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은 낮은 곳으로 흐른다. 그러면 그냥 산문이다. 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물의 속성을 좀 바꾸면 시가 될 수 있다.

 

  허만하 시인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이 주는 충격. 비가 수직으로 서서 죽다니... 그럴 수가 있나? 끝없는 하강. 땅으로 직행. 이것이 죽음인가?

 

  꿋꿋하게 자신을 잃지 않고 떨어지는 비...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 그래서 시가 된다.

 

  이번엔 물이다. 물은 중력의 법칙을 너무도 잘 드러낸다.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가는 물. 비도 하늘에서 땅으로 수직으로 떨어지지 않던가.

 

그런데 이번엔 비는 아래로가 아니라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고 했다. 언뜻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물은 중력의 법칙을 거슬러 위로 흐를 수도 있다.

 

물이 위로 흐를 때 생명이 유지된다. 그렇게 생명에의 목마름, 그곳으로 물은 흐른다. 제목 자체가 시가 된다. 이렇게 제목이 된 시는 '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이다.  3연에 이 구절이 나온다.

 

  물은 낮은 쪽으로 흐르는 비굴이 아니다. 물은 언제나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거꾸로 서서 흐르는 물은 가혹한 의지意志만으로 한 그루 오리나무처럼 비탈에 서 있다.

 

허만하,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 2002년 초판 2쇄.육십령재에서 눈을 만나다. 3연. 16쪽  

 

삶에의 욕구. 그것으로 향하는 물. 물에서 생명의 운동을 보고 그것을 노래하는 것, 이것이 시다.

 

이 시집에 실린 첫시.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바벨탑 공화국'이라고 일컬어 지는 우리나라, 자꾸자꾸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아만 가는 건물들, 그런 건물들에서 가장 높은 곳, 전망이 좋은 곳. 그러나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어떻게 달동네를 전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달동네는 전망이 좋은 곳이라기보다는 전망이 어두운 곳이다. 생활에 치여 살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삶의 아름다움이 있다. 시인은 달동네를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라고.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높은 곳은 어둡다. 맑은 별빛이 뜨는 군청색 밤하늘을 보면 알 수 있다.

 

  골목에서 연탄 냄새가 빠지지 않는 변두리가 있다. 이따금 어두운 얼굴들이 왕래하는 언제나 그늘이 먼저 고이는 마을이다.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이는 전망이 아니다. 흙을 담은 스티로폼 폐품 상자에 꼬챙이를 꽂고 나팔꽃 꽃씨를 심는 아름다운 마음씨가 힘처럼 빛나는 곳이다.

 

  아침노을을 가장 먼저 느끼는 눈부신 정신의 높이를 어둡다고만 할 수 없다.

 

허만하, 물은 목마름 쪽으로 흐른다. 솔. 2002년. 초판 2쇄. 15쪽

 

바벨탑 공화국에서 이렇게 사람 냄새 나는 곳들을 하나하나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없애고 있다. 위로 위로만 가는 건물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된다. 비록 삶은 힘들지라도 그곳에서 '정신의 높이'를 잃지 않고 세워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 그런 곳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늘이 먼저 고이지' 않도록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풍경에 대한 추억이다'라고 시집을 시작하기 전에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시인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우리 눈 앞에 펼쳐보인다. 이래서 시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