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마음에 따스하게 다가오는 시를 읽고 싶었다. 너무도 더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데...
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따스함. 그래 얼음같이 차가운 사람들이 아니라 따스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는 대체로 따스하다. 마음을 따스하게 해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시들도 있으나, 그런 시들을 제외하고 우리가 시를 가까이 하는 이유는 내 맘을 어루만져 주기 때문이다.
시집을 뒤척인다. 어느 시나 하나 걸려라. 내 마음이 좀 따스해지게.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아니지만, 마음이 따스하면 몸은 시원해진다.
정끝별의 시집을 읽는다.
제목이 '은는이가'다. 주어를 나타내는 조사들을 묶어서 시를 썼다. 시를 읽어보면 '은는이가'는 '은는'과 '이가'로 나뉜다. 그럴 듯하다. 아이 그렇다.
'은는'은 주격조사가 아니다. 이는 보조사라고 하는 특수조사다. 문장에 특별한 뜻을 더해주는 조사라는 말이다. 반면에 '이가'는 주격조사다. 주어임을 나타내는 조사다. 그러므로 같은 주어를 나타낸다고 해도 어느 말이 붙느냐에 따라 미묘한 의미 차이가 생긴다. 그런 의미 차이를 시로 잘 드러낸 것이 정끝별 시집이 제목이 된 '은는이가'다.
그런데 이 시보다는 그냥 '펭귄 연인'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았다. 펭귄, 더위에 시원함을 불러 일으키는 동물 아닌가. 게다가 더위 때문에 고통받는 동물이기도 하지 않은가.
최병수가 심각한 지구온난화를 일깨우기 위해 얼음 펭귄을 조각해 환경문제 대회장에 전시를 한 적이 있다던데... 회의를 하는 동안에도 서서히 녹아내리는 펭귄 조각.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으면 이렇게 펭귄들도 죽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렸던 작품인데...
정끝별 시를 읽으며 최병수의 펭귄 조각도 떠올랐지만, 그것을 넘어서 이렇게 우리가 살아간다면, 사랑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
펭귄 연인
팔이 없어 껴안을 수 없어
다리가 짧아 도망갈 수도 없어
배도 입술도 너무 불러
너에게 깃들 수도 없어
앉지도 눕지도 못한 채
엉거주춤 껴안고 서 있는
여름 펭귄 한 쌍
밀어내며 끌어안은 채
오랜 세월 그렇게
서로를 녹이며
서로가 녹아내리며
정끝별, 은는이가, 문학동네. 2014년. 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