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야 할 때 침묵하는 사람, 큰 사람이다. 말도 아닌 말을 너무도 큰소리로 내는 사람, 말에 대해서 책임도 지지 못하면서 자신을 점점 수렁으로 빠뜨리는지도 모르면서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작은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

 

  원칙은 아름답다. 원칙은 있어야 한다. 세상에 원칙이 없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는가. 그렇다고 원칙만 지켜서는 안 된다. 원칙만 지키면 고루해진다. 변화에 따라갈 수가 없다.

 

  지금 세상에서 원칙을 지켜야 할지, 원칙에 융통성을 두어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 그런 때에 있다.

 

그런데 과연 원칙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합의가 안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각자 자기 말만 한다. 자기 말이 원칙이란다. 그 원칙에서 한발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원칙을 지키는데 최소한의 융통성을 발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내로남불'만 존재한다. '내로남불'이 횡행한다. 자기가 행하면 원칙에 융통성을 준 것이고, 남들이 행하면 원칙을 위배한 것이 된다. 그렇다고 원칙을 지키자고 하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하나? 루쉰 글이 생각난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침묵할 것. 그냥 헛웃음만 웃을 것.

 

유용주 시집 제목을 보며 요즘은 침묵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너무도 많은 말들이 커다랗게 날아다니고, 그 말들이 바위가 되어 사람들 머리 위로 쏟아지고 있다는 생각.

 

말들, 그것을 가짜뉴스라고 해도 좋고, 남을 비방하는 말이라고 해도 좋다. 그런 말들이 칼이 되어 날아다니고 있는 요즘이다.

 

사람들이 수많은 말의 칼에 상처를 입어 여기저기 나가떨어지고 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남에게도 돌려준다고 하는 사람도 많이 생기고 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래, 침묵할 것. 이제는 '크나큰 침묵'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말보다는 행동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

 

유용주 시집, 오래된 시집이다. 절절하다. 삶의 모습이 생생하게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시집.. 이렇게 시인의 마음이, 말이 절실하게 묻어나오는 시집, 오랜만이다.

 

침묵이 필요한 시대에 유용주 시집에서 '종(鐘)'이란 시를 본다. 수많은 말들 중에 이렇게 종소리처럼 우리 마음에 울림을 주는 소리가 필요하다고.. 바로 그런 소리들이 크나큰 침묵이 아닐까 하고.

 

 

진저리치며

진저리치며

내 너에게 달려갔으나

싸늘한 새벽 하늘

빈 골짜기 바람 한움큼 만나는 것으로

되돌아왔다

얼마나 긴 오장육부를 쥐어뜯어야

이 울음 끝이 나는가

내 육신 굳어 바위가 되고

바위 부스러져 재로 변할 때까지

이 노래 멈출 수 없다

이 피울음 그칠 수 없다

 

유용주, 크나큰 침묵, 솔. 2002년 1판 4쇄. 38쪽.

 

온갖 재잘거리는 소리에 묻혀 진작 들어야 할 둔중한 종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종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말을 줄이고 귀를 열어야 한다. 귀를 열고 마음을 열어야 그때서야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가 마음 속으로 들어온다. 그렇게될 때까지 종은 피울음을 멈추지 않으리라. 제발 제대로 된 소리를 들으라고.

 

말들의 시대... 말이 돌덩이가 되어 우리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시대. 말이 칼이 되는 시대... 그래서 침묵은 약자들만이 지닌 도피처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 침묵 속에서 우리를 깨우는 종소리를 들어야 한다. 종소리를 듣고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도대체 원칙이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내게 원칙이 있는가? 이 원칙을 지킨 상태에서 융통성을 발휘하는가? 이런 질문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침묵 속에서 완성된다.

 

이 시집 3부에 실린 구멍 연작시들... 1편부터 13편까지 마음을 절절히 울린다. 아, 이렇게 내 마음에 구멍을 내는 시. 그 구멍을 메우게 하는 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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