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다섯 마리의 밤 - 제7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채영신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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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가까이 있었다. 세민과 세민 엄마가 겪은 고통의 순간은 특별한 장소에서 특별한 사람들에게 생기는 일이 아니었다. 우리 일상 곳곳에서 마주하는 당연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렇게 익숙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보이는 게 무서웠다. 알게 모르게, 사실은 알고 있으면서 행하는 혐오와 폭력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준다. 개 다섯 마리로도 따뜻해지지 않을 고통을 감싸 안은 사람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소설은 동네 아파트 단지 근처에 방치된 폐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시작한다. 초등학생 두 명이 살해되고 그 범인은 동네 태권도장의 사범이었다. 아이들이 잘 따랐는데, 더없이 선한 인간으로 보였던 그가 살인자라고 하니 믿을 수가 없던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리고 수상한 의심은 또 다른 폭력이 되어 세민을 힘들게 했다. 죽은 아이들이 세민을 괴롭혔던 가해자였던 것. 만약 사범이 잡히지 않았다면 또 다른 아이가 죽었겠지? 그만큼 세민을 괴롭힌 아이들은 많았다. 세민은 엄마에게 이 사건과 관련하여 말하고 싶었지만, 엄마는 거절한다. 세민 엄마는 두렵다. 살인자인 사범과 아들 세민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도 묻고 싶지 않다. 알고 싶지 않다.


흰 눈썹, 흰 머리칼, 빨간 눈동자. 세민은 백색증을 앓는 열두 살 소년이다. 이런 외모가 왕따를 당하는 이유는 아니다. 누군가는 이런 외모와 편모 가정 환경이 주눅들만 한데, 세민은 당당하고, 똑똑했다. 이 동네로 전학을 온 날부터 세민은 1등이다. 이 때문에 만년 2등으로 밀려난 안빈은 고통받는다. 안빈뿐만 아니라 안빈 엄마 역시 세민이 죽이고 싶도록 밉다. 내 아들의 1등은 날아갔고, 세민을 신경 쓰느라 안빈은 정신질환까지 앓는다. 엄마니까 당연하게 드는 감정이라고 말하기에는 안빈 엄마의 집착과 혐오는 심했다. 급기야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해가면서 세민과 세민 엄마의 인생을 난도질한다.


이번엔 더 센 것이 필요했다. 박세민을 한 방에 무너뜨릴 수 있을 만한 것. 퍼뜩 근친상간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그 낡은 공책에 적혀 있던 기록이 정말 일기가 맞다면 박세민은 근친상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였다. 아니, 새아버지니 생물학적으로야 근친상간이 아니지만 사회적으로는 그 정도면 얼마든지 근친상간이었다. 그녀는 검색창에 알비노 근친상간이라고 쳤다. 곧 관련 기사들이 떴다.

알비노, 근친상간에 의해 출생하는 경우 많아.’

그녀는 인쇄 매수를 20으로 지정하고 인쇄 버튼을 눌렀다. 안빈에게 머리 쓰는 것 대신 씨름이나 하라고 했다고? 되바라진 새끼 같으니. 주둥이 함부로 놀린 값은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그녀는 스무 장의 종이를 한꺼번에 접어 안빈의 알림장 맨 앞에 끼워 넣었다. (114~115페이지)


고통의 시간이 세민에게만 있었던 건 아니다. 세민 엄마 박혜정 역시 고통의 세월을 살아왔다. 아픈 언니만 돌보는 엄마는 새아버지 방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어린 그녀에게 구원을 바라던 날들이었지만, 구원은 찾아오지 않았다. 절망의 세월을 꾸역꾸역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건 세민뿐이다. 남들과 다른 외모로 자칫 기죽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들은 너무 똑똑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게 화근이었을까. 그 자신만만하고 기죽지 않은 삶이 아들을 힘들게 했을까? 아이들은 때로 어른보다 더 잔인했다. 말을 거를 줄 모르고, 그게 어느 정도의 상처를 만드는 줄 몰랐다. 그렇게 그어대고 할퀸 상처가 얼마나 깊게 파이는지, 소설의 결말을 보고 궁금했다. 그때쯤 이 아이들은 그게 얼마만큼의 상처가 되고 고통이었는지 알게 되긴 했을까.


세민과 태권도장 권 사범과의 관계 역시 평범하지 않다. 항상 시선 받고 차별당하며 살아온 세민에게 그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대했던 권 사범은 따뜻했다. 세민의 상처를 볼 줄 알았다. 그래서일까, 권 사범은 세민에게 폭력을 가한 아이들을 죽였다. 아무리 아끼는 아이를 괴롭히는 대상이라고 해도 그 아이들을 죽이는 게 쉬운 일이었던가. 그 배경에는 권 사범이 세민을 보호하고 다치지 않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 권 사범 역시 차별받았던 약자였다. 권 사범의 오른손가락은 여섯 개였다. 육손이. 항상 안쪽으로 집어 넣느라 손가락 하나는 안쪽으로 굽어 있었다. 그가 바라보는 세민은 같은 고통을 받는 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권 사범에게는 세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있었다. 권 사범이 소속된 종교 단체, 흔히 이단이라고 불리던 이들이 바라던 구원의 순간에 꼭 필요한 존재가 세민이었다. 어쩌면 세민과 이 종교 사이에는 주변으로 밀려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공동체에서 밀어내는 사람들의 폭력에 고통받는다는 것.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은 이제 무엇을 해야만 하는 걸까. ‘고되고 고되고 고된 길을 통해서만 천국에 이르게 하는’(266페이지) 이념을 믿고 기다려야 하나.


너무 평범한 보통의 일상을 보다가 그 안에 자리한 폭력을 보는 순간 이야기는 비극으로 가득했다. 듣다 보면 폭력의 가해자들 역시 약한 자들이었다. 자신의 약함을 감추기 위해, 그 약함 때문에 공격당하기 전에 행하는 폭력이 오히려 무기가 되었다. 잔인해졌다. 안빈 엄마, 세민의 반 아이들, 권 사범, 세민을 찾아온 종교인들, 박혜정의 엄마, 모두 자기의 약함을 감추려고 모른 척 외면했던, 가해인 줄 알면서 했던 일들이 또 다른 폭력이 되고 고통이 되었다. 자기 고통을 몇 겹으로 감싸느라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졌다. 정신적 폭력,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내 것만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들은 강해졌을까? 그들의 고통이, 불안이, 약점이 사라졌을까?


아주아주 오래전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추운 밤에 개를 끌어안고 잤대. 조금 추운 날엔 한 마리, 좀 더 추우면 두 마리, 세 마리 ……. 엄청 추운 밤을 그 사람들은 개 다섯 마리의 밤이라고 불렀대. (209페이지)”


소설은 친절하지 않았다. 흔히 보던 결말을 마주할 수 없었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현실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구원을 기다리지만, 그 구원은 선뜻 찾아와주지 않았다.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너무 멀리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사이에 슬픔과 혐오는 지독한 일상이 되어버렸고, 무의식적으로 가담한 타인의 고통에 무뎌지고 있었다. 개 다섯 마리를 끌어안고 자야 체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극한의 추위는, 때로는 개 다섯 마리로도 견딜 수 없는 정도가 되어 더 비극적으로 추위를 이기게 한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더 잔인해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우리를 감싸 안아줄 진정한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지 묻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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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8-0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만 보면 안 될 텐데, 소설을 보고는 이렇게 말해도 똑같지 않아도 자신이 안 좋은 처지에 놓이면 자신밖에 못 보기도 하는군요 그럴 때는 거기에만 빠지지 않으려고 해야 할 듯합니다 사람은 다 힘들게 살 텐데, 자신만 힘들다고 해서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되겠지요 그게 다시 자신한테 돌아오기도 하겠습니다


희선

구단씨 2021-08-09 13:24   좋아요 1 | URL
이 소설의 분위기가 참 묘합니다.
나와 다른 타인, 밀어내기 바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우리가 소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대로 드러내는 아이들의 악의 없는 공격에, 진짜 악의는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랬어요.
쉽지 않았지만, 생각할 게 많아졌습니다.

scott 2021-09-10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님 이달의 당선 추카합니다
주말 가족 모두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 ^ㅅ^

구단씨 2021-09-12 20: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더운 주말이었는데, 잘 지내셨나요? ^^

서니데이 2021-09-10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9-12 20: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희선 2021-09-11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 님 축하합니다 사람은 다 힘들게 사는 듯해요 자기 안에 갇히지 않도록 해야 할 텐데...


희선

구단씨 2021-09-12 20:03   좋아요 0 | URL
그게, 많이 어렵죠? ^^
그래도 나아지겠지, 애써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게 되는 듯해요.
새로운 한 주 즐겁게 시작하세요.

초딩 2021-09-11 1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구단씨 2021-09-12 2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