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흔을 바라보는 손자는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피 여사로 부르며 돌본다. 이 돌봄이 처음부터 기꺼이 시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저자 역시 코로나 상황으로 시간이 생긴 그때. 저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할머니를 시청하며 그 기록을 남긴다. 마냥 평범하기만 했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리라. 거동이 불편하고, 몇 번의 병원 신세와 수술을 거쳐,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일상이 요즘 세상에 그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조합,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일흔을 바라보는 딸 박 여사’, 마흔을 바라보는 미혼의 외손주가 한 집에서 부대끼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쩌면 이 조합,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조금 이상해졌다. 뭐랄까, 내가 경험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느 날 더 힘들게 마주할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저자는 지난 2년 동안 어머니 박 여사와 함께 외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냥 지켜만 본 게 아니라, 피 여사의 일상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외출에 동행했다. 말로 하고 보니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해본 사람은 알 테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나마 남자의 힘이어서 다행인 걸까. 육체적인 힘으로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저자는 피 여사의 옆에서 오늘의 일상과 지나온 세월을 들으면서 그녀의 건강을 돕는다. 돕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저자가 피 여사의 몸 상태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육체는 물론이고, 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까지 말이다.


어머니 박 여사의 일 때문에 어린 저자를 돌봐주던 피 여사였기에, 저자에게 피 여사는 단순히 외할머니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심히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피 여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가난한 살림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시집가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겪은 피 여사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그대로 몸으로 겪은 존재다. 시대가 그랬고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스무 살에 결혼했다. 책임감 없는 남편 때문에 고생은 당연했고, 그마저도 남편은 한국전쟁 때 죽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재혼했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더 낳고도 피여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복은커녕 오늘을 견디는 삶에 급급했다. 피 여사의 인생에 드리운 고단함이 세월이 흘렀다고 변할 리 없다. 고생하고, 힘들고, 외로움과 불행에 찌든 세월이었다.


피 여사는 하루하루를 견디듯 보냈다. 피 여사의 삶에선 딱히 즐거운 일이 없었다. 고통과 고독과 권태가 날마다 습격하듯 찾아왔다. 나이가 든다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된다는 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일이었다. (65페이지)


우리는 모두 늙는다. 우리는 모두 그들처럼 된다. 노인이 되면 젊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들이닥치는데, 이 고통은 전 세계 공통이다. 외로움, 생계 곤란, 건강 악화, 배우자와의 사별, 자식 문제, 시대 변화 부적응 등등.

피 여사는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노후를 맞았다. (17페이지)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 시절의 모든 삶을 다 똑같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 삶의 방향은 달랐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며, 시대의 불운을 비껴가고 이겨내고자 애썼겠지. 그토록 노력하고 버티며 사는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들과 지금과는 다른 삶을 만들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서. 그런 바람은 오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는 인생으로 변했다. 그걸 견디는 마음이 뭘지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병원 생활을 했던, 지금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우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무릎 연골 시술을 받고 엄마는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서도 혼자서 움직이기를 힘들어했고, 나는 혹시나 엄마가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옆에서 돌봤다. 식사를 챙기고, 옆에서 계속 대화 상대를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울해했다. 어느 날에는 밤에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어느새 자기 몸은 이렇게 늙어버렸고, 몸이 제 기능을 못 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노쇠한 몸이라도 그나마 잘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엄마는 잘 걷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순간순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듯했다. 한때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왔던 엄마의 삶이, 몸이 이제는 혼자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엄마도 나도.


피여사의 인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정한 몸으로 자식과 손자를 돌봤던 그녀의 현재는 혼자서는 지낼 수 없다는 거였다. 한쪽 눈은 감겼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는 거의 씹지 못할 상태였고,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한다. 위가 망가져서 소화도 어려웠다. 혈액순환도 잘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서 아팠고, 잘 움직이지 못하니 배변 활동이 안 좋았다. 온몸은 순환하듯 아팠다. 다리가, 팔이, 무릎이, 호흡이, 피부가, 심장이... 잠시 후 숨이 멈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런 그녀가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며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이 거듭되자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형제자매가 한 명씩 죽고,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최근에 한 달에 한 번씩 장례식을 다녀온 내가 느끼기에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듣는 일은 설명할 수 없이 가득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내 가족이 죽고,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언젠가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저자와 피 여사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도 다양했다. 가까운 이들, 가족과 친척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편하지 않았다. 가족의 배웅조차 받지 못한 죽음도 있었으니, 그 죽음을 바라보는 피 여사의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으리라.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지난한 삶을 듣는 일은 힘들었다. 살아온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오늘의 일상을 보는 일이 괴로워서, 이 노인의 마지막이 어떨지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손자의 병간호가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정신적인 피폐까지 완성하는 과정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을 돌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버거웠다. 자꾸만 나의 경험과 비춰 생각하다가도, 언젠가 내가 더 겪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을 알기에 겁부터 나지만, 또 당연하게 감당하게 될 것도 알아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 없을 테고, 누구도 자기 죽음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할 것이기에, 모른 채로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서 겁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힘든 건 사실이고, 그렇게 또 견디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피 여사의 외롭고 괴로운 시절을 듣다 보면 저절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피 여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다. (181페이지)


한 편의 소설로 읽히는 게 신기한 책이었다. 한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당연한 예상처럼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과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 여사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의 흐름으로 보면, 자꾸만 들려오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피 여사의 몸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 피 여사가 저자의 옆에 없을 거로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흐름과 결말을 당연하게 기다리고 있던 걸까 싶지만, 오히려 마지막에 확인한 피여사의 안부에 마음이 놓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그래야지.


참 많이 애썼다. 고생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행복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상황에 적응하느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후에 맞이한 또 다른 마음이 이 관계에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긴 시간 피 여사를 지켜보면서, 타인의 삶을 담담하게 이해하고, 때로는 귀찮고 버거웠을 존재를 더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가 된 저자가 배웠을 행복이 어떤 것일지 그대로 느껴진다. 힘들었지만 더 돈독하게 된 관계,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찾아낸 행복의 조각들이 이 가족의 공간에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 조각들 하나하나 더 찾아가면 꿰어맞추는 재미를 찾고 있을 것 같다.


피 여사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뜻밖에 피 여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여사와 내가 옆에서 챙기는 게 고마워서 한 말이겠으나, 피 여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답변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 (294페이지)


덧붙임)

제목에 쓰인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白手가 아니라 아흔아홉 살을 뜻하는 백수白壽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의까칠한백수할머니 #이인 #에세이 #한겨레출판 ##책추천

#간병 #돌봄 #노년 #외로움 #행복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1-08-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예전에도 있었는데 잘 몰랐던 건지... 몇 해 동안은 죽음을 말하는 책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직 더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다고 해서 그런 일이 찾아오면 제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파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기쁨을 찾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2   좋아요 0 | URL
점점 이런 경험이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고, 혼자인 삶이 많아지니...
어쩌면 각자 혼자인 3대가 한집에서 사는 이런 일을 자주 보게 될지도.
외로워 보이면서도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 투닥거림, 돌봄이 애틋합니다.
 
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놀랐다. 엄마의 목소리가 커서도 아니고 화를 내서도 아니었다. 발음이 너무 좋았다. 식탁에 둘러앉아, 과일을 앞에 두고, 차를 마시며 가족들이 이야기를 나눌 때면 항상 아버지가 의견을 내고 엄마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 오빠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의 이사, 누군가의 진학이나 취업 같은 중요한 결정도, 여행지, 회식 메뉴, 텔레비전 채널 같은 사소한 결정도 결국은 아버지 뜻대로 되었고 엄마는 늘 중얼거리는 사람이었다. 엄마도 저렇게 간결한 문장과 정확한 발음으로 의견을 말할 수 있구나. (95~96페이지, 가출)


누군가의 간절한 버킷리스트를 완성하는데 동행한 이가 시어머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놀라웠고, 그 불편한 동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궁금했다. 작가가 여성의 연대를 말하려는 건가 싶으면서도, 왜 하필 그 연대의 한편이 시어머니였던가 의아했다. 이 단편을 읽고 한참 생각하다가 내가 범한 오류를 찾아냈다. 나는 시어머니를 한 사람의 인간, 여성의 삶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지금껏 내가 생각한 시어머니로만 봤던 거였다. 생각의 시작이 틀렸던 거다. 시어머니가 시어머니 이전에 한 사람으로 살아온 세월, 그 사람 고유의 인생을 들여다봐야 했던 것을. 그래서 단편 오로라의 밤을 다시 읽고 다시 생각했다. 세 여성이 살아온 흔적을 되짚어보면서 이 여성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됐는지 지켜봐야 했다.


남편이 죽은 후에야 말녀라는 이름을 동주로 개명한 여성은 그 이후 어떻게 살았을까? 남편의 말처럼, 다 늙어서 이제 개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그 단순한 이름 하나에 누구는 행복과 자신감을 얻는다. 언니 금주, 은주의 이름대로라면 셋째딸인 그녀의 이름은 동주여야 했다. 그런데 왜 말녀인가. 남아선호사상이 강했던 시절에 딸은 이제 그만이라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 말녀. 남동생이 둘이나 태어났는데 왜 말녀냐고 물어도 대답해줄 사람이 없다. 매화나무 아래의 동주는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금주 언니를 보러 다니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름만큼이나 차별받으며 살았던 시간과 싸우듯 그녀는 늦게라도 삶을 바꾸려 애쓴다. 그 증거가 개명이었고, 동주라는 이름이었다. 이어지는 시간은 단편 오로라의 밤으로 들려준다. 아들을 잃은 후 며느리와 같이 사는 시어머니가 되었고, 며느리와 오로라를 보겠다며 캐나다로 향한다. 말녀의 삶과 너무 다른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동주의 오늘이 상상되는가? 읽으면서 너무 신났다. 남편도 아들도 없는 지금이 그녀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된 것 같았다. 그게 더 슬펐다.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후의 웃음이 그녀의 진짜 미소 같아서 말이다. 고부 사이가 아니라 룸메이트처럼 살아가는 이 고부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 조합을 보고 웃을지도 모른다. 여든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와 예순을 바라보는 며느리가 오로라를 보겠다며 그 추위를 견디고 있다고? 이 늙은 여자들 따뜻한 아랫목에서 일일드라마나 볼 것이지 뭐 한다고 그 길을 나서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른다. 두 과부가 저지른 일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였다. 이것부터가 나의 잘못된 인식을 드러냈다. 나이 든 여자가 뭐? 남편 없는 여자가 뭐? 이들은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다. 자기 일을 하고, 자식을 키웠고, 보고 싶은 것을 보러 간 것뿐이다. 노년의 삶을 손주를 보면서 보내는 게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세상에서 이들의 행보는 낯설면서도 너무 늦게 찾은 당연함이었다. 자기 삶에서 자기가 주인공이어야 했던 당연함을 잊고 살아왔던 시간을 되찾은 기분. 딸이 엄마에게 아이를 봐주지 않는다며 서운해했을 때, 내가 미처 놓치고 있던 것들을 떠올렸다.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였던가? 여자아이에서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왜 항상 엄마여야만 했던가 묻게 되었다. 그러다 그 물음은 꼬리를 물고 다시 묻게 된다. 한 여자의 인생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에서 끝나는가.


82년생 김지영을 몰입해서 읽었는데도, 순간순간 가슴을 두드리는 장면에 숨을 죽이곤 했는데도, 여전히 나는 그 김지영의 인생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듯하다. 이 소설집은 그 김지영의 확장판이라고 말하는데, 나처럼 봐야 할 것을 놓친 독자들에게 던지는 김지영의 생애였다. 8편의 단편을 통해 10대부터 80대까지 여성이 겪는 삶의 다양한 면을 드러냈다. 여자아이는 자라서에서 삼대의 모습은 페미니즘을 겪는 세대 차이를 그대로 보여줬다. 30여년 전 지방 소도시의 가정 폭력 상담소를 운영했던 엄마를 보고 자라면서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했던 ’. 이제 의 중학생 딸은 그 아이만의 방식으로 성추행 남학생들을 응징한다. 같은 뜻을 가지고 살아왔어도, 살다 보니 변하는 세상에 흡수되느라 외면했던 것을 딸의 한마디로 소환한다. "그러니까 어쨌든 예쁘기는 해야 할 것 같잖아. 예쁘지 않아도 된다고 해 줄 순 없어?"(290페이지)


그 여자아이는 자라서 자기 의지대로 세상에 맞서며 살아가다가도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처럼 은근한 불빛으로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성으로 성장하는 건 아닐까 염려스럽기도 하다. 나를 위해서, 나를 편하게,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는 남성 보호자로 여겼던 대상이 어느 순간 들여다보니 나를 조종하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절망과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도 무너지지 않았다. 그 절망에서 벗어났고, 진짜 자기 삶을 찾아가고 있다. 깍듯하게 존칭하며 불렀던 그 이름은 끝은 개자식이었다. 이렇게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찾아가는 여성에게 응원을 보내면서, 미스 김은 알고 있다에서 마주친 성차별은 그 당당함에도 물리치지 못할 거대한 벽이었다. 직급도 없는데 그 회사의 모든 일을 맡아서 하는 미스 김. 그녀의 영역이 넓어지자 미스 김의 자리는 사라진다.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그 능력에 의지하던 인간들의 연대로 밀려난 미스 김의 활약은 그 이후에 드러난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력 갑이었던 그녀가 회사에 있던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유령처럼 그녀는 존재감을 뽐낸다. 학연과 혈연으로 뭉친 어느 중소기업에서 횡행한 성차별의 결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미스 김이 떠난 자리에 또 다른 미스 김으로 존재하는 화자의 선택이 궁금해지는 이유다.


이런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려주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는 매도당하기도 한다. 오기의 초아는 한 편의 소설로 악플에 시달리고 있지만, 그 시도를 꺾고 싶지는 않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때야 비로소 꺼내지 못한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상처 입고 고통받은 사람은 어느 한 명이 아니었다고. 나는 내 사유의 영역 밖에도 치열한 삶들이 있음을 안다고, 내 소설의 독자들도 언제나 내가 쓴 것 이상을 읽어 주고 있다고 쓴다. 그러므로 이제 이 부끄러움도 그만하고 싶다고, 부끄러워 숙이고 숨고 점점 작게 말려 들어가는 것도 그만하고 싶다고, 그만하고 싶은 이 마음이 다시 부끄럽다고 쓴”(79페이지)다며, 작가가 여성의 삶을 계속 쓸 수밖에 없음을 이렇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비슷한 흐름으로 읽다가 분위기 전환하듯 양가감정을 느끼게 한 작품이 가출이었다. 어느 날 편지 한 통 써놓고 가출한 아버지 때문에 엄마와 두 아들, 화자인 막내딸이 자주 모인다. 처음에는 사라진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이상하게 이 가족은 부재중인 아버지의 자리에 익숙해진다. 항상 중얼거리듯 말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정확하게 들린다. 아버지의 권위에서 벗어난 엄마가 이제야 편안해진 모습이다. 동시에 아버지의 생애를 본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책임지고 지켜야 하는 의무로 살아온 세월에 퇴직하고 이제는 좀 편안해진 아버지. 가출한다고 하고서 가족들을 놀라게 하지만, 정작 본인은 딸의 카드를 사용하면서 잘 지내고 있음을 알린다. 앞서 읽은 작품들이 억눌리고 차별받아왔던 여성의 삶을 보여줬다면, 가출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겪어온 세대의 흔적이고 살아가는 일의 고충이었다. 이 지점에서 다시 떠올리게 되는, 우리가 누군가를 볼 고 생각할 때 한 인간의 생을 보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여자 남자,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 이런 구분 말고 그냥 인간, 사람, 인생을 보는 일에 먼저 시선을 던져야 한다고 말이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을 때도 그랬는데, 결국은 같이 살아가는 세상인데 잘살아 보자는 메시지로 읽힌다.


. 흐릿하지만 분명 빛이었다. 하얀 별들이 콕콕 찍혀있는 까만 하늘에 파란빛과 노란빛이 규칙 없이 섞인 한 줄기가 연기처럼 흩날렸다. 그러다가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지고 넓어지고 너울거리기 시작했다. 지난가을, 서울에서 보았던 바로 그 빛. 하지만 더 크고 선명하고 역동적인 빛. 누군가 빛의 깃발을 들어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천천히 우주의 창을 여는 것 같기도 했다. 살이 있는 무엇. 의도와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는 지적인 영혼. 눈도 깜박이지 못하고 빛을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숨이 턱 막혔다. 내가 흐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얼어 버릴 틈도 없이 두 눈에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245~246페이지, 오로라의 밤)


다양한 여성의 삶을 보여 주면서도 다시 보고 새롭게 보기를 바라는, 함께 여행하는 고부가 수평적 관계가 되고,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페미니스트 삼대가 업뎃하고 균형을 이루는, 우리가 쓰고, 우리가 아직 쓰지 않은 것을 보게 하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첫사랑 2020이 써 내려갈 내일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 어린 영혼들이 펼칠 내일의 이야기들은, 얼마나 달라지고 있을 한 사람의 인생일까.



#우리가쓴 것 #조남주 #민음사 #한국문학 #문학 #소설

##책추천 #한국소설 #여성 #여성의삶 #조남주소설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편의 집을 몰래 지켜보는 여자. 그 여자의 시선에 딸이 들어온다. 창문 너머 집안에서 바깥을 쳐다보며, 엄마를 발견한 딸은 여전히 표정이 없다. 반갑지 않은가? 엄마는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고, 그 안에서 딸은 다른 아이를 살갑게 대하고 있다. 마치 엄마가 이걸 봤으면 하는 듯이. 너무 다정한 남매의 모습을 연출하며 눈으로 말한다. ‘내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이제 알겠어?’


당신은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주곤 했어. 당신은 우리 둘 머리를 토닥여주기도 했지. 당신의 여자들. 당신의 세계. 당신이 방을 나갈 때면 나는 울곤 했어. 나는 당신과 아이, 둘이 돌고 있는 이 축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하는 삶이 막 시작한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나는 어째서 그 애를 원했을까? 어째서 나는 나를 낳은 엄마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68페이지)


전남편 팍스의 집을 바라보던 여자는 블라이스.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팍스와 결혼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완벽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녀의 재능은 자라고 있었고, 팍스 역시 나무랄 것 없는 남자였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이 가족은 더 완벽해질 거였다. 사실 그녀는 아이를 낳는 일에 두려움이 많았다. 자기 성장을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남편과 딸이 이제 그녀의 행복에 더 크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녀의 엄마와는 다르게 좋은 엄마가 되겠다며 노력했다. 하지만 육아는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엄마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엄마를 밀어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이상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육아 스트레스를 겪는 거라며 이 상황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 탓으로 여겼다. 엄마의 엄마, 엄마에게 물려받은 결핍된 모성이 자기에게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딸 바이올렛이 자기를 자꾸 밀어내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읽는 내내 불안했다. 바이올렛이 보여주는 게 진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지켜봤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엄마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적도 없지 않은가. 대개 우리가 거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 전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니까 미워해야지 싶은, 다가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의 닫힘. 블라이스와 바이올렛 사이의 감정이 닫히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보였던가?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서 지친 모습이었을 뿐이다. 나는 블라이스가 아니라 바이올렛을 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드러나는 블라이스의 성장 과정에서 생긴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블라이스의 엄마 세실리아, 세실리아의 엄마 에타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타는 의사가 되려는 루이스와 결혼하지만, 에타의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의사가 아닌 농사를 요구한다. 루이스는 위험한 농사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고, 에타는 딸 세실리아를 낳는다. 에타가 딸을 온전히 키우지 못할 상태에 이르자 세실리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다. 무관심과 학대 속에서 자란 세실리아는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세실리아는 아이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고, 결혼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도 없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죽은 엄마 에타가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블라이스를 키웠고, 블라이스 역시 그녀의 엄마,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온전하게 사랑받으며 자라나지 못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불안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을까.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여성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지. 모성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 좋은 엄마가 있기를,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20페이지)


유전적으로 모성애가 결핍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블라이스의 불안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그랬듯, 자기에게도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바이올렛에게 엄마의 당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아이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아이를 돌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녀 안의 갈등을 꾹꾹 내리누르며 바이올렛을 사랑하고자 애썼다. 왜냐고? 그녀는 엄마니까, 바이올렛은 그녀의 딸이니까. 그녀가 노력할 때마다 아이는 더 심각하게 반대의 기질을 보였다. 엄마를 자꾸 밀어내기만 하고,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결국, 끔찍한 죽음을 불러오고야 만다. 그런데도 그 고통을 다 말하지 못하고 외면받아야만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진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 블라이스는 이제 말하지 못한 것들을 써 내려간다. 당연하고 강요된 모성에 대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엄마의 태도에 대해, 모성과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무도 보지 못하고 누구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일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겪는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이 책의 제목 푸시(Push)’는 몇 가지 중첩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 출산의 행위, 유아차를 밀어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 그리고 문장을 읽을 때마다 더 적나라하게 와닿는 엄마와 딸 사이의 밀어내는 감정, 점점 고조되는 모성애의 강요를 이 한 단어에 다 담았다. 아이를 낳았으니 키우는 건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육아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그 고됨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블라이스의 남편 팍스도 좋은 남편이었지만, 아내의 육아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바뀐 것들에 전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어렵고 힘든 사람은 블라이스뿐이다. 하고 싶은 글쓰기는 자꾸 멀어지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 아이는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더는 황홀하고 다정하지 않았고, 악의 없는 시어머니의 한 마디는 폭력 같았다. 도대체 좋은 길을 찾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견디는 것만이 남은 길이었다. 모성이란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부터 찾고 싶어졌다.


"알지,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점이 많이 있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하지만 가끔 어떤 부분은 본 것에 따라 형성이 되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따라.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에 따라." (387페이지)


한 여성의 삶이, 어느 순간 아이가 살아 있도록 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는 과정은 끔찍했다. 내내 불안이 깔려있었고, 장면들은 불편했다. 이상하게도 이 가족의 관계에서 불행한 사람은 한 사람뿐일까. 그 불행이 엄마를 침범할 때마다 점점 더 불안은 쌓여간다. 내가 부족한 엄마여서, 유전력으로 모자란 모성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스스로 괴물이라고 여기기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자기 딸이 자기와 같은 괴물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하기에 이른다. 어쩌다가 그녀는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 당연하지 않은 모성이 당연시되면서 만들어낸 악몽은 아니었을까. 소설의 결말을 보면서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녀에게 강요된 자세가 가린 눈을 이제야 마주했다는 늦은 후회였다. 그녀의 부족한 모성에 원인을 돌리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들은 이 위험을 또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그 어떤 감정도 자세도, 당연하지 않았다.



#푸시 #내것이아닌아이 #푸시내것이아닌아이 #소설추천 #인플루엔셜 @in__fiction

#문학 ##모성 #여성 #아이 #책추천 #애슐리오드레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무 가까이 있었다. 세민과 세민 엄마가 겪은 고통의 순간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는 당연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무서웠다. 알게 모르게,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행하는 혐오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준다. 개 다섯 마리로도 따뜻해지지 않을 고통을 감싸 안은 사람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소설은 동네 아파트 단지 근처에 방치된 폐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초등학생 두 명이 살해되고 그 범인은 동네 태권도장의 사범이었다. 아이들이 잘 따랐는데, 더없이 선한 인간으로 보였던 그가 살인자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수상한 의심은 또 다른 폭력이 되어 세민을 힘들게 했다. 죽은 아이들이 세민을 괴롭혔던 가해자였던 것. 만약 사범이 잡히지 않았다면 또 다른 아이가 죽었겠지? 그만큼 세민을 괴롭힌 아이들은 많았다. 세민은 엄마에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거절한다. 세민 엄마는 두렵다. 살인자인 사범과 아들 세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도 묻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다.


흰 눈썹, 흰 머리칼, 빨간 눈동자. 세민은 백색증을 앓는 열두 살 소년이다. 이런 외모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외모와 편모 가정 환경이 주눅들만 한데, 세민은 당당하고, 똑똑했다. 이 동네로 전학을 온 날부터 세민은 1등이다. 이 때문에 만년 2등으로 밀려난 안빈은 고통받는다. 안빈뿐만 아니라 안빈 엄마 역시 세민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내 아들의 1등은 날아갔고, 세민을 신경 쓰느라 안빈은 정신질환까지 앓는다. 엄마니까 당연하게 드는 감정이라고 말하기에는 안빈 엄마의 집착과 혐오는 심했다. 급기야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가면서 세민과 세민 엄마의 인생을 난도질한다.


이번엔 더 센 것이 필요했다. 박세민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것. 퍼뜩 근친상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낡은 공책에 적혀 있던 기록이 정말 일기가 맞다면 박세민은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였다. 아니, 새아버지니 생물학적으로야 근친상간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 정도면 얼마든지 근친상간이었다. 그녀는 검색창에 알비노 근친상간이라고 쳤다. 곧 관련 기사들이 떴다.

알비노, 근친상간에 의해 출생하는 경우 많아.’

그녀는 인쇄 매수를 20으로 지정하고 인쇄 버튼을 눌렀다. 안빈에게 머리 쓰는 것 대신 씨름이나 하라고 했다고? 되바라진 새끼 같으니. 주둥이 함부로 놀린 값은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그녀는 스무 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접어 안빈의 알림장 맨 앞에 끼워 넣었다. (114~115페이지)


고통의 시간이 세민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세민 엄마 박혜정 역시 고통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픈 언니만 돌보는 엄마는 새아버지 방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어린 그녀에게 구원을 바라던 날들이었지만,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절망의 세월을 꾸역꾸역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건 세민뿐이다. 남들과 다른 외모로 자칫 기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들은 너무 똑똑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그 자신만만하고 기죽지 않은 삶이 아들을 힘들게 했을까?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더 잔인했다. 말을 거를 줄 모르고, 그게 어느 정도의 상처를 만드는 줄 몰랐다. 그렇게 그어대고 할퀸 상처가 얼마나 깊게 파이는지, 소설의 결말을 보고 궁금했다. 그때쯤 이 아이들은 그게 얼마만큼의 상처가 되고 고통이었는지 알게 되긴 했을까.


세민과 태권도장 권 사범과의 관계 역시 평범하지 않다. 항상 시선 받고 차별당하며 살아온 세민에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대했던 권 사범은 따뜻했다. 세민의 상처를 볼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권 사범은 세민에게 폭력을 가한 아이들을 죽였다. 아무리 아끼는 아이를 괴롭히는 대상이라고 해도 그 아이들을 죽이는 게 쉬운 일이었던가. 그 배경에는 권 사범이 세민을 보호하고 다치지 않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권 사범 역시 차별받았던 약자였다. 권 사범의 오른손가락은 여섯 개였다. 육손이. 항상 안쪽으로 집어 넣느라 손가락 하나는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민은 같은 고통을 받는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 사범에게는 세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 권 사범이 소속된 종교 단체, 흔히 이단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바라던 구원의 순간에 꼭 필요한 존재가 세민이었다. 어쩌면 세민과 이 종교 사이에는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에서 밀어내는 사람들의 폭력에 고통받는다는 것.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 ‘고되고 고되고 고된 길을 통해서만 천국에 이르게 하는’(266페이지) 이념을 믿고 기다려야 하나.


너무 평범한 보통의 일상을 보다가 그 안에 자리한 폭력을 보는 순간 이야기는 비극으로 가득했다. 듣다 보면 폭력의 가해자들 역시 약한 자들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그 약함 때문에 공격당하기 전에 행하는 폭력이 오히려 무기가 되었다. 잔인해졌다. 안빈 엄마, 세민의 반 아이들, 권 사범, 세민을 찾아온 종교인들, 박혜정의 엄마, 모두 자기의 약함을 감추려고 모른 척 외면했던, 가해인 줄 알면서 했던 일들이 또 다른 폭력이 되고 고통이 되었다. 자기 고통을 몇 겹으로 감싸느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정신적 폭력,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내 것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강해졌을까? 그들의 고통이, 불안이, 약점이 사라졌을까?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대. (209페이지)”


소설은 친절하지 않았다. 흔히 보던 결말을 마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현실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구원을 기다리지만, 그 구원은 선뜻 찾아와주지 않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너무 멀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사이에 슬픔과 혐오는 지독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무의식적으로 가담한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고 있었다.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고 자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극한의 추위는, 때로는 개 다섯 마리로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어 더 비극적으로 추위를 이기게 한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더 잔인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를 감싸 안아줄 진정한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 이야기였다.



#개다섯마리의밤 #채영신 #은행나무 #소설 #한국소설 #문학 #한국문학

#황산벌청년문학상 #책리뷰 ##책추천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1-08-0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만 보면 안 될 텐데, 소설을 보고는 이렇게 말해도 똑같지 않아도 자신이 안 좋은 처지에 놓이면 자신밖에 못 보기도 하는군요 그럴 때는 거기에만 빠지지 않으려고 해야 할 듯합니다 사람은 다 힘들게 살 텐데, 자신만 힘들다고 해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겠지요 그게 다시 자신한테 돌아오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09 13:24   좋아요 1 | URL
이 소설의 분위기가 참 묘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 밀어내기 바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우리가 소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들의 악의 없는 공격에, 진짜 악의는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쉽지 않았지만, 생각할 게 많아졌습니다.

scott 2021-09-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주말 가족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9-12 2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이었는데, 잘 지내셨나요? ^^

서니데이 2021-09-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9-12 20: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희선 2021-09-1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 님 축하합니다 사람은 다 힘들게 사는 듯해요 자기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희선

구단씨 2021-09-12 20:03   좋아요 0 | URL
그게, 많이 어렵죠? ^^
그래도 나아지겠지, 애써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게 되는 듯해요.
새로운 한 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초딩 2021-09-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9-12 2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이 우리를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가. 아니,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사랑해야 하는가. 아니,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랑하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고 묻는 게 맞겠다. 일부러 사랑의 자세를 정하지 않아도 저절로 되어가는 이런 사람. 내가 사랑하는 상대에게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건 너무 당연했다. 내가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가 된다는 것. 누군가에게 좋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게 사랑의 긍정 효과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해야 하고,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진심으로, 온 마음을 다해.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그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바라 마지않던 힘찬 충동이었다. (179페이지)


이 아이들도 그런 사랑을 했다. 비록 자신들이 바라는 대로 사랑이 흘러가지 않았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그게 최선이라고 믿고 행동했다. 오늘을 행복한 기억으로, 웃게 해주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 각자에게 간절한 날들이었기에,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사랑을 믿었다. 그것뿐이었다.


히노 마오리는 사고로 선행성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다. 오늘의 일을 내일 기억하지 못한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이 리셋된다. 이런 병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히노의 기억 장애는 불행이었다. 그렇다고 오늘을 살 수 없지는 않은가. 그녀만의 방식대로 오늘을 기록하고 내일을 살아간다. 휴대전화와 수첩, 메모지에 오늘의 모든 일을 기록한다. 다음 날 아침 자고 일어나면 전날의 기록으로 기억을 복구한다. 매일 그녀의 일과다. 그러다 우연히 사귀게 된 가미야 도루와의 시간을 걱정한다. 그래서 조건부 연애를 시작했다.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에게 말 걸지 않고, 연락은 짧게 하고, 정말 좋아하지는 말라는 조건으로 히노는 도루가 내민 손을 잡는다.


처음 히노의 연애 조건을 들었을 때는 뭐가 이렇게 수상한가 싶었다. 그녀가 감추는 게 무엇이기에 이렇게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조건으로 상대를 수용하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었다. 알고 나니 그녀 나름의 생존 방식이었고, 상대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 기억 상실이 그녀에게 끼칠 위험을 막기 위함이었다. 장난처럼, 다른 친구를 구하려고 히노에게 연애 제안을 한 도루에게도 이 연애가 순수한 시작은 아니었다. 학교폭력을 당하는 친구를 구하려고 나선 게 히노에게 연애를 하자고 말하는 거였다. 히노는 당황했겠지만, 바로 이 상황을 설명하면 되니까 일단 부딪혔다. 그런데 의외의 결과가 두 사람 앞에 놓인 거다. 히노는 도루의 연애 제안을 받아들였고, 도루는 장난과 임무였다는 처음 의도를 바로 털어놓지 못했다. 이 연애 어디로 갈까?


이렇게 시작한 연애였으니 두 사람의 연애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겠지. 거짓(?)으로 시작된 연애가 온전한 적이 없었으니 이 위태로움도 곧 터지고야 말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이미 한참 나이를 먹은 내가 불신으로 사랑을 바라보는 걸 지적하는 것처럼, 너무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게 오늘을 사랑했다. 방과 후 만나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더 알기 위해 애썼다. 함께 벚꽃을 보고 같이 도서관에 가고 놀이공원을 걸었다. 뜨거운 여름날에 자전거를 탔다. 히노는 도루에 관한 걸 알아낼 때마다 기록했고, 도루는 히노의 웃음에 자꾸만 빠져들었다. 이제 이들의 연애 조건은 변경되어야 했다. 진짜 좋아해 버렸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조금씩 더 알게 되는 서로의 진짜 이야기들은 이 연애에 자양분이 된다. 상대를 더 깊게 알아간다는 건 연애의 기쁨이다. 사랑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각자의 불행과 상처에 자리한 것이 영역을 넓혀가기 전에, 행복하고 좋은 일을 더 많이 만들고 싶어졌다. 내일이면 지워질 오늘이 아니라, 내일 더 잘 지내고 싶은 오늘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이거 아닌가? 간절하게 기다릴 내일이 있고, 그런 내일을 위해 오늘 더 충실하고 값지게 살아가는 일. 사랑의 의미는 그렇게 또 쌓여간다. 이런 사랑이 틀릴 리가 없다.


새롭고 즐거운 일상을 시작하자. 그게 바로 희망일 것이다.

안 그래, 히노?

계획이 있던 나는 평소라면 짓지 않을 표정으로 씩 웃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마음이 풍족해지는 일이라고 말하듯이. (128~129페이지)


누군가를 좋아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일을 본다는 건 그 자체로 설렌다. 게다가 이 아이들은 고등학생이다. 막연하게 누굴 좋아한다고 보이는 게 아니라, 그 상태의 감정이 어떻게 스며들고 흘러가는지 보여주는 소설이다. 히노는 히노대로 그녀가 기억을 잃고 복원하는 일을 반복함으로써 불안했던 것이 도루와의 연애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호기심에 시작했다. 도루 역시 아버지와 둘이 사는 가정환경에, 학생이자 살림꾼으로 지내는 날들의 빈틈을 히노와의 시간으로 채웠다. 엉뚱하게 시작된 만남이지만, 이 아이들은 그 연애를 완전하게 이끌고 있었다. 그건 진심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다. 시작이야 어땠든지, 함께하는 시간에 마음을 다한다는 건 사랑이 아니면 보여주지 못한다. 누가 뭐래도 지금 이 아이들이 하는 건, 사랑이다.


이 소설이 단순히 히노와 도루의 사랑만으로 채워졌다면 이 복잡한 감정을 쉽게 설명하지는 못할 듯하다. 두 사람 곁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했을 때 이 시간은 더 완벽해졌다. 히노의 기억 장애를 잘 아는 친구 와타야 이즈미는 도루의 접근에 히노를 걱정하면서도 두 사람의 진심을 알았을 때는 누구보다 응원했다. 어떻게 해야 이 두 사람이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도움을 주었다. 도루의 아버지는 아들의 연애를 응원했다. 그리고 지금은 따로 지내지만, 누구보다 도루의 삶을 염려하는 누나 역시 이 관계의 든든한 조력자다. 각자의 인생도 챙겨야 했기에 모든 시간을 같이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인생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히노와 도루에게는 든든한 힘이 된다. 성장한다는 것, 꿈을 찾아가는 게 무엇인지 보여주고 증명한 이들이었으니까.


나는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면서 보여주는 연애의 풋풋함에 설렜는데, 거기에 이 소설이 보여주는 성장의 힘에 더 눈길이 갔다. 하루하루의 기록에 몰입하고 내일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는 히노에게 미래는 없어 보였다. 당연하다. 내일이면 기억에 없을 오늘을 사는 것도 벅찬 일인데, 감히 오늘보다 먼 시간을 계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 히노에게 도루는 제안한다. 히노가 잘하고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기를. 어차피 내일이면 오늘 그린 것도 모를 텐데 뭐하러 시간 낭비를 하는가 싶겠지만, 인간의 기억이란 상실되면서도 몸이 기억하는 것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히노가 하루하루 쌓아갔던, 그리는 시간이 나중에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지 알게 되었을 때.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눈물이 날 뻔했다. 누군가 나의 불가능을, 좌절을, 불행을 걱정하고 나아지게 하고 있다는 걸 알면 얼마나 힘이 될까 싶었다. 나 혼자 일어서지 못하고 자꾸 그 자리에 서성거리면서, 불안을 느끼는 것보다 안주하는 것을 택할 때, 의견을 내주고 같이 고민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거. 정말 행복하지 않아?


숫자가 딱 떨어지는 계산이 아니라, 오직 서로를 봐주는 이런 이야기가 오랜만에 가슴을 설레게 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나아가게 하고, 마음껏 내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관계가 있다는 게 행복할 것 같다. 매일 내 머릿속 기억이 지워져서 슬퍼도, 가슴이 아는 일이 되어버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해도 같이 사랑을 했던 한 사람이 기억하면 되는 일. 우리는 같이 사랑했고, 같은 시간을 통과했으며,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거면 됐다. 정말 소중하고 간절한 것이 새겨진 기분이다. 이쯤 되면 소설의 결말도 궁금할 테다. 이런 사랑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을지 확인해야 했다. 마지막의 반전을 확인하고 나면 또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글쎄, 이게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사랑하는 시간은 행복했으며, 하루하루 쌓여가는 모든 시간에 그들은 성장했으니, 머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가슴에 남아버린 것을 소중히 아는 이가 되었는데 말이다.


어떤 슬픔도 사람은 언젠가 잊어버린다. 상처는 언제까지고 아픈 것은 아니다. (362페이지)


모두 언젠가는 잃을 것들이다. 없어질 것들이다.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고 빛바래지 않는다. (374페이지)


담백하고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묘사되는 풍경이 너무 예뻐서 봄날의 푸릇한 장면을 상상하며 읽기도 했다. 얼핏 어떤 장면에서는 두근거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고민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어쩌면 우리가 이미 오래전에 지나왔을 순간을 그리워하기도 했다. 별일 없는 오늘에 안도하며 기대 없는 내일을 다시 바라보기도 하는. 도루의 다정함에 사랑을 다시 보고 싶고, 히노의 노력에 인생의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잔잔했지만 그 어느 날보다 뜨거웠던 오늘, 어느 여름밤을 식히는 이야기로 남을 듯하다.



#오늘밤세계에서이사랑이사라진다해도 #이치조미사키 #모모출판

#소설 #문학 #성장 #사랑 #청춘소설 #기억장애 ##책추천

#첫사랑 #선행성기억상실증 #계약연애 #벚꽃 #불꽃놀이 #고백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1-07-30 0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하루만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사람 처음 본 건 아니지만... 다른 데서도 하루만 기억하는 사람 봤어요 그런데도 아주 다 잊은 건 아니기도 하더군요 혼자가 아니고 곁에 누군가 있어서 괜찮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그렇게 좋게만 흘러가지 않는 듯하네요 그것보다 두 사람이 그리고 둘레 사람과 지내는 이야기를 보는 게 더 낫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03 00:50   좋아요 1 | URL
예전에 봤던 영화 메멘토가 생각나기도 하네요.
이런 상황에서 혼자였다면 견딜 수 없는 날들 아닐까요?
이 소설 읽고 그런 생각했어요. 님 말씀처럼, 곁에 있는 누군가가 이 불행도, 위기도 잘 건너갈 수 있도록 돕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