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념재단에 있던 영상을 보는데, 그 영상 속에서 김준태 시인이 나왔다.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시로 발표한 사람이 바로 김준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라는 시. 모두가 침묵할 때 분연히 일어나 비록 많은 부분 검열로 삭제가 되었지만 신문에 발표한 시, 시인.

 

그것은 절절하게 광주민주화운동을 노래한 시였다. 그렇게 김준태 시인은 광주민주화운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시인이 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에 참여를 했다고도 할 수 있고.

 

김준태 시인을 알게 된 건, 젊은시절 읽었던 시 '참깨를 털면서'이고, 짤막하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시 '감꽃'도 잘 읽었다. 그렇게 김준태 시인이 기억 속에 남아 있었는데...

 

다시 김준태 시인의 시집을 읽는다. '밭'을 소재로 한 시다. 시집 제목도 '밭시'다. 그렇다고 밭이 계속 나오는 것은 아니다. 밭은 곧 땅이고, 땅은 모든 생명을 보듬고 살아가게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끝간 데 없는 사랑을 지닌, 모든 것을 주는, 자신의 몸이 헤쳐지더라도, 더럽혀지더라도 다른 생명이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밭. 그런 밭은 우리가 밭으로 알고 있는 사전에 있는 그런 의미를 넘어 더 넓고 깊은 의미로 향한다.

 

밭은 사람도 될 수 있고, 나무도 될 수 있고, 하늘도, 별도, 달도, 그리고 동물도, 세상 모든 것이 바로 밭이 될 수 있다.

 

각자의 존재는 각자로 존재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인 것은 남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이 사람인 것은 다른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밭은 특정한 밭이 아니라 모든 것이 바로 밭이다.

 

우리는 밭과 함께, 밭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때로는 이 밭을 생각하지 못하고 지낸다. 마치, 눈 앞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살듯이.

 

밭과 통하는 것이 바로 길이다. 밭은 생명의 길인데, 그런 생명의 길을 줄여서 그냥 길이라고 해도 된다. 이런 길, 모든 것이 다 길이 된다. 시를 보자.

 

 

 

어디로

가야 길이 보일까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이 어디에서 출렁이고 있을까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잃었고

더러는 사람 속에서 길을 찾다가

 

사람들이 저마다 달고 다니는 몸이

이윽고 길임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기쁨이여

 

오 그렇구나 그렇구나

도시 변두리 밭고랑 그 끝에서

눈물 맺혀 반짝이는 눈동자여

 

흙과 서로의 몸속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바로 길이었다.

 

김준태, 밭시, 문학들. 2014년. 11쪽. 

 

길은 바로 우리 곁에 있다. 이 길을 찾아 가면 된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길임을 깨닫는 즐거움, 그만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오죽하면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겠는가. 나하고 가장 거리가 먼, 내가 싫어하는 사람조차도 나에게는 길이 될 수 있음을 이 낱말이 가르키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집을 읽으니, 김준태 시인의 시 한편한편이 모두 길이 된다. 밭이 된다. 나를 키워주는 밭이 되고, 내가 갈 길을 펼쳐주고 있다.

 

세상 모든 존재가 밭이 될 수 있음을, 길이 될 수 있음을, 시를 통해서 김준태 시인은 잘 보여주고 있다. 시를 읽으며 마치 오솔길을 느릿느릿 걸어다니는 느낌, 주변에 있는 자연들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 시는 밭이다. 밭은 길이다. 길은 시다. 그러므로 밭은 시다. 시집 제목이 그래서 '밭시'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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