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피겨스 - 여성이었고, 흑인이었고, 영웅이었다
마고 리 셰털리 지음, 안진희 옮김 / 노란상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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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으로 너무도 잘 알려진 허균이 쓴 글이 있다. '유재론'이라고. 너무도 많은 인재들이 버려지고 있다는 글.

 

중국보다도 좁은 땅덩어리에, 중국보다도 훨씬 적은 인구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신분으로 사람을 나누고, 또 남성과 여성으로 나눠, 양반 중에서만 발탁을 하니, 어찌 나라가 발전할 수 있으리라고 한탄하는 글.

 

사회를 이루는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서 능력 발휘할 기회를 아예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능력을 발휘한다면 한참 걸릴 일들이 더 빨리 해결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게 우리나라만의 문제였을까? 1900년대에 들어와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는 미국에서도 겪은 일이다. 아니 미국은 1960년대까지도 이런 일을 겪었다. 물론 지금도 인종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고 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라는 나라이기는 하지만.

 

이 책에 대해서는 영화로 먼저 알았다. "히든 피겨스" 감춰진 인물들이라니... 아니, 드러나지 않은 인물들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영화를 꽤 재미있게 보았기 때문에, 이 영화가 책으로 나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작이 있었다니, 그것도 출판이 되었으니, 책으로도 읽어야지...

 

   미국 나사(NASA)라고 통칭하자. 지금은 그렇게 이름이 바뀌었으니.. 이곳에 여성 공학자가 얼마나 있었을까? 그 여성 중에서 흑인 여성은 또 얼마나 되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어쩌면 나사에는 백인들만, 그것도 백인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었고, 그들에 의해서 미국 항공, 우주 산업이 발전했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그만큼 흑인 여성들은 이중으로 감춰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남부에서는. 인종분리정책이 철저하게 지켜지던 미국 남부에서 흑인 여성들이 지닐 수 있는 직업은 한정되어 있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된 대우를 받기는 힘들었다고 하니...

 

  이런 흑인 여성들에게 기회가 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회는 전쟁을 통해서 온다. 남성들이 전쟁터로 나간 공백을 메워야 하는 사태가 온 것.

 

항공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수한 비행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수한 사람들이 필요한데, 전쟁터로 대부분 나간 자리를 메워줄 사람들로 여성, 또 흑인 여성들을 고용하기 시작한다.

 

수학, 과학에 재능이 있었으나 기껏(?) 수학교사나 과학교사로만 지낼 수밖에 없었던 흑인 여성들에게 항공산업에 종사할, 그것도 교사보다는 월급이 두 배 이상 많은, 기회가 온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인물... 도로시 본, 메리 잭슨, 캐서린 존슨. 그리고 차세대 학자라 할 수 있는 크리스틴 다든.

 

책은 이들이 나사의 전신인 랭글리 항공 연구소(NACA)에 들어가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발휘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은 흑인 여성을 가로막고 있던 유리 천장을 부숴버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해냄으로써, 또 남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해냄으로써 다음 사람들이 조금 더 편하게 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낸 사람들이다.

 

물론 이들도 처음에 연구소에 들어갔을 때 알게 모르게 차별을 받는다. 특히 화장실부터... 여기에 식당에서도 자신들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는 팻말까지 있으니... 이 팻말을 치우고 또 치우고, 결국 팻말이 없어지게 하는데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다른 보이지 않는 차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도로시 본은 흑인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관리자가 된다. 또 세상의 발전을 꿰뚫어보고, 수학 계산만 하는 컴퓨터(계산원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에서 컴퓨터(우리가 말하는 컴퓨터다)를 다루는 프로그래머로 변할 줄 아는 사람이다.  

 

수학적 천재라고 할 수 있는 메리 잭슨과 캐서린 존슨...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연구원이 되는 크리스틴 다든. 또 이 책에 잠깐 언급되는 많은 흑인 여성 수학자들.

 

이들의 노력으로 이제는 '흑인-여성'이라는 이름을 떼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유리 천장에 구멍을 뚫고, 그 구멍을 넓히고, 완전히 유리 천장을 없애버리는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첫발을 내디디긴 힘들다. 하지만 첫발을 누군가 내디디면 그 다음 사람이 발을 내밀고 걸어가기는 한결 쉬워진다. 그렇게 길이 난다. 이제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이 된다. 그런 길을 만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히든 피겨스'

 

쉽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게, 이들이 지녀야 했던 무게를 생각하면서, 그들의 결코 편하지 않았을 발걸음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또 지금 우리에게도 이런 유리 천장이 여전히 있지 않나 하는 성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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