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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아워 1 - 생과 사의 경계, 중증외상센터의 기록 2002-2013 ㅣ 골든아워 1
이국종 지음 / 흐름출판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골든 타임이라는 말이 있다. 환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고 발생 후 수술과 같은 치료가 이루어져야하는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하는데, 영어로는 'golden hour'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 제목이 되는 골든 아워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알고 있는 골든 타임인 것이다. 골든 타임을 놓쳐서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는지, 그것을 4월에 경험한 우리들은 이 말에 깃든 무게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말이 지니고 있는 생명들의 엄청난 무게에도 간혹 허공에 흩어지는 말로 전락할 때가 있다. 여전히 우리는 말로만 골든 타임, 골든 타임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고들은 여전히 많이 일어나고, 살릴 수 있는 생명들이 많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고로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죽어가는지 방송보도를 보면 알 수 있다. 방송보도에서도 이 정도로 많은데, 방송되지 않은 사건사고들까지 치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죽어가고 있겠는가. 시간을 놓쳐서, 또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서.
이국종 교수는 아덴만 작전에서 석해균 선장을 치료한 일로 언론에서 많이 언급했고, 우리에게 잘 알려졌다. 그가 외상외과 의사로 사고를 당한 많은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가끔 그는 언론에 나와 쓴소리를 했다. 우리나라 중증외상 환자들의 치료 실태에 대해. 우리나라 의료 현실에 대해. 그가 하는 쓴소리들이 마음에 별로 와 닿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가 왜 그런 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는가 이해하게 됐다.
정말, 읽으면서 속에서 천불이 난다고 할 정도로 분노가 치밀기도 했다. 의료계와는 거리가 먼 나도 그런데 직접 현장에서 이 많은 일들을 겪고 있는 당사자는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중증외상 의료센터를 지정한다고 하니, 그동안 별 관심도 없던 병원들이 지원하는 행태. 그들이 지원해서 얻어간 과실은 환자들의 생명이 아니라 정부의 인정을 받았다는 증명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드는 비용이 건강보험에서 수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의사는 남의 질병을 고치거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 최소한 그들이 손해를 보게는 하지 않는 것이 의료 정책이어야 하는데, 일률적인 잣대로 보험 수가를 정해 지급을 하니,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하면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게 된다는 현실이 책에 나와 있어 참담한 마음을 지니게 하고 있으니...
2009년, 외상외과에 혼자 있을 때 1년간 적자는 8억 원을 넘는 수준이었다. 2010년 정경원이 합류해서 열심히 진료하고 수술하니 8개월 만에 적자가 8억 원을 넘어섰다. 권준식 등이 합류하고 렐리콥터를 이용해 중증외상 환자의 집중도가 증가하자 적자는 더 늘어났다. 2012년에 기획팀장이 나를 찾아와 20억 원이 넘는 적자를 보이는 외상외과의 ABC 원가분석 보고서를 내밀었다. (337쪽)
사람을 살릴수록 병원은 적자를 내게 되어 있다. 어떤 병원에서 이런 치료를 좋아하겠는가. 병원도 수익을 내야 하는 곳이다. 수익이 없더라도 국가에서 지원을 해주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이국종 교수와 같이 외상외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병원 고위 관계자들의 눈에 날밖에..
왜 이 책을 시작하면서 소설가 김훈을, 김훈이 쓴 칼의 노래를 언급했는지 이해하게 되는 장면이다.
이순신이 겪은 일을 생각해 보라. 그가 하는 일을 지배층이 지지해주었던가. 그들은 이순신의 공적을 자신의 것으로 돌릴 생각을 했지, 이순신에게 최적의 지원을 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국종 교수가 이순신처럼 위대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처한 현실이 이순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 역시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어느 정도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그 성과가 제도의 정비, 제도의 정착으로 가지는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를 이 책 곳곳에서 이국종 교수는 말하고 있다.
환자를 살릴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한다. 한 시간 이내에 수술에 들어가면 많은 환자들을 살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중증외상 환자들을 한 시간에 병원으로 이송하기 위해서는 교통편이 확보되어야 한다.
앰블런스와 같은 자동차로 이동하는 것은 시간도 걸리고, 도로가 정체될 때 심각한 문제가 된다. 또한 섬과 같은 벽지에서 사고가 났을 때는 의료진이 가는 데도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럴 때 가장 필요한 이동수단이 헬기라고 한다.
지금은 헬기가 도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국종 교수가 말하고 있는 이때(2012-2013년)에는 헬기를 사용하기가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석해균 선장을 구출하고, 치료에 성공하면서 헬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전용 헬기를 많이 확보하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헬기도 헬기지만 문제는 외상 의료진을 확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국종 교수는 1권에서 소수의 팀원만으로 외상의료센터를 꾸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과로에 시달리고 결국 하나둘 쓰러져 간다.
남을 살리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이 없어서 쓰러져 가는 현실, 그럼에도 인원 확충이나 장비, 물품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하며, 병원 고위 관계자들에게서는 곱지 않은 눈길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고 하니...
정부 역시 마찬가지였고... 생색내기 정책을 펼칠 뿐이지 실질적으로 제도가 정착되게 하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이국종 교수는 일을 하면서도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이어받을 사람이 많이 나타나야 하는데, 거의 없는 현실에 힘들어 한다.
외부 지원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중증외상 환자들을 치료해야 하는 현실, 이들은 거의 초인적인 모습을 보인다.
과연 이렇게 해야 할까? 이것이 이 책을 쓴 이유일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그냥 사그라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놔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
생각 못했던 참담한 의료 현실이었다. 외상외과 의료센터를 만들고, 그들을 치료하는 제도를 만들어가는 초기에 겪는 어려움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할텐데... 과연 지금은 얼마나 나아졌는지... 2권을 읽어봐야겠다.
1권을 읽으며 느꼈던 분노가 2권에서는 좀 누그러지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