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독서 -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
최영화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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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기막히게 잘 붙였다는 생각... '질병은 어떻게 이야기가 되는가'라는 작은 제목에 '감염된 독서'라니...

 

제목만 보았을 때는 읽기가 전염되는 물질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 마음까지도 감염시킨다는 내용이지 않을까 추측을 했다.

 

얼마나 멋진가? 읽기의 감염. 그 감염은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해주고, 서로를 이해하게 해주며 공통된 경험, 문화를 지니게 할 테니... 이렇게 생각하고 읽었는데, 첫장부터 예측이 빗나갔음을 알게 되었다.

 

읽기가 감염된다는 얘기가 아니구나. 문학 작품에 나온 질병에 대한 이야기구나. 그렇다면 그 질병으로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감염내과 전문의로 일하는 저자가 병과 관련된 글을 쓴 것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러니까 의사가 질병에 대해서 글을 쓰는데,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질병과 관련지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의학서적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작품을 분석한 책도 아닌, 수필집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수필이니까 저자의 느낌, 생각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제목에서 받았던 신선한 느낌을 글에서 받기는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의사들의 내면을 조금은 들여다볼 수 있고, 문학작품 속에 질병이 이만큼이나 많이 등장하는 것은 질병이 인간의 삶에서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질병을 안고 살고 있는 환자다. 병원에 가든 가지 않든 우리는 모두 환자임에는 확실한데, 그것을 전문의에게 맡길지 아니면 자신에게 맡길지, 약으로 고칠지 생활습관, 환경을 바꿈으로써 고칠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물론 너무 심한 병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하고, 이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질병은 저자가 감염내과 전문의이니 만큼 감염병들이다.

 

홍역, 성홍열, 결핵, 장티푸스, 콜레라, 천연두, 인플루엔자 등등

 

감염병이 아니더라도 다른 질병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저자의 전공과 관련된 질병, 그리고 문학 작품에 나오는 그 질병에 관해서, 자신의 경험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딱딱한 의학서적이 아니라 편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문학의 감염역을 생각했던 사람에게는 실망을 안겨줄 수 있기도 하다.

 

또 질병이 나오는데, 딱딱하게 쓰지 않으려 해서 그런지 몰라도 그 질병에 대해서 보충설명이 있었으면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각 질병을 한 쪽 정도 할애해서 설명해주었으면 좀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물론 그러면 분량이 많이 늘어나겠지만, 동일한 질병들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으니 이를 하나로 묶으면 분량 문제도 해결이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가령 성홍열에 관한 글이 있는데 (성홍열과 홍역 사이 -형제, 나를 살찌운 것들-만화책과 성홍열)을 보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수긍하기 힘든, 그런 구절이 있다.

 

성홍열인데 이 병에 걸리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 항생제가 없던 시절의 성홍열 사망률이 25퍼센트였다고 하니 걱정할 만했지요. ('성홍열과 홍역 사이- 형제'에서 102-103쪽)

 

성홍열은 A군 사슬알균에 의한 세균성 인후염으로 피부 발진이 동반되는 게 특징이고 근접 접촉이나 비말(飛沫 - 날아 흩어지거나 튀어오르는 물방울)로 전파되는데 고열, 두통, 인후통, 발진이 있고 혀가 딸기처럼 빨개집니다. 심하지 않으면 일주일쯤 앓다가 열이 떨어지고 낫는데 피부가 살짝 벗겨지는 게 특징이지요. ... 루이자 올콧이 활동하던 시기엔 항생제가 없었으니 진통제로 벨라도나를 먹은 뒤 실컷 앓으면 면역을 얻었을 것입니다. ('나를 살찌운 것들-만화책과 성홍열' 171-172쪽)

 

두 글을 읽으면 한쪽 글에서는 성홍열에 걸리면 목숨을 잃을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긴박감을 다른 글에서는 마치 독감을 앓고 마는 듯한 가벼운 느낌을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같은 병인데, 게다가 루이자 올콧 -작은 아씨들의 저자-이 살았던 시대는 루쉰이 살았던 시대보다 앞선 시대인데...

 

이런 부분을 하나로 엮어서 더 이야기를 풀어갔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그러나 이런저런 얘기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의사들을 경원하지 않게 해준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지금도 마음을 울리는 구절은 이런 질병과 관계가 없는, 그러나 내 마음을 감염시킨...'닥터 노먼 베쑨'에 나오는 그 구절...

 

"닥터 봉, 당신은 도대체 어느 대학을 나왔소?" (이 책 167쪽. 테드 알렌 외, 닥터 노먼 베쑨, 실천문학사. 1999년 초판 43쇄. 322쪽.)

 

환자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중국인 의사에게 베쑨이 하는 말... 마지막 말,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의사는 대학을 나왔다는 생각.

 

세칭 386이라는 사람들이 (이 말 역시 써서는 안 될 말이지만) 처음 사람을 만나는 자리에서 "몇 학번이에요?"라고 습관적으로 묻는 말.

 

우리나라 사람이 모두 대학을 나왔다고 가정하는 건지, 원... 이제는 이 말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알고 잘 쓰지 않지만, 그만큼 폭력적인 말이 "너 어느 대학 나왔니?"라는 말.

 

오죽하면 영화에서 "나 이대 나온 여자야."라는 말이 나왔겠는가. 저자는 이 말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하는데... 베쑨은 나중에 사정을 알고 닥터 봉을 진심으로 대한다. 그는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어깨 너머로 의사들이 치료하는 것을 보고 외우고 익혀서 사람들을 치료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사람을 구하겠다는 마음으로...여기에 무슨 학력이 필요하단 말인가?  베쑨은 닥터 봉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쳤던 것이다. 감염된 독서의 이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심한 법정 전염병 제1호는 '학벌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누구에게나 감염되고 치유하기도 힘든 그런 질병.

 

그래, 의사가 환자들의 마음까지 보기 위해서는 겉모습을 거쳐서 더 깊은 곳까지 나아가야 하는데, 그만큼 정성과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다.

 

사람을 대할 때 겉에서 시작하겠지만 반드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감염시켜야 한다. 그런 자세를... 이 책에서 '감염된 독서'를 했다면 그렇게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태도에 감염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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