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세기라고 불릴 정도로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주 잠시 동안의 평화와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
나라와 나라간 전쟁도 있지만, 나라 안에서 특정 종족, 분파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도 있다. 일명 내전이라고 하는 것. 그래서 세계에서 난민이 없어지지 않는다.
이들을 난민이다, 아니다, 난민 흉내를 내는 가짜 난민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에 뿌리뽑힌 자들이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 뿌리뽑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고, 난민이다.
자기 고장에서 살 수 없기에 그곳을 벗어난 사람들, 그들은 난민일 수밖에 없다. 이런 난민들이 생기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전쟁이다.
전쟁 하면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 바로 우리들이다.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였다. 가끔 작은 폭발사고가 있었고, 서로 교전도 있었다.
이런 물리적인 충돌말고도 양쪽에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전국민을 특정한 법 안에 가두어두지 않았던가. 그런 상태는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상태였다. 우리는 그런 상황 속에서 줄곧 살아왔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위험한 한반도라고 할 때, 우리는 이미 겪은 일들이라서 그런지 위험론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던 차에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북미정상회담이 이루어지고 한반도에 어느덧 평화의 기운이 넘실대기 시작했다.
긴장이 넘치던 곳에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은 기차 타고 유럽 가자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찾아오자 사람들이 안심하고 살 만한 곳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물론 몇몇 몰상식한 사람들은 여전히 전쟁의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하긴 하지만, 이제는 그런 도발은 잘 통하지 않는다.
세계 여러 곳에 존재하던 화약고 중 하나인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돌면서 세상이 한결 살 만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다.
인간과 인간이 전쟁이라는 위험 요소를 제거해 가면 지구 생태계도 한결 살 만해진다. 여기에 몇 가지를 더해야 한다. 무분별한 개발, 자본 중심주의 경제 등등을 서서히 몰아내야 한다.
그래서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는 남북 평화분위기 속에서 앞으로 북한이 어떻게 발전했으면 좋을까 하는 글을 싣고 있다.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제대로 된 북한 발전 계획)
북한이 개방이 되면 지금과는 다른 상태의 사회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할까? 지금까지 자본주의 사회가, 특히 신자유주의가 걸어온 길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개발의 과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북한이 앞으로 경제 개방이 되었을 때, 지금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과 같은 길을 걸어야 할까? 아니다. 아니라는 대답이 나온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리 생각과는 좀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개발이 아니라 보존을, 중앙이 아닌 지방을 살리는 개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철도, 고속도로 등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를 최소화 하고, 지역을 중심으로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환경으로 개발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개발을 우선으로 하는 지금 생각과는 다르지만, 진정 개발이 무엇인지, 무엇이 북한을 개방하려는 목적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평화의 시기에 우리가 어떻게 교류해야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맑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이미 한물 간 사상가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사상가로서 맑스를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 (홍기빈, 21세기에 돌아보는 칼 맑스, 마이클 뢰비, 맑스, 엥겔스, 에콜로지) 맑스를 발전론자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그래서 '녹색은 적색이다'는 책도 있었지 않은가.
그리고 거시적인 면에서 세계 평화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도 살피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함을 생각하게 해주는 글들이 있다. (이문영, 고스트 스토리, 강남훈, 핀란드, 캐나다, 미국의 기본소득 실험)
녹색평론이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시류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여러 면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이번 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