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이 낸 첫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1987)을 읽으면서 충격을 받았다.

 

  시 하면 무언가 아름답고, 세련되고, 조금은 돌려 말하는 그런 표현방식을 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장정일은 첫시집에서 직설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들이밀었다.

 

  특히 '낙인'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시에서 대중문화를 잘 융합시켜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음에 신선한 느낌을 받기도 했고.

 

  그는 어느 한쪽에 자신의 생각을 고정시키지 않고, 기존 관념을 넘어서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시인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읽은 그의 시집은 달랑 두 권...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서울에서 보낸 3주일』이 다다. 소설도 썼지만 읽은 것은 없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도 그냥 그런 책을 냈구나 하고 넘어가고 말았다.

 

그러다 다시 그의 초기 시집에서 뽑은 시들을 엮은 선시집을 발견하고는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중고서점에서 구입을 했다.

 

이 시집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현재는 절판된 『상복을 입은 시집』 (1987), 『서울에서 보낸 3주일』(1988), 『천국에 못 가는 이유』(1991)에서 가려 뽑은 것들이다. 여기 실린 시들이 내 시의 진면목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세 시집 가운데서도 일부러 가장 '내 것'다운 것을 빼고 평이한 형식과 친근한 주제를 가진 것들만 골랐다. 그만큼 '늙어, 힘이 빠졌다'는 뜻도 되지만, 현대시의 쇄말성과 난해함을 씻어보자는 뜻도 있다. (120쪽) 

 

2005년이면 장정일이 1962년생이라고 하니 43-44세 정도의 나이다. 시인으로서는 중견 시인이 될 때인데, 그는 시에서 멀어졌다고 한다. 아마도 다른 글쓰기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고, 그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시귀'가 빠져나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판된 시집들은 구하기 힘드니, 이렇게 그 시집들에서 자신이 뽑아서 실은 시들을 독자들이 만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이 시집은 시들 끝에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았다. 왜 그런 시를 썼는지 알 수 있기에 장정일의 고민을 알 수 있어서 더 좋은 시집이다.

 

많은 시들 중에 '개'라는 시를 보자. 어떻게 해석해도 좋다. 시 끝에 있는 시인의 말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개

 

  코가 길고 귀가 껑충한

  엄숙하고 예절바른 개들의 사회에서

  함부로 으르렁대고

  함부로 이빨을 드러내 보이고

  함부로 짖고 물어뜯으며

  함부로 씹하고 사생아를 낳고

  하루 종일 놀고먹으며 빈둥대는 개를 가리켜

  저 개는 인간 같이 더러운 성질을 가졌군

  하고……

 

나는 개를 좋아한다. <벤지>라는 영화도 몇 번이나 봤다. <아이 필 러브>라는 주제곡도 기억난다. 길에서 개를 보면 저절로 발걸음이 멈춘다.

 

장정일. 주목을 받다. 김영사. 2005년. 38쪽.

 

개만도 못한 * 이런 욕을 많이 하는데, 지금도 이런 개만도 못한 *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면 개들 처지에서는 인간 같은 개, 또는 인간만도 못한 개라는 말이 가장 심한 욕이 될 수도 있겠다.

 

개나 다른 짐승들, 또는 생명들에게 인간에 빗대어 비난하는 욕들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할텐데...

 

이 '개'라는 시를 보면 어려운 말 하나 없다. 그럼에도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쏙쏙 들어온다. 머리 속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 이미 시의 내용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 이런 평이한 시. 그러나 할 말을 다 하는 시. 장정일이 우리에게 보여준 시들이다.

 

다른 많은 시들 역시 이렇듯 머리 속에서 한참 궁리하기보다는 마음으로 그냥 파고들어 온다. 쇄말시, 난해시가 아니라, 우리가 느끼는 것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장정일이 쓴 시들은 이랬다. 그리고 그 시들은 지금도 유효하다. 형식이든 내용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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