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제목이 이미 질주다. 속도다.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계속해서 달려야 한다. 어쩌면 현대인은 이렇게 멈춤이 아니라 달림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길 위에 있다. 시집에서 멈추도록 하는 존재로 '거울'이 등장하지만 이 '거울' 역시 멈춤이 아니다. 달림이다. 그냥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결코 멈춰있지 않은 존재를 비춰주고 있다.

 

 이렇게 시집은 계속 질주한다. 속도가 대단하다. 그래서 위태하다. 우리네 삶이 이렇게 위태로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을 가장 잘 드러내는 시가 '길, 오토바이, 나이키'라는 시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서로 위태위태하게 달리고 있다.

 

     길, 오토바이, 나이키

 

길은 계속해서 제 속에서 제 몸을 천천히 빼내고 있다

길은 미끈거린다 길에서는 늘 시간의 피비린내가 난다

길은 여기에 서서 멀리까지 간 제 몸을 그리워한다

 

오토바이는 계속해서 길 끝에서 길 끝으로 탈주한다

오토바이는 항문의 속도로 들끓는다 따가워 매워

오토바이는 길에서는 도저히 발을 떠올릴 수조차 없다

 

달리는 오토바이 위에서 몸은 계속해서 팽창하고 있다

두 발이 가까스로 남은 눈알처럼 허공을 더듬는다

빛 속에서 생겨난 그림자가 앙상하다

몸보다 커진 심장이 벌컥벌컥 시간의 고삐를 잡고간다

 

이원,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 문학과지성사, 2013년 초판 5괘. 111쪽.

 

여기에 나이키는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나이키가 무엇인가? 운동을 하는 선수들이 신는 신발 아닌가. 그 로고는 어떤가. 날렵하게 달리지 않는가. 마치 오토바이가 달려나가듯이.

 

이러니 삶은 속도일 수밖에 없다. 계속해서 달려야 한다. 길 위에 오토바이, 오토바이 위에 나이키. 그렇게 이들은 계속해서 달려야만 한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달릴 수밖에 없듯이.

 

이런 달림으로 우리는 시간의 고삐를 잡고 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보다 커진 심장은 정상이 아니다. 그러니 이런 달림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잃고 만다.

 

속도에 자신을 맡기면 심장이 몸보다 커지는, 결국 내가 견딜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질주하는 길이 아니라 걷는 길, 가끔은 멈추기도 하는 길... 운동하는, 전력질주하는 나이키가 아니라 사뿐사뿐 흙을 밟으며 가는 신발, 그리고 시간의 피비린내가 아닌 자연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길.

 

그런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시집에 나오는 엄청난 속도에 내 삶을 맡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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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09: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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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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