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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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너무도 많이 들었던, 연극으로 상연이 많이 되었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작품.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일했으나 결국은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노동자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주인공 윌리 로먼은 세일즈로 평생을 살아오지만 그다지 큰돈을 벌지 못한다. 물론 잘 나갈 때는 좀 벌 때가 있었지만, 그것은 그가 벌어온 돈을 평균냈을 때 이야기다. 그는 평생을 직장에 다니면서 물건을 팔면서 간신히 자기 집을 마련한다. 그것도 융자로.

 

융자가 끝날 때쯤 그의 인생도 끝난다. 아들 둘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신은 해고되고, 그러나 그는 과거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단지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소모되는 세상에 대한 풍자라고 하는데... 우선 윌리는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그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세상이 변해가는데 과거에만 사로잡혀 있다. 사실 노동자들이 현실의 변화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그래서 세상이 급격하게 변할 때 따라가지 못해 해고되는 노동자들이 많다. 이 희곡의 주인공 윌리도 그러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자식에 대한 기대도 변하지 않는다. 자식에 대한 무한한 기대로 인해 큰아들 비프는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자식의 인생에 부모의 기대를 걸어놓음으로써 자식이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하게 만든다. 우리들 대부분 부모가 하는 그런 실수를 윌리 역시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그렇지만 아들들이 돈을 잘 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업을 하면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예전에만 사로잡혀 있는 그에게 큰아들 비프는 현실을 바로보게 한다.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음을.

 

그러나 윌리는 아들이 잘 살 거라고 믿고 아들에게 돈을 마련해 주기 위해 자살을 택한다. 그가 들었던 보험료를 아들이 지니게 하기 위해서다. 그 아들이 그 돈으로 성공하기를 바라면서.

 

세일즈맨은 물건을 파는 사람이다. 영업사원이라고 하면 된다. 자기 회사 물건을 다른 사업체 사람에게 홍보하여 사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들이 물건을 판 대가로 돈을 받고 그것으로 생활을 해나간다. 그러다 그가 물건을 팔 수 없게 될 때 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의 목숨밖에 없다.

 

자본주의는 노동할 힘이 있을 때는, 또는 영업을 할 능력이 있을 때는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할 때는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목숨을 팔 수도 있게 하고 있다. 대다수 노동자들이 노년을 불안하게 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죽을 때까지 돈을 벌지만 죽을 때까지 집값을 값아야 하는 처지. 그렇다고 자식들이 번드르하게 출세를 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상태. 자식들의 앞날까지 걱정해야 하는 노년.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다.

 

이 희곡의 주인공 역시 그런 상황에 처한다. 그럼에도 둘째 아들 이름이 해피로 나오는 것은 그런 상황에서도 희망은 있다고 하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희곡에 나오는 해피는 윌리의 또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희망적인 소리를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하는 소리. 내면에는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는 노동자들의 모습.

 

사실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은가. 노동자들의 자식들이 과연 미래에 대해 밝은 희망을 지닐 수 있는 사회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히려 비프가 솔직하다. 그는 자신을 알게 된다. 대장으로 여기던 아버지의 위선적인 모습을 보고, 그는 고등학교 졸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만다. 하여 대학 진학도 물건너 가고. 또 가는 일터마다 도둑질을 하여 쫓겨나거나 감옥에 가기도 한다. 마지막에 전에 근무하던 사장을 찾아가지만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자신의 현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처음에 비프가 공을 훔쳐 왔을 때 윌리의 반응이 비프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윌리는 공을 훔친 비프를 크게 야단치지 않는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오히려 연습을 더 하면 된다고 한다. 거기에 유급 위기에 처한 비프에게 공부에 대해서, 적어도 유급을 하지 않아야 함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비프가 방황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윌리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아들 해피가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공허한 울림으로 들리는데, 비프는 그렇지 않다. 그는 이제 끝까지 갔다. 여기에 아버지의 죽음까지 겪었다. 그리고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게 됐다. 비록 앞으로의 삶도 힘들겠지만, 그는 이제 자기 삶을 살아갈 것이다.

 

평생을 노동에, 그리고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죽음도 가족을 위해 선택하는 세일즈맨. 그가 살아온 인생이 도덕적이고 위대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산 삶임은 확실하다. 그런 사람들이 노년을 걱정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일은 가족에게만 맡겨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다. 이 희곡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서 노동자들이 삶의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다. 적어도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되지 않나.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 요즘도 울림을 주는 희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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