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하면 소설을 떠올린다. 그가 쓴 소설 "우리 동네", "관촌수필"은 우리나라 대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말을 그토록 잘 구사한 소설가를 만날까 싶기도 한 소설가이기도 했고.

 

  젊은 시절 이문구 소설을 읽다가 절망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낱말들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하는 절망감. 한쪽 한쪽 넘길 때마다 모르는 낱말이 수두룩하게 쏟아져 나오는데, 대충 문맥으로 의미를 넘겨 짚으며 읽긴 했지만, 일일히 사전을 찾아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그가 구사하는 우리말에 놀란 것이 하나라면 이문구가 김동리라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보수적 문인을 스승으로 섬기면서도 민주화 운동에는 빠지지 않았다는 것.

 

인간적 의리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한 사람이었다는 것. 또 그가 쓴 "문인기행"을 읽고 참으로 많은 문인들의 개인적인 모습을 알게 되어서 좋아했던 작가였는데... 그가 동시를 썼다는 사실은 모르고 지냈다. 역시 견문이 좁다. 이문구 작품을 많이 읽었으면서도 그의 동시집을 알지도 못했고, 읽지도 못했다는 것이.

 

"개구장이 산복이"라는 동시집을 냈단다. 자신의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동시로 썼다고 한다. 자기 아이들을 키우면서 경험한 것, 느낀 것을 동시로 썼다는 것인데... 그 후, 손자 손녀를 위해 또 동시를 썼다고 한다.

 

[개구장이 산복이]는 아들과 딸을 키우면서 쓴 것이고, 그래서 손자 손녀를 키우게 되면 그 때 가서 다시 동시를 쓴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럴 기회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미리 60여 편의 동시를 썼다는 대답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손자 손녀들한테 이런 얘기만은 꼭 들려주고 싶어서," 그는 동시를 쓴 이유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책. 118쪽. 신경림, 이문구 유고 동시집 출간에 부쳐에서)

 

이 동시집을 읽다보면 할아버지가 손자-손녀들에게 그동안 지내온 삶, 자신이 겪었던 문화를 들려준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뒤에 나온 신경림의 글을 보니, 그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대 간 단절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특히 너무도 변한 우리 사회에서 문화 단절이 심한데, 이문구는 그런 간극을 메우는 작업을 하고 싶었으리라. 자신의 손자-손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후손들에게 조상들이 살아온 삶을 알려주고 싶었으리라.

 

그런 소망이 동시를 통해 나타났으리라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단순히 아이들 취향에 맞춘 동시도, 아이들에게 맞춰 말을 아름답게 하려고 꾸민 동시들도 아니다. 그냥 덤덤하게 살아온 이야기, 어른들이 겪어온 어린 시절, 겪었던 문화를 들려주고 있다. 

 

아이들에게 억지로 맞추려고 한 동시에 비해서 어려울 수 있다. 오히려 어른들이 읽었을 때 '아하, 그랬었지' 하는 감동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서로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다. 가족 간에 대화할 시간도 많이 부족한 현대에, 지금 부모들 역시 근대화, 산업화가 된 사회에서 살아, 지금과는 무척 다른 과거 일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기가 힘들다.

 

그렇게 이제는 먼, 아이들에게는 무슨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와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1970년대까지의 어린이들이 지내는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지낸 어린이들의 삶은 너무도 멀리 있다.

 

이 멀리 있는 것들을 지금 어린이들 앞으로 끌어온 것이 바로 이문구의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다. 어른인 내가 읽으면 너무도 아름답고, 그리움을 자아내는 시들로 넘쳐나는데...

 

아이들 역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동시들이다. 굳이 동시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시라고 해도 된다. 아이들은 이런 시를 읽으며 과거를 현재로 불러올 수 있다. 자신들 할아버지 세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할 수 있다.

 

세대 간에 다리를 놓는 일, 그것이 이문구 동시집이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 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더 굳히게 됐는데... '콩쥐팥쥐'란 시다. 아마 요즘 애들도 다 아는 이야기 하니던가.

 

 콩쥐팥쥐

 

어렸을 때는

콩밥보다 팥밥이 좋고

콩고물이나 콩죽보다

팥고물과 팥죽이 맛있어서

여름엔 콩국수보다

팥빙수가 더 시원해서

팥쥐 아닌 콩쥐가

어질고 착했던 게

마음에 걸렸는데,

자란 뒤에는

두부랑 콩나물이랑

비지찌개 청국장찌개

콩으로 쑨 메주가

간장 된장이 된다고

어질고 착했던 게

팥쥐 아닌 콩쥐여서

마음이 풀렸어요.

 

이문구,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창비. 2009년 초판 8쇄. 87쪽.

 

아이였을 때와 어른이 되었을 때 이렇게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음을, 우리 전래동화와 연결지어 시로 표현하고 있으니. 이 시를 읽은 아이들, 다시 콩과 팥에 대해, 콩쥐와 팥쥐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을까 한다.

 

또 다른 시 한 편... 이렇게 깊게 들어가는 동시를 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 정말 연륜이 묻어나는 동시라는 생각이 드는 시.

 

  갯벌에서

 

다들 잘 알 거야

갯벌에 난 수많은 구멍이

게와 조개와 소라들

숨구멍이란 것쯤

하지만 이 땅덩이의

땀구멍인지도 몰라.

사방 팔방에서 밤낮 없이

석유랑 천연 가스랑

온천수 광천수 지하수 뽑아 올리고

금광 은광 동광 철광 탄광

온갖 광물 캐어 내고

몰래 더 깊이 뚫어서

핵폭탄 실험도 하고

한시도 그냥 안 놔두니

어디로 진땀을 흘리며

그 아픈 걸 참아 내겠어?

 

이문구,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창비. 2009년 초판 8쇄. 83쪽.

 

★ 내가 갖고 있는 이 동시집 판본에는 '사방 팔방에서 밤낮 없이/석유랑 천연 가스랑'이란 구절이 두 번 나온다. 아무래도 오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구절을 두 번 반복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한 번으로 줄여 인용했다.

 

햐,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시다. 그래, 갯벌에 있는 구멍이 우리 몸에서 땀을 배출하듯이 인간들이 저지른 온갖 개발 열풍을 배출하는 구멍일 수도 있다는 것.

 

이렇게 자연을 이야기하면서도 우리 인간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시. 다음에 올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이렇게 동시로 표현한 것. 이문구 작가의 대가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도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한 그가 이렇게 동시에서도 한 자리를 차지할 줄이야...

 

좋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릴 시가 하나도 없다. 하나하나 다 과거를 불러오면서도 막연한 회상에 빠지게 하지 않고 현재를 돌아보게 한다. 이 동시집, 작가 이문구가 우리에게 남겨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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