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 7 - 오디세이
메네라오스 스테파니데스 지음, 김세희 옮김 / 열림원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7권이다. 이번 권 주인공은 단연 오디세이다. 오딧세우스 또는 오뒷세우스라고 하는 영웅. 아마도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인간 중에 가장 지혜로운 인간이라고 하는 사람. 그러나 지혜란 남을 위해 발휘될 때 빛을 발하지만 자기 이익을 위해 발휘될 때는 독이 된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은 이미 자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의 두뇌를 사용한다는 의미겠지만, 자기만을 위해 두뇌를 이용하는 사람을 우리는 꾀가 많다, 약삭빠르다고 하지 지혜롭다고는 하지 않으니, 오디세이는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그는 공평무사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오디세이를 읽다보면 그가 그렇게 공평무사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 역시 자신의 꾀로 남을 어려움에 처하게 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럼에도 그는 인정을 받는 왕이었고, 신의 은총을 받는 사람이었다.

 

트로이전쟁에서 승리한 뒤 포세이돈의 분노로 고향에 돌아가는데 10년이 걸린 오디세이. 트로이 전쟁에서 10년, 전쟁이 끝나고 10년, 20년을 집을 떠나 고생을 하는 오디세이다. 그러므로 그의 고난은 인간이 전쟁으로 인해 겪는 고난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오디세이의 모험과 고향에 돌아와서 겪는 일이 함께 섞여 있다. 오디세이는 온갖 고난을 겪고도 고향에 돌아와서도 고난이 끝나지는 않는다. 고향에 돌아와서도 아내에게 구혼하는 구혼자들, 그들의 횡포에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구혼자들을 물리치는 과정, 고향에 돌아와서 그가 자기 자리를 찾기까지의 과정이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다른 책들은 그가 고향에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길게 설명하고 고향에 돌아와서 한 일은 짧게 서술하기도 한다. 이 책에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었는지, 서술하는 분량을 보면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고향에 돌아와 구혼자들에게 복수를 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우리는 고향을 떠난 뒤 돌아와서 다시 정착하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오디세이 같은 왕도 이러한데, 일반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이 신화는 고향을 떠나 떠돌던 사람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자기 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전쟁으로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고생을 하다 돌아온 사람들, 그들의 고생이 거기서 끝났으면 좋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와서 제2의 전쟁을 겪어야 한다. 그 전쟁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그들은 고향에 안주할 수 있다.

 

고향에 돌아왔다고 하더라도 수많은 고통이 자신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그 고통을 끝나게 할 수 있는 사람들, 그것은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한다.

 

오디세이에게는 아내인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 그리고 충직한 하인이었던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도움으로 그는 구혼자들을 물리칠 수 있게 된다. 그를 계속 괴롭히는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여기서 신은 빼자. 신화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있었다는 말은 너무도 당연하니 말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겪었을 때 그 다음에도 그와 비슷한 고통을 겪는다. 그 고통을 이겨내야만 자기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다.

 

오디세이 모험을 이렇게 고난 -> 귀향 -> 또 하나의 고난 -> 극복 -> 안정(행복)으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상황에 이 과정을 대입 해보면 여전히 우리는 전쟁으로 인해 겪은 고통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위안부나 강제 징용 피해자나 또 베트남 전쟁 등에 참전한 사람 등등 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귀향했다. 그러나 일제시대, 베트남 전쟁 등이 끝났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오디세이를 읽어 보라. 그는 10년간 바다를 헤매었지만 고향에 돌아와서도 금방 정착하지 못했다. 정착할 수가 없다.

 

여전히 그에겐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는 그의 고향에 안주하지 못한다. 정착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고난을 겪은 분들이 과연 귀향해서 그 고난을 극복했는가 하면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우리가 바로 오디세이 신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 역시 그들이 오디세이처럼 정착할 수 있게, 기나긴 고난의 과정을 끝내고 이제는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방해를 하는 구혼자와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이런 읽기 독법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신화가 무궁무진하게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화가 우리 역사를 통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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