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만난 첫시가 아, 이거다 싶은 경우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 이 시집은 첫시를 읽자마자 아, 이거다 싶었다.
선거 때만 되면 말들이 혼탁해지지만, 평소에 더럽혀진 말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도대체 어떤 말들이 필요한지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입에서 내뱉으면 말이 되는 줄 아는 사람도 많은지... 제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남의 말은 듣지도 않고, 남의 감정은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말이 얼마나 필요한지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내뱉아진 말.
말을 조율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바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말을 조율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말들이 조금 엇나간 것이 아니라 완전히 뜯어고쳐야 할 정도로 나아갔으니 말이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은 표현의 자유라고 할 수 없다. 그런 말들은 표현의 자유를 넘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말이 된다. 굳이 혐오표현이라고 하지 않더라도.
혐오표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없는 말 중에도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말들이 많다. 특히 정치권에서 나오는 말들을 보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식으로, 제 잘못은 생각도 않고 오로지 상대편을 비방하는데 전력을 기울인다.
제 말이 얼마나 더러운지 생각도 못하고, 그냥 뱉어버리는 말들. 허유와 소부의 고사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내 귀가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씻어도 씻어도 깨끗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언어의 조율사가 나온다면 그는 엄청 고생할 것이다. 이 엇나간, 맞지 않는 말들을 맞추기 위해서... 임영조 시집, 첫시 '조율사'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아니, 우리들이 이런 조율사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염된 말 속에서, 오염된 대기 만큼이나 괴로워하면서 지내야 할 것이다.
조율사
어느 놈이 말썽인지
아무 기탄없이 지목하세요
고장난 소리는 모두 고쳐 줍니다
쓸데없이 소리만 큰 놈
병신같이 속으로 기어드는 소리도
모조리 가려내 풀거나 조여
원하시는 성대(聲帶)를 도로 찾아 줍니다
위턱과 아래턱이 뒤틀려
말버릇이 언제나 지저분한 입
그래서 종종 화음(和音)을 깨는
독불장군도 바로잡아 줍니다
고분고분 바른말만 하도록
(진정한 민주화를 위하여
소수의 의견도 존중하라!)
참 지당한 말씀 같지만
이미 망가진 소리는
다수의 귀에는 폭력이에요
어느 놈이 말썽인지 대세요
당신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순하고 듣기 좋게 바꿔 줍니다
그동안 방치해 둔 평화를
당신의 압류된 노래를
깨끗이 해금시켜 줍니다
하루 품삯 이만 원이면.
임영조, 그림자를 지우며. 시와시학사. 2002년 초판. 13-14쪽.
망가진 소리들이 돌아다니지 않게 조율했으면 좋겠다. 단돈 이만 원이 아니더라도, 더한 돈이 들더라도.
미세먼지보다도 더 좋지 않은 것, 그것이 바로 오염된 말, 망가진 소리다. 그런 소리들을 조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