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르 사전 열린책들 세계문학 183
밀로라드 파비치 지음, 신현철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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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자평 광팬들만 믿고 구매했더니 첫장부터 스릴만점. 자! 이제 퍼즐을 맞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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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1-09-2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땡스투 누를 때 요즘 40자평을 쓴 사람의 글을 눌러 줍니다.
구입할 책 고를 때 리뷰나 페이퍼는 길잖아요. 짧게 평한 40자평이 얼마나 좋은데요. ^^^

달사르 2011-09-29 19:15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저도 요새 땡스투 누르는 재미가 쏠쏠. ㅎㅎ
리뷰는 주로 구매해서 책 읽고나서 다른 분들 둘러보구요. 책 읽기 전에는 40자평이 좋은 듯해요. 처음엔 40자평 란을 보고 갸웃갸웃? 했는데요. 이제는 익숙해지니 40자평에 먼저 눈이 가요. ^^
 

필사를 하게 되면 이전과 조금 다른 글 읽기가 되는 듯하다. 이전에는 소설의 경우, 등장인물이 정말 실존인물로 느껴졌고 그들의 의아한 행동이 나올 경우 그 이유에 대해 골몰히 생각을 했으며, 작가가 미리 복선으로 깔아주는 내용들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아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상)을 필사하면서 그 느낌이 조금 달라졌다. 착각증후군이랄까? 나는 스스로 작가라도 된 듯, 작가가 이런 구상을 위해서 이 부분을 넣었겠군, 이라는 생각을 무심코 한 것이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따박따박 옮겨 적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작가는 아이들 손에 왜 노트를 쥐어줬을까? 그 이유는 분명 있다. 아래의 장면이 소설의 큰 줄거리에서 꼭 필요한 장치로서 들어간다고 생각을 하니 기분이 괜히 좋다. 작가의 비밀 하나를 발견한 기분이랄까. 음..어쩌면 다른 읽는 이들은 단박에 알아차렸을 수도 있다. 작가가 숨겨놓은 장치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런 장치를 생각조차 않고 읽던 나에게는 이게 첫 발견이기에 왠지 뿌듯한 것 같다.

할머니 집에는 종이도 연필도 없다. 우리는 '서점-문구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가게로 그것들을 사러 갔다. 모눈종이 한 묶음, 연필 두 자루, 커다랗고 두꺼운 노트 한 권을 골랐다. 우리는 뚱뚱한 아저씨가 서 있는 계산대 위에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 우리는 이것들이 필요한데, 돈이 없어요.
 주인은 말했다. - 뭐라고? 그래도........돈을 내야지.
 우리는 같은 소리를 반복했다.
 - 우리는 돈이 없지만, 이것들이 꼭 필요한 걸요.
 주인은 말했다.
 - 학교는 문을 닫았어. 이제 노트와 연필은 아무한테도 필요치 않아.
 우리는 말했다.
 - 우린 집에서 서로 가르쳐요. 우리끼리 공부하거든요.

                                                                                                                                                   29페이지

 (상)에서 주인공들은 쌍둥이다. 그들은 한 몸처럼 움직이며 그들은 머리가 하나인 것처럼 생각한다. (상)에서는 심지어 아이들의 이름조차 없다. 그냥 '우리'라는 지칭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노트가 필요해서 서점에 갔다. 우리에게 노트가 필요한 이유와 우리에게 처한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적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에게는 노트가 필요하다. 우리는 전쟁 통에 부모님과 떨어져 시골 할머니 댁에 와 있다. 할머니는 엄마와 사이가 안 좋다. 우리는 학교는 가기 싫지만 공부는 하고 싶다. 책을 많이 읽고 싶다.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트가 필요하다. 우리는 엄마가 우리를 두고간 슬픔도 잊고 싶고,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마귀라고, 우리에게 마귀의 손자들이라고 욕하는 것에도 상처 받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그 시간들을 견디고 싶다. 우리는 신체훈련도 하며, 정신훈련도 한다. 신체훈련의 과정으로서는 서로를 때리기, 뺨을 때리면 반대 뺨을 내어주기, 기절할 때까지 때리기 등이 있다. 정신훈련의 과정으로서는 말로 서로에게 욕을 하며 욕먹는 것에 대해 무감각해지고도 있지만 무엇보다 숨어있는 연약함마저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글로 서로의 정신무장을 테스트할 필요가 있다. 글은 치장으로서 상대를 속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어느 한 구석에는 본연의 솔직함을 드러내기 때문에 글로 테스트하는 방법이 여러모로 좋다. 게다가 우리는 아직 어리다. 우리는 공부를 봐줄 사람이 없다. 아니, 필요없다. 우리에겐 노트와 책만 있으면 가능하다. 우리는 성경까지 통독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문구점에 노트를 사러 갔다. 

'우리'에게 노트라는 '무기'가 생기면서 그들은 노트에 글을 쓰는 법에 대해 논의를 했고 감정을 배제한 채 글을 쓰는 법을 배운다. 그들이 무감정하게 써내려간 글들은 그래서 사진을 찍듯이 세세하게 그려진다. 그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고 그 글들이 바로 (상)의 내용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상)은 그들이 쓰는 자전일기이자 동시에 정신훈련의 방법인 것이다. 결국 (상)의 저자가 그들인 셈이다. 무채색 같기만 한 이 소설은 그러나 읽는 중간중간에 독자의 마음 속 깊숙이 숨어있는 유채색의 감정을 찾아낸다. 쇠로 된 자석이 철가루를 찾아내듯이 아무리 꽁꼼 숨겨놨던 감정이라도 여지없이 끄집어낸다. 왜냐면,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기 때문이다. 솔직한 맨얼굴과 투명한 눈을 잠시는 속일 수 있지만, 오래는 속일 수 없다. 거울처럼 투명한 그들의 눈(일기)를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거울처럼 자신의 숨겨진 방에서 무엇인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무엇을 찾는 건 읽는 자의 몫이다. 나는 그 무엇을 찾기 위해 (상)(중)(하)를 읽었고, 다시 (상)을 읽기 위해서 이제는 '필사'를 한다. 그들이 노트에 한 자 한 자 써내려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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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9-26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사르님, 이 책 정말 좋지요? 좋은데 개운하게 좋다, 라고 말할 수가 없는 책이에요.
필사 사진은 에궁... 언제든지 올려주세요. 눈 부릅 뜨고 지켜볼게요 ㅇ_ㅇ!!

달사르 2011-09-26 19:59   좋아요 0 | URL
ㅎㅎ 방금 올렸어요. 올리고보니, 악필이 표가 많이 납니다. ^^;

넹. 이 책 정말 좋아요. 개운하지 않고 가슴을 먹먹하게 해주는 그 무엇이 있어서 좋아요. 그런데 너무 오래 이 책에 빠져있으면 안 될 것 같긴 해요.

비로그인 2011-09-26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근데 저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될 것 같아요. 저도 필사를 해봐야할까요... 너무 술렁술렁 읽은 것 같아요 ㅠㅠ

달사르 2011-09-26 20:09   좋아요 0 | URL
ㅎㅎ 맞지요. 매번 읽을 때마다 조금씩 더 보이는 걸 보면 처음 읽을 땐 아무래도 술렁술렁 읽혀지나봐요. 근데, 필사가 의외로 어깨통증도 유발하는 거 같아요. 요새들어 목이랑 어깨랑 아픈 것이..ㅠ.ㅠ 말없는수다쟁이님은 필사를 하시게 되면, 어깨랑 목이랑 조심하시면서 하셔요~~

blanca 2011-09-26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필사라니 너무 근사한 걸요. 저는 <태백산맥> 필사하려고 원고지까지 출력해서 한 장면 하고 말았지요^^;; 달사르님의 필사 사진을 보고 싶은데 아쉽네요.

달사르 2011-09-26 20:13   좋아요 0 | URL
앗. 안녕하세요. 블랑카님. 블랑카님도 예전에 경험이 있으시군요. ^^ <태백산맥>이 블랑카님은 마음에 드는 책이었나봐요. 지금은 어떤 책이 마음에 드세요. 지금 마음에 드는 책이 생기시면 그때 생각 떠올리면서 한번 더 도전해보실래요? ^^
히힛. 필사 사진 올렸는데 넘 악필이네요..ㅠ.ㅠ

pjy 2011-09-26 1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쫌 된 조립컴인데 usb인식이 영~ 앞이나 뒤나 그렇다고 블르투스도 인식못하고~ usb 연결 한번 하려면 생쑈를 한다니깐요ㅠ.ㅠ

달사르 2011-09-26 20:15   좋아요 0 | URL
아..usb인식이 안되서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음..저게요. 계속 안되더니 조금 전에는 또 되더라구요? 날도 덥지 않은데 얘가 왜 열을 받았을까? 이러면서 갸웃거렸어요. 컴맹이 새로운 거 하나 도전하려니 이래 힘이 드네요. 그치만, 어쨌든, 성공하고야 말았습니다!!!! ㅎㅎㅎㅎ pjy님은 블르투스를 쓰시는군요. ㅎㅎㅎ 대단대단. ^^

비로그인 2011-09-27 0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참 잘했어요' 도장 꽝, 찍어주고 싶은데요? ^^
어깨, 목 주의보만 잘 피한다면 저도 한 번 필사를 해보겠어요~~

달사르 2011-09-27 22:33   좋아요 0 | URL
ㅎㅎ 넹. 도장, 감사해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만 한다면, '필사'라는 것도 새로운 형식의 글읽기가 될 듯 싶어요. 말없는 수다쟁이님도 한 번 도전해보세요. ^^ 수시로 어깨 마사지는 해주시고용~

페크pek0501 2011-09-28 1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필사, 라고 하니 몇 자 안 적을 수 없네요. 달사르님 파이팅!!!!!!!!!!!!!!!!

저는 통째로 하는 필사는 예전에 해 보았고(장편 말고 단편소설로) 요즘은 그냥 책이나 신문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노트에 하나씩 번호 매겨 필사해 둔답니다. (지금 노트 보니 79번과 84번에 이런 글이 있네요.)^^^

79) 사람은 우주는 이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자기 자신은 결코 이해할 수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은 그 어느 별보다도 먼 것이다.(체스터턴이 한 말)

84) 사람은 외로움이 두려워 사회를 만들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를 만들었다. (한창훈 저, <꽃의 나라>, 113쪽.)

달사르 2011-09-29 19:19   좋아요 0 | URL
우왓. 노트가 그만큼이나 많으세요? ^^
저는 일단 10권! 그러니까 두 자리 수까지 가는 걸 목표로다. 불끈!

와..79번 좋은 구절에 공감입니다! 체스터턴이라..정말 멋진 마인드를 가진 사람입니다.
84번은 약간의 공감과 조금 다른 생각이구요. 종교의 매력에는 죽음이 두려운 것, 그 이상의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페크pek0501 2011-09-29 23:19   좋아요 0 | URL
노노노, 무슨 말씀을... 설마 제가 노트를 84권이나 가졌겠어요.ㅋ 한 노트에 번호를 매겨 쓴 게 그렇다는 것이지요.

10권, 그 목표 달성하시기 바랍니다. 즐기면서 하다보면 어느 새 그 목표에 가 닿을 겁니다. 덕분에 저도 갑자기 열정이 솟구쳐 좋았습니다.

달사르 2011-10-02 12:23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잘못 읽었군요.

넵! 조금씩이지만 매일 꾸준히 하니까 더 재미가 있네요. 어쩜 시간이 많았으면 몇 일 하고 시시하다가 치웠을지도요. 없는 시간을 쪼개니 아쉬워서 매일, 조금이라도 더! 더! 하면서 쓰게 되는군요. '열정' 이란 이렇게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짠~하고 나타나기도 하나봐요. 저도 제 속의 이런 열정에 요즘, 놀라고 있는 중이랍니다. 히힛. 펙 님의 말씀에 더욱 더 불끈! 하고 있습니닷. ^^

마노아 2011-09-29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보기 좋아요.
이 책도 오랜만에 보니 좋아요.
읽고 참 좋아서 친구에게 선물했는데, 나중에 아쉬워서 상권을 다시 구매했어요. 근데 아직 중,하권은 못 읽었답니다.
그렇지만 남아 있어서 기대되고 있어요.^^

달사르 2011-09-29 19:21   좋아요 0 | URL
히힛. 노트만 잔뜩 만들어놓고 있다는..헤헤.
아. 맞아요. 선물하면 다음에 아쉬움이 남는, 그런 류의 책이에요. 아프지만 왠지 품 안에 안고 지켜주고 싶은 그런 느낌. 저는 상권 읽고 2년인가 있다가 중, 하권 읽었어요. 텀이 조금 길면 중, 하권이 더 감동으로 와 닿을지도요. ^^
 

늦게 집에 들어가다보니 포스팅이 자꾸 밀린다. 목요일 포스팅은 금요일에 적고, 금요일 포스팅은 일요일 짬짬이 적고, 이제 퇴근해서 일요일 포스팅을 적는다. 하하하.

 

"안녕하세요!"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깜짝깜짝 놀란다. 아이의 또랑또랑하고 높은 음성이 반기며 고개 숙여하는 인사를 받으니 얼떨떨하면서도 기분이 좋으신 눈치다. 나이 든 약사의 동태같은 눈과 조용하게 아래로 쫙 깔아내린 목소리로만 인사를 받다가 저리도 상큼한 인사를 받으니, 손님들의 대응 또한 즉각적으로 달라진다. "아이구야, 엄마 일 도와주나보지?" "일요일에 놀지도 않고 일 도우는거야?" "용돈 두둑히 받아야겠는데?"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를 다 다루니까 처방전 입력도 곧잘 하는군. 저기 카드 계산도 할 줄 아는 것 좀 봐"  조카는 다른 말은 대꾸를 않고 '엄마'라는 용어는 꼭 '이모'라고 수정을 해준다. 이모 혼사길 막히는 걸 방지하려는 조카의 자상한 배려랄까.

오늘은 일요일. 아침부터 조카와 같이 출근했다. 2주 전 추석 날 아침에도 조카가 같이 나와주었다. 명절을 쇠러 가거나 주말에 쉬는 직원으로 인해 명절이나 일요일이면 파김치가 되는 이모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과감히 내어준거다. 올 봄까지만 해도 큰조카가 보조일을 해주었다. 3년을 도와주던 큰조카는 중 3이 되면서  더이상 시간을 빼기 힘들어했고, 초딩6학년이지만 3년 전부터 약국 일을 돕고 싶어했던 작은조카 녀석이 바톤터치를 했다. 선천적으로 타인을 도와주기를 좋아하는 성향인데다 이모의 일에는 뭐든 마다않고 나서서 도와주고파 하는 기특한 녀석인지라 그동안은 겨우 허락맡은 게 폐문시 쎄콤을 켜는 일 정도였다. 그 일도 신명이 나서 하는 걸 보노라면 웃음이 피식 나오곤 했다. 하도 약국 일을 돕겠다고 하길래 키가 150 이 넘으면 사람들이 아이로 취급하지 않을테니 허락해주마, 라고 말을 했더니 조카는 수시로 키를 쟀고 우유를 대놓고 먹었다. 조카는 지금도 키가 150 이 되지 않는다. 한 2센치 정도가 모자란다.   

약국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큰소리로 인사하는 조카를 보면서 대부분의 어른들은 기특해한다. 큰소리의 인사를 받는 것도 좋으시지만 어른의 일을 돕는 아이를 보는 것도 뿌듯하신 눈치다. 우리 어릴 때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일을 도왔다. 요즘 아이들은 공부에 올인해서 학원순례를 하는데 나에겐 못마땅한 점이다. 아이들은 그저 놀거나 아니면 어른의 일을 도와가면서 사회를 조금씩 경험하는 게 좋은데 말이다. 언니와 나는 조카들에게 어른의 일을 도우는 것도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그 과정을 거친 큰조카는 우리의 의도대로 돈 벌기의 힘겨움을 경험했고, 돈을 절약하는 구두쇠가 되었으며, 사람들과의 대화법을 익혔으며, 무엇보다 가족끼리 서로 돕고 사는 방법을 배웠다. 작은조카도 그 과정을 겪으면서 누나의 뒤를 밟아서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의 인사가 제일 반가운 사람은 미장원 언니다. 조카가 다니는 단골 미장원 언니는 아이의 인사를 받자마자 나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이모가 보고 배워야겠네. 가게엔 자고로 이렇게 조카처럼 반기는 맛이 있어야지. 손님이 오든지 말든지 대충 하는 인사라니, 그게 뭐야. 이모가 조카 보고 배워! 손님이 오면 앞으로 조카처럼 생긋거리며 웃고 큰소리로 인사해. 알았어?"  "에이. 언니두. 언니두 가게 해서 잘 알면서. 하루종일 손님들 상대하다보면 우리도 지친단 말이지. 아는 안면에 그런 건 좀 봐주고 해야지. 아잉. 언니" 추석 때 들었던 미장원 언니의 뼈있는 잔소리다. 

오늘은 곰곰이 들어오는 손님들을 지켜보니 무표정한 표정으로 들어오던 손님들이 조카의 인사를 받자마자 80%는 화색이 바뀔 정도로 활짝 웃으신다. 심지어 한 분은 "약국에 꼬마약사님이 계시네?" 하고 웃으시더니 계산을 하는 조카에게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끝까지 예우를 대해주었다. 아파서 찡그리며 들어오시던 한 분도 조카의 인사에 잠시 활짝 웃더니 다시 아픈지 다시 찡그리는 일을 계속하셨다. 내가 그동안 인사했을 때 손님들이 저리 웃던 적이 있었나? 고개가 모로 저어졌다. 새삼 인사의 중요성이 인식되었고 좀 어색하지만 나도 조카 따라 저렇게 밝게 웃어봐야지, 싶었다. 칙칙하던 약국에 밝은 무지개가 뜬 듯이 인사 하나로 환해지는 느낌이라면 조카의 인사를 얼마든지 따라 배울 일이다. 

저녁 즈음에 만우 아저씨가 들렀다. 언젠가 술 자시고 오토바이 타고 가다가 혼자 자빠져서 무릎을 까여서 내가 치료를 해준 뒤로 나와는 친구 비스무리한 관계로 편하게 지내는 아저씨다. 아저씨가 무얼 사셨고 조카가 계산을 하는데 개구장이 아저씨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야야. 그 돈을 그리 넣으면 안되지" "네? 그럼 어디 넣어요? " "어허~ 조금씩 삥땅도 치고 그래야지. 조금씩 니 호주머니에다가 넣기도 해" 해맑게 웃으며 장난치는 만우 아저씨의 장난을 이해 못하는 조카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아따 마,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건 잘 모른다니까. 나중에 좀더 자라면 그런 것도 하겠지. 이모도 그랬으니까. 그런 거 할 때까지 주말마다 이모 일 도와주면 차암 좋겠구만. 하하하" 

하루종일 큰소리로 명랑하게 인사하던 조카는 저녁 먹고부터는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톤이 낮게 깔린다. 자고나서 목소리가 쉬어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면서, 나처럼 낮아지는 톤에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짜식. 봐라 봐. 하루종일 그래 인사하다보면 지친다니까.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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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1-09-25 2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국에 꼬마지기님이 아주 당찬걸요. 아파서 오신 분들의 얼굴 표정이 환해지는 이유를 알겠어요. 우리 동네엔 여러 약국이 있는데 병원에서 가장 먼 약국이 가장 바빠요. 약사 분이 젊기도 하지만 항상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거든요. 다른 약국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하시는데 무뚝뚝해요...ㅜ.ㅜ

달사르 2011-09-25 23:08   좋아요 0 | URL
하하. 저도 어릴 적에는 왜 약국에 가면 약 주는 사람들이 무뚝뚝할까..생각했는데 이제는 좀 알겠더라구요 그만큼 사람 상대를 오래했고 또 매번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해야되니까 좀 지치는 것도 있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도 있고 말이죠. ㅎㅎ 저는 이번에 조카의 모습을 보고 좀 반성! 했어요. 저도 지금보다는 좀더 많이 웃어야겠다, 생각했죠. 에헴. 내가 손님이라면, 마노아님네 동네에 젊은 약사 분처럼 항상 웃는 가게에 저도 가고 싶으니까요. ^^

꼬마요정 2011-09-26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월요일 아침부터 밝고 명랑하게 인사드려요~~ 너무 기분 좋은 글입니다. 꼬마약사님의 밝은 목소리가 막 상상이 됩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터줏대감 약국이 있어요. 아저씨가 좀 실없는 농담도 하시고 목소리도 쩌렁쩌렁 하시고 간섭도 하시고 그러는데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해요. 아픈 사람들에겐 밝고 왁자한 게 득이 되는가 봅니다.^^

달사르 2011-09-26 20:2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꼬마요정님이시군요~

저희 꼬맹이 인사처럼 꼬마요정님 인사도 밝고 명랑하시군요. ^^ 터줏대감 약국! 좋은 별명입니다. 아저씨가 터줏대감처럼 동네를 지키고 계시는군요. 터줏대감들이 역할을 잘하고 분위기가 좋은 동네는 왠지 살고 싶어지잖아요. 좋은 동네에 사시는군요. 맞아요. 때로는 밝고 왁자한 틈에 있기만 해도 아픈 게 가시는 느낌도 드니까요.

pjy 2011-09-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특한 조카에 기회를 주는 멋진 이모! 그럼요, 혼사길이 막히면 안되죠^^;

달사르 2011-09-26 20:21   좋아요 0 | URL
ㅋㄷㅋㄷ 조카의 저 기특함에 보답을 해야는데 말이죠. ^^;

노이에자이트 2011-09-2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놀거나 어른들 일을 돕지 못하게 된 것은 다 그 부모들이 못하게 하기 때문이죠.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하라고 닦달질을 해대니까요.방학 때도 제대로 못쉬고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을 서너개씩 다니는 학생들...다 부모들이 시키니까 그런 겁니다.사실 지금의 학부모들 거의 상당수는 5공화국 무렵 청소년기를 보내며 학원을 못다니게 하는 정책 덕에 지금과는 비교도 안되게 느슨하게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그래놓고도 자기 자식들을 이렇게 몰아세우고 있습니다.

달사르 2011-09-26 20:28   좋아요 0 | URL
그럴 시간 있으면 공부나 해라. 너는 무조건 공부만 해라..에유..참 슬픈 말 중 하나 같아요. 뭐라고 뭐라고 길게 막 적었다가 걍..말았어요. ㅠ.ㅠ 이 와중에도 자기의 소신대로 공부 이외의 것에 눈 돌리며 자신의 목표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이뻐라 해얄지, 걱정의 눈으로 봐야될지, 친한 지인들의 고민에 이런 것도 있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11-09-27 17:29   좋아요 0 | URL
길게 적으려던 글의 내용은 부모의 욕심때문에 희생당하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될 것 같군요.왠지 기대됩니다.너무 민감한 주제라서 좀 망설여지나요?

달사르 2011-09-27 22:41   좋아요 0 | URL
하하. 작은조카녀석이 라면을 끓였다고 이모 드시러오세요~ 하고 부르네요. 침이 꼴깍.

음...아무래도 그런 내용이 들어가는 듯도 해요. 어쨌든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좀더 욕심이 있어서 본인이 하고픈 걸 일찍부터 알아차리고 또 주장하는 그런 색깔이 분명한게 좋겠다, 란 생각은 있어요. 그게 공부하고 배치되면 공부를 좀 덜하더라도 말이죠.
 

금요일 저녁엔 인근 대학에 있는 평생교육원을 찾아간다. 퇴근 시간을 무려 2시간이나 앞당겨가기 때문에 담날부터해서 몇 일간은 손님들의 잔소리를 들어야한다. '매일 늦게까지 문 열어주던 양반이 왠 일이래? 선 보러 갔어요?' 부터 해서, '기껏 왔는데 문 닫혀 있으면 얼마나 허전한지 알아요? 당신이 없는 다른 약국은 가기 싫어서 그냥 아파도 참고 집에 갔어요. 담부턴 일찍 문 닫지 말아요.' 까지.  

그런 애정어린 잔소리를 다 들어주고 나서 "왔는데 껌껌하니 문이 닫혀 있으면 기분이 좀 그렇죠? 미안해서 어떡하죠. 죄송해요. 음..실은, 제가 뭘 배우고 싶은데, 시간이 하도 안 나서요. 다행히 인근 대학교에서 밤에 수업이 있길래 요즘 거기 다녀요. 앞으로 금요일은 항상 이렇게 조금 일찍 마칠 거에요. 조금만 봐주세요" 

물론! 이런 식의 뉘앙스만 서로 왔다갔다 했을 뿐이지 실지 대화는 절때루!! 이렇진 않다. 위의 대화는 그저 멀건 곰국일 뿐이다. 그렇게 싱거운 건 촌사람들은 못 먹는다. 촌사람들 특유의 투박하고 퉁명스러운 말투가 양념으로 팍팍 뿌려져야 맛있는 곰국이 된다. "아이고 마. 약방을 그렇게 비우믄 우짜요. 찌랄염병이네 마. 고마이나 많이 배우고 공부는 또 무신 공부를 한다꼬. 내가 몇 번이나 여기 왔다갔는 줄 알아요? 내가 왔는데 말이야 문이 팍 닫쳤고 말이야, 아이고 마. 여가 단골이라 어데 따른 데 가도 못하고 마. 밤새 끙끙 앓았다 아니요. 내가 약방을 바꿀 수도 없고 말이지. 아이고 참말로. 남사스러버서"  뭐 대충 이런 정도? 물론 내 대답도 투박하긴 매한가지다. 

문을 닫고 나오는 길에 나를 찾아온 손님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것만큼 곤란한 일이 없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서 약을 주고 나오려면 시간이 또 몇 분 허비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늦은 마당인지라 무척 미안해하며 죄송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겨우 약국 문을 나서며 자전거를 집어탄다. 강바람이 시원하다. 어디 가는 길인지는 금새 잊어버리고 시원한 강바람에 신이 난다. 후후 휘파람을 불어가며 등 뒤에 짊어진 가방을 으쓱이며 신나게 페달을 밟다가 또 금새 얼굴이 찡그려진다. 다리가 아프다.ㅜ.ㅜ 저질 체력 표내는 것처럼 다리가 욱씬거린다. 에잇에잇. 할 수 없이 기어를 풀었다. 이제 좀 낫다. 신호들을 몇 개를 지나고나니 전문대 입구다. 여기서부터는 자전거를 내려야한다. 45도 각도의 비탈길을 헥헥거리며 오르는데 학생으로 보이는 여자 둘이서 꺅꺅거리며 자전거를 타고 내려온다. 발도 페달에서 뗐고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그저 젊음의 패기 하나로 내려온다. 뒷자리의 여자는 거의 실신의 목소리를 내지른다. 걱정이 되어 잠시 멈추고 바라봤더니 다행히 무탈하게 끝까지 내려갔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게 오르막길을 오르지만 나도 나중에 집에 갈 때는 저래야지, 불끈! 

조금 많이 늦었다. 강의실 뒷문으로 살짜기 들어가니 책들을 펴놓고 수업 중이다. 구석진 뒷좌석에 조용히 앉아서 수업을 들었다. 지난 학기 신청 때 받았던 책을 미처 못 들고 왔다. 지난 번 수업 때는 강의가 지루하더니 임상경험이 좀 생겨서 그런지 이번 수업은 꽤 재미있다. 문이 삐걱거리며 열린다. 나보다 늦은 지각생이다. '34평'이다. 지난 번에 같이 수업을 들었던 소 키우는 34살 남자다. 반갑게 눈인사를 했고 그 역시 내 뒤 구석에 앉았다. 수업이 끝났고,  스트레칭 시간이다. 다들 베드 위에 올라갔고 교수님의 동작을 따라서 몸 구석구석을 풀었다. 자고로 타인의 뭉친 근육을 풀어주려면 자신의 근육이 먼저 풀려져 있어야 된다, 는 교수님의 지론에 따라 매번 임상 수업 전에는 꼭 스트레칭을 한다. 몸이 개운하게 풀린다.

이제 임상을 할 시간이다. 쉬는 타임에 몇 사람이 더 들어온다. 역시나 지난 번 수강생들이다. 소갈비집을 하는 '털보 아저씨' 얼굴도 보인다. 성실한 예비 물리치료사 학생이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어디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서 보니 수다쟁이 운동광 '회장' 얼굴도 보인다. 한 학기 같이 수업한 위력이 대단하다. 그렇게 반갑게들 보이니 말이다. 고개를 주욱 돌려보니 지난 번과 달리 젊은 얼굴들이 제법 보인다. 이제 갓 20살 새내기들도 여럿이다. 지네 선배들 따라 수강을 한 눈치다. 30대 부부의 얼굴도 보이고, 50대 아주머니도 여럿 보인다. 다들 열의에 상기된 표정들이다. 

학생 중 한 명이 임상대상으로 매트리스 위에 누웠고 교수님이 지난 번 수업 내용을 복습해주신다. 서울 다녀오랴, 이사하랴, 각종 핑계로 벌써 3번이나 빠져먹은 나는 1학기 수업 내용의 복습임에도 벌써 가물거려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얼굴과 머리 스트레칭을 지나쳐 가슴을 누르는 시범까지 보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습을 시작했다. 둘씩 짝을 지어서 해야하는 임상이니 만큼 짝이 있어야는데 하필이면 같이 수업 듣기로 한 언니 둘 다 보이질 않는다. '34평'과 같이 하려고 머뭇거리는데 이미 다른 아저씨가 말을 건넨다. 뒤를 돌아보니 '털보아저씨'가 보여서 급히, "같이 하실래요" 말을 건네는데 왠 아저씨가 동시에 말을 건네는 게 아닌가. 셋이서 멋쩍어서 서로 웃다가 번갈아가며 임상을 하기로 하고 왠 아저씨가 먼저 누웠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아저씨가 세세한 부분까지 다 기억하시는게 아닌가. 털보아저씨 말로는 군인출신이라서 기억력이 비상하다고 하신다. '군인아저씨' 덕분에 복습을 완벽한 수준으로 끝마쳤다.

교수님이 사람들을 다시 앞 쪽으로 불렀고 오늘의 수업인 팔 스트레칭으로 들어갔다. 군인아저씨가 선뜻 매트리스에 누우신다. 아.. 아까도 저 분이었구나. 몸으로 저렇게 익히시면서 기억을 죄다 하시는구나. 군인아저씨가 시원한지 연신 어이구야, 소리를 내셨다. 교수님이 아파서 내는 소리냐 시원해서 내는 소리냐, 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신다. 두 번의 반복 임상을 눈여겨 본 뒤 다들 자리로 돌아가 다시 임상을 시작했다. 아까처럼 세 명이 팀이 된 우리는 먼저처럼 군인아저씨를 눕혔다. 군인아저씨는 한 번 봐서는 잘 모르시겠다며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신다. 털보아저씨랑 나랑 번갈아가면서 서로의 팔을 스트레칭 해줬으나 군인아저씨는 여전히 모르겠다신다. 아..이전 번까지 군인아저씨가 세세하게 기억하는 건 본인이 외우려고 부단히 노력하신 결과로구나. 군인아저씨는 모른다고 그냥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여기저기 다니시며 모르는 부분을 눈여겨보고 오시더니 당신 몸에 한 번 더 해달라고 부탁하신다. 털보아저씨가 나에게 할 때와는 달리 아주 힘을 팍팍 주면서, 설명을 섞어가면서 해주신다. 살짝 헷갈리는 부분은 셋이서 서로의 기억력을 떠올리며 상의를 했더니 과연, 이번에도 역시나 만족할 만큼 세세한 부분까지 이해가 갔다. 이렇게나 열심히 수업을 듣다니. 와우~ 군인아저씨와 털보아저씨 덕에 나는 졸지에 열공모드에 들었고 무척 뿌듯했다. 

수업을 마치고 서로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었다. 자전거를 탔는데 저 만치 멀리서 내리막길이 보인다. 입가에 미소가 잡힌다. 야호~   

 

 

이번 수업까지 듣고나면 1급 자격증이 주어진다. 이번 수업에는 <근육학 총설> 책을 수시로 뒤적이며 교수님께 질문을 많이 해야겠다. 실지 수업시간에 이 책으로 하지는 않지만, 좀더 심도깊이 들어갈 때 꼭 필요한 책이다. 알라딘에 검색해보니 품절이고 증설본이 나와 있다. 인기 짱인 책인가부다. 금액도 후덜덜인데, 이번엔 좀 제대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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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9-27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짬짬이 이런 시간을 내 일정에 끼워넣어 사는 방법을 전 좀 좋아해요. 저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쓴 이런 얘기 읽는 것도 좋고요, 이런 식으로 풀어나간 글의 방식도 좋아요. ( 다 좋다는 얘기네요 ^^)

달사르 2011-09-26 20:33   좋아요 0 | URL
저는 타이트한 생활보다는 느슨하게 사는 걸 좋아하는데요. 짬짬이 이런 시간이 들어가는 것도 조금씩 좋아지네요. 음..그리고 소소한 거라도 뭔가를 이렇게 도전하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좀 좋구요.

ㅎㅎㅎㅎ hnnine님, 이런 식의 글을 좋아해줘서 고마워요. ^^ 아무래도 저에게는 이런 류의 글이 제일 편하더라구요.

pjy 2011-09-2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마는 영 소질이 없어서 그랬는데, 요즘 엄마가 쌍둥이 조카들을 보면서 삭신이 쑤신다고 하셔서 어깨나 등짝등등 조물락 거리다보니 반복학습의 효과인지 요령을 좀 알듯말듯 싶습니다^^; 좋은 공부하시네요~~

달사르 2011-09-26 20:37   좋아요 0 | URL
아..맞아요. 딸들은 원래 엄마 맛사지 해주려는 목적으로 마사지를 배우는 경향이 많더라구요. 저도 마찬가지였구요. ㅎ 근데 막상 배워도 그렇게 열씨미 엄마를 챙기게 되지는 않아서 좀 반성하고 있어요. pjy님의 엄마는 좋으시겠어요.따님이 저렇게 조물락 해주시니까요. ㅎㅎ 원래 등 맛사지가 손만 스쳐도 시원한 법이잖아요.그리고 계속 반복하다보면 요령도 스스로 터득도 되구요.
 

매주 목요일은 조금 일찍 마쳐서 오카리나 수업을 듣는다. 강사님은 남자 간호사. 수강생은 종합병원 여자 간호사 한 분과 울 조카 두 녀석. 단촐하다. 사람이 원래 몇 명 더 있었지만, 애초에 이 모임을 주도한 사람도 있었지만, 정작 첫 수업부터 그 사람은 나오지 않고 곁다리였던 나머지들만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나보다 퇴근이 늦은 바쁜 조카들이지만 짬을 내고 있고, 나 역시 퇴근 시간을 조금 앞당겨서 시간을 빼고 있고, 여자 간호사 분 역시 마찬가지이다.  

왜냐면, 지금 아니면 배울 시간이 언제 또 날지도 모를 일이고 중요한 건 가르치는 싸부가 엄청엄청엄청 바쁜 사람이어서 시간 내기가 천금 만큼 힘든 사람이라는 것이다. 입으로 부는 악기란 악기는 죄다 잘하며, 손으로 치는 악기도 못 치는 게 없다. 피아노에서 손을 떼면서 음악과 담을 쌓기로 했던 나였는데 나의 그 결심을 흔들리게 만든 사람이 바로 싸부다. 싸부와 우리의 첫만남이 없었으면 난 어쩜 아직도 악기를 다시 만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은 내가 약국 오픈하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3년도 전의 시간에, 남자조카와 나는 강변길을 운동 삼아 산책 삼아 거닐고 있었다. 왕복 2시간 정도의 거리에는 볼 거리가 무척 많다. 한 켠으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조금 지나면 미니 폭포가 나와서 물소리가 졸졸졸 흐르며 또 조금 지나면 개울가가 나와서 좔좔좔 소리가 들리고 조금 더 지나면 반대쪽에 산이 보이면서 각종 새소리, 코를 간질이는 산풀 냄새, 물을 가득 담아 놓은 논에서 엄청난 소리로 짖어대는 개구리 합창, 그리고 오가는 많은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다. 쉴 틈도 없이 재잘거리는 조카의 말에 대응하느라 입운동이 제일 많이 되겠다, 싶은 순간이었다. 조카가 갑자기 입을 닫았다. 문득 귀를 귀울여보니 구슬피 울어대는 어떤 소리가 들려온다. 오카리나 소리다. 그것도 아주 엄청엄청나게 잘 부르는 소리다. 언젠가 텔레비젼에서 들었던 음반을 냈다는 어떤 아이의 오카리나 선율 만큼이나 아름다운 소리다. 이 시골에서 이런 선율을 들을 수 있다니?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계속 숨죽인 채로 걸었다. 저 만치 강다리 밑에 왠 남자가 보였고 한 켠에는 오토바이가 세워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카리나 음악이 듣기 좋네요. 좀 들어도 될까요?" "아이구, 네~얼마든지요." 그는 강을 내려다보이는 자리에서 계속 아름다운 선율들을 만들어냈고, 가방을 뒤적이면서 음높이가 다른 오카리나도 구경시켜줬고 연주해줬다. 어디 살고 무엇 하는 사람인지도 몰랐지만 우리는 음악 이야기를 했고, 같이 음악 감상을 했고, 흐르는 강물을 같이 바라보았다. 흐르는 물소리에 얽히는 오카리나 선율에 감동받아 눈물이라도 흘릴 즈음, 갑자기 어디서 다다다 달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어어! 생쥐다. 어디선가 나타난 생쥐는 부리나케 달음박질을 치더니 갑자기 강물로 풍덩! 빠져들었고 퐁당, 물소리에 음악이 끊어졌고 바람도 잠시 쉬었다. 그는 문득 시계를 보더니 헤어져야겠다고 했고, 우리는 다음에 우연히 만나면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더 나누자, 는 말만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약국을 차렸고, 갖가지 다양한 군상들이 약국을 방문했다. 그중에는 환자들의 처방전을 끊어서 대신 약국에 와서 약을 타서 본인에게 가져다주는, 의료서비스를 하는 직군의 사람들도 있었다. 요양보호사라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노인 인구가 점점 늘어나는 작금에서 각광을 받는 직군 중 하나이다. 그중에 남자가 한 분 있었는데 올 때마다 해맑게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전직 간호사 출신인 이 사람은 시설을 하나 차려서 노인들의 전반적인 케어를 관리하고 있었다. 오픈 후 아마 일 년 가까운 즈음에 읍내와 읍외에서는 각종 공연들로 넘실거렸다. 그때 남자요양사가 팜플렛을 하나 건네준다. "이거 보세요. 우리 팀이 이번에 공연하는데요. 시간 되시면 한 번 보러 오세요" "네. 그럴께요. 무슨 공연인가요?" " 오카리나 동호회에서 하는 오카리나 공연입니다" "아~ 그러시구나. 가만 있어봐. 오카리나? 음...나도 오카리나 잘 부는 남자 한 분 아는데? 음..그러니까 그때 강변에서...앗! 앗! 혹시! 한 이 년 전 쯤에 강변에서 오카리나 부신 적 없으세요?"  "네. 강변에 자주 오카리나 불러가지요" "그럼 언젠가 어떤 꼬맹이랑 여자 한 분이 연주하는데 같이 앉아서 이런저런 대화했던 적이 있지 않나요?" "네...그런 적이 있었는데요...으악...그럼 그 사람이? "   

둘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들인지라 그때 본 이후로 약국에서 일 때문에 한 달에 대여섯 번 이상 보고서도 서로가 서로를 몰라본 거다. 우리 둘은 그날 일을 떠올리며 종종 웃었고, 오카리나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 사람은 나에게 팜플렛을 내밀었다. 동아리 가입 이야기도 꽤 여러 번 했지만 그때는 내가 밤 11시까지 근무할 때라 연습은 커녕 한 번 나갈 시간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다 근무시간을 앞당기는 어떤 사건이 터졌고 밤 9시로 근무가 조정되면서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겼다.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가르쳐줄 싸부가 도통 시간이 나지 않는다. 또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싸부의 이런저런 일들이 정리되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가면서 싸부가 시간이 조금 나기 시작했고 마침 수업을 하나 만들자고 적극 밀어붙이는 동호회 회원도 있었다. 그 사람의 노력 덕분에 수업이 만들어졌고 우린 그제서야 수업을 듣게 되었다. 첫 수업은 무척이나 강렬했고 재미있었다. 첫 수업은 8월 5일 이었다. 

여기 알라딘에 일기처럼 기록을 올려놓으니 새삼 그때의 첫 수업이 떠오르고 그 수업이 있기까지의 과정이 주욱 떠오른다. 그날 이후로 여러 번의 수업이 있었고, 조카들과 난 저녁마다 복식호흡을 했으며, 입으로 부는 연습을 했고, 윗몸 일으키기를 했다. 한 2주를 그렇게 했을까. 이사준비로 정신없고, 조카들은 개학준비로 바빴고, 나는 약국 감사니 결제니 등으로 바쁘면서 조금씩 오카리나에 소홀해졌다. 그 와중에 몸까지 비리비리 아팠다. 가기 싫어지는 마음이 어느새 내 속을 파고 들었고 나는 몇 번 빠졌다. 아파서 빠진 건 맞지만, 그 빠짐이 얼마나 꿀맛 같은지. 그리고 빠진 이후로 다음 수업까지 오카리나를 한 번 잡지도 않았고, 복식호흡도 안 했다. 마음 한 켠엔 매일 오카리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지만 조금씩 무뎌져갔다. 그렇게 바쁜 일상을 핑계삼아 하나의 꿈이 사그라져 갔다. 

그러다 엊그제, 간만에 오카리나 수업을 갔다. 이대로 계속 빠지느니보다 연습도 못했고 아직까지 엉망진창이지만, 이런 나를 인정하고 다시 기회를 줘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금 이른 시간의 퇴근이어서그런지 손님이 줄을 이어 들어와 문 닫을 타이밍을 놓쳤고, 몸도 피곤한데..가지 말어? 라는 못된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게다가 밖이 어마하게 추워. 너, 자전거 타고 거기까지 가야 돼. 그리 힘들고 내일 출근해서 제대로 일하겠어? 오늘 하루만, 딱 한 번만 더 쉬자, 응? 내 속에서 나를 부추기는 목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손님이 안 오는 틈을 노려 간신히 문을 닫을 수 있었고, 자전거를 힘차게 달려 추위를 잊으며 수업장소에 도착했다. 한 15분 가량 늦었다. 어? 그런데, 싸부도 없다? 이런..나는 숨찬 폐를 진정시키며 한 켠에 엎드려 휴식을 취했고 십 분이 더 흘러 싸부가 도착했다. " 실은 미리 와 있었는데, 응급 환자가 발생해서요. 병원을 잠시 들러서 일처리 한다고 늦었어요"  

다시 재개한 수업은 첫수업 만큼이나 재미있었다. 하나도 늘지 않았을 거라 지레짐작하고 잔뜩 주눅들어 있었는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의외로 내 몸이 복식호흡을 기억하는 거였다. 조금씩 연습을 거듭하니 아주 자연스레 호흡이 되었고 그 호흡에 맞춰 오카리나에서 도- 레-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맨 처음 싸부를 만났을 때 들었던 그 청아한 소리 만큼은 아니었지만 내 귀에는 최고의 음색으로 들렸다. 게다가 수업 막판에 싸부의 칭찬도 있었다. 곧바로 기고만장해진 나는 복식호흡 끝에 흉식이 조금 들어간다는 조카에 대한 사부의 지적에 마음껏 웃어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그때, 포기하지 말아야겠구나. 오늘 수업 들으러 오기 잘 했다. 매번 덜렁거리고 잘 잊어버리고 곧잘 귀찮아하고 잘 포기하는 나이지만, 오늘의 나는 꽤 괜찮은데? 내가 음악에 소질이 꽤 있나봐? 그간 연습을 빠졌어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꾸준히 연습을 하면 얼마나 잘 하겠어? 으음..달사르..너 좀 짱인듯! ^^   

이런 나, 이런 못난 나이지만,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나. 나를 다독거려가며 다시금 일을 하게 만드는 것도 나이네요. 내 평생 함께 할 동반자인 나. 오늘 옆동네에서 본 포스팅처럼, 나를 꾸짖지 않고, 나를 주눅들게 하지 않고, 나를 좀 추켜주면서 이뻐해줘야겠어요. 가을이라, 오늘 아침 좀 쓸쓸한 느낌이 들었는데 친구님 포스팅 읽고 좀 위안이 되었어요. 시시껄렁하고 길기만 한 이야기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올려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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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1-09-23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모니카를 분답니다.요즘은 오카리나와 우크렐레를 다룰 줄 아는 사람들이 늘고 있더라고요.

달사르 2011-09-24 13:10   좋아요 0 | URL
어머나. 하모니카를 부세요? 와우~ 멋지세요. 남자가 기타를 치거나 하모니카를 불 수 있는 경우 매력점수가 1.5배는 올라간다던데, 노이에자이트님도! ㅎㅎㅎㅎ

우크렐레, 라는 악기도 있나봐요. 악기도 글로벌화되어 점점 더 다양해지는군요. ㅎㅎ 좋아요 좋아.

신지 2011-09-24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는 무협지 장면이 생각났습니다(피리 소리에 끌려서 기인을 만나는. 혹은 소오강호 같은).
댓글이 두 갠데 추천은 하나네요. 노이에자이트님은 이런 글에는 추천을 안 하시는군요.^^

달사르 2011-09-24 13:12   좋아요 0 | URL
하하하. 그르게요. 첫만남은 정말 무협지 비스무리 했어요. 이분이 옷도 개량한복 류를 입고 다니구요. 그때는 머리도 아마 길었다지요. 얼굴은 넙대대한 하회탈이었구요. ㅋ 잘하면 내년에 몽골을 같이 갈 수도 있답니다. 자기 집 식구들과 올해 호주를 가지 못하는 경우엔, 내년에 몽골이라도 떠난다면서 거기서 같이 오카리나를 들판에서 신나게 불어제끼자고 했거든요. ㅋㅋㅋ 그렇게되면 그야말로 무협지의 한 장면이 연출되는 건가요? 하하하하

노이에자이트 2011-09-24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추천을 안 했네요.그래서 짠! 하고 추천! 머여~ 그러는 신지 님도 추천 안 했네~

저는 하모니카 안 불어도 매력이 있는데 하모니카까지...하하하...매력이 넘쳐흐르는 남자? 우크렐레는 하와이 기타예요.특히 우리나라에선 여자들이 많이 배우고 있어요.가수 하림이 연주해서 유명해졌지요.

달사르 2011-09-25 13:13   좋아요 0 | URL
ㅋㅎㅎ 추천수가 많으믄 표가 안 났을텐데 말이죠. ^^ 띄엄띄엄 블럭이라서 단박에 표가 났군요! ㅎㅎㅎ

맞아요, 맞아. 요새는 악기를 하나쯤 다뤄주는 게, 매력 앞에 '치명적'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요. ㅎ 그리하여, 치명적인 매력, 매력이 철철 넘쳐흐르는, 그런 사람이 되는 거지요!

아..그렇군요. 우크렐레 기타 소리를 한 번 찾아들어봐야겠어요.

마노아 2011-09-24 2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사르님 짱이에요! 근사한 오카리나 소리가 연상되면서 아주 행복한 가을밤이 연출되었어요. 진정 그림 같습니다.^^ 저는 추천했어요.ㅋㅋㅋ

달사르 2011-09-25 13:20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엊저녁에 어디선가 놀다가 로타리를 지나치는데 로타리에서 오카리나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앗! 싸부인가? 봤더니, 맞더이다. ㅋ 큰 덩치에 오카리나 불다가 기타 치다가 노래부르다가 정신없더군요. 박수치는 사람들을 유심히 봤더니 싸부 딸내미가 앉아서 좋아라 웃고 있더군요. ㅎ 주말 저녁이면 이런 작은 음악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가족 단위로 나들이 삼아 관람하기도 하는 분위기 있는 시골이랍니다. ^^ (내년엔 저도 저 속에 끼일지도? 우헤헤헤)

추천, 캄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