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의 그리스인 이야기 - 신화가 된 영웅들의 모험과 변신, 그리고 사랑
구본형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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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들로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좋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는 신들이 빠진 것도 아니다. 다만 신들의 이야기가 결국은 인간 이야기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페르세우스로부터 시작한다. 즉, 이 책은 그리스인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그리스 신들이 빠질 수 없는 것이 인간들은 모두 반인반신이기 때문이다. 신들과 인간이 관계하여 낳은 영웅들.

 

이들은 인간 세계에서 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들은 다른 신들의 도움을 받아 인간 세계에서 업적을 이룬다. 그리고 결국 신의 위치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그리스인 이야기에서는 이런 영웅들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영웅, 우리가 추구하는 인간상일지도 모른다.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이 무한한 능력을 발휘하기를 꿈꿀 때 그를 영웅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페르세우스는 제우스의 아들로 메두사를 처치하고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등 커다란 업적을 이룬다. 그로부터 영웅은 시작한다. 그가 그리스인 이야기 처음에 등장하는 이유는 이 책을 그리스 역사 순으로 배치하고 싶은 작가의 욕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르세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조상뻘이라고 하니, 그로부터 시작하고, 그는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본토의 영웅들이 등장하기 전에 나오는 인물이 된다.

 

따라서 이 책에서 중요하게 페르세우스를 다루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같은 집안 사람이므로.

 

그리스 영웅 두번째로 미노스왕을 다루고 있다. 아마도 그리스 문명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왕이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는 테세우스가 나올 수밖에 없고,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가 등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랑에 빠져 테세우스를 구해줬으나 배신당하고 디오니소스의 아내가 되는 아리아드네 이야기가 겹쳐지고, 욕망에 눈이 멀어 괴물을 낳게 되는 미노스왕의 왕비 파시파에 이야기, 그리고 생각없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과학자-기술자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다이달로스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생각없음.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 기술은 좋은 쪽으로 쓰이지 않고 나쁜 쪽으로 쓰일 수밖에 없다. 괴물을 가두는 미로나 황소와 사랑에 빠진 왕비를 암소로 변장시키는 기술 등등은 기술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기술에 동반되어야 할 것이 '왜?'라는 질문임을 생각하게 한다.

 

미노스 다음에 테세우스다. 그리스가 사랑하는 인물, 테세우스. 그는 바로 아테네 문명을 이루는 시초가 되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의 사랑을 받는다. 테세우스의 모험...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미로를 탈출하는 것까지.. 그 전과 그 후가 이 책에 잘 나와 있어서 그가 왜 그리스인들에게 사랑받는지 잘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약간 다르게 오이디푸스가 등장한다. 인간의 고난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받아들인 사람... 불행을 한탄하지만 비켜가지 않은 사람. 그래서 신들로부터 그의 안식처를 마련해준 땅은 대대로 번성할 것이라는 신탁을 받은 사람.

 

스핑크스와 대결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 그를 영웅으로 숭배하는 이유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불행을 온몸으로 겪고, 그 불행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그 운명 속으로 걸어들어간 사람. 그래서 그는 영웅이 된다.

 

이제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에 다가설 때다. 바로 트로이 전쟁이다. 트로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그리스는 문명 국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트로이전쟁에 나오는 세 영웅.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아이네이아스. 이들은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이름을 남긴다. 아킬레우스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영웅으로, 오디세우스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이들은 그리스인 이야기에 중심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인이다. 그는 나중에 로마의 시조가 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지도 모른다. 그리스로마신화라고 묶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디세우스나 아이네이아스는 한 명은 승자고, 한 명은 패자이지만 자기가 정착할 곳을 찾기까지 험난한 여정을 거친다. 그 여정이 또한 우리에게 인간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단지 그리스 영웅들을 안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인간들의 삶에 얼마나 굴곡이 많은지, 그 굴곡들을 통해서 우리는 영웅이 되고, 신화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냥 평범한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명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 그런 삶을 사는 것...

 

그리스인 이야기는 그리스 영웅들을 통해 우리에게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맞설 것을 독려해주고 있다. 그렇다. 유한한 인간의 삶. 그 삶을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이 운명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신화를 읽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인간들이 영웅이 되고, 그 영웅이야기가 신화가 되는 과정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다. 인간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야기에 신들의 이야기가 겹쳐져서 그리스 신화를 읽는 효과도 거둘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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