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오수연 지음 / 강 / 2006년 11월
평점 :
절판


진지하게 읽다가 자꾸 삼천포로 흘러서 진이 빠졌는데 책을 덮고나니 삼천포가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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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사르 2011-08-1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나도 40자가 되는구나! 하나씩 배워가는구나~ 하하하

다락방 2011-08-11 13:1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 달사르님 귀여워요. ㅎㅎㅎㅎㅎ

달사르 2011-08-11 16:2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성공을 축하해주시는 건가요? ㅎㅎㅎㅎ

2011-08-14 1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病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主語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아..정말 멋지다..내 졸시에 비하니 빛이 반짝반짝, 하늘의 별처럼 총총한 느낌이다. 부끄럽지만 두 개 같이 놔두고 비교하면서 기형도의 시상에 풍덩 빠져야겠다.  

 

청춘의 기억 

 

약봉지를 뜯는다
약알이 데구르르 흩어진다
물을 먹다 아차차, 앞섶이 흥건하다
약사가 다시 약을 지어 휴지로 입가며 소매며 닦아준다
고운 아가씨다 울 엄마처럼. 나도 예전엔 저렇게 고왔더랬지

약사 선상님, 뭐라고?
뭐라고? 잘 안 들려
좀더 큰소리로 말해줄 수 없겠나
약사의 작은 입이 하마 입맨치로 커졌다
이제 겨우 들린다. 나도 예전엔 앵앵 모기 소리도 들었더랬지

약값을 계산한다
한손으로 돈을 꺼내려니 힘이 든다
콤바인에 손가락이 짤린 뒤로 애로사항이 많다
눈치 빠른 약사가 음료수도 까서 주고 잔돈도 호주머니에 넣어준다
그래야지 암. 나도 예전엔 누가 불편해뵈면 바리바리 도와줬었지


청춘의 기억은
쭈그러진 가죽거죽 안
여즉 고맙게도 뛰어주는
심장보다 더 깊숙한 그곳에 곱게 접어 꼭꼭 숨어라!
추억 속에 매 순간 되살아나 봄빛같이 푸르게 스쳐 지나간다

나도 예전엔
나도 예전엔

스치는 추억이
모두 지나가고 남은 자리에
하회탈 미소의 낯선 늙은이가
꼬부랑 지팡이를 쥐고 콩콩콩 길을 나선다
썩 비켰거라, 온 대지가 벌떡 일어나 그를 경배한다

...조금씩 고쳐나갈 생각...내지는, 전면 수정. ㅎㅎㅎ ...

 

'입 속의 검은 잎' 이란 비슷한 발음이 연거푸 나는 신기한 제목의 시를 지은 시인이라고 들었다. 요절했다고도, 그래서 천재라고들 한다고도 들었다. 오래도록 그의 이름만 알았지만 최근에 이웃님 방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더 미룰 수 없이 사야겠다, 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적어놓고보니 이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이웃님 글에서 가슴을 찌르르하게 만드는 어떤 문구라도 발견해서? 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별 내용이 없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한다, 정도였을까. 글을 잘 쓰시는 분임이 확실한데 오히려 말을 아끼셨다. 그래서 기형도를, 기형도의 시를 아낀다는 느낌이 더 들었나보다. 나는 그 느낌이 마음에 들어 책을 샀고, 조금 시간이 흘러 읽어보았다. 아! 나도 기형도에 풍덩 빠지는 느낌이다. 최근 좋아지고 있는 허수경의 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랄까. 

허수경에게는 사막의 무심한 듯 보이는 모래의 건조함과 그 속에 품은 오아시스, 천년의 시간을 잘 견디어내어 상처 위에 덕지덕지 두꺼운 딱지자국과, 두터운 퇴적층 밑에 감춰진 유적같은 비밀스러움이 느껴지는데.. 기형도에게선 입 밖으로 내는 말이 족족 '시어'가 되는 천상시인이 느껴진다. 허무, 의 시인이라는 말을 얼핏 들었던 것도 같은데 잘못 들은걸까. '병'이라는 위의 시를 보고서 단박에 알았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그의 다른 시,'늙은 사람'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이 드는데 세상의 약자, 세상의 약한 것들에 대한 그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붉게 단풍 들어 최고의 절정기에 달한 순간에 미련도 없이 나뭇가지에서 떨어지는 모습. 자신의 영화를 계속 고집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는 모습. 그 아름다운 모습이야말로 곱게 물든 단풍의 마지막 가는 길이다. 우리네 인생에서도 '병'은 어쩜 단풍의 위치와 같다. 약하기 때문에 밀쳐버리고 뭉개버리는 것이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더 곱게 갈무리하게 해주는 것. '허무'처럼 보이는 얇은 막을 걷어올리면 그 아래에 살짜기 보일듯 말듯 나타나는, 안개의 강을 건너는 자의 엷은 미소, 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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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8-07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두 예전에 구입해서 이 책 읽었었네요.
극장에서 쓸쓸히 삶의 마지막을 장식한 모습이 여전히 인상적인 시인.

달사르 2011-08-08 20:22   좋아요 0 | URL
아..그루님은 그 모습을 인상적으로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는 아직까지는 시를 몇 편 안 읽어봐서요. 아무래도, 노인들, 아픔..에 대해 쓴 시가 눈이 가더라구요. 저도 시를 더 읽게 된다면, 그루님처럼 기형도에 대한 인상적인 모습이 생기겠지요? 음..삶의 마지막은..확실히 인상적이긴 해요.

기형도 관련 포스팅은 두 자리 수 넘게까지 계속 제 속에서 나왔으면..하고 바란답니당. 히.

hnine 2011-08-08 0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연, 6연이 저는 특히 좋습니다 ^^

달사르 2011-08-08 20:23   좋아요 0 | URL
헤헤헤. 거듭! 감사드려요. ^^
저때 이후로 진도 나간게 없어서..계속 대기모드 중입니당. 대신 다른 시인들의 멋진 시가 눈에 계속 들어오는 중이어서 무척 다행이에요.

2011-08-14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8-14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 쯧! 해보세요. 쯧! 어르신들이 아이들 꾸짖을 때 내는 소리지요? 입을 옆으로 쫘악 찢어서 소리를 내는 거에요. 입술에 오카리나를 물었다고 상상해봐요. 숨은 그 옆의 양 공간 작은 틈으로 들락거리는 거에요. 자~ 다시 한 번, 쯧!" 

"쯧!!!!"  (학생이 4명이어서 쯧 소리가 네 개입니당. ㅋ)

잘했어요. 오카리나는 손꾸락 막 움직이는 이런거, 삘릴리 기교 부리는 이런거는 별로 안 중요해요. 그거는 나중 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복식호흡이 기본이 되어 있지 않으면 백 날 기교 부려봤자 이쁜 소리 안 나요. 명심해요. 복!식!호흡! 집에 가서 매일 복식호흡 숙제하셔야 해요.  

지금은 이렇게 편하게 배우지요. 좋~아요. 이렇게 배우면, 근데 진도가 안 늘어요. 우리가 군악대에 있었을 때는 말이죠. 군대는 2년 정도밖에 못 있잖아요? 그전에 빨리 가르쳐서 써먹어야 되잖아요. 그러니 속성으로 몇 일만에 배우는 방법이 있지요. 우선 기다란 말 구유통을 준비해서 물을 한가득 채워요. 준비된 교관이 한 손에 고무장갑을 끼고 대기하고 있구요. 아, 물론 그 고무장갑을 낀 손의 위치는 훈련병의 어여쁜 뒷통수지요. 자~ 숨을 들이마시세요~ 하나, 둘, 셋, 넷! 끝나자마자 교관이 훈련병의 머리를 꽉 움켜쥐고 말 구유통에 처박아요. 하나, 둘, 셋, 넷! 다시 훈련병의 머리를 쥐어서 원위치를 시키죠. 이제 내쉬세요~하나, 둘, 셋, 넷! 다시 입수~하나, 둘 셋, 넷!  참, 고무장갑은 왜 끼냐구요? 이게 또 참말루, 유용한 것이요. 고무장갑을 끼고 머리카락을 움켜쥐면 이게 절~~~때루, 안 빠져요. 음화화.

물 속에서는 말이죠. 숨 쉬는 걸 속일 수 없어요. 넷이라고 약속을 하게 되면 넷만에 숨을 나눠서 모두 들이 마셔야하고, 잠시 숨을 멈추어야하고, 또 넷 만에 모두 숨을 내쉬어야하고, 또 숨을 멈추어야해요. 그리고 숨을 마실 때도 하나, 둘~ 만에 다 들이마시고 셋, 넷 할때는 시늉만 내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도 다 뽀록나요. 물 위에서 보고 있으면 뽀골뽀골 올라오는 거 다 보이거든요. 우리 진도 팍팍 나가고 난 뒤에는 다음에 수영장도 같이 한 번 갈 거에요. 거기서는 속일 수 없으니 미리미리 매일매일 숨쉬기 연습 하시구요. 

그럼, 제일 먼저 자세 잡는 법부터 배웁시다. 우리가 지금 배우는 건 복식 호흡이에요. 단전 호흡, 류와는 조금 달라요. 우리는 악기를 불기 위해서 배우는 호흡법이기 때문에 항상 입 중앙에 악기가 있다고 생각하고 호흡을 하는 거에요. 자, 앉을 때부터 똑바로 앉아야 해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어깨를 쫙 펴고, 어깨에 힘도 빼고, 다리를 약간 벌리고, 그렇죠~ 그렇게 자세를 잡은 다음에 복식호흡을 시작하는 거에요. 이때 어깨가 들썩거리면 안돼요. 숨은 배로 들이마시고 내쉬어야 해요. 여기서 자, 질문! 허파에는 근육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내가 큰소리로 "없어요~~" 아하, 잘 맞췄어요. 이거 맞추는 사람 별로 없는데. 하하. 허파에는 근육이 없어요. 그러면 근육도 없이 어떻게 숨이 들어왔다 나갔다 할까요? 바로, 횡경막 때문이에요.이 횡경막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근육도 없는 허파를 늘렸다 줄였다 해주는 거죠. 자, 주의하세요. 가슴으로 숨을 쉬면 허파가 옆으로 넓어져요. 그러니 공기를 많이 담지 못해요. 대신 횡경막이 내려가면 허파가 아래로 커져요. 그럼 공기를 더 많이 담을 수 있어요. 우리는 악기를 불어야 되기 때문에 많은 공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악기를 불 때는 복식 호흡이 꼭 필요한 것이지요.

자, 다들 자세 똑바로 하고, 제가 부르는 구령에 맞춰서 숨쉬기를 하는 거에요. 하나, 둘에 준비자세 잡으시구요. 여기서 준비자세라는 건 숨을 미리 뱉는 걸 이야기합니다. 하나, 둘에 남은 숨을 모두 내뱉고 숨을 들이마실 준비를 하는 거에요. 자, 하나 둘! 숨을 다 뱉으셨지요? 그럼 하나, 둘, 셋, 넷 할 때 숨을 나눠서 들이마시세요. 입 모양은 아까 말씀드린 쯧! 모양을 취하시구요. 준비 되셨죠? 시작! 하나, 둘, 셋, 넷! 자, 이제 숨을 멈추세요. 자! 이제 다시 숨을 내쉽니다. 하나, 둘, 셋, 넷! 자, 다시 숨을 참고. 참고. 참고. 자, 됐습니다. 앗, 여기서 끝났다고 자세 흐트러지면 안되요. 가슴 막 들썩이고, 그러면 안돼요. 끝나도 자세는 그대로 유지하시구요. 

숨쉬기 정~~말루 힘들지요? 원래 그런 거에요. 아기들은 태어나면 배로 숨쉬지요? 그게 복식호흡이에요. 점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숨이 조금씩 위로 올라와요. 어느듯 가슴으로 숨을 쉬는 사람이 하나둘 생기죠. 노인들은 어떻게 숨을 쉬는 줄 아세요? 노인들은 목으로 숨을 쉬어요. 히익, 끼익, 꺽, 꺽! 이렇게 목으로 숨을 쉬다가 결국엔 생명이 다하는거죠. 그래서 사람이 죽었을 때 뭐라고 한다? 목숨이 다했다, 라고 하는 거지요. 그렇지만, 노인인데도 배로 숨쉬는 사람이 있어요. 도사, 같은 사람들. 복식호흡 많이 한 사람들은 나이 들어도 배로 숨쉬는 거지요. 그런 사람들은 오래 살아요. 그러니까 복식호흡을 잘 하면 어떻다? 오래 살고! 건강에도 좋고! 심지어, 다이어트까지도, 됩니다. 

자, 집에 가서 해 올 숙제가 있어요. 윗몸 일으키기, 매일 열 번씩 숙제로 하세요. 실력이 붙으면 더 하셔도 되십니다. 대신에 올라올 때 45도 정도만 올라오구요. 다시 내려갈 때도 등이 바닥에 붙지 않을 때까지만 내려가셔요. 그리고 몸은 꼿꼿하게 자세를 취하고. 이 운동은 우리가 쓰는 복근, 즉 윗배를 단련시키는 운동이에요. 아무리 복식호흡을 잘 해도, 윗배근육이 단련되어 있지 않으면 안돼요. 우리가 오카리나를 연주하다가 심취하게 되면 막 몸이 움직이잖아요. 괜히 고개도 숙였다 들었다, 생쑈를 하면서 분위기를 잡는데, 이때 배복근이 약하면 음도 덩달아 끊겼다, 작아졌다, 해요. 그럼, 안되지 않겠어요? 그러니, 오카리나를 제대로 배우고 싶다면 복식호흡도 해야하고, 배근육도 단련시켜야 해요. 자, 다들 숙제 해오시구요~ 다음 주에 뵐께요. 안녕~

<어제부터 오카리나 배웁니다. 조카 두 녀석이랑 같이 배우는데요. 선생님이 너무 잼있으셔서 여기에 꽁트처럼 올려봅니다. 앞으로 연습 많이 하리라는 다짐과 같이! 혹시나 부는 악기 배우시는 분들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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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주식회사 (2disc)
데이빗 실버맨 감독, 빌리 크리스탈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02년 9월
평점 :
품절


괴물들만 사는 마을이 있다. 인간 아이들을 놀래켜서 아이들이 내지르는 비명 소리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살아가는 괴물들이 있다. 우리네가 석유, 석탄, 원자력에서 에너지를 얻듯이 괴물들에게는 아이들의 비명 소리가 꼭 필요하다.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에너지 탱크에 모아서 그걸로 공장도 돌리고 전기도 밝히고 집집마다 전기가 들어가고 세상이 돌아간다. 괴물들의 세상에서는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아이들의 비명 소리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들이 점점 고갈되는 에너지원에 대비해서 태양열 에너지, 대체 에너지에 대한 연구를 하듯 괴물들도 대체 에너지를 연구해야 하지 않을까. 아이들이 놀라다 놀라다 식상해져서 덜 놀랄 수도 있고, 오히려 그걸 즐기는 아이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되어서 에너지원이 고갈되어버리면 안될테니 말이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커다란 덩치의 털뭉치 괴물은 침대 한 켠에 놔두고 싶다. 나는 사람 형상의 인형을 어릴 때부터 싫어, 아니 무서워했다. 사람과 꼭같은 모양이기에 인형 역시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으며 잘 때는 꼭 인형을 돌려놓고 잤다. 잠결에 눈을 떴을 때 인형의 눈과 마주치다가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포 영화를 잘 못 보고 겁이 많은 탓도 있다. 그런데 사람 형상 이외의 인형들은 전혀 무섭지 않다. 동물도 괜찮고 괴물 인형도 괜찮다. 털뭉치 괴물을 보자마자..아..살 수 있다면 사서 내 침대 옆에 놔두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마이크 괴물은 귀엽다. 커다란 외눈박이 눈을 끔벅거리며 털뭉치 괴물을 도와 아이들의 방을 잘 찾게 도와주는 녀석인데 썩 일을 잘 하고 수다도 잘 떤다. 아, 여자도 잘 꼬신다.

여느날과 다를바 없는 어느날, 둘은 출근을 한다. 몬스터 주식회사라고 적힌 커다란 건물에 출근을 하는 걸 지켜보니, 여느 공장과 비슷한 느낌이다. 둘은 출근 카드를 긁고 괴물들과 서로 아는 척을 하고 인사를 한다. 작업장에 들어서니 저멀리서 벽장문들이 굵고 튼튼한 줄에 매달려서 하나씩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선수 괴물들 앞에 꽂힌다. 문이 열리고, 괴물들은 으헝! 류의 소리를 지르고 아이들의 꺄악! 소리가 화답으로 들린다. 아이들이 많이 놀랄수록 게이지는 올라가며 에너지 탱크는 꽉 찬다. 우리의 털뭉치 괴물은 단연 1위. 아주아주 커다란 입을 마구 벌리고, 왕방울 눈을 한껏 부라려서 어흥! 소리를 내면 아이들이 으앙! 울어준다.  

워낙에 뛰어나니 시기심을 가진 경쟁자가 없을 수 없다. 변신도마뱀 괴물. 색도 마음대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투명하게 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이들을 놀래키는데는 변신력이 그닥 의미가 없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털뭉치괴물을 따라 잡을 수 없다. 시기심이 생긴 변신도마뱀 괴물은 다행히 머리가 좋다. 나쁜 계획들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그 첫 계획으로 어느 날 밤, 모두다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공간에 몰래 문을 하나 열어놓는다. 그러나 우리의 털뭉치 괴물이 운이 나쁘게도! 그 문을 열어보게 된다. 아이..가 없다..? 놀래키는 괴물..도 없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문을 닫고 돌아나오는 털뭉치괴물의 등판에 앙증맞은 여자 아이가, 여자 아이가.. 붙어있다. 헉!!! 놀랬다. 조카랑 같이 봤는데 둘다 헉! 소리를 냈다.  

괴물네 마을은 인간 아이들의 우는 소리만 필요할 뿐이지 인간 아이들의 물건이나 인간 아이들 자체는 견디지 못한다. 그것들은 너무나 유독하기 때문에 연약한 괴물들이 그것들에 접하게 될 경우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등판에 아이의 양말을 묻혀온 어느 얼빵한 괴물 때문에 회사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단 말이다. 즉각 소방대원들이 출동해서 공기를 정화시키고, 완전멸균기계로 부르르 떨면서 양말을 괴물에게서 떼어내 멸균기로 덮은 다음, 소각을 할 수 있어서 겨우 그 괴물이 살아났다. 만약 아이라도 괴물에게 붙었다가는 괴물은 그 즉시 즉사! 

아..무서워..조카와 나는 괴물 나라에 완전 이입되었다. 다른 괴물의 위험한 예를 미리 봤었기에 우리는 털뭉치 괴물 등짝에 붙은 여자아이를 보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봐. 뭐하는거야. 얼른 떼어내. 떼어내지 않으면 니가 죽을거야. 조심해." 털뭉치괴물이 겨우 여자아이를 떼어냈다. 아이가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난리났다. 겨우 아이를 방으로 데려갔나 싶었더니 그걸 떼어놓지 못하고 괴물 몸에 아이용품이 잔뜩 붙었다. 털뭉치에 아이용품이 얼마나 잘 붙겠냐 말이다. 아아! 큰일이다. 아까 양말 한 짝에도 그 난리를 쳤는데 이제 털뭉치 괴물은 곧 죽겠구나. 아아. 초반인데 벌써 죽다니..는 아니겠고, 시름시름 앓으려나..아이쿠..불쌍해서 어떡해. 조카와 나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고이기 시작했다. 근데 아이는 계속 뛰어다니는데 털뭉치괴물은 아이를 쫓아다녔고, 몸에 붙은 아이 용품은 손으로 집어서 아무 사물함에나 쑤셔박았다. 박..았..다? 어..손으로 만졌는데도 이상이 없어..? 어..뭐가 이상한데..이거 왜이래..영화가 왜이리 엉성해..? 털뭉치 괴물은 죽기는 커녕 아이를 숨기기 위해 노력을 했고, 그리고 모험이 시작되었다.  

"불쌍한 털뭉치괴물을 괴롭히는 여자아이야..빨리 좀 집으로 들어가란 말야. 왜 남이 싫다는 걸 자꾸 하고 그래..이 여자아이야.." 난 역시나 같은 인간인데도 여자아이가 짜증이 났고, 털뭉치괴물이 불쌍하게 생각되었다. 모험을 하면서 여자아이는 울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그 무엇을 해도 아이의 반응에 괴물세계는 전기가 번쩍번쩍거리며 난리가 났고, 심지어 과부하로 전기가 끊어지기까지했다. 무시무시한 여자아이야. 빨리 니네 방으로 들어가..왜 집에 안가니..엄마 보고 싶지 않아? 괴물들 그만 괴롭히고 제발 집에 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꼬옥 쥐고서, 괴물들을 응원하며, 계속 봤다. 아..다행!히, 역시!나 반전이 있었다. 여자아이의 사연을 알게 된 나는 그제서야 여자아이의 표정이 이해되었고, 여자아이의 겁먹음을 이해했다. 털뭉치괴물과 여자아이 사이에 우정이 싹텄다. 아..다행이다, 다행. 그들은 롤러스케이트 타듯 벽장문들 사이를 스릴감 넘치게 타고다니기도 했고, 설원을 내달리기도 했으며, 누군가에게 잡혀가기도 하는 등 갖은 고초를 겪고 흥미진진한 모험을 같이 한다. 영화 말미에야 나는 그들의 이름을 인식했다. 이제 그들은 괴물, 여자인간아이가 아니라 부드러운 털을 가진 '셜리'와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꼬맹이 여자 아가씨 '부'로 바뀌었다. 이제 '부'는 더이상 겁을 먹지 않고 밤에 잠을 잘 자며, 다른 아이들도 괴물의 등장에 놀라서 울지 않으며, 되려 그들을 기다리기까지한다. 도대체 그들의 모험에 어떤 일이 있었길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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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8-04 0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재미도 재미였지만,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그 상상력에 감탄을 하게 만든 영화였어요. 줄거리도 탄탄하고요.
저희 집 소장 비디오중 하나랍니다.

달사르 2011-08-04 22:46   좋아요 0 | URL
하하 맞아요. 저런 멋진 상상력이라니요. 저런 멋진 거는 영화관에서 큰 화면으로 봤어야는데..하면서 아쉬웠을 정도였어요.
아하! hnine님댁에서 소장 비디오로군요. 저희 집도 이제 그런 거 만들어봐야겠어요.

다락방 2011-08-04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살쯤 된 아이한테 이게 적당할까요? 저도 조카랑 함께 보고 싶어서 일단 보관함에 넣어뒀어요.

달사르 2011-08-04 22:51   좋아요 0 | URL
저희 조카는 초딩 6학년이었는데 재밌게 같이 봤구요. 밑에 댓글을 보니 네살짜리 아이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정도인가 봅니다. 다락방님 조카라시면 몇 살일까요? 언젠가 조카가 태어났다는 포스팅을 봤던 기억이 있는데 아직 네살은 안되었지여? ㅎㅎ 아이들에게는 영어 그대로 들려줘도 잘 보더라구요. 저희 조카 어릴 때 그렇게 계속 해줬더니 영어 대화가 저절로 이해되는지 혼자 키득거리고 웃더니요. 지금은 정말로 우리말 들리듯 영어가 들린다고 하더라구요. 이제 다 이모 덕이야! 이럼서 한동안 뻐기고 다녔어요. 히.

굿바이 2011-08-04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후~! 저도 이 영화 팬입니다^^

달사르 2011-08-04 22:52   좋아요 0 | URL
ㅎㅎ 굿바이님도요?
ㅎㅎㅎㅎ 저두요 ^^
담에 한 번 더 볼까 합니다. 거의 안 들리긴 하지만, 이제는 영어 대화 고대로! ^^

pjy 2011-08-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등짝에 붙어있었던 여자아이~ 저도 님처럼 헉! 소리나게 놀랐더랬지요 ㅋㅋㅋ 아, 다시 보고 싶네요*^^*

달사르 2011-08-04 22: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카툰과 달리 애니는 움직임도 있으니 놀라는 강도도 더 큰 거 같지여?
하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놀랄 정도에요.
저는 이 부분에 놀래서 엊저녁에 아빠가 화장실에서 양치 하시다가 카악~ 소리를 내시는데 깜짝, 놀랬지 뭡니까..공포영화 이런거 못 보거든요. 저것도 공포영화라고...놀랬나봐요.ㅠ.ㅠ
pjy님과는 디비디 취향이 왠지 비슷할듯.

saint236 2011-08-04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살짜리 딸이 작년부터 1년 동안 100번은 돌려본 영화입니다. 단언컨대 픽사 영화 중에 최고입니다. 그리고 초반 인트로는 흡사 벨큐브를 떠올리게 만드는 듯...

달사르 2011-08-04 22:56   좋아요 0 | URL
아..픽사가 뭐지..했다가 찾아보고서 알았어요. ^^ 그렇군요. 애니 쪽은 픽사가 유명하군요.
벨큐브..도 내일 찾아보겠습니닷! 보고 잼있게다 싶으면 저것도 조카랑 같이 봐야겠어요.
세인트236님 네살짜리 딸이 무지무지 좋아하는 애니로군요! 100번이라니요. 집중력 짱! 입니다요. ^^
 

둘도 없는 친구를 오랜간 보지 않을 수 있을까? 허수경은 독일로 떠난 뒤 십 년만에야 20대 시절의 둘도 없는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친히 독일을 방문한 덕분이다. 서로를 향하는 그 애잔한 마음이 공간이 멀다고 희박해질까. 시간이 흐른다고 엷어질까. 대상이 있는 그리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짙어져 둘의 만남 후(혹은 만남 전이라도) 허수경은 그 터질듯한 감정을 시로 표현했다.    

 

 <저녁 직전> 

집으로 선뜻 들어설 수 없는 마음
강으로 간다
강가에 서서 먼 날을 되돌려
오늘인 듯 내일인 듯
목숨을 걸고 꽃피웠던
어제인 듯 추억한다

우리 그날 비닐우산으로 노을을 가려 쓰고
그 안에서 웃었지?
레이스 달린 양말을 신고 학예회에 나온
우리들의 영혼이
비닐우산 아래 그리고 우산을 감싸 안고 있었던 노을처럼 다사로웠지?
아아, 얼마나 우리는 웃겼니?
삶으로 머리칼을 묶고 죽음으로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도 모자라
세기 밑을 흐르고 있는 물 아래 잔돌처럼 힘차게 다시 엎드리고 있자, 했지?
잔잔한 물꽅들을 열어보자, 했지?
그러지 않았니? 연인아,
....

  

나는 허수경을 잘 몰랐다. 방송인 허수경만 알았으니 뭐. 내가 허수경을 알게된건 최근작인 빨간 표지 시집을 접하면서다. 시집은 너무나 강렬해 리뷰를 썼다 지웠다를 수십 번 했다. 결국 육 개월이 지나서야 뭔가를 끄적여놨지만 여전히 허수경의 시집은 두터운 퇴적층 아래 상당 부분이 묻혀 있어서 나에게 매번 '발굴'의 기쁨을 선사한다. 빨간 시집에서 발견한 한 편의 시, <저녁 직전>. 그 시는 동기간의 우정, 재회의 기쁨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그러나 아닌 듯도 했다. 갸웃거리던 나는 <모래도시를 찾아서 >를 읽고서야 '발굴'해낸 것이다. 그녀의 그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ㅅ이 독일로 왔다. ㅎ(허수경)이 서울에 살 적 ㅅ과 ㅎ은 가끔 같이 노래를 흥얼거렸다. ㅅ이 이 바다 바깥에 없을 때 ㅎ은 노래를 흥얼거리지 않았다. F라는 도시에서 ㅅ과 ㅎ은 그 도시의 강변을 거닐었다. ㅅ이 ㅎ에게, "너, 전에는 그렇게 노래도 많이 알고 자주 부르더니", 했다. ㅎ은 ㅅ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너 없이 노래가 어디 있니, 라고. 문득 ㅎ은 ㅅ의 옆모습을 슬금거렸다. 10년이라는 세월 가운데 ㅅ은 어제 ㅎ이 서울을 떠날 때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
ㅎ은 그리고 언젠가 ㅎ이 시인이었던 적이 있다는 것을 10년 동안 무슨 두부를 베보자기에 가두어놓고 물기를 짤 때처럼 끙끙거리며 손에 쥐고 있었다. 강변에서 아주 오래된 노래를, 가사도 이미 잊어버린 노래를 ㅅ과 ㅎ은 흥얼거렸다.
 
   

 

나에게도 몇 년간 보지 못한 친구가 있다.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그 친구는 나에게 오지 못하고, 나는 그 친구에게 가지 못한다. 친구의 얼굴을 못 본 지가 하도 오래 되다보니 막상 친구의 얼굴을 보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지 종종 상상해본다. 허수경은 그 상상의 시간을 10년을 보냈고, 보상처럼 머나먼 타국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 절정의 기분을, 터질 듯한 마음으로 허수경은 시로 썼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내가 허수경의 시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도 절반은 된다. 그러나 허수경의 에세이를 읽기전에 <저녁 직전>을 접하면서 나는 이미 허수경이 오랜간 그리워하던 동무를 만났으려니, 아니 만나지는 못했더라도 절절이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낯선 나라의 강가에 흐르는 물에 띄웠겠거니, 생각을 했다. 시는 읽는 자의 것이라, 했으니. 그런 마음을 시를 읽으면서 이미 전해받은데다가 에세이에서 그 근거를 찾았으니 나로써는 그저 확신의 마음이 들 뿐이다. 그리고, 설령 아니어도 별 상관은 없다. 강가에서 그리운 이를 추억하는 그 마음이 예뻐서, 그 시가 나를 움직인 거니까) 에세이를 통해 그 마음을 알고 난 뒤에 다시 바라본 시는 조금 더 반짝거렸다. 그래, 이렇게 흐르는 마음이 '시'를 쓸 수 밖에 없게 하는구나.

한때 시상이 철철 넘치는 순간이 내게도 잠깐 있었다. 강둑이 터지듯 밀려나온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시를 끄적였다. 일 분만에 뚝딱, 오 분만에 뚝딱. 자랑질도 여기저기 했다. 누가 봐도 얼치기임에 분명한데 말이다.그때 나는 표현하지 않을 수 없어 시를 쓰고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조금 느꼈다. 직업으로서가 아니라,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 말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주고간 '선물'같은 풍부한 감정. 난 이 감정에 푹 빠졌다. 헤어나오기 싫었다. 그래서 고무풍선에 실바람 들듯이 꽉찼던 그 감정이 조금씩 작아지는 걸 알았을 때 나는 다급했다. 다시금 채워넣고 싶었다. 이전의 내 속에서는 분명 없던 감정이었기에 나는 외부에서 타인에 의해 나에게 유입된 감정이라 확신했다. 그리고 다시 주입될 수 있으리라 믿었던 일련의 행위들이 있었음에도, 처음과 같은 방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감정은 되려 더 건조해졌고 바스라졌다. 아니, 싹 가셨다. 

난 후회했다. 차라리 두번째 방식을 시도조차 하지 말 걸. 그럼 조금이라도 감정이 남아 있을텐데. 폐경기 여성의 건조해진 질 벽 마냥 뻑뻑하기만 한 내 감정이 낯설었다. 괴로웠다.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다고 다시 뺏어가는거야? 그럼 왜 나에게 그런 감정을 주고 간거지? 대상도 없는 하늘에 대고 욕을 했다. 괴로운 시간이 흘렀고, 책조차 시들했다. 시간이 지나 다시금 접어든 <모래도시를 찾아서>에서 허수경의 친구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보고서야, 순간 뭔가 떠올라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빨간 시집을 펴들고서야, 그제서야 나는 알았다. 김곰치의 <빛>에서 읽은 이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날 때요, 누구나 천 개쯤의 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생각해봐요. 시를 읽고 감동할 때, 하나의 방에 불이 들어오죠. 감동이 다하면 불이 꺼져요. 방은 그런 거에요. 감동, 사랑, 깨달음의 방이죠. 불이 켜지면, 내부를 볼 수 있어요. 이런 방, 저런 방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돼요. 어떤 불행한 사람은 이백 개 정도 방의 불을 켜보고 죽어요. 어떤 사람은 오백 개, 칠백 개, 인생을 참 잘 산 사람은 모든 방의 불을 밝혀보고 죽겠죠. 생애 최고의 순간에는! 천 개의 방 모두에 일제히 불이 들어오죠. 아! 얼마나 행복하겠어요."  
   
 

시를 쓰고 싶었던, 아니 '시'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표현하고파 애달았던 내 속의 터질 듯한 감정은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이다. 어느날 나에게 찾아든 그 감정은 실은 내 속에 오랜간 숨어져 있어 내가 발견해주길 기다리던 것이었다. 김곰치의 마음의 천 개의 방은 김곰치의 것이고, 허수경의 천 개의 방은 허수경의 것이고, 내 마음의 천 개의 방은 나의 소유였던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선심쓰듯 주었거나, 너무나 반짝반짝 빛이 나서 그 사람의 방을 내가 몰래 훔쳤거나, 내지는 같이 지내다보니 향기 묻듯 내게 조금 묻었거나 등이 아닌, 온전한 나만의 방인 것이다. 충만한 감정이 흘러넘치는 것도 내 방이요, 사막의 뜨거운 햇볕 아래 퍼석거리는 모래 마냥 건조한 것도 내 방인 것이고 내 마음인 것이다. 그걸 알게 되고서야 난, 타인에게서 무언가를 얻고자하는 마음을 내려놓았다.

누구에게나 시인의 방이 있고, 누구나가 작가의 방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인이 된 사람은 그 방의 불을 환히 밝힌 사람이지만, 시인이 되지 않은 일반인 역시 그 방의 불을 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난 시인은 부럽지 않은데 시인의 불 밝힌 방은 좀 부럽다. 내가 아주 잠깐 느꼈던 그 충만하게 흘러내리던 감정을 가진 시인의 방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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