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잘 지내겠지? 창비아동문고 304
김기정 지음, 백햄 그림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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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모두 잘 지내겠지?의 등장 인물들은 전혀 의도치 않았고 불가해한 외부에 의해 삶이 중단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죽었으나 죽지 못한 이유가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두 작품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죽었으나 죽지 못한 상태에 갇힌 그들의 시간을 매듭짓는 것은 산 사람들의 몫이라는 점이다.

생의 온전한 종결로서의 자연사는 없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이란 삶을 중단하는 것이므로 끝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이 이제 겨우 십여 해 남짓한 시간을 살았고 그 마지막 중단의 순간이 고통으로 가득했다는 것을 아는 이상 이 죽음은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 삶의 문제로 전이 될 수밖에 없다 김기정은 문학이란 미처 끝내지 못한 삶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것은 결국 살고 있는 자들의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다.

모두 잘 지내겠지?에서 산 사람의 개입 방식은 매우 적극적이다. 세월호, 5.18 등을 배경에 둔 작품들이라 자연스럽게 애도의 형식일 텐데 김기정의 방식이 눈에 띄는 건 산 사람들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1980527일에 죽은 고등학생 장곤을 20년 동안이나 기억해 주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새로 이사 와 장곤의 기억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는 무진이네 식구들의 자연스러운 기억의 계승(녹슨 총)은 얼마나 우리를 안도케 했나. 망자에게 국수를 만들어주는 엄마와 그 엄마를 망상에 빠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저 또한 엄마를 거들기로 함으로써 엄마의 일에 개입하기로 한 의 태도(길모퉁이 국숫집) 또한 죽음을 비로소 죽게 하는 애도의 방식으로서 몹시 인상적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함께 돌아 온 아이들을 연상케 하는 게스트 하우스 아기씨는 제주도의 할망 전설과 삼신할매 설화가 현재적 사건에 연통해 나온 결과로서 짧지만 품이 넓고 깊다.

일상의 애도 혹은 추모의 제의 행위는 서둘러 휘발되는 것에 비해 문학의 그것은 좀 더 오래 붙잡아 두기에 유효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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