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시 - 내 것이 아닌 아이
애슐리 오드레인 지음, 박현주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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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집을 몰래 지켜보는 여자. 그 여자의 시선에 딸이 들어온다. 창문 너머 집안에서 바깥을 쳐다보며, 엄마를 발견한 딸은 여전히 표정이 없다. 반갑지 않은가? 엄마는 밖에서 그 모습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다. 집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남편은 다른 여자와 함께 있고, 그 안에서 딸은 다른 아이를 살갑게 대하고 있다. 마치 엄마가 이걸 봤으면 하는 듯이. 너무 다정한 남매의 모습을 연출하며 눈으로 말한다. ‘내가 얼마나 동생을 사랑하고 아끼는지, 이제 알겠어?’


당신은 잘하고 있어.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어둠 속에서 이렇게 속삭여주곤 했어. 당신은 우리 둘 머리를 토닥여주기도 했지. 당신의 여자들. 당신의 세계. 당신이 방을 나갈 때면 나는 울곤 했어. 나는 당신과 아이, 둘이 돌고 있는 이 축에 끼고 싶지 않았거든. 나는 당신들 누구에게도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같이하는 삶이 막 시작한 거야.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걸까? 나는 어째서 그 애를 원했을까? 어째서 나는 나를 낳은 엄마와 다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68페이지)


전남편 팍스의 집을 바라보던 여자는 블라이스. 한때 작가 지망생이었던 그녀는 팍스와 결혼했다. 이 남자와 함께라면 완벽한 가족을 이룰 수 있을 거로 믿었다. 그녀의 재능은 자라고 있었고, 팍스 역시 나무랄 것 없는 남자였다. 아이도 생겼다. 이제 이 가족은 더 완벽해질 거였다. 사실 그녀는 아이를 낳는 일에 두려움이 많았다. 자기 성장을 돌이켜보면 아이를 낳는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옆에 있는 남편과 딸이 이제 그녀의 행복에 더 크게 만들어 줄 거로 생각하고 그 두려움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녀의 엄마와는 다르게 좋은 엄마가 되겠다며 노력했다. 하지만 육아는 그녀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고, 너무 힘들었다. 아이는 엄마와 가까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엄마를 밀어냈다. 그녀는 이 상황이 이상했지만, 누구도 정확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은 그녀가 육아 스트레스를 겪는 거라며 이 상황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자기 탓으로 여겼다. 엄마의 엄마, 엄마에게 물려받은 결핍된 모성이 자기에게 있는 건 아닌지, 그래서 딸 바이올렛이 자기를 자꾸 밀어내는 것인지 불안하기만 했다.


읽는 내내 불안했다. 바이올렛이 보여주는 게 진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어서 계속 지켜봤다. 아이가 보이는 행동이라고 하기에는, 엄마와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적도 없지 않은가. 대개 우리가 거부의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는 그 전의 사건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니까 미워해야지 싶은, 다가가지 않을 거라는 마음의 닫힘. 블라이스와 바이올렛 사이의 감정이 닫히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가 아이를 미워하는 마음을 보였던가? 아닌 것 같은데, 그저 육아가 버겁고 힘들어서 지친 모습이었을 뿐이다. 나는 블라이스가 아니라 바이올렛을 더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드러나는 블라이스의 성장 과정에서 생긴 불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블라이스의 엄마 세실리아, 세실리아의 엄마 에타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타는 의사가 되려는 루이스와 결혼하지만, 에타의 아버지는 루이스에게 의사가 아닌 농사를 요구한다. 루이스는 위험한 농사일을 하다가 사고로 죽고, 에타는 딸 세실리아를 낳는다. 에타가 딸을 온전히 키우지 못할 상태에 이르자 세실리아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로 자란다. 무관심과 학대 속에서 자란 세실리아는 임신으로 결혼하게 된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세실리아는 아이 때문에 많은 것을 포기했고, 결혼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에게 애정을 쏟을 수도 없었다. 아이를 볼 때마다 죽은 엄마 에타가 생각나곤 했다. 그렇게 세실리아는 블라이스를 키웠고, 블라이스 역시 그녀의 엄마, 엄마의 엄마가 그랬듯이 온전하게 사랑받으며 자라나지 못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불안하고 불행한 일이라고 여겼을까. 아이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여성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질 자격이 있지. 모성도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 좋은 엄마가 있기를, 그런 사람과 결혼하기를,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20페이지)


유전적으로 모성애가 결핍된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블라이스의 불안은 거기에서 시작되었다. 엄마와 외할머니가 그랬듯, 자기에게도 모성애가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바이올렛에게 엄마의 당연한 자세를 보여주지 못했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아이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아이를 돌보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녀 안의 갈등을 꾹꾹 내리누르며 바이올렛을 사랑하고자 애썼다. 왜냐고? 그녀는 엄마니까, 바이올렛은 그녀의 딸이니까. 그녀가 노력할 때마다 아이는 더 심각하게 반대의 기질을 보였다. 엄마를 자꾸 밀어내기만 하고, 섬뜩하리만치 잔인한 면모를 보였다. 결국, 끔찍한 죽음을 불러오고야 만다. 그런데도 그 고통을 다 말하지 못하고 외면받아야만 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점점 깊어진다. 제정신이 아니라는, 나쁜 엄마가 되어버린 블라이스는 이제 말하지 못한 것들을 써 내려간다. 당연하고 강요된 모성에 대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엄마의 태도에 대해, 모성과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에 대해.


아무도 보지 못하고 누구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 일을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겪는 여성의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실제로 이 책의 제목 푸시(Push)’는 몇 가지 중첩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 출산의 행위, 유아차를 밀어 아이를 죽게 만든 사건, 그리고 문장을 읽을 때마다 더 적나라하게 와닿는 엄마와 딸 사이의 밀어내는 감정, 점점 고조되는 모성애의 강요를 이 한 단어에 다 담았다. 아이를 낳았으니 키우는 건 당연히 부모의 몫이다. 그런데도 엄마의 육아를 온전히 이해해주고 그 고됨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블라이스의 남편 팍스도 좋은 남편이었지만, 아내의 육아를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바뀐 것들에 전혀 불편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이 상황이 어렵고 힘든 사람은 블라이스뿐이다. 하고 싶은 글쓰기는 자꾸 멀어지고, 자기에게 가까이 오지 않는 아이는 버겁기만 하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더는 황홀하고 다정하지 않았고, 악의 없는 시어머니의 한 마디는 폭력 같았다. 도대체 좋은 길을 찾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지.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이 상황을 견디는 것만이 남은 길이었다. 모성이란 단어가 어디서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부터 찾고 싶어졌다.


"알지, 우리 자신에게는 스스로 바꿀 수 없는 점이 많이 있어. 그냥 그렇게 태어난 거야. 하지만 가끔 어떤 부분은 본 것에 따라 형성이 되기도 해. 다른 사람에게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에 따라. 어떤 느낌을 받게 되었는지에 따라." (387페이지)


한 여성의 삶이, 어느 순간 아이가 살아 있도록 하는 일에만 몰두하게 되는 과정은 끔찍했다. 내내 불안이 깔려있었고, 장면들은 불편했다. 이상하게도 이 가족의 관계에서 불행한 사람은 한 사람뿐일까. 그 불행이 엄마를 침범할 때마다 점점 더 불안은 쌓여간다. 내가 부족한 엄마여서, 유전력으로 모자란 모성 때문에 아이를 사랑하지 못한다고 여기는 심리적 압박감이 굉장했다. 스스로 괴물이라고 여기기까지 하다가 급기야는 자기 딸이 자기와 같은 괴물이 되어가지는 않을까 걱정하기에 이른다. 어쩌다가 그녀는 이 상황에 이르게 된 걸까. 당연하지 않은 모성이 당연시되면서 만들어낸 악몽은 아니었을까. 소설의 결말을 보면서 더 충격적이었던 건, 그녀에게 강요된 자세가 가린 눈을 이제야 마주했다는 늦은 후회였다. 그녀의 부족한 모성에 원인을 돌리던 사람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그들은 이 위험을 또 어떻게 풀어갈지 궁금하다. 그 어떤 감정도 자세도, 당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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