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아의 우편배달부
구드룬 파우제방 지음, 오공훈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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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즈음 독일 동쪽, 보헤미나 지방에서 일어난 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소설. 주인공은 어린 나이에 군대에 끌려가 왼손을 잃고 돌아와 우편배달부 일을 하는 요한이다.

 

이 요한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이 드러나는데, 전쟁 장면이 나오지 않아도 전쟁으로 인해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전쟁은 모든 익숙한 것을 파괴했고, 안전을 잠식했고, 희망을 으스러뜨렸고, 육신을 괴롭혔고, 영혼을 일그러뜨렸다. 그리고 전쟁은 기억하려는 의지도 앗아간 것 같았다. (37쪽)

 

이것이 전쟁이 불러오는 결과다. 평화는 어디에도 없다. 평화로운 것 같은 겉모습이지만 이들에게는 모두 이러한 상태가 곧 찾아온다. 대표적인 사람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다. 이 할머니에게는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 전쟁이다. 손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이로 인해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이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듯이.

 

주인공 요한이 우편을 배달하는 지역에는 건장한 남자들은 남아 있지 않다. 이들은 모두 나치 지도자급들 제외하고는 모두 징집당해 전쟁터에 있다.

 

마을에는 여자들과 아이들만 남아 있는데, 이들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것이 요한이 하는 일이다. 평화로운 마을이 되어야 하는데, 전쟁은 전방과 후방을 가리지 않는다. 전쟁은 바로 자신의 일이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일이기 때문이다.

 

가족들 중 전쟁과 관련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들은 남편을, 아들을, 애인을 전쟁터에서 잃는다. 요한이 전달해 주는 검은 편지, 이것은 곧 이들의 사망선고서거나 실종을 알리는 편지다. 이 편지들을 받는 사람들은 대개 여성이다.

 

후방에서 살아남아 있지만, 전쟁의 비극을 온몸으로 그것도 지속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사람들, 여성. 그러나 여성들은 꿋꿋하게 살아간다. 이들에게는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의 어머니 말을 빌려 작가는 전쟁을 일으키는 국가의 남성성을 비판한다. 미래세계에는 이런 남성성이 우위에 있지 말고 여성성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작가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산모와 산파는 작은 개구쟁이를 세상으로 밀어넣으려고 애쓰는데, 나라는 개구쟁이가 성인이 되자마자 만사 제쳐놓고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구나 ... 나라는 '남자'가 분명해. 여자라면 그런 짓 안 하지. 여자는 그저 아이를 낳고 키을 뿐이야. (89쪽)

 

이래서 요한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또다른 산파인 이르멜라를 만난다. 이르멜라와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다른 세대를 위한 길이 보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이르멜라가 받은 아이들은 전쟁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요한은 그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 그가 살아남아 전쟁의 참상을 전달해줘도 되겠지만, 그러기에 요한은 전쟁 반대를 위해 한 일이 없다. 착하디 착한 요한도 어찌보면 전쟁 가담자에 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그가 우편배달 일을 하면서 점점 성장해가기는 하지만.

 

작가가 마지막 부분에서 요한을 표현한 부분은 전쟁에 대한 책임이 모두에게 있음을 알려주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히틀러나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도 있다.

 

국가의 안녕을 위해 네 손이나 네 목숨을 바치길 기대하는 빌어먹을 국가가 도대체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이 있긴 하니? (212-213쪽)

 

그러나 이들은 카페 혁명가처럼 이런 생각을 실천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이들은 침묵하고, 몇몇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전쟁을 막지 못한다. 이들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이 끝난 뒤 이 마을이 겪게 되는 일들은 전쟁의 책임에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작가의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전쟁,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휴전 중이지 않은가. 우리는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전쟁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기도 하고.

 

그만큼 이 소설이 우리에게는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올 수 있다. 전쟁이 얼마나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편배달부를 통해 전쟁이 사람들에게 비극으로 다가옴을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반전 소설로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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