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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빠리의 이방인 - 사회심리학에서 찾은 철학적 사색의 즐거움
고자카이 도시아키 지음, 박은영 옮김 / 레몬컬쳐 / 2018년 11월
평점 :
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끌었던 책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다.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오고도 프랑스로 망명을 해야 했던 사람, 홍세화. 그곳에서 그가 살기 위해 택한 직업이 택시운전사였다.
우리나라에서 택시운전사는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우리나라 안에 갇혀 있던 사람들에게 다른 곳을 통해 우리를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프랑스라는 나라, 똘레랑스(관용)의 나라라고, 융통성, 포용성이 있는 나라라고, 그렇게 우리 역시 우리의 생각을 돌아봐야 한다는 충격을 준 책이었다.
왜 이 책이 인기를 끌었을까? 우리 자신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우리 속에 푹 빠져서 우리 바깥에서 우리를 보지 못하고 있을 때, 다른 눈으로 우릴 보게 해준 책이기에 의미가 있었다.
지금 읽은 일본인 학자가 쓴 "나는 빠리의 이방인" 역시 예전에 읽은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떠올리게 해줬다. 그런데 이게 문제다. 이 책을 읽고 예전 책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동안 변화없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 아닌가.
홍세화가 그 당시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가 소수자였기 때문이다. 이방인이었기 때문이고, 경계인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보통 소수의 사람들이 안티테제를 제시한다. 하지만 소수가 다수의 상식을 능가하더라도 소수의 생각이 답습되기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다수의 상식과 대립하는 것을 넘어 대립의 전제마저도 뛰어넘어야 한다. 이질적인 생각들이 충돌해 생겨나는 파괴와 재구성의 끊임없는 운동. 소수는 바로 그런 운동의 기폭장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변혁을 통해 세계를 바꿔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수의 존재 의의다. (48쪽)
당시 홍세화는 소수자였고, 안티테제를 제시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변혁되어야 함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이런 소수자는 꼭 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바꾸는데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던, 현실 너머를 볼 수 있던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목하든, 주목하지 않든.
그러나 몇십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세상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소수자가 세상을 변혁시킨다고 했지만, 우리는 대립의 전제를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비교는 했지만, 비교에서 그치고 다른 쪽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보고 거기서 멈추었기 때문일 수 있다.
다시 이 책을 인용한다.
(사실 이런 인용은 이 책을 쓴 저자가 가장 싫어하는 방식이다. 자기 나름대로 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데... 책에 대한 느낌을 쓰는 글이니까 라고 넘어가기로 하자)
해당 시스템의 논리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결정할 수 없는 이탈자의 의견·가치관·행동이 시스템 내부에 반드시 존재한다. 사회는 열린 시스템을 취하고 교란 요인이 발생한다. 이 교란 요인은 사회의 기존 규범에 흡수되지 않고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켜 간다. 이것이 모스코비치의 발생 모델이다. (79쪽)
깊은 변화를 가져오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진정한 영향은 소수파만이 일으킨다. 세계를 변혁하는 것은 이탈자다. (91쪽) - 모스코비치의 말이라고 이 책에 나온다.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모스코비치의 소수자 이론이라고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이 말을 통해 어쩌면 우리 사회는 교란 요인이 사회의 구조를 변혁시켜 간 것이 아니라, 사회의 기존 규범에 흡수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즉, 소수파가 해외에는 있었는데, 해외에서 다른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보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쪽 사정일 뿐이라고, 우리는 다르다고 지레 포기하고 만 것은 아닌지, 아니면, 해외에 존재하는 이방인, 경계인과 더불어 사회 내부에도 소수파가 존재해야 하는데, 그런 이탈자가 내부에서 살아남기 힘든 구조였는지...
하지만 세상 변혁을 이끈 사람들은 소수파일 수밖에 없다. 혁명가들은 늘 소수다. 그러나 그들로 인해 세상은 확 바뀌게 된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 또한 만만치 않다. 계속 이 책을 보자.
기득권은 족쇄를 만들어 오히려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그만큼 인간은 약하다. 항상 변명을 하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한 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퇴로를 미리 차단하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도 때로는 필요하다. (216쪽)
강하게 비판하는 소수자였다가 어느 순간 다수파로 변하는 순간, 그만 소수파들은 스스로의 족쇄에 갇히게 된다. 사회 변혁을 주장했던 소수파들이 어느 순간 다수파가 되고, 기득권에 흡수되어 기득권 세력이 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바로 '퇴로' 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든지 피할 곳이 있었으므로, 적절한 선에서 타협을 하게 된다. 이 책에서 비판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방인, 경계인에게는 '퇴로'가 없어야 한다. 스스로 없애야 한다. 바로 백척간두에 서서 한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사람들만이 소수파가 된다.
그리고 그들로 인해 세상은 바뀐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것. 스스로를 계속 바깥에 위치시키는 것, 경계에 서서 실천하는 것, 그런 경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회변혁을 이끄는 소수파다.
틀 속에 살면서도 꼭 틀 바깥에서만 보아야 경계인, 이방인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틀 내부에서도 경계인, 이방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그리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변해왔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와 마찬가지로 저자 자신이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는 자전적인 과정도 서술되어 있어서, 자서전을 읽는 느낌도 주고, 또 일본인이 어떻게 서양을 모방하고, 서양에 대해서 어떤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는지 - 이 책에서는 그것을 명예백인이라고 한다 - 도 알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자신의 삶도 이방인의 눈으로 볼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