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끝에서 사라지다
윤동수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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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라는 정부 기구가 있었다. 2000년에서 2004년까지 존재했던 위원회인데, 줄여서 '의문사위'라고 부른다.

 

밝혀지지 않은 여러 죽음에 대해서 진상을 규명하려고 설치한 기구였고, 많은 조사를 하려 했지만 여러 한계가 있었다고 한다. 한시적인 기구였기에 그 다음에는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활동을 했다고 하고, 지금은 행정안전부 과거사 관련 업무지원단으로 이관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기구가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역사에서 알려지지 않은 죽음, 석연치 않은 죽음이 많았다는 반증이 된다. 그만큼 독재정치가 펼쳐졌다는 얘기도 되고.

 

민주화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대통령도 이제는 탄핵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나라에서 여전히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들이 해명이 되지 않고 있는 경우가 많다.

 

광주민주화운동만 해도, 여전히 발포명령자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그동안 실종된 수많은 목숨들에 대한 진실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도 함께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조성우란 인물이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위원회에서 하진무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려 한다. 그러나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의 청구는 기각되고 마는데... 과연 진실을 규명하는데 꼭 가족의 요청이 있어야만 하는가? 가족의 요청이 없더라도 국가가 나서서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이런 위원회를 만든 이유이지 않나.

 

아마도 작가는 그만큼 진상 규명이 밝혀지기 힘들다는 것을 소설 속 인물 조성우를 통해, 또 오인희를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은 여기서 출발한다. 죽음조차도 밝혀지지 않은 실종자.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사라져 버린 사람에 대한 이야기.

 

독재정권, 그 중에서도 유신시대에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활동을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람, 하진무를 주인공으로 삼아 소설은 전개된다.

 

살아남은 하진무의 애인이었던 오인희가 하진무에 대해서 알아가려 추적하는 과정이 삽입되면서 소설은 대부분 하진무의 말로 전개된다. 즉 실종된 하진무가 자신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이다.

 

여기에 오인희가 그 당시 관련 있던 사람들을 찾아가 그 사람들의 당시 이야기를 듣는 내용이 중간중간에 들어가 있고.

 

그래서 이야기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현재로 자꾸만 돌아오고 있다. 즉, 현재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아니, 이야기는 현재에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설은 하진무의 형, 하승무를 등장시켜 과거 운동권들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한일협정 반대로 감옥 생활을 하고, 독재 정권에 탄압을 받았던 하승무가 현재에는 독재자의 정치를 계승한 정당에 몸담고 있는 현실.

 

작가는 어쩌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그와 관련된 사람을 상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더라도 당시에 자신이 지녔던 신념이 세월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하승무를 통해서 보여주는지도 모른다.

 

이런 하승무와 같은 사람들의 변절이 있었기에 여전히 의문사는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다는 사실도.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 집단이 있음도, 그들이 막강한 힘을 아직도 지니고 있음을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사라져 간 사람을 소설 속에서 살려내고 있다.

 

제목이 '길 끝에서 사라지다'이다. '길 끝' 더이상 갈곳이 없는 곳. 이것은 독재 정치가 직면해야 할 상황일텐데, 이상하게도 민주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맞닥뜨린 현실이 된다. 그리고 길을 더이상 만들지 못하고 사라져 간다.

 

다음에도 나오지 못하게... 사라져 갔지만, 과연 그것으로 끝났을까? 소설은 그렇지 않음을, 그 사라짐이 영원히 계속될 수 없음을,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도 하진무를 잊지 못하고, 그에 대해서 계속 알아가려 하는 오인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스러져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정도나마 민주화된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길 끝에서 사라져 간 그 많은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은 이렇게 우리에게 과거 길 끝에서 사라져 간 사람을 다시 살려내 보여주고 있다.

 

이들이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작가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을 읽다보면 길 끝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들이 누군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라져야 할 것은 사라지고, 나타나야 할 것은 나타나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덧글

 

출판사에서 보내준 소설이다. 과거 유신시대 또 전두환 정권 시대에 관한 소설을 읽고 싶지 않은 마음이 많았다. 너무도 마음 아픈 사연들이 많으니... 이제는 그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해결이 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런 현실이 더 마음 아프기에...

 

그럼에도 읽어야지, 과거를 묻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 불러내야지. 보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다시는 그런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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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saint 2019-05-13 1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제목을...차라리...[길 중간에서 사라지다]로 바꿨으면...
그들은 결코 그들의 길을 끝까지 가보지도 못하고...사라졌기에...

kinye91 2019-05-13 13:5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그들의 길을 끝까지 가지도 못하게 한 현실, 그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