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화와 기억 - 일제 말 친일 협력 문학의 재해석
김재용 지음 / 소명출판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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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 그렇게 우리나라는 일제에 대항하여 비폭력 만세 운동을 벌였다. 무장투쟁이든 비무장투쟁이든 일제에 반대한다는 데에서 공통점을 지닐 수 있는데, 3.1운동은 전국민적, 전국적인 운동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3.1운동으로 인해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그 적통을 이어받아 지금 우리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니... 우리나라 헌법에는 3.1운동과 임시정부가 전문(前文)에 언급되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친일문학 또는 반민족친일행위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논란이 많아진다. 도대체 친일이 무엇이냐? 당시에 친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일제시대에 살았다는 것, 총을 들고 무장투쟁을 하거나 또는 눈에 띠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은 대다수의 사람들 모두 친일을 한 것 아니냐는 반론이 늘 뒤따른다.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한 것까지 응징해야 하느냐는 반론도 있고... 그렇게 많은 논란이 벌어지는 이유는 해방이 되고 나서 바로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위 친일파들을 안고 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 사회를 주도하게 하지 않았던가 반성하게 된다.
 
친일파들을 안고 가기 위해서는 먼저 친일파들의 통렬한 자기 반성이 있어야 한다. 자기 반성을 한 뒤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들을 용서할 수 있을 때 그 다음에야 그들을 안고 가는데, 이런 과정 없이 반민특위는 해체되고 친일파들은 별다른 처벌 없이 우리 사회에서 주도적인 자리를 잡고 만다.
 
그 다음부터 친일에 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 학교 도서관에 친일인명사전을 비치하도록 하는 것도 좌파들의 책동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 도대체 이 나라에서 친일을 했다는 것은 그것도 주도적으로 친일을 했다는 것은 힘있는 자리에 계속 머무르면서 자손들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었다는 얘기와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친일문학에 대해서 정리한 책이다.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고? 아니다. 이 책을 보면 이들은 자연스레 친일로 흘러들어간다. 자기 신념을 가지고. 이들에게 친일은 신념이다. 살기 위해서 한 어쩔 수 없는 행위가 아니다. 그냥 그 시대에 자기 논리를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가 친일이다. 친일이라는 말로 부족하다. 이 책에서는 그 단어를 '내선일체'로 본다. 
 
일본과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념. 그 신념을 도처에 표시한 인물들. 네 사람을 든다. 이 중에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이광수다. 그러나 이광수 못지 않게 중요한 사람은 유진오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해방 후 우리 사회에 그다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니... 장혁주와 최재서.
 
이광수야 조선 3대 천재로 인정받으면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선생님으로 통했던 사람이니... 근대문학을 확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고, 2.8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이기도 하고, 상해임시정부에서 독립신문 발간에도 참여한 사람. 안창호를 따르던 그런 사람. 그러나 나중에 창씨개명을 하고,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전쟁에 참여하라고 독려한 사람. 해방이 되고 나서도 본인은 조선을 위해서, 조선인을 위해서 친일을 했다고 강변했다는 사람.
 
벌을 받기 위해 강변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신념이 그러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알 수 있다. 그는 곳곳에서 이런 자신의 신념을 내비친다. 
 
저자는 친일 행위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고, 다시 두 가지로 세분한다. 즉 친일의 양상이 네 가지가 있는 셈이다.
 
동화형 친일과 혼재형 친일... 동화형은 다시 문화와 혈통으로, 혼재형은 종족이냐 지역이냐로 나뉘는데... 문화적 동화형은 이광수, 혈통형 동화형은 장혁주, 종족형 혼재형은 유진오, 지역형 혼재형은 최재서로 대표된다고 한다. 
 
동화형이야 일본에 동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니 말할 것도 없고, 혼재형은 조선의 특성은 지키되 일본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니, 조금 다르다고 해도 일본에 종속된다는 점에서는 친일에 해당할 수밖에 없다.
 
동화형 중에서도 문화적 동화를 주장하는 이광수는 일본문화에 조선문화를 동화시킬 것을 주장한다. 일본이 동양정신의 정수를 계승 발전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일본문화로 동화됨으로써 우리나라는 동양정신을 구현하고 서양에 맞설 수 있다는 주장이다. 혈통형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혼재형 친일 중에서 유진오는 종족을 앞세운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더라도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각자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융합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 이 논리는 어쩌면 유럽통합의 논리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독립국들이 연합하는 것과 식민지가 식민본국과 융합한다는 논리는 완전히 다르다.
 
식민지는 어쩔 수 없이 식민본국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탄압을 받으니. 이런 상태에서 자신들의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하면서 식민본국과 하나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아니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식민본국 문화에 동화될 수밖에 없고, 식민정책은 강압이든 비강압이든 그런 쪽으로 정책이 흘러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어떤 말을 해도 친일을 한 것은 변명이 될 수 없다.
 
그것도 자신들의 내재적인 논리에 의해서 친일로 나아갔으니... 앞에서 왜 유진오가 중요하다고 언급했냐면 유진오는 우리나라 제헌헌법을 기초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가 문학에서 손을 떼고 법에 전념했다고 하지만, 친일을 그렇게 주장했던 사람이 해방이 되고 나서 우리나라 헌법을 세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 친일청산이 멀어진 큰 이유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네 가지 유형의 친일이 나오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내선일체' 그리고 '황국신민화'에 이은 '대동아공영'이라는 말로 압축이 된다고 한다.
 
다 일본의 논리를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이 비록 조선의 독자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일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일본에 동화되는 것이다. 일본적인 것, 천황으로 귀일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들 주장이 닿는 끝지점이다. 그러니 친일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 친일은 서서히 풍화되어 우리들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사라져서는 안 된다. 친일은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야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책은 일제시대 문인들의 친일행위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행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논리를 따라서 적극적으로 행한 행위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친일행위를, 친일행위자를 기억해야만 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이기 때문이다.
 
덧글
 
읽다가 소소한 오타가 눈에 들어왔는데... 그거야 문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있다고 해도, 이 문장에 나오는 인물 이름은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둘 다 실제 인물이고 우리 문학사에서 언급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235쪽. 혼재형 친일 협력의 대표적인 문인인 유진오와 최서해는... 이라고 되어 있는데... 최서해가 아니라 최재서다. 이건 꼭 고쳐야 한다. 
 
최서해 : 본명 최학송. '탈출기, 홍염,기아와 살육'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1932년 사망. 이 책은 1938년 이후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최서해가 나오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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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4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 2019-01-12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학자이자 교수가 쓴 최근 인문서에서 그 저자가 인용한 학자 성명이 잘못된 걸 보고 눈을 의심했어요. 그럼 인용할 수도 없죠....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는데 정작 이름을 잘못알고 언급하다니

2019-01-14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