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결딴낸 우리말
권오운 지음 / 문학수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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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읽으면서 내내... 도대체 이 시에서 어떤 말이 잘못 쓰였단 말이지 하면서 눈을 부릅뜨고 읽고 또 읽어도 내가 알고 있는 어휘 목록에서 잘못된 것을 찾아내기가 무척 힘들었다.

 

이렇게 시에서 잘못된 어휘들을 잘 찾아내다니... 이렇게 잘못 쓰인 언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시를 감상하기보다는 먼저 마음의 문이 닫히고, 벽이 쌓여 시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우리말이 잘못 쓰이고 있는 현실을 너무도 안타까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저자의 목소리와 이오덕 선생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듯하다.

 

제발 우리말을 제대로 쓰라고, 잘 쓰라고.

 

그런데 어떻게 해야 우리말을 잘 쓰지, 제대로 쓸 수 있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좋은 글을 많이 읽으라는 것으로 대체해야 하는데...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 적확한 언어로 쓰인 글인가? 아니면 언어의 적확성을 떠나 마음을 울리는 글인가? 이런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사전을 통째로 외울 수는 없지 않은가. 여기에 저자는 사전도 비판을 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바른 우리말, 고운 우리말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저자처럼 어휘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나마 믿을 만하다는 작가들이 쓴 글에서도 잘못 쓰인 어휘들이 수두룩하니 우리말을 잘 쓴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학교 다니면서 국어 시간이 가장 많았고, 중요하다고 강조도 했는데, 국어 시간에 배운 어휘가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국어 시간에 표준어로 수업을 한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쓰는 표준어가 얼마나 될까? 극도로 적은 양의 어휘들만 배우고 사용하고 학교를 마치지 않았는지.

 

일상에서 쓰는 말이 어휘의 보고라는 말이 있는데, 일상에서 쓰는 말 중에 잘못 쓰고 있는 말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말을 시에 쓰고 있는 시인들이 저자의 비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여러모로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고 잘 써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겠는데, 우리말을 어떤 식으로 배우고 익히고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고 있다. 저자의 책만 읽으면 되나? 그런 생각을 하지만, 그건 저자도 바라는 일은 아닐 것이고.

 

결국 다양한 글을 읽고 다양하게 쓰인 어휘들을 비교해보는 경험을 해야 할텐데, 갈수록 쉬운 어휘만 쓰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앍고, 짧고 명확한 문장만을 다루고 있는 교과서로 배운 사람들에게는 이도 힘든 일이다.

 

어휘에 대한 생각을 늘 하고 있어야만 잘못 쓰인 어휘를 찾아낼 수 있고 고칠 수 있는데, 그렇게 하기엔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여기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고, 어른들은 먹고 살 걱정에 어휘에 대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이래저래 우리나라 말들이 결딴나고 있는 현실인데, 작가들이, 언어로 먹고 산다는 사람들이 우리말을 살려내는, 더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며 한숨만 나오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저자가 한 주장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잘못 쓰인 어휘도 시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시인들이 의도적으로 낱말을 만들거나 틀리게 쓰기도 하고.

 

하여 시에서 하나하나 낱말에만 매달릴 수는 없지만, 저자의 주장을 생각해야만 하는 이유는 시인들은 언어에 대해 아주 인색하단 생각이 들 정도로 깐깐하기 때문이다.

 

자기 감정에 맞는 언어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심을 하는가. 그래서 저자는 시인들에 대해서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는지도 모른다. 시인들마저 너무도 엉뚱한 실수를 저지른다면 우리말은 결딴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써서 경종을 울리는지도 모른다. 우리보도 좀 생각을 하라고. 우리가 쓰는 말에 관심을 가지라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우리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우리말 실력이 너무도 형편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부끄러움은 성찰을 이끌어내고, 성찰은 발전으로 가게 해준다고 그나마 위안을 할 수밖에.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렇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하는 글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말이 결딴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좀더 관심을 가지고 글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인들에게 발을 거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런 지적들을 통해 우리말이 제대로 쓰이도록 해야 한다는 저자의 열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그게 우리말이 결딴나지 않게 하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다.

 

덧글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 언어에 대해서 그리도 명확하게 주장하는 저자가 '고희'에 대한 설명에서는 내가 납득할 수가 없다.

 

고희(古稀), 나는 지금까지 일흔 살로 알고 있었다.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에서 온 말이라고... 만 70이 아닌 걸로 알고 있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일흔 살로 나오고.

 

237쪽. 고희(古稀)" '고래(古來)로 드문 나이'라는 뜻으로 일흔한 살을 이르는 말. 두보(杜甫)의 '곡강시(曲江詩)'에 나오는 말  이라고 나온다. 어째 좀... 오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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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승부욕(勝負慾)이란 말이 과연 잘못된 말일까?
    from 마음―몸―시공간 Mind―Body―Spacetime 2018-11-19 13:30 
    가령 이런 말 '승부욕' 정말 많이 쓰는 말 아닌가. 승부욕이 강하다. 승부욕이 없다. 이렇게 잘 쓰고 있는 이 말이 잘못된 말이라니... '승부(勝負)'라는 말이 '이기고 짐'이라고 하니 여기에 바란다는 '욕(慾)'자를 쓰면 이기고 짐을 바라는 마음이라는 뜻이 되는데, 그렇다면 강하다, 없다라는 말과 함께 할 수가 없다. 조심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굳어져 있는 말인데, 이 말을 어떻게 고쳐 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 k
 
 
2018-11-19 1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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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10: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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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09: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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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9 1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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