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아이 라임 청소년 문학 12
은이결 지음 / 라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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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집단 생활을 한 다음에 전쟁이 없던 시기가 있었을까? 짧은 평화, 긴 전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은 일어나고 있다. 일방적인 폭격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작은 전쟁들이 지속되기도 한다.

 

이런 전쟁들 속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여성과 아이이다. 그러면 여성 아이는 더 큰 피해를 본다고 할 수 있는데.

 

지구에서 사는 생물 중 가장 고등하다는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몸 속에 내재한 폭력에 대한 욕망을 이성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이 소설을 읽으며 전쟁이 얼마나 여성 아이에게 피해를 주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이 소설에서 전쟁 장면이 나오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배경은 병자호란이 끝난 직후다. 전쟁은 이미 끝났다. 그러나 여성 아이에게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단지 여성 아이뿐만 아니라 힘없고 약한 백성들에게는 전쟁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통이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히 전쟁을 감내해야 한다. 양반들과 달리.

 

비극적인 건, 어떤 사람들이 '화냥년'이란 말의 어원으로 '환향녀'라는 말을 들고 있는데, 이는 병자호란 이후에 청나라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여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양반들, 권력자들, 자신들이 잘못해서 청나라로 끌려가게 해놓고, 이들이 돌아왔을 때 정조 운운하면서 책임을 이들에게 전가한 말. 환향녀. 이 소설에서도 끌려갔다 돌아온 작은 마님이 결국 추운 겨울에 냇가에서 몸을 씻어야 하고, 결국은 차가움 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비극들, '칼의 아이'라고 하는 제목이 언뜻 '에밀레종'을 연상시킨다. 종을 완성하기 위해 아이를 제물로 바쳤던 먼 과거의 일들. 이번에는 왕에게 바칠 칼 '사진검(四辰劍)'을 완성하기 위해 바칠 아이, 행이. 행이를 둘러싸고 청나라 사람들에게 누이를 빼앗긴 부칠이, 그리고 행이 쌍동이 동생 만우. 행이와 함께 지내는 옥란이라는 양반집 규수. 칼을 만드는 도검장.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왕, 그러나 그 왕을 잃으면 자신들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 왕이 권력을 쥐도록 신묘한 기운을 얻고자 하는 신하. 그 신하가 이야기한 검, 사진검.

 

사인검(四寅劍)은 있어도 사진검은 없다. 사인검이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 호랑이 시에 만들어진 검이라면 사진검은 용 해에 용 달, 용 날, 용 시에 만들어진 검이다. 여기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서 이때 태어난 아이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

 

그렇다. 왕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반 사람의 생명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자기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양반들의 모습은 정권을 잡기 위해서 물불 가리지 않는 지금 정치권들 모습의 원조라 할 만하다.

 

소설은 행복한 결말, 인과응보로 어느 정도 가다보면 결말이 예측가능해진다. 이런 결말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소설 결말에 안도하는 것은 소설 속에서조차 힘없는 사람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사람 목숨은 누구를 막론하고 똑같다는 사실.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지만, 그런 희생이 더 힘없는 사람에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안도감. 그럼에도 힘있는 집안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여성이 겪는 삶은 마찬가지로 힘듦을 이 소설에 등장하는 최부사 댁 딸 옥란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무남독녀라고 오냐오냐 하면서도 정략적 결혼의 대상으로만 삼고 있는 것, 딸의 무참한 죽음 앞에서도 제 부와 권력을 잃지 않으려는 최부사의 모습. 눈 먼 충성심으로 한 사람의 생명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이판서. 여기에 여성이 한 사람으로 당당한 한 생명으로 존중받는 모습은 없다.

 

사람 목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전쟁으로 인해 더욱 피해를 보는 여성 아이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과거 오래된 역사를 배경으로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힘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서로 돕는 모습, 결국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난다. 우리 삶도 이래야 하지 않겠느냐고,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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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09: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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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0 15: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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