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는 것들의 배신 - 여성과 아동, 소수자를 외면하는 일상의 디자인을 고발하다
캐스린 H. 앤서니 지음, 이재경 옮김 / 반니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책은 꼭 필요하다. 자칫하면 내 잘못이야 하고 개인의 잘못으로, 개인의 능력부족으로 여기고 좌절할 수 있는 문제를, 개인이 아니라 공간의 문제라고, 제도의 문제라고, 그것을 고쳐야 한다고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고 해도 지속적으로 내가 접하는 공간이 나에게 차별을 가한다면? 그때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능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공간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 책에는 왼손잡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대다수 디자인된 것들이 오른손잡이를 대상으로 만들어졌기에 왼손잡이들은 많은 불편함을 견뎌야 한다. 이런 불편함이 학교에서는 학습능력 저하로도 연결될 수 있음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디자인의 문제... 그냥 문제로 끝나서는 안 된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처칠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꼭 처칠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가 이미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건물을 빚고, 나중에는 우리가 만든 건물이 우리를 빚는다." (385쪽)

 

이런 사례로 여자 화장실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책에는 힐러리 클린턴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 토론회를 할 때를 들고 있다. 토론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어 각 후보들이 화장실에 갈 시간이 되었을 때, 꼭 늦게 나타나는 사람은 바로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이었다는 것.

 

왜냐, 남자 화장실보다 멀리에 배치되어 있었을 뿐더러, 여자 화장실은 멀고 찾기 힘들고 숫자가 적어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힐러리 클린턴은 미안하다는 말밖에는 하지 못했다는 것.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것이 힐러리 클린턴의 게으름 때문일까? 이것은 디자인 문제다. 구조와 제도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나선 여성에게도 이런 차별이 적용되고 말을 하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더한 차별을 받아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여성 화장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고 고치려고 실천해서 비율을 2:1로 하는 법안도 마련했다고 한다. 일률적인 비율이 아니라 수요에 따른 융통성 있는 비율로 역차별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디자인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고. 우리나라도 여성 화장실을 늘리려는 운동이 있었는데, 아직은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새로 짓는 건물들은 여성 화장실에 대해서 고려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① 공중화장실등은 남녀화장실을 구분하여야 하며, 여성화장실의 대변기 수는 남성화장실의 대ㆍ소변기 수의 합 이상이 되도록 설치하여야 한다. 다만, 행정안전부령으로 정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개정 2013. 3. 23., 2014. 11. 19., 2017. 7. 26.>)

 

이 책은 그런 침묵할 수밖에 없던 사람들을 대변해주고 있다. 그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해주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회가 진보한다는 것은 소수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인데...

 

기술이 발전하면서 대다수가 편리한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기에 디자인의 함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디자인의 함정을 알고 고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론 부분에서 자신이 지적한 사항들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지 행동 방법을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이렇게 끝맺고 있다.

 

우리의 권리를 알고 살자. 디자인은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하지만 디자인에는 우리의 삶을 변질시킬 힘도 있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일 디자인에 의해 차별당할 수도 우대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디자인에 의해 정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디자인은 변화를 만들지 않는다. 변화는 사람이 만든다.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장착한다면 변화는 우리 손에 있다. (386쪽)

 

참 많은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우리가 생활하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을 망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몇몇은 이미 심각성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 접하는 것들도 있었다.

 

가령 아동보호 차시트... 이것을 미국에서는(우리나라 사례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좋은 제도를 지니고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정면 충돌 시험만 한다고 한다. 차가 정면 충돌만 하는 것도 아닌데... 아이를 차시트에 앉혀도 측면이나 좀더 빠른 속도에서 정면 충돌이 일어나면 아이 안전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측면 충돌 실험도 해야 하고, 속도도 더 높인 실험을 통과한 차시트를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여기에 더해서 병원 문제를 짚고 있는데, 응급실, 노인을 위한 응급실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 병실의 개선도 필요하고, 이런 문제는 꼭 환자들만이 아니라 의사나 간호사들에게도 병원 디자인이 폭력이라는 것.

 

소방관들은 어떤가? 남성들이 대다수였기에 여성 소방관은 차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소방서 구조라는 것, 참... 반대로 남성 간호사들은 어떤가?

 

여기에 한 가지 더. 아, 그래 맞아 하고 맞장구를 치게 했던 지적... 연설할 때 원고를 올려놓는 연단. 세상에 무겁기는 왜 그리 무겁고 높기는 왜 그리 높고, 어떤 것은 사람을 가리기도 하는, 신체의 다양성을 완전히 무시한 연단의 획일성.

 

이것을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고, 원고나 노트북을 놓을 수 있고, 또 여성들은 가방을 놓을 공간도 만들어 놓은 연단을 만들었다는 것. 작은 부분 같지만 이것들이 해결되면 성평등에 한발 또 신체 평등에 한발 더 다가가게 된다는 것. 그렇다. 평등은 큰부분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평등은 우리가 살아가는 아주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화장실에 가방이나 물건을 놓을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 버스나 대중교통의 의자를 개선하는 것. 아이들이 자연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해주는 학교 건물을 디자인 하는 것,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로 환경을 만들어놓는 것, 걷고 싶은 계단을 만드는 것.

 

계단을 이 책에서는 좋게 평가하고 있다. 사람들을 걷게 만들기 때문에 근력 운동에도, 또 비만을 줄이는 데도 기여를 한다고 한다. 다만, 계단을 사람들이 접근하기 편하게 또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어떤 계단은 오히려 관절에 무리를 주거나 넘어질 위험이 있다. 이런 계단을 정비하는 것도 소수를 배려하는 디자인일 것이다.

 

이 책이 지닌 장점은 문제점만 나열하지 않고, 대책을 제시하고, 이미 대책을 만든 곳이 있다면 소개해서 따라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데 있다.

 

아무 생각없이 생활하고 있는 공간이 여성과 아동, 또 신체가 보통에서 벗어난 사람들, 소수자들을 외면하고 그들을 배제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작은 부분, 그런 부분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디자인, 그런 디자인이 도입되도록 하는 것. 결국 모두 사람의 몫이다.

 

깨어있는 사람들. 나만 편하면 돼가 아니라, 어, 이건 누군가에게 불편할 수 있겠네... 또 왜 이것이 나한테 불편하지? 나만 그런가? 나만이 아니라 누군가도 불편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고쳐야지 하게 하는 책. 그런 책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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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2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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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23 11: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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