 되면 돼'라는 생각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무보수 직위였던 원로원의원이야 그만큼 권력을 휘두르고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그것을 거부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지방자치 의원의 경우에는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자신의 재산으로, 또는 능력으로 남들을 위해 일해야 하기 때문에 출마하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쇠퇴기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떤 황제는 지방 유력자의 자식들 중 한 명은 꼭 지방자치에 참여하도록 하는 법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공적인 일에 회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로마는 계속 쇠락해 갈 수밖에 없고.
이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프로부스 황제가 아닌가 한다. 그는 군사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야만족의 침입을 물리치고 어느 정도 안정을 이루기 시작했는데, 그가 펼친 정책이 병사들의 반감을 샀다고 한다.
그는 국경 지대에 정착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병사들이 무기 대신 곡괭이를 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로마를 더 오래 안전하게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이었겠지만, 당시 병사들은 자신들이 힘들게 되는 이런 정착지 개간에 반발심을 지녔고, 그 결과 황제를 살해하는 행위로까지 나아갔다. 자신들이 지금 힘들다고...
공공심이 완전히 결여된 모습이다. 원로원 의원들이 군사적인 일에서 배제된 것도 있지만, 이들은 황제가 군무에서 원로원을 배제했을 때도 그리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군사 업무는 힘들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냥 후방인 로마에 남아 이래라 저래라 하는 비평가로 남는 편이 그들에게도 훨씬 수월했던 것.
이래저래 상층이든 하층이든 공공심이 결여되어 가고 있던 것, 로마 쇠락기의 모습이다. 나라가 무너져 가고 있기 때문에 공공심이 떨어지는 것인지, 공공심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라도 쇠락하는 것인지 선후관계를 밝히기는 어렵지만,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은 분명하다. 둘은 명확하게 반비례한다.
2. 극한 직업
세상에 황제라고 하면 권력을 쥐고 남 부러울 것 없는 자리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당시 로마의 황제는 극한 직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극한 직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 생명도 보존하기 힘든. 그래서 맡기 싫지만 안 맡아도 죽음을 면하기 어려운 그런 상황.
수많은 황제들은 몇 년 안에 사라져 간다. 그것도 자연사가 거의 없다. 대부분 암살이다. 전쟁터에서 전사한 황제는 그나마 낫다고 할 수 있다. 자기 부하들에게 암살당하는 황제가 대부분이다.
이만큼 황제는 목숨을 버려야 할 정도록 극한 직업이다. 그에게 주어진 과업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가 버리니 참...
10년을 재위한 황제가 없다. 대부분 무슨 일을 하려하면 암살이다. 그냥 죽임을 당한다. 국경을 안정시키는 공로를 세운 황제도, 무능한 황제도 예외가 없다. 또한 이들에게는 권리보다는 의무가 먼저 작동한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그냥 사라지는 목숨이다. 자기 목숨을 걸고 황제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에 성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죽임을 당한다.
황제는 종신직이기 때문에 그가 불신임을 받는다는 것은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니 극한 직업이 아닐 수 있겠는가.
나라가 안정되지 않으면 황제도 자주 바뀌게 된다. 정책도 일관성을 잃는다. 잘 나갈 때 로마를 보면 황제가 누구냐에 따라 정책이 확 바뀌지 않는다. 아무리 전임 황제가 싫다고 하더라도 그가 펼친 정책 중에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철저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야 일관성 있는 정책을 펼칠 수 있고 나라도 안정될 수 있다. 하지만 쇠퇴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전임자이 정책을 계승하지 않는다. 계승해서 그것을 밀고나갈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러니 나라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황제가 제대로 정책을 펼치기 힘들어지기도 한다. 주변 사람들 눈치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황제는 극한 직업이다. 이 당시 로마 황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권력자가 아니다. 심부름꾼이다. 언제든지 갈아치울 수 있는. 그것도 엄청난 업무를 준 그런 심부름꾼.
3. 기독교 융성
기독교가 세를 불린다. 그들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이후 몇십 년 뒤면 로마에서 공인된 종교로 인정을 받는다.
종교가 득세하는 세상은 현실이 불안정하다. 불안정한 세상에서 자신의 마음을 둘 곳을 찾아 헤매다 명확하게 길을 제시해주는 종교를 믿게 된다.
기독교는 현세의 종교가 아니라 내세의 종교다.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들은 현세의 삶보다는 내세의 천국을 더 강조한다. 현세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종교에 귀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로마가 잘 나갈 때는 기독교가 로마에 그리 위협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현재의 삶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이 불안해 졌다. 미래가 안 보인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라는 답을 제시해 줄 수 없다.
이때 명확하게 답을 제시해주는 종교가 나타난다. 사람들은 우 그리고 몰려갈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자신들에게 위안을 주기 때문에.
또 힘든 사람끼리 서로 위안해주는 모임을 가지게 된다. 이런 모임에 가장 편리한 것이 바로 종교다. 기독교 또한 마찬가지다. 명확한 답을 알려주고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돕는 모습은 어려운 시대에 기독교가 더 퍼질 수 있게 한다.
난세에는 온갖 종교가 난무한다. 그 종교들 중에서 명확한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건가 저건가 고민하게 하는 종교가 아닌, 나를 따르라고 하는 종교가 세를 얻게 된다. 로마 쇠퇴기에도 그랬다.
그래서 기독교는 이제 무시할 수 없는 종교로 로마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 이런 세 가지 말로 '로마인 이야기 12권, 위기로 치닫는 제국'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