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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1873년 브뤼셀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프랑스어 원본 수록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 지음, 이한이 옮김 / 그여름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랭보 시집인데 초판본의 형식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여기에 프랑스어 원본까지 실려 있으니 랭보 시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시집이다.
그러나 랭보 시집이라고 해서, 많이 유명하다고 해서 마음에 쏙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 역시 랭보가 젊었던 시절에 쓴 시집인데, 그가 일찍 죽었으므로 그의 시집은 대부분 젊은 시절의 격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들이 실려 있다고 보면 되듯이, 직설적인 감정들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젊은 시절 삶은 희망으로 충만해 있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절망으로 꽉 차 있기도 한다. 바로 랭보가 그랬다고 할 수 있다.
시집에 나오는 절망들, 지옥이라는 말들이 젊은 날 랭보가 얼마나 고뇌하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 시를 번역한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았지만, 사실 시는 번역불가능하고, 오히려 시 번역은 새로운 창작이라고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만큼 시가 세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바꾼 것인데,그것을 또다른 언어로 바꾸는 일은 창작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두 번의 창작과정을 거친 시를 읽으면서 이해하기는, 또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어려운 시다.
무언가 감정과 욕망이 흘러넘친다는 것은 알겠는데 그것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다만 내가 랭보의 시에서 알고 있던 모음에 색깔을 덧씌운 시가 바로 이 시집에 있었다는 것.
'망상2 - 언어의 연금술'에 이 시가 나온다. 아니 이 책은 시집이라고 하기 힘들다. 아마도 그냥 읽으면 수필을 읽는 듯한 느낌, 그냥 그렇게 산문을 읽는데, 그 산문 속에 시가 들어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모음에 색깔을 부여한 것이 나중에 '모음들'이라는 시가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여기서는 행구분이 전혀 없이 그냥 줄글로 나가고 있으니...
이렇듯 랭보를 유명하게 해준 시집을 읽었는데, 그다지 감흥을 못 느끼고, 왜 당시 사람들이 랭보의 시에 열광했을까 하는 생각.
당시 감정들을 감추고 속이고 온유하게 표현하는 풍조에서 자기 감정을 직설적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랭보의 시가 충격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그냥, 그렇게, 읽은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