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라고 하는 바리. 버림을 받은 바리. 그러나 자신을 버린 부모를 살린 바리.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을 인도하겠다는 바리. 바리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가는 길에 있다. 아니, 바리는 바로 죽어가는 세상에 있다.

 

  자식을 버리는 부모, 죽어가는 세상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버리는 부모, 죽어가는 세상이다. 부모가 죽어가는 데도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길을 떠나지 않겠다는 자식들, 죽어가는 세상이다.

 

  자기들의 생활이 지구를 점점 죽어가게 하고 있는 데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보통사람들, 자기들의 정치가 국민들을 죽이고 있는 데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정치인들, 자기 배만 불리고 노동자들의 배는 곯게 하는 자본가들, 재벌들, 그리고 온갖 현학적인 말로 그들을 정당화하는 학자들... 죽어가는 세상이다.

 

바리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러나 바리는 아직도 무장승 곁에서 일을 하고 있나 보다. 바리가 돌아오기까지, 바리가 숨살이, 뼈살이, 살살이 꽃을 가지고 오기까지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았나 보다.

 

바리가 올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계속 죽어가고 있어야 하나 보다. 세상이 점점 죽어가고 있는데, 바리는 여전히 먼 곳에 있다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리를 버렸으니, 이제는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바리는 오지 않는다. 바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먼 곳에 있는 바리, 우리가 스스로 버린 바리를 찾아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우리 생활을 가만히 톺아보면 살아가면 갈수록 우리는 바리를 버리고 있단 생각, 우리가 스스로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데, 멀리 있는 바리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바리는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결코 오지 않는 '고도'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기다리기만 해서는 오지 않는 존재. 오히려 바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바리가 되어 와야 한다. 그래야만 죽어가는 세상을 살릴 수 있다. 

 

바리가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우리 삶과 자연의 삶이 함께 하게 하면 된다. 인위적으로 무언가를 계속 만들어내지 말고, 우리가 죽여가고 있는 자연을 기술로 해결하려 하지 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활, 그런 생활을 할 때 우리는 바리가 될 수 있다.

 

강은교 시집 '바리연가집'을 읽으며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바리'가 되어야 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하나. '백무동 물소리'

 

  백무동 물소리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구불구불 물소리 바위로 들어가고

구불구불 굽은 뼈 벼랑으로 들어가고

 

물소리에 기대앉아 바라보네

하염없이 하염없이 바라보네

나막신 한 켤레 들고

바라보네 바라보네

 

이 밤

살아 있는 것들 모두 거룩해질 때까지

 

강은교, 바리연가집, 실천문학사. 2014년.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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