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 가본 지가 오래 되었다. 언제부턴가 지리산은 과거의 산이 되었다.
지리산을 관통하는(?) 길이 뚫리고, 노고단 근처까지 차가 다니게 된 이후, 지리산은 내게서 멀어져 갔다.
지리산을 종주하는 것이 산을 타는 보람이기도 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리산에서 수많은 죽음들을 생각하는 때도 있었는데, 밤에도 지리산 능선을 걷던 때가, 지리산에서 거센 바람을 맞이하던 때도 있었는데...
무엇보다도 지리산 천왕봉에서 본 일출, 그 장엄한 광경은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 있는데... 노고단, 벽소령, 세석평전, 뱀사골, 피아골 등등.
지리산(智異山) 다름을 아는 지혜. 그 넓디 넓은 산은 다름을 포용하는 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리산의 품에 안기고 싶어 그 산을 찾는다.
나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과 함께 하는 삶. 그것을 포용하는 삶. 그렇게 하나 되어 함께 살아가는 삶. 지리산은 가만히 있어도 그것을 가르쳐준다. 그런 지리산 자락에 사는 시인이 있다.
이원규 시인이다. 오토바이 하나로 자유롭게 사는 시인. 그가 지리산에 살면서 지리산을 노래한 시들을 내었다. 이 시집은 '옛 애인의 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지리산에 관한 시들이 많이 실려 있다.
자꾸만 얕아지려는 삶 속에서 지리산을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지리산은 그렇게 쉽게 가서는 안 된다. 지리산은 지금 내 자리에서 열심히 잘 산 다음에나 가야 할 산이다. 그냥 도망치듯이 가는 산이 아니라, 내가 치열하게 살고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려 할 때 비로소 가는 산이다.
그렇게 지리산은 지금 내게서 멀어졌다. 시인이 노래한 시의 마지막 구절처럼 '행여 견딜만' 한지도 모르겠다.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꽃 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이원규, 옛 애인의 집, 솔. 2003년. 158-159쪽.
지리산 둘레길이 유명해졌고, 이제 사람들은 그 둘레길을 걸으러 많이들 간다고 한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지리산을 찾는 사람도 많아질 터이다.
그때, 지리산에 가기 전에 이 시 한 번 읽고 가는 것은 어떨지... 이 시를 읽고 어떤 마음으로 지리산에 가야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지...
내게서 멀어진 지리산... 다시 가까이 하고 싶어졌다. 아니 가까이 해야 한다. 지리산은 멀리 할 수 없는 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