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지향'이란 시로 내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시인. 그러나 그가 쓴 시 가운데 외운 시는 하나도 없다. 그냥 시 제목만 남아 있는 상태.

 

  아마도 시를 공부하면서 들어본 이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시학평전'을 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이런 기회에 그가 쓴 시를 모두 읽을 기회가 왔다. 처음부터 시를 읽으며 송욱이란 시인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주로 시들이 길다. '하여지향1-12'편도 시들이 길다. 긴 시들, 할 말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리라. 그러다가 짧은 시들이 나온다. 말을 줄이기 시작하면 숨어 있는 뜻을 찾아내야 한다. 더 많은 말들이 짧은 시 속에 담겨 있다.

 

이렇게 시 전집을 읽으며 송욱 시인을 알아가게 되었는데... 요즘 선거와 관련지어서 두 시를 생각하게 됐다. 이래서 시에는 유효기간이 없다.

 

언제든 상황에 맞는 시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많은 말들이 필요 없다. 에둘러 가지도 않는다. 그냥 똑바로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시답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좋은 말은 둘러가지 않는다. 똑바로 날아온다.

 

  말

 

말은 모습을 보고 듣고 배고 낳는다

말은 생각을 보고 듣고 배고 낳는다

말은 느낌을 보고 듣고 배고 낳는다

 

말은

말이 없는 것을 위하여 산다

말은

할 말이 있을 때는

마음에 드는 나무처럼

많지 않다

 

정영진 엮음, 송욱 시전집. 현대문학. 2013년. 277쪽.

 

선거를 앞두고 온갖 말들이 날아다니고 있다. 이 말들 중에 '마음에 드는 나무처럼' 마음에 드는 말은 별로 없다.

 

쓸모없는 말, 나무처럼 우리를 편하게 해주는 말, 그늘을 주는 말, 열매를 주는 말, 산소를 주는 말은 별로 없다.

 

상처를 주는 말, 칼이 되는 말들만 난무한다. 이런 때 '말이 없는 것을 위하여 산다'는 말처럼 사람을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국민을 위하여 산다는 정치인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정치인들 중에 마음에 드는 정치인, 쓸 만한 말이 적은 것처럼 참으로 적다. 그 적은 정치인들을 가려낼 줄 아는 눈을 지녀야하는데...

 

그런 눈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말들을 거를 줄 알아야 한다. 이 시집에는 이런 시도 있다. 그냥 똑바로 내달리는 말의 시.

 

똑똑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은 딱딱해지기 쉽다

똑똑한 사람은 뚝 떨어지기 쉽다

똑똑한 사람은 딱 꺾이기 쉽다

 

정영진 엮음, 송욱 시전집. 현대문학. 2013년. 291쪽.

 

그래서 우리 사회에 필요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톨스토이가 쓴 '바보 이반'을 보라. 정치를 제대로 한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바보 이반'이다.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생각해서 말들을 막 내뱉는 사람, '딱딱해져서 뚝 떨어지기, 딱 꺾이기' 쉬운 사람이다.

 

우리에게 편안함을 주는 말, 그런 말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은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똑똑하기보다는 섬길 줄 아는 사람이다.

 

섬길 줄 아는 사람이 하는 말, 그 말이 바로 '마음에 드는 나무처럼' 우리 마음에 쏙 드는 말이고, 그런 사람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람이다.

 

선거 앞두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보고 '말은 말이 없는 것을 위하여 산다'는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누구인지 잘 살펴보아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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