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43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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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하나의 몸짓에서 시작한다.

 

'그 몸짓 덕택에, 시간에 구애되지 않는 그녀 매력의 정수가, 그 촌각의 공간에 모습을 드러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나는 이상하리만치 감동했다. 그때 나의 뇌리에 아녜스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11쪽)

 

예순이나 예순 다섯으로 보이는 부인이 하는 몸짓 하나가 시간을 초월하게 한다. 시간을 초월하는 몸짓, 그것은 불멸을 향한 몸짓이다. 쿤데라는 소설 속에 직접 등장한다. 여인의 몸짓을 보고, 그는 아녜스라는 이름을 떠올린다.

 

'아녜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이름의 여자를 만난 적이 없다.'(11쪽)고 하면서. 그렇게 소설은 시작된다.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들과 소설가, 그리고 소설가 친구가 소설 속에서 서로 만난다. 이런 일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쿤데라는 이를 통해 과연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일을 겪는다. 수많은 일들이 우리 인생을 감싸고 만들어내고 있다. 하지만 그 많은 일들 중에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일들은 얼마나 될까?

 

소설 뒷부분에 가면 '루벤스'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온갖 여자와 잠자리를 갖지만 결국 나중에 남는 것은 사진 몇 장으로 기억되는 여자들뿐이라고 한다. 여자와의 만남이 영화로 남는 것이 아니라 사진으로 남는 것. 연속이 아니라 단절된 장면으로만 기억되는 것.

 

사랑이 불멸일 수 있을까? 불멸의 사랑이 되기 위해서는 영화가 되어야 할까, 사진이 되어야 할까? 영화가 되면 우리는 굳이 기억하지 않는다. 자신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진이 되면 그 장면에서 많은 것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불멸이 되기 위해서는 연속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단절되어야 한다. 단절되어야 기억을 떠올리려 노력하고, 찾으려 노력한다. 결국 루벤스가 만난 류티스트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여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영화가 아니라 사진이다. 몇 개의 장면으로 남은.

 

그리고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류티스트가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죽음으로 그 여인과의 사랑은 영원히 기억될 수밖에 없다. 몇몇 장면으로. 그리고 류티스트가 아녜스임을 전화통화에서 밝히고 있는데...

 

아녜스... 쿤데라가 창조해낸 인물이다. 몸짓으로 보고, 그는 아녜스를 창조했고, 아녜스로 하여금 그 몸짓을 하게 한다. 그런데 아녜스를 죽음으로 몰아간다. 죽음으로 몰아갔음에도 아녜스의 몸짓이 동생인 로라에게서 나타나게 한다.

 

죽음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게 된다. 그 점을 괴테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베티나 이야기를 곁들인다.

 

괴테가 베티나와 사랑에 빠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베티나는 괴테가 살아 있을 당시 많은 편지를 썼고, 괴테가 죽은 다음에는 그 편지들을 책으로 엮어냈다. 책으로 엮어냄으로써 베티나는 괴테의 연인으로 영원히 남게 된다. 그들의 관계가 지속적이지 않고 순간적이고 어느 순간 끝났다는 데서 불멸은 시작한다.

 

베티나는 괴테의 죽음으로 괴테에 대한 사랑의 불멸을 이룬 것이다. 그렇다면 쿤데라가 괴테의 이야기를 소설에 집어넣은 이유는 무엇인가? 불멸의 사랑이 있다는 것인가? 아니, 사랑은 순간적이고 일회적임일, 그래서 사진처럼 장면으로만 남음을 우리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는 것 아닌가.

 

아녜스라는 인물을 창조한 쿤데라는 남편으로 폴을, 그리고 여동생 로라를 만들어낸다. 로라는 언니의 뒤를 좇는다. 언니가 하는 몸짓을 따라한다. 아녜스를 그를 보고 그 몸짓을 그만둔다. 여기서 우리는 로라가 언니를 대신하게 됨을 예측할 수 있다. 언니를 대체하는 로라, 그렇다면 아녜스는 어디에 자리해야 할까?

 

동생에게 제 자리를 빼앗긴 아녜스는 죽음으로 사라져야 한다. 죽음으로 사라져야 로라의 몸짓에서 계속 살아남을 수 있다. 그렇게 여러 개 사랑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소설 '불멸'은 전개된다.

 

소설은 이렇게 끝난다.

 

'아녜스는 물망초 한 가지를, 물망초 오직 한 송이를 사고 싶어 했다. 눈에 잘 뵈지도 않는, 아름다움의 마지막 자취로서, 그것을 두 눈 앞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520쪽)

 

물망초...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지닌 꽃. 아녜스는 이 물망초를 갖고 싶어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불멸에의 욕망이다. 자신은 삶을 마감하지만 기억되고 싶은 욕망. 기억되기 위해서는 떠나야 하는 것.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교차하고 있다. 일관된 줄거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순서없이 나오고 있다. 중심 이야기가 아녜스를 중심으로 펼쳐진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괴테 이야기, 그리고 뒤에 루벤스 - 우리가 아는 화가 루벤스가 아니다 - 이야기가 펼쳐진다. 여기에 실명으로 나오는 쿤데라 자신과 친구인 아베나리우스 교수가 나오고, 실제 인물들과 작중인물들이 서로 만나고 이야기하고... 참 난해하게 전개된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명확하다. 인간은 유한하다. 생명이 유한하고, 사랑 역시 영원하지 않다. 그런 유한과 순간에서 영원을 추구하는 것, 불멸을 추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불멸이 되기 위해서는 절대로 영원해서는 안 되는 것. 순간에서 멈춰야 하는 것. 파우스트 박사가 순간을 멈추라고 했던 것, 비록 악마에게 영혼을 빼앗기게 되더라고 멈출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 멈출 때, 멈춰서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될 때 불멸이 된다.

 

그런 불멸을 우리가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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