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까칠한 백수 할머니 - 마흔 백수 손자의 97살 할머니 관찰 보고서
이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흔을 바라보는 손자는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를 피 여사로 부르며 돌본다. 이 돌봄이 처음부터 기꺼이 시작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고, 저자 역시 코로나 상황으로 시간이 생긴 그때. 저자는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할머니를 시청하며 그 기록을 남긴다. 마냥 평범하기만 했다면 이야기가 되지 않았으리라. 거동이 불편하고, 몇 번의 병원 신세와 수술을 거쳐, 이제는 휠체어에 의지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노인의 일상이 요즘 세상에 그저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조합, 백 세를 바라보는 외할머니, 일흔을 바라보는 딸 박 여사’, 마흔을 바라보는 미혼의 외손주가 한 집에서 부대끼는 일이 흔하지는 않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어쩌면 이 조합, 이런 상황은 우리에게 흔한 일상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 기록을 읽으면서 내 가슴이 조금 이상해졌다. 뭐랄까, 내가 경험했던, 지금도 겪고 있는, 어느 날 더 힘들게 마주할 순간을 자꾸만 떠올리고 있었다.


저자는 지난 2년 동안 어머니 박 여사와 함께 외할머니를 지켜봤다. 그냥 지켜만 본 게 아니라, 피 여사의 일상을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먹이고 씻기고, 외출에 동행했다. 말로 하고 보니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경험해본 사람은 알 테다.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움직일 수 있는 환자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나마 남자의 힘이어서 다행인 걸까. 육체적인 힘으로 도움을 준 것은 물론이고 저자는 피 여사의 옆에서 오늘의 일상과 지나온 세월을 들으면서 그녀의 건강을 돕는다. 돕는다는 표현이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나는 저자가 피 여사의 몸 상태 유지에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육체는 물론이고, 그 육체를 유지하기 위한 정신까지 말이다.


어머니 박 여사의 일 때문에 어린 저자를 돌봐주던 피 여사였기에, 저자에게 피 여사는 단순히 외할머니가 아니다. 그런데도 무심히 지내던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피 여사의 삶이 궁금해졌다. 가난한 살림이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 시집가고,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겪은 피 여사다. 한국 근현대사의 시간을 그대로 몸으로 겪은 존재다. 시대가 그랬고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다.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스무 살에 결혼했다. 책임감 없는 남편 때문에 고생은 당연했고, 그마저도 남편은 한국전쟁 때 죽었다. 아들 둘을 데리고 재혼했지만, 두 번째 남편 역시 제대로 된 인간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더 낳고도 피여사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행복은커녕 오늘을 견디는 삶에 급급했다. 피 여사의 인생에 드리운 고단함이 세월이 흘렀다고 변할 리 없다. 고생하고, 힘들고, 외로움과 불행에 찌든 세월이었다.


피 여사는 하루하루를 견디듯 보냈다. 피 여사의 삶에선 딱히 즐거운 일이 없었다. 고통과 고독과 권태가 날마다 습격하듯 찾아왔다. 나이가 든다고 미래에 대한 염려가 수그러드는 것은 아니었다. 노인이 된다는 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 없이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일이었다. (65페이지)


우리는 모두 늙는다. 우리는 모두 그들처럼 된다. 노인이 되면 젊어서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고통이 들이닥치는데, 이 고통은 전 세계 공통이다. 외로움, 생계 곤란, 건강 악화, 배우자와의 사별, 자식 문제, 시대 변화 부적응 등등.

피 여사는 이 모든 걸 겪으면서 노후를 맞았다. (17페이지)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고, 그 시절의 모든 삶을 다 똑같이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각자의 마음속 삶의 방향은 달랐을 것이다. 행복을 꿈꾸며, 시대의 불운을 비껴가고 이겨내고자 애썼겠지. 그토록 노력하고 버티며 사는 이유는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들과 지금과는 다른 삶을 만들고 싶어서. ‘행복이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고서. 그런 바람은 오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줘야 하는 인생으로 변했다. 그걸 견디는 마음이 뭘지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 병원 생활을 했던, 지금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의 우울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무릎 연골 시술을 받고 엄마는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퇴원하고서도 혼자서 움직이기를 힘들어했고, 나는 혹시나 엄마가 몇 걸음 걷다가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옆에서 돌봤다. 식사를 챙기고, 옆에서 계속 대화 상대를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우울해했다. 어느 날에는 밤에 소리 내어 울기도 했다. 어느새 자기 몸은 이렇게 늙어버렸고, 몸이 제 기능을 못 해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고, 노쇠한 몸이라도 그나마 잘 돌아다녔는데 이제는 하고 싶은 거 가고 싶은 곳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고. 엄마는 잘 걷지 못해 집 밖으로 나가기를 무서워했다. 지금은 그때보다 좋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순간순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몸과 마음이 다르게 움직이는 그대로를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듯했다. 한때 집안의 가장으로 모든 것을 책임지며 살아왔던 엄마의 삶이, 몸이 이제는 혼자 견딜 수 없게 되었다는 게 서글펐다. 엄마도 나도.


피여사의 인생 역시 다르지 않았다. 정정한 몸으로 자식과 손자를 돌봤던 그녀의 현재는 혼자서는 지낼 수 없다는 거였다. 한쪽 눈은 감겼고, 화장실도 혼자 가기 힘들게 되었다. 이는 거의 씹지 못할 상태였고, 음식도 잘 넘기지 못한다. 위가 망가져서 소화도 어려웠다. 혈액순환도 잘 안 되어 다리에 쥐가 나서 아팠고, 잘 움직이지 못하니 배변 활동이 안 좋았다. 온몸은 순환하듯 아팠다. 다리가, 팔이, 무릎이, 호흡이, 피부가, 심장이... 잠시 후 숨이 멈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 그런 그녀가 꿋꿋이 생명을 이어가며 다른 이의 죽음을 지켜보는 시간이 거듭되자 이제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이 아프기 시작한다. 형제자매가 한 명씩 죽고, 자식이 죽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어떤 것일까. 최근에 한 달에 한 번씩 장례식을 다녀온 내가 느끼기에도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듣는 일은 설명할 수 없이 가득한 슬픔과 고통이었다. 내 가족이 죽고, 언젠가 내가 맞이할 죽음을 보는 것 같았다. 그 언젠가의 모습을 자꾸만 떠올리게 된다. 저자와 피 여사가 지켜본 죽음의 모습도 다양했다. 가까운 이들, 가족과 친척이었지만 그 마지막은 편하지 않았다. 가족의 배웅조차 받지 못한 죽음도 있었으니, 그 죽음을 바라보는 피 여사의 마음 역시 편하지 않았으리라.


백 세를 바라보는 노인의 지난한 삶을 듣는 일은 힘들었다. 살아온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서, 오늘의 일상을 보는 일이 괴로워서, 이 노인의 마지막이 어떨지 걱정하느라. 무엇보다 새벽 6시부터 시작되는 손자의 병간호가 육체적인 피로를 넘어 정신적인 피폐까지 완성하는 과정을 보는 게 괴로웠다. 나만 보고 생각하며 살아도 힘든 세상인데,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을 돌보며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버거웠다. 자꾸만 나의 경험과 비춰 생각하다가도, 언젠가 내가 더 겪을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 될 것을 알기에 겁부터 나지만, 또 당연하게 감당하게 될 것도 알아서 마음이 혼란스러웠다. 누구도 고통 없이 사는 사람 없을 테고, 누구도 자기 죽음의 모습을 다 알지 못할 것이기에, 모른 채로 그렇게 또 살아가야 하겠지만, 그래서 겁나는 것 또한 당연했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힘든 건 사실이고, 그렇게 또 견디는 게 자연스러운 인간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타인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건 결국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었다. 피 여사의 외롭고 괴로운 시절을 듣다 보면 저절로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피 여사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살아온 여정을 되돌아봤다.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사정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홀로 견뎌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외롭다. (181페이지)


한 편의 소설로 읽히는 게 신기한 책이었다. 한 사람을 돌보는 것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당연한 예상처럼 그 과정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결과를 궁금해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피 여사의 현재가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의 흐름으로 보면, 자꾸만 들려오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생각하면, 피 여사의 몸 상태가 변화할 때마다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는 짙어졌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 피 여사가 저자의 옆에 없을 거로 여겼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흐름과 결말을 당연하게 기다리고 있던 걸까 싶지만, 오히려 마지막에 확인한 피여사의 안부에 마음이 놓여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지. 그래야지.


참 많이 애썼다. 고생했다. 힘든 시간 속에서 행복도 알았으리라 생각한다. 이 상황에 적응하느라 고된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 후에 맞이한 또 다른 마음이 이 관계에 탄탄하게 쌓여가고 있을 것 같다. 저자는 긴 시간 피 여사를 지켜보면서, 타인의 삶을 담담하게 이해하고, 때로는 귀찮고 버거웠을 존재를 더 사랑하고 애틋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일, 삶을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작가가 된 저자가 배웠을 행복이 어떤 것일지 그대로 느껴진다. 힘들었지만 더 돈독하게 된 관계, 마냥 어렵기만 했는데 그 안에서 찾아낸 행복의 조각들이 이 가족의 공간에 흩어져 있었다. 이제 그 조각들 하나하나 더 찾아가면 꿰어맞추는 재미를 찾고 있을 것 같다.


피 여사가 밥 잘 먹고 침대에 누웠을 때 행복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뜻밖에 피 여사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박 여사와 내가 옆에서 챙기는 게 고마워서 한 말이겠으나, 피 여사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답변이었다.

그렇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그 안에 행복이 있다. (294페이지)


덧붙임)

제목에 쓰인 백수는 놀고먹는 사람을 뜻하는 백수白手가 아니라 아흔아홉 살을 뜻하는 백수白壽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나의까칠한백수할머니 #이인 #에세이 #한겨레출판 ##책추천

#간병 #돌봄 #노년 #외로움 #행복



** 한겨레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1-08-20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이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예전에도 있었는데 잘 몰랐던 건지... 몇 해 동안은 죽음을 말하는 책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도 아직 더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다고 해서 그런 일이 찾아오면 제대로 뭘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아파도 살아 있는 게 좋을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나름대로 기쁨을 찾으면 좋을 텐데 싶어요


희선

구단씨 2021-08-31 19:52   좋아요 0 | URL
점점 이런 경험이 많아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고령화 시대에 살고 있고, 혼자인 삶이 많아지니...
어쩌면 각자 혼자인 3대가 한집에서 사는 이런 일을 자주 보게 될지도.
외로워 보이면서도 할머니와 손자의 동거, 투닥거림, 돌봄이 애틋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