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의 맛 - 어린이문학의 현실과 미래
이충일 지음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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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표정으로 나타난 아동문학평론집이라서, 동화와 동시가 제일 먼저 가 닿고 싶어하는 독자들과 늘 함께 있기에 어떤 동화, 어떤 동시를 조금 더 실감나게 읽어주어서, 아동문학을 넓은 시야로 보는 법을 생각해보게 해주어서 맛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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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톨이 왕 - 제7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동시집 75
임수현 지음, 남윤잎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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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다’와 ‘뜨다’라는 언어에 마음이 풀려 그의 시를 뜨개질하듯 읽는다. 한 코 한 코 얹어 장갑이 되고 목도리가 되는 것이나 언어가 모여 시가 되는 게 다르지 않다. 동시를 읽는다는 것은 까끌까끌한 마음을 풀고 보드라운 새 마음을 뜨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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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방귀 가루 괴짜 박사 프록토르 1
요 네스뵈 지음, 페르 뒤브비그 그림, 장미란 옮김 / 사계절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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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대소동이라고 할만하다. 어이가 없다가도 하도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바람에 그냥 마음을 맡겨버리니 의외로 반짝거리는 데가 많다. 섬세하고 시적인 문장들이 든든하게 받쳐주었기 때문. 혼날 사람은 혼나고 행복할 사람은 행복해지는 결말이 좋다. 누군가의 첫번째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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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잘 지내겠지? 창비아동문고 304
김기정 지음, 백햄 그림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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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모두 잘 지내겠지?의 등장 인물들은 전혀 의도치 않았고 불가해한 외부에 의해 삶이 중단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죽었으나 죽지 못한 이유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두 작품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죽었으나 죽지 못한 상태에 갇힌 그들의 시간을 매듭짓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생의 온전한 종결로서의 자연사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삶을 중단하는 것이므로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제 겨우 십여 해 남짓한 시간을 살았고 그 마지막 중단의 순간이 고통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이 죽음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 삶의 문제로 전이 될 수밖에 없다 김기정은 문학이란 미처 끝내지 못한 삶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결국 살고 있는 자들의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모두 잘 지내겠지?에서 산 사람의 개입 방식은 매우 적극적이다. 세월호, 5.18 등을 배경에 둔 작품들이라 자연스럽게 애도의 형식일 텐데 김기정의 방식이 눈에 띄는 건 산 사람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1980527일에 죽은 고등학생 장곤을 20년 동안이나 기억해 주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새로 이사 와 장곤의 기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무진이네 식구들의 자연스러운 기억의 계승(녹슨 총)은 얼마나 우리를 안도케 했나. 망자에게 국수를 만들어주는 엄마와 그 엄마를 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저 또한 엄마를 거들기로 함으로써 엄마의 일에 개입하기로 한 의 태도(길모퉁이 국숫집) 또한 죽음을 비로소 죽게 하는 애도의 방식으로서 몹시 인상적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함께 돌아 온 아이들을 연상케 하는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는 제주도의 할망 전설과 삼신할매 설화가 현재적 사건에 연통해 나온 결과로서 짧지만 품이 넓고 깊다.

일상의 애도 혹은 추모의 제의 행위는 서둘러 휘발되는 것에 비해 문학의 그것은 좀 더 오래 붙잡아 두기에 유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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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기한 친구 문지아이들
박수진 지음, 정문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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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박수진은 장애인을 약자로 보고 보호해()야 한다는 관습화된 통념을 흔들되 가능하면 무겁지 않고 진지하지 않게 말해보기로 한 듯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약자이며 보호와 관리, 시혜의 대상이라는 통념 속에 갇힌 장애인의 태도와 그들을 그런 통념 속에 가둔 비장애인의 시선 둘 다 교정해야 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지적 장애가 있는 민재와 윤지, 은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수호와 유리가 약간의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들이 자신의 장애를 약자의 기호로 내세우지 않고자 하는 것은 분명하다.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보인 이런 태도는 꽤 오래 전부터 교정되어 온 것이어서 비로소 생긴 사건은 아니다.

박수진이 좀 더 신중하게 교정하는 것은 비장애인의 태도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민재에게 지면 창피하다고 말하는 아이들의 말이 그간의 통념이었다면 낯선 곳에서 긴장한 찬이가 나도 모르게 민재 노래를 따라 했다. 낯선 곳에서 듣는 민재 노래 때문에 긴장이 풀(1등 앞선, 27)”리는 듯한 감정을 느끼는 지점은 적어도 찬이가 갖고 있던 통념을 흔들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찬이의 심경에서 나또한 탁 불이 켜지는 듯한 감정을 느꼈고 찬(비장애인)이가 민재(장애인) 때문에 피해를 봤던 것보다 민재가 훨씬 큰 강도의 피해를 입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게 더 중요하다. 아픈 사람이 참는 것보다 아프지 않은 사람이 참는 게 더 쉬운데도 말이다. 찬이가 느낀 저 감정의 경험은 더 많아져야 한다.

비슷한 지점인데 휠체어를 탄 수호에게 필요한 것은 동정이나 걱정(이 걱정은 비장애인이 겪는 불편으로 생기는 짜증 쪽에 더 가깝다)이 아니라 휠체어를 탄 수호가 지하철을 타고 내릴 시간을 기다려준다거나 떨어진 교통 카드를 주워 주는 꼬마의 아주 평범한 관심, 화장실 이용을 돕는 할아버지의 약간의 인정이면 충분하다. 이것은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가 아닌가.

또 다리가 자유롭지 않다는 유리의 장애를 지우고 대신 센 팔 힘에 주목한 정다정의 태도는 얼마나 당연한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건 장애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 어디까지인지는 알 수 없으나 꽤 많이 구부러져 있다는 것이다. 유쾌한 정다정과 부루퉁해 보이지만 결코 용기 없는 아이는 아니었던 유리의 태도 때문에 혼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억지로 반성하고 죄책감에 젖게 하는 게 아니라 사과하고 바로 잡을 기회가 된 것 같아 다행이다. 동생을 위한 정신지체인 누나 은지의 눈물겨운 칭찬 통장 소동도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는 걸 기억하자. 정다정과 유리가 보여 준 유쾌함은 다운증후를 앓고 있는 윤지를 좋아하는 정우와 그런 정우를 좋아하는 하경의 삼각관계로 이어진다. 대놓고 정우를 좋아하는 윤지나 그런 윤지가 재밌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정우 사이에 다운 증후라는 질병은 감기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정우가 감기 같은 것으로 본 것 같은 윤지의 질병을 마치 다운증후를 앓는 사람이 사랑받는다는 게 가능한가 의아하고 놀라워하는 하경의 반응은 익숙한 다수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하여 박수진이 다룬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도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장애인이 약자가 아니라 소수라는 것이다. 소수가 비정상이 아님은 당연하다. 정상성이 다수를 옳거나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라면 이것은 굉장히 허약한 논리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집을 통해 우리 사회가 비장애인인 다수를 중심으로 구축되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환기하는 일은 중요하다.

결국 우리가 그의 작품을 읽으며 취해야 하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시선과 태도를 교정하고 수정하는 일이다. 무언가를 바꾸는 일을 아픈 사람이 아니라 아프지 않은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우리 모두 언제나 아플 수 있는 연약한 몸들이라는 사실은 예정된 사실이다. 아프고 나서야 깨닫는 것은 늦고 이미 아픈 사람들이 온 몸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외눈박이를 자처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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