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 새롭게 읽는 소월의 시 한티재 교양문고 5
박일환 지음 / 한티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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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는 순간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과 같은 판소리계 소설과 '홍길동전'이 떠올랐다. 김소월이 누구던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시인 아닌던가. 우리나라 시인 이름을 대 보시오 하면... 처음 나오는 이름이 아마도 김소월, 윤동주 쯤이 아닐까 한다.

 

이 이름들이 나오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교육열이 높아도 너무 높은 우리나라에서, 교과서가 정전으로 취급받고 있는 이 나라에서, 국어 시간에 배운 시인, 그것도 비중있게 배운 시인, 시보다는 시험을 잘보기 위해서는 꼭 배우고 외워야 하는 시인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행복한 시인들이다. 어떤 시인은 단 하나의 시로 기억되기를 바랐다고도 했는데, 이들은 단 하나의 시가 아니라 여러 시들, 많은 시들로 사람들 기억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이야기하면 이들은 교과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험 때문에 외웠던 몇몇 단어들(민요조 서정시, 부끄러움의 미학 등)만 기억 속에 있고, 정작 시들은 마음 속에 자리잡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이 책에서 저자는 김소월과 윤동주의 시를 단순해서 비교하고 있다. 이는 비교를 위한 단순화이지 절대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윤동주의 시가 '부끄러움의 미학'에 기대고 있었다면, 김소월의 시는 '그리움의 미학'에 기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소월의 시를 평할 때 많은 사람들이 현실 극복의 지향성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지적하곤 한다. 이러한 견해가 소월 시의 전체를 아우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 166쪽 

 

아니다. 마음 속에 자리잡은 시가 있기에 이들이 우리나라 대표 시인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김소월 하면 '진달래꽃' 윤동주 하면 '서시' 하고 금방 튀어나온다. 한번 암송해 보라고 하면 끝까지는 몰라도 몇몇 구절은 누구나 읊조릴 수 있다.

 

가히 우리나라 대표 시인이고 대표 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춘향전이나 홍길동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누구도 끝까지 읽은 적이 별로 없는 작품.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 춘향전, 홍길동전 아니던가.

 

그렇다면 김소월이나 윤동주도 마찬가지다. 이들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이라고 하면서도 이들이 낸 시집을 다 읽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사실 이들이 낸 시집이라고는 시집에 실리지 않은 시나 유고시를 빼고는 단 한 권에 불과한데 말이다.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을, 윤동주는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냈을 뿐이다. 그러니 단 한 권 시집을 낸 우리나라 대표 시인들의 시집을 다 읽은 사람이 적다는 것은, 그들이 너무도 유명해서 또 너무도 유명한 시들이 있어서 그 유명한 몇몇 시에 그들이 갇혀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니 이 제목, 정말 잘 지었다.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

 

다른 말로 하면 제발 김소월이 쓴 다른 시들도 좀 읽으라는 얘기다. 그냥 김소월=진달래꽃, 이 등식에 안주하지 말라는 얘기다. 우리가 문화인이 되려면 적어도 교과서 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김소월을 '진달래꽃'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교과서에도 진달래꽃만 실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정서를 지닌 작품들을 실어놓고 있다. 가끔 민족시라고 해서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을 담은 시를 싣기도 하지만 예외적인 경우다. 이런 경우 말고도 김소월은 다양한 시들을 썼으나 교과서에서는 고만고만한 시들만 싣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김소월을 특정 시경향의 시인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김소월=진달래꽃'의 등식은 비유로 여겼으면 한다)

 

교과서에서 벗어나는 일, 김소월을 특정 시에 가두지 않는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김소월처럼 이렇게 '진달래꽃'으로 영원히 기억되는 것도 좋은 일이다. 다른 시인들이 꿈꾸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김소월은 이미 하나의 시에 갇혀서는 안 되는 시인이다. 그런 시인을 더 알아보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은 너무한 일이다.

 

이 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더 많은 시를 읽지 않는 시인. 김소월=진달래꽃, 이 등식에서 벗어날 것을 요구한다. 김소월이 '진달래꽃'으로 우리나라에서 정점을 찍은 시인임은 확실하지만, 그가 쓴 다른 시들을 더 많이 읽을수록 왜 김소월이 뛰어난 시인인지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머리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김소월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김소월 시 중에 좋은 시들이, 마음을 파고드는 시들이 얼마나 많은가. 또한 '한(恨)의 정서, 민요조 서정시' 등으로 그를 제한하기에는 다양한 시들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시들이 소개되고 있고, 이 시들에 대한 소개글이 있다. 그냥 시만 읽어도 좋지만 그 시에 대한 해설들, 다양한 쟁점들, 그리고 김소월의 삶 등이 함께 씌어 있기 때문에 김소월 시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점점 더 많은 김소월 시를 읽으면서 김소월의 시맛을 맛보게 된다.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이다.

 

이렇게 이 책은 '진달래꽃'으로 시작해서 '진달래꽃'으로 끝난다. 단지 김소월 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김소월과 다른 시인들의 시를 비교하는 글도 실려 있는데, 김소월이 쓴 '진달래꽃'으로 시작해서 그 시를 변용한 김언희의 시로 끝나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알던 '진달래꽃'의 애잔한 정서는 김언희의 시에서 낯섬으로 변주가 된다. 그리고 이런 변주가 김소월 시를 더 풍요롭게 함을 깨닫게 된다. 여기에 더해 김소월을 과거의 김소월로만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김소월, 미래의 김소월로 불러낼 수 있고, 불러내야 함을 깨닫게 한다.

 

그렇다. 이제 김소월을 이야길 할 때 '김소월=진달래꽃'의 등식을 벗어나야 한다. 그는 어느 한 시로, 또 어느 한 경향으로 가둘 수 있는 시인이 아니다. 그를 그 틀에서 빼내었을 때 우리 시도 더 풍성해질 수 있다. 우리들 감상 능력도 마찬가지고.

 

김소월 시에 대해서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보여주고 있는 이 책, 시를 이해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 김소월을 교과서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사람들, 읽으면 다양하고 새로운 김소월 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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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09: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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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09: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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