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는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기가 특집이다. 우리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나왔을 때 동물들과 함께 살았을 것이다.
힘이 센 상태가 아니라 다른 동물들에게 쫓기면서 함께 살았겠지. 그러다가 집단생활을 하고, 도구를 이용하면서 이제는 동물들을 쫓으면서 살았을 테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동물들은 인간에게 쫓기고 죽임을 당하고, 멸종이 된 동물도 많아졌다. 이런 동물들과 달리 인간과 함께 살게 된 동물들이 있다.
대표적인 동물이 개와 고양이인데... 예전에는 애완견, 애완묘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이제는 반려견, 반려묘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름이 바뀐 것은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반려라는 말은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다.
나선형 발전이라고 한다면 인간은 다시 동물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 약자가 아니라 강자가 되어서.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가 되었으니 그것에 대해서 한번 정리할 필요가 있다.
민들레 이번 호에서 이 점을 짚어주고 있는 것이고, 약한 존재를 돌보면서 자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음을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몸으로 익힐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최훈이 쓴 '애완동물과 반려동물'이란 글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게 한다. 우리는 반려동물이라고 하면서 우리와 동등한 '반려'로 생각할까? '반려'라면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감을 의미할텐데, 과연 우리는 동물과 우리의 다름을 인정할까?
오히려 동물을 우리 인간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동물들의 습성을 바꾸고 있으면서 '반려'라는 말을 쓰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냥 '애완동물'이라고 하라고... 그것이 지금의 상황에 맞는 표현이라고.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바꾸어야 한다. 최근에 동물 실험을 금지하고, 동물원들의 환경을 바꾸기도 하니 동물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는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기는 하다. 여기에 윤리적, 철학적 관점을 확립해야 할 필요도 있고.
'민들레'에서 교육을 다루고 있는 글들이 빠질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세계의 교육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 교육 개혁에서 어떤 점을 다루어야 하는지를 짚어준 글도 의미가 있다.
이혜정이 쓴 '세계의 입시 패러다임과 한국 교육의 방향'이란 글인데, 대부분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취하고 있는 교육의 방향이 '꺼내는 교육'이라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집어넣는 교육'이라고 한다.
교육의 패러다임을 '집어넣는 교육'에서 '꺼내는 교육'으로 바꾸지 않으면 대학입시에 관한 어떤 논의도 제자리 걸음을 할 뿐임일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제까지 집어넣기만 할 것인가? 물론 집어넣는 단계도 필요하다. 무언가 있어야 꺼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마냥 집어넣기만 하면 안 된다. 들어간 것을 제대로 꺼낼 줄 알게 하는 교육, 그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대로 꺼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집어 넣어야 하는지 고민할 테니까...
이런 저런 글들을 읽으며 제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