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청소년 시집을 자주 읽는다. 청소년이 우리 미래라고 하지만, 청소년이 지내는 현재는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도 어둡기 때문이다.

 

  어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시를 보면 그들에게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모든 어른들이 청소년들에게 마음을 열고 다가가고 싶겠지만, 자신은 마음을 열었다는 것이 오히려 청소년들에게 꼰대로 다가갈 때도 많으니...

 

  적어도 시인은 청소년들의 현재를,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파악하고 있을테니, 시인의 공감 능력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청소년 시집을 읽으면 청소년 현재에 좀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청소년 시집을 찾던 중 이 시집을 발견했다. 다양한 발상에, 청소년들의 마음이 이렇겠구나 하는 시들이 많다.

 

한 편 한 편 쉽게 읽을 수 있고, 쉽게 넘길 수 있는데, 마음에는 오래 남아 있는데... 아, 이게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처한 현실이구나. 이것이 바로 청소년들의 현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무거워지는데, 달라지는 뭔가가 없다. 그냥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교육은, 청소년은 그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 정말 '뱅뱅' 돌고 있다. 어지러워 쓰러질 지경이다.

 

이 시를 보자.

 

    사이에 두고

 

교실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

 

저 밖은 찬란한 봄

이 안은 혹독한 겨울

 

김선경, 뱅뱅, 푸른책들, 2016년 초판. 16쪽.

 

꽃이 피었다. 봄이다. 활짝 폈다 진다. 오월이다. 이제 여름을 향해 간다. 그렇게 모두들 봄을 노래하는데 창문 하나를 두고 밖은 화창한 봄인데, 교실은 겨울이다. 그것도 혹독한 겨울.

 

도대체 이 좋은 날에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심지어 쉬는시간, 점심시간이 되어도 교문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꽃을 보는 것도 삭막한 학교 안에서 봐야 한다. 

 

이 삭막한 학교 공간에도 꽃은 어김없이 피어 있지만, 담장 안 꽃, 힘들다. 그런 꽃도 교실에서는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 또 볼 수 없다. 수업시간이 더 많은 학교 생활에서는.

 

온갖 규제들, 통제들, 그리고 공부, 공부, 공부... 이렇게 교실 안은 혹독한 겨울의 연속이다. 늘 겨울이다. 언제 봄이 오나, 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말한다. 이 시기를 잘 넘겨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이렇게 아이들과 어른들은 사이가 넓다. 사이만 넓은 게 아니고 벽도 있다. 유리로 된 아주 튼튼한 벽이.

 

이 시를 보자.

 

     커서

 

커서, 방향에 상관없이 컴퓨터 화면을 자유롭게 이동할 때 쓰는 키

커서, 어른들 입에만 담기면 삶을 한 방향으로 고정할 때 쓰이는 말

 

커서, 뭐 될래?

커서, 뭐 할래?

 

김선경, 뱅뱅, 푸른책들, 2016년 초판. 31쪽.

 

무섭다. 이런 괴리를 어른들은 여전히 느끼지 못하고 있단 생각에. 나 역시 이런 어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자유로운 아이들을 틀에 가둬두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라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커서'는 그게 아닌데... 어디든 자유롭게 갈 수 있는데...

 

이렇게 청소년 시집에 나온 시들을 읽으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청소년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현재에서 다시 나를 비춰보게 된다. 난, 제대로 된 어른인가. 이들과 함께 하는 어른인가. 아니면 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어른인가.

 

일방적 지시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청소년 시집을 읽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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