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신 - 제19회 부커상 수상작, 개정판
아룬다티 로이 지음, 황보석 옮김 / 문이당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은 것들의 신... 사람이 살아가게 하는데 가장 필요한 요소지만 그것은 다른 큰것에 가려져 보이지 않게 되거나 사라지게 된다.

 

그런 작은 것을 지키는 신, 크지 않다. 결국 작은 것들의 신은 소멸의 신이다. 이 세상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신.

 

힘이 없는 신. 그러나 작은 것이기 때문에 사라지지 않고, 우리들 삶에 늘 붙어 있는 신. 존재를 지켜주지는 못 하나, 존재와 함께 있으며 함께 사라지는 신.

 

그런 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런 신이 깃들인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작은 것들의 신이 깃들인 사람은 그 사회의 주류가 아니다. 비주류다. 중심에서 빗겨난 사람들. 그러나 중심에 있는 사람과 똑같은 사람들.

 

중심에 있는 사람들, 큰사람들과 같은 감정을 지니고, 같은 욕망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러나 같은 감정, 같은 욕망, 같은 생활이 용납되지 않는다. 이들은 작은 것들, 흔히 작은 것들을 하찮은 것들, 무시해도 좋은 것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이런 작은 것들이 결코 작은 것들이 아니고 우리 삶을 이루는 가장 큰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아무리 우리가 작은 것들이라고 무시해도 그것 없이는 사람이 살아갈 수가 없다. 자기보다 약한 존재, 비천한(?신분이 존재하는 사회, 계급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존재라고 해도 그들에게도 같은 삶이 있다는 사실을, 같은 삶을 살아가려 했다는 이유로 파멸해 가는 인물들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소설 구성이 제목과도 어울린다. 얼핏 추리소설 구성을 택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는데,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사건들 하나하나를 순서대로 배열하지 않았을 뿐이다.

 

작가는 1997년(무려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한국어판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소설이 복잡한 세상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 이 소설은 저의 세상이며 제가 세상을 보는 방식입니다. 또한 이 책은 장소나 관습에 관한 것이 아니라 들과 땅과 공간에 관한 것이며, 어떤 특정한 사히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퍼즐조각 맞추기가 떠올랐다. 단순한 조각들이 전체 그림에서 부분 그림을 이루고 그 부분 그림들을 먼저 맞춘 다음 전체에서 어울리는 자리에 갖다 맞추면 나중에 한편의 완성된 퍼즐이 되는.

 

그래서 이 소설은 읽어가면서 점점 형태가 명확해 진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왜 벌어졌는지를 알게 된다. 또 문장 자체들이 짤막짤막하고 경쾌하게 진행되고 있고, 작가가 적절히 개입해서 사건 전개를 알려주고 있기에 읽기에 힘들지는 않다.

 

다만 작은 것들의 신이라는 개념이 잘 들어오지 않는데, 약한 존재들과 함께 하는 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약한 것들은 금방 소멸해가는 존재이니, 이들의 사랑이 지속될 수 없다고 여기기로 했다.

 

인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작가의 말대로 굳이 인도가 아니어도 된다. 이런 사랑의 비극은 어디에도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든 작은 것들은 큰것들에 의해 하찮은 것으로 무시당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소설은 어떤 측면에서 읽어야 하나? 그런 작은 것들이 파멸해 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작은 것들은 작은 것에 만족하고, 제 분수를 지키며 살라고 하나? 아니, 그렇지 않다.

 

작은 것들도 큰것들과 다르지 않음을, 작은 것들의 삶도 그들과 같음을, 그래서 존중받아야 함을 생각해야 한다.

 

작은 것들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도 신이 있으므로...

 

소설보다는 정치평론으로 먼저 만난 작가, 아룬다티 로이... 그가 쓴 "9월이여, 오라"를 잘 읽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읽은 이 소설,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개정 번역판이 나왔다는 것은 여전히 작은 것들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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