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으면서 황당한 경우를 많이 만나게 된다. 도대체 뭔 소리야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시집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어의 마술사라고 할 수 있는 시인들이 자기들 언어를 갈고 닦아, 저만 알 수 있는 언어를, 그야말로 언어 연금술사처럼, 다른 사람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언어를 만들어 내고, 그 언어들을 자기 맘대로 배열해 놓은 시집들이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이를 어떤 해설에서는 무궁(無窮)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끝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언어 배치... 그래서 무궁(無宮)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잉태를 할 수 없는 자궁이기 때문이다.

 

  이 시집에 실린 시를 해설하는 강계숙은 제목을 이렇게 달았다.

 

'무궁(無宮/無窮)의 꿈, 카산드라 콘체르토'라고.  

 

워낙 해설자들이 현란한 언어로, 또 전문가다운 지식으로 시를 해설해 놓아, 해설이 더 어려운 경우도 있지만,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무언가를 잉태하지 못하고(無宮), 또한 언어의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無窮) 것만은 맞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카산드라 콘체르토'라니... 카산드라가 누군가. 예언을 하지만 그 예언을 누구도 믿지 않는 예언자 아니던가. 카산드라는 옳은 예언을 한다. 그러나 누구도 카산드라가 한 말을 믿지 않는다.

 

믿지 않기에 따르지 않는다. 트로이가 멸망할 것을 알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카산드라지만 트로이가 멸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콘체르토라니... 이게 이해가 안 된다.

 

콘체르토를 찾아보니, 협주곡이다. 협주라는 것은 서로 어울림이다. 어울림... 시는 바로 우리들 삶과 어울리기에 지금까지 존재해 오지 않았던가.

 

잉태도 하지 못하고, 끝도 모르는, 그러나 누구도 믿지 않는 말들이 우리와 함께 있다니... 협주하다 하고는 웬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는데... 콘체르토라는 말을 찾아봤더니, 라틴어로는 경쟁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경쟁이 무엇인가. 그냥 상대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 바로 경쟁 아닌가. 상대가 없으면 경쟁도 없다. 그렇다면 경쟁은 바로 협주다. 삶의 협주.

 

시가 난해해 질수록 시는 우리에게 카산드라의 말로 다가온다. 무언가가 있기는 있는 듯한데, 현실에서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말... 그럼에도 그 말은 우리와 함께 한다.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해설을 읽으며 이 시집에 나온 시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기묘한 협주다. 해설의 현란함은 그렇다 해도, 해설 마지막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엇보다 무궁(無宮/無窮)의 실존성을 정시(正視)하는 자기 성찰적 시선이 이러한 언어적 자의식과 결합할 때, 그의 시는 아름답게 빛난다. 만일 그중 가장 아름다운 한 편을 고르라면, 주저 않고 「콘체르토」를 꾭으리라.' (127쪽)  

 

나 역시 이 시집에서 이 시가 제일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 속으로 파고든 시...

 

특히 이 시에 쓰인 구둣점을 보라. 마침표가 하나도 없다. 보통 마침표를 쓸 만한 곳에도 시인은 쉼표를 쓰고 있다.

 

시는 끝나지 않았다. 끝이 없다. 잠시 숨을 고를 뿐이다.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언제나 과정에 있는 것, 시는 마침이 아니라 출발이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쉼터, 그것이 바로 시다.

 

콘체르토

 

  섬이 있다네, 섬과 교회가 있다네, 섬에는 우체국이 있고 좁은 길이 있고, 어둠 속에 숨은 달이 길의 끝을 자꾸만 늘이고 있다네, 바다는 끝내 수평선에 목을 매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네,

 

  뒤돌아보면 하나 이상의 하나가 자꾸만 따라온다네, 앞서 가지도 않으면서 기다리지도 않으면서, 섬의 하루는 달빛을 따라 바다로 나간다네,

 

  오늘은 만선이었고, 만선 직전의 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네, 얼마나 더 가야, 그 섬에 닿을지, 얼마나 더 가야, 나는 섬 밖에서 섬을 바라볼 수 있는지, 누군가 모든 길들을 처음으로 되돌리고 있는데,

 

  교회의 종탑은 순간 반짝인다네,

 

최하연, 피아노, 문학과지성사, 2007년.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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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09: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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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8 15: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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