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플레임 2 엠피리언
레베카 야로스 지음, 이수현 옮김 / 북폴리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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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제이든의 얼굴에서 손을 내리고 오빠와 언니를 보았다.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잃어버리고는 살 수 없는 모두가 여기 있었고, 살면서 처음으로 나는 그들을 지킬 수 있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더 여섯 명의 피가 필요해."

브레넌이 눈썹을 확 올렸고, 미라는 상한 우유라도 마신 사람처럼 코를 찡그렸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라이더? 아니면 지금 살아 있는 라이더?" 제이든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물었다.            p.49


전 세계를 ‘은빛 팬덤’으로 물들인 ‘엠피리언(Empyrean) 시리즈’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포스윙>에 이어 <아이언 플레임>은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다. 큰 판형의 두툼한 양장본인데다 <포스윙>은 662페이지, <아이언 플레임> 1권이 488페이지, 2권이 428페이지라 분권이라 오히려 다행인 분량이다. 평단과 언론으로부터 로맨스판타지를 대중 장르로 승격시키며 장르문학의 판도를 바꾼 시리즈로 평가받은 만큼, 이 시리즈는 '최강 포식자'라는 수식어로 베스트셀러 정상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정식 표지 안쪽에 일러스트 버전 표지도 숨겨져 있는데, 각 권마다 다른 작가의 커버를 통해 주인공 바이올렛과 제이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포스 윙>은 로판계의 쓰리스타 '에나 작가'의 버전으로, <아이언 플레임 1>은 <데못죽> 일러스트레이터 '텡 작가'의 버전으로, <아이언 플레임 2>은 <주인공의 주식을 팝니다> '이랑 작가'의 버전으로 만나볼 수 있다. 비슷한 듯 다른 느낌으로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어 아주 특별한 소장 커버가 되어준다. 아름다운 일러스트 커버와 보드는 한정 수량으로 제공되니, 기왕이면 특별 커버가 있는 버전으로 구매하면 좋을 것 같다. 




400년간 전쟁 중인 이 나라에는 남녀를 막론하고 20살이 되면 강제로 군대에 징집되는 법이 있다.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는 힐러, 서기, 보병, 라이더라는 4개의 분과가 있었고, 드래곤의 선택을 받은 라이더들이 위계상으로 가장 높았다. 그 속에서 무기로 만들어지고 연마되는 그들은 포로미엘 왕국과 그들의 그리폰 라이더들이 벌이는 맹렬한 침략 시도로부터 국경을 지켜야 한다. 당연히 약한 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한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 영리하고, 암기력이 뛰어나 평생 서기가 되기 위해 교육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사령관인 어머니에 의해 자의와는 상관없이 라이더 분과에 지원하게 된다. 오빠와 언니 모두 뛰어난 라이더였는데도, 바이올렛은 선천적으로 뼈가 잘 부러지는 병을 갖고 있어 이곳에서 살아남기가 사실상 너무도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해내고 싶었던 바이올렛은 매 순간 '난 오늘 죽지 않을 거야'를 되뇌이며 버텨내며, 무사히 살아남는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드래곤 라이더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1년 중에서 가장 긴 밤에, 가장 어두운 때가 왔다. 휘감기는 무력감의 무게를 떨쳐내려고 애쓰면서도 뱃속이 뒤틀렸다. "넌 아레티아로 떠났으면 좋겠어." 나는 앤다나에게 말했다. "놈들이 도착하기 전에 떠나. 숨을 수 있는 곳에 숨으면서 브레넌에게 돌아가." "난 필요로 하는 곳에 있을 거고, 그건 네 옆이야." 앤다나가 대꾸했다. 내가 앤다나를 살려두기 위해 무슨 논리를 짜낸다 해도 소용없었다. 우리 둘 다 알았다. 인간은 드래곤에게 명령하지 못한다. 앤다나가 테른과 나와 함께 죽겠다고 결심했다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나는 입술을 지그시 물며 눈이 따끔거리는 기분을 삼키려 애썼다.                 p.347


<아이언 플레임> 2권의 배경은 제이든의 대저택이다. 이곳은 6년 전 반란 후 반은 궁전, 반은 병영이기도 한 곳이다. 은밀하게 재건되고 있는 새 혁명에 바이올렛이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하루아침에 반역자가 된 바이올렛과 라이더들은 위대한 드래곤의 선택을 받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증명했지만, 실제 전투를 치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배워야 할 것들이 아직 많은 상태다. 그렇게 혁명군의 지휘 아래 이곳에서 두 번째 군사학교가 열리게 된다. 하지만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남아 무사히 졸업하는 것만이 목표였던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힘없는 나라들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까지 짊어져야 하기 때문에 그 무게와 의미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와중에 바이올렛은 이 거대한 싸움을 끝낼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인 '보호막'을 올리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데, 과연 그녀는 최초의 여섯 라이더가 쓴 수수께끼를 풀어내고 마법의 장막을 세울 수 있을까. 




<포스 윙>이 바스지아스 군사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면, <아이언 플레임>에서는 군사학교 밖에서 새로운 환경과 위기에 부딪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해 시작부터 다른 지원생들에 비해 불리했던 바이올렛 소른게일은 자신을 노리는 치열하고 무시무시한 암투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오빠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처음부터 신경쓰였던 매혹적인 반역자의 아들 제이든과 기어코 사랑에 빠진다. 숨겨졌던 추악한 역사와 믿었던 친구의 배신 외에도 새롭게 등장하는 난관들이 거듭되는 가운데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켜내기 위한 스펙터클한 여정이 계속 된다. 어둠의 세력 베닌에 대항하기에는 기술적으로도, 수적으로도 열세한 드래곤 라이더들은 과연 이 거대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즈에 41만 개가 넘는 리뷰가 올라와 있고, 뉴욕타임스 66주 연속 베스트셀러, 시리즈 드라마 제작 중, 그리고 각종 사이트에서 선정한 올해의 책이라는 기록이 보여주듯이 이 작품은 독자들을 매혹시킬 수밖에 없는 다양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판타지와 마법, 음모와 액션, 로맨스와 서스펜스를 골고루 보여주며 드래곤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로서도 매력적이고, 작고 약한 한 소녀의 성장 서사로도 흥미진진하다. 판타지, 모험, 서스펜스와 로맨스까지 그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치명적이고 중독성있는 이 이야기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자, 이제 마지막 이야기를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작품인 <오닉스 스톰>도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다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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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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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친하게 지내던 형사가 죽고, 과거가 말을 걸어 왔다. 달리 생각하면 늙은 기자만 경험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결국 자네는 왜 신문기자를 하는 건가?"

술에 취한 나카자와 요이치에게 종종 듣던 말이다. 필생의 대표작이 될 테마를 갖지 못한 기자의 서랍은 '쓰다 만 원고'로 넘친다. 이대로 몬덴은 월급쟁이로 회사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안개 너머 저편을 알고 싶은 사건이 있다. 몬덴은 이것이 다이니치신문 기자로서 마지막 현장 취재가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p.129



1991년 12월 11월 오후 6시 무렵,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초등학교 남학생이 남성 2인조에게 붙잡힌다. 그리고 얼마 뒤, 내일 아침 10시까지 2천만 엔을 준비하라는 범인의 연락이 집으로 온다. 현경은 수사 본부를 세우고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범인을 체포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데, 일본 범죄 사상 유례없는 전개에 직면하게 된다. 다음 날 네 살짜리 아이가 유괴당해 몸값을 요구받았다는 신고가 다른 곳에서 들어온 것이다. ‘아쓰기’와 ‘야마테’에서 동시에 발생한 두 건의 아동 유괴 사건. 먼저 일어난 유괴 사건의 피해자는 무사히 구출이 되지만, 두 번째 유괴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 보였다. 그런데 3년 후 실종되었던 아이가 일곱 살이 된 채 제 발로 돌아온다. 일본 전역이 발칵 뒤집히고, '공백의 3년'에 대해 언론에서 요란하게 떠들어 댔지만, 아이는 굳게 입을 다물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는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당시 경찰 담당이었던 한 신문기자가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의 죽음을 계기로 진실을 파헤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건 당시 2년차 경찰 출입기자였던 몬덴과 관할서 형사로 몸값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시를 하는 역할을 했던 나카자와는 플라모델 애호가라는 공통의 취미로 가까워졌었다. 유괴 사건 이후 지난 30년 동안 두 사람은 셀 수 없이 같이 밥을 먹으며 건담 플라모델에 대한 애정을 함께 나눴었다. 같은 취미를 가진 동지였던 그가 이 세상에 없다는 현실에 서글픔과 허무함을 느끼던 몬덴에게 나카자와의 후배 형사였던 센자키가 말을 건넨다. 그는 한 주간지의 최신호를 건네며, 20년 전 유괴 사건의 주인공이었던 아이가 현재 훈남 인기 화가와 동일인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여준다. 당시 용의선상에 있었던 인물의 남동생이 화가였기 때문에, 유괴 피해자가 사실주의 화가가 되었다는 점에 신경 쓰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효가 이미 지난 지 오래된 사건이라 경찰이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몬덴을 찾아온 것이었다. 





몬덴 지로라는 개인의 렌즈를 벗고 신문기자의 렌즈를 통하면 보이는 것도 있다. 가나가와 동시 유괴 사건은 엄연한 범죄였다.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자 세상에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범행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들에게 끌려간 어린 아이들의 공포와 절망은 확실히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불행이다. 형사들이 시효로 무기를 빼앗긴 지금이야말로 펜을 든 저널리스트가 미해결에서 '미(未)'의 글자를 떼러 갈 때다. 

"쓸 겁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p.343


미해결 사건이라면 보통 '범인은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춰지는데 이 사건에서는 더욱 큰 미스터리가 있었다. 그것은 공백의 3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라는 미스터리였다. 네 살부터 일곱 살까지 3년간, 누군가 아이를 데려가 키웠다. 그런데, 남의 집 아이를 유괴해 딱 3년만 기르고 다시 돌려보낸다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료는 자신의 부모가 경찰에게 의심받고 여러 주간지에 진위를 알 수 없는 기사가 실려도 침묵을 지켰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던 것인지에 대해 전혀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범인이 잡힌 것도 아니었고, 피해자가 입을 열지 않으니 사건의 진상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없었다. 그리고 이제 30년간 묵혀 있는 진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월급쟁이 생활의 끝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제는 더 이상 취재 전선에 뛰어들 수 없었던 한 기자의 인생 마지막 취재는 과연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될까. 


오래 전에 국내에 소개되었던 <죄의 목소리>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시오타 타케시의 신작이다. <죄의 목소리> 역시 일본 쇼와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이라 불리는 실제 사건을 소재로 쓰인 작품이었다. 31년 전 미해결 사건에 감춰진 삶을 그리며 논픽션을 능가하는 현실감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나온 <존재의 모든 것을> 역시 실재를 연상케 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시오타 타케시는 이 작품을 위해 경찰 관계자를 만나고, 당시의 지도를 구해서 동선과 장소를 일일이 되짚으며, 철저하고 집요한 취재를 했다고 한다. 신문기자 출신이라는 이력과 특유의 필력으로 탄탄한 구성과 압도적인 리얼리티를 보여주며 '질감 없는 시대에 실재를 찾아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끼게 해주는 작품을 그려냈다. 일반적인 미스터리와 달리 범인의 정체보다 범죄 주변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자극적인 서사가 아니라 차곡차곡 쌓아가는 존재에 대한 사유가 더 돋보이는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미스터리물은 가볍다는 편견을 넘어서 묵직한 이야기의 힘을 보여줄 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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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 없는 유전자 - 너와 내가 생겨난 40억 년의 진화 이야기
애덤 러더포드 지음, 안주현 옮김 / 다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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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의 원제는 ‘Where are you really from?’이다. 당신은 정말 어디에서 왔나요? 라는 말은 단순히 어디 출신이냐는 뜻도 되겠지만, 더 멀게는 우리 인류의 기원에 관한 문제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짜 어디에서 왔을까? 


대부분 알고 있듯이 우주의 시작은 138억 년 전의 빅뱅에서부터 이다. 그리고 45억 년 전 지구가 형성되고, 초기 생명체가 등장하며, 첫 인류가 탄생하기까지의 생명의 기원은 그 자체로도 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지만,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진화론'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느낌부터 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여기, 굉장히 쉽고 재미있게 유전자와 진화, 우주의 탄생과 생명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있다.  




영국의 과학자인 애덤 러더퍼드는 인기 과학 팟캐스트를 운영하며 대중에게 과학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연구와 업적에 대해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놀라운 성과'라며 극찬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이번에 청소년은 위한 진화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재미있는 것은 단순히 진화와 유전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고정 관념과 차별에 대해서도 함께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 집단 사이의 차이를 우리가 어떻게 오해하고 있는지, 그로 인해 어떤 나쁜 결과가 생기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실제로 이 책의 제목인 ‘Where are you really from?’이라는 말은 유럽이나 미국에 사는 유색 인종들이 자주 듣는 질문이라고 한다. 백인과 유색 인종의 사회적인 위치와 차이를 규정짓는 편견이 담긴 질문이었던 것이다. 




애덤 러더퍼드는 사실 피부색과 머리 모양 등의 신체적 특징으로 인종을 구별하는 것은 전혀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피부색은 우리의 능력이나 행동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모 사피엔스가 존재하기 수십만 년 전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아프리카 인류도 다양한 피부 색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유전적 다양성은 아주 작은 부분일 뿐, 모든 인간은 99퍼센트 이상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그러니 인종적 구분이나 차별은 '과학적 인종주의' 시대에 던져버려야 할 사회적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과학적 접근으로 편견에 맞설 수 있다니, 뭔가 속이 시원하면서도 신선했다. 이 책의 국내 번역본 제목이 괜히 '편견없는 유전자'로 지어진 것이 아니었던 거다. 원제와는 다른 제목이지만, 참 잘 지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와 지구의 탄생, 생명의 탄생, 선사 시대의 진화, 영장류와 털복숭이 인류의 등장, 그리고 약 50만 년 전 아프리카에 나타난 인류의 모습까지 인류의 선사 시대 기원을 살펴본 뒤에는 인류의 역사적 기원으로 넘어간다. 이 부분부터는 본격적으로 유전학이 등장하는데, 너무도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다, 흥미로운 사례와 질문, 간단한 그림들로 이해를 도와주고 있다. 각 챕터마다 코믹한 여섯 컷 만화를 통해 주요 내용을 정리해주는데, 덕분에 지루할 틈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주요 용어들을 별도로 정리해두었다. 


진화와 유전자라는 어려울 수도 있는 개념을 복잡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풀어 설명하고 있는 책이라, 청소년들이 읽기에도, 해당 주제에 관심있는 성인들이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아보고 싶다면, 혹은 진화와 유전자에 관해 쉽게 풀어쓴 책을 찾고 있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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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도 됩니다 - 무례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한 연결에 대하여
김민섭 지음 / 어크로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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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정함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다'라는 말은 공허하지도 않고 유약한 사람들의 전유물도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 이런 말을 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세상이 규정한 연약한 선함의 모습은 사실 없다. 당신의 삶의 방향은 잘못되지 않았으니까, 어디선가 같이 걷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길 바란다. 무정도 유정도 아닌 다정을 기억하면서 지금처럼 용기 있게.            p.18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개된 ‘김민섭 씨 찾기 프로젝트’에 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저런 동화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니 신기하구나 싶었다. 해외 여행 티켓을 구매하고는 갈 수 없게 되어 대신 자신과 여권의 영문 이름이 같은 사람을 찾았고, 그 프로젝트는 결국 '93년생 김민섭 씨 후쿠오카 보내기 프로젝트’로 이어져 278명이 약 254만 원을 후원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작고 사소한 착한 일이 선한 연대가 되어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연결시킨 것이다. 아무 관계가 없는 완벽한 타인의 처지에 공감하고 그를 돕기 위해 움직이기도 하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다정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이 프로젝트 이후로 이전보다는 조금 더 타인을 의식하면서 살게 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으로 인해 행복한 누군가를 바라보면서,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던 것이다.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라는 마음을 통해 자신이 사회적 존재임을 자각할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착한 일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이 사회의 문화와 제도를 바꾸어나가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편법으로 강사를 해고하는 대학,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 무심한 사업장, 점점 AI로 대체되는 사람들의 일자리... 갈수록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다정한 기술 사회가 도래할 거라고 믿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정함을 읽지 않는 것, 누군가를 인간성을 상실할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 않는 것이 우리 모두를 조금 더 인간다운 삶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이 책을 쓰고 엮는 동안 다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다. 나름의 답을 하자면, 그건 나와 다른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의 처지가 되어 사유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잘됨을 위해 움직이는 행위이다. 그러한 선택은 어디에서 소멸되지 않고 누군가를 통해 연결되고 확장되어 반드시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 우리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의 실체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조금 더 다정해야 한다. 정확히는 다정한 선택을 해나가야만 한다.             p.231


언젠가부터 '다정함'이 우리 삶의 화두가 되었다. '다정'이라는 키워드로 인터넷 서점에 검색을 해보면 꽤나 많은 책들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선두에 있었던 것이 아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책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적자생존'의 통념에 반기를 들어 진화의 승자는 최적자가 아니라 다정한 자라고,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말하는 이 책은 다정함이 어떻게 인류의 진화에 유리한 전략이 되었는지를 밝히면서 매우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이 책이 진화인류학의 관점에서 다정함에 대해 말했다면, 이후에 만난 <무엇이 우리를 다정하게 만드는가>는 뇌과학의 시점으로 인간의 협력과 이타주의에 대해 풀어낸 책이었다. 심리학, 신경과학, 뇌과학적 메커니즘을 기반으로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이타주의에 관한 고정관념을 깨고 공감과 다정함의 실체를 파헤치며 인간의 이타적 행동 속에 존재하는 일정한 규칙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그에 비해 김민섭 작가의 책은 에세이처럼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사회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어 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혐오와 폭력, 차별, 무관심이 만연한 사회 속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정함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해주는 책이라니...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도 들었고 말이다. 특히나 이 책은 각자도생의 한국 사회에서 작가, 대리운전 기사, 동네서점 주인, 출판사 대표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살아내온 작가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바로 지금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더 시사하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개인의 일상과 선한 영향력을 분리하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을 배워보고 싶었고, 혹시 내가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지 고민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다정함이 다음 세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될 것이라고, 나아가 다정함이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지능의 영역이 될 것'이라는 작가의 말을 믿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착한 일이 손해 보는 일이 되지 않는 세상, 다정해야 살아남을 수 있구나, 다정해야 잘될 수 있구나, 하고 감각하게 되는 시대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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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 할머니의 인생 수업
전영애 지음, 최경은 정리 / 문학동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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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문학자가 되려고 독문학과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외국문학을 했기 때문에 특별한 득이 있었습니다. 혼자서 외국어를 배우느라고 절절맸지만, 그냥 언어를 하나 배운 게 아니고 어느 사이 세계 하나가 제게로 왔더군요. 낯선 세계가 하나 열려왔어요. 엄청난 작가들을 읽게 됐고, 거기서 끝이 아니라 온갖 학계에 이리저리 가봤더니 같은 작가를 공부하고 읽은 사람들은 또 바로 다 친구가 돼서 너무나 좋은 친구들이 세계에 널려 있고요.               p.16



<시인의 집>,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등의 책을 통해 만나온 독문학자 전영애 교수의 신작이다. 예전에 다큐인사이트라는 방송을 통해서 여백서원과 일흔두 살의 노학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 1만 제곱미터의 뜰과 서원을 홀로 가꾸며, 여전히 괴테를 연구하며 괴테의 모든 저서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계신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학자로 50년을 살아온 그의 삶이 궁금해 책들을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는 '괴테 할머니'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으로 돌아왔다. 




평생을 학문에 매진한 학자지만, 근래에는 유튜브 채널 ‘괴테 할머니 TV’를 통해 소개된 소박한 일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영상 들을 골라내어 글로 만든 것이다. 낮에는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의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며 잡초를 뽑고, 밤이면 작은 등불 하나에 의지해 괴테의 글을 번역하는 삶은 그 자체 만으로 어딘가 위로가 된다. '이제 책 같은 건 없어도 살 듯한 세상이지만, 저는 책이 있어 산 것 같습니다'라는 그의 말을 기억한다. 이 책에서는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내 옆의 좋은 이웃만 만나는 게 아니라 몇백 년 전의 어느 누구까지 만나는 일입니다. 엄청난 일이지요.'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 본다. 사람은 늘 배워야 한다고, 살아 있다면, 계속 공부해야 한다는 그의 삶을 대하는 자세도 본받고 싶다. 그가 말하는 공부란 책 보는 것뿐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대하는 자세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저에게 있어서 도서관의 '망'입니다. 어디든 제가 가서 앉아 있는 도서관이 있고, 또 가끔씩 어떤 집들에서 살게 되는데, 그 집들에서는 그 집들의 이야기가 그 주인과 얼마만큼씩 다 연결되고, 또 그 연결이 주는 압도적인 느낌 때문에 거기서 또 글이 쓰이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지도에서 불이 켜지듯이, 세계 여기저기에서 작은 방들에 불이 켜집니다. 왜 그 방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느껴졌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단지 일상생활 속이 아니고 어딘가로 떠나서,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생각하고 느끼고 쓸 수 있던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간과 공간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그렇게 빛나는 장소들이 있어서 어떤 삶의 토대가 단단히 놓일 수 있지 않았나, 이런 생각마저 하곤 합니다.                  p.57


괴테는 <파우스트>를 자그마치 60년 동안 썼다는데, 저자는 <파우스트>를 45년을 두고 읽었다고 한다. 책이 낱장으로 흩어져 고무줄로 묶어두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세월만큼 얼마나 작품을 깊이 이해하셨을까 감탄스러웠다. '평생을 걸고 옮겨 제대로 전하고 싶은 작품이 세상에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할 따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천천히 공들이는 일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정말 오래 전에 읽었던 <파우스트>를 다시 꺼내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의 삶과 괴테의 문학들이 거의 하나가 된 듯한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괴테의 글을 만나게 되니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파우스트>를 다시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파우스트>를 새롭게 구매했다. 오래 전에 읽었던 버전을 다시 찾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 새로운 버전으로 다시 시작해보려고 말이다. 사실 별돌책 굿즈인 우주 벽돌 문진을 받고 싶어서 산 것이기도 하지만... 하핫.. 현대지성 클래식 버전으로 구매해 거장들의 컬러 명화와 함께 읽는 무삭제 완역본이다. 아마도 조금은 수월하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고대해본다. 결코 이해하기 쉬운 작품은 아니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한때는 가까이, 한때는 또 멀리 두기도 하면서 천천히 읽다보면 세상과 사람에 대해 더 넓은 시야가 트일 거라'고 믿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맑은 사람들을 위한 책의 집'이라는 여백서원에 언젠가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공간이라고 하니, 시간을 내어 가보고 싶다. 경기도 여주면 서울에서 그렇게 많이 먼 거리도 아니니 말이다. 특히나 여백서원과 괴테마을의 정원은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꾸는 공동체 정원이라는 점이 더 궁금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들고 와 한 귀퉁이에 심어 주인이 되고, 그러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도로 설계했다고 하니 말이다. 


저자는 여백서원에 더해 ‘괴테마을’의 조성에 힘쓰고 있다. 괴테가 어린 시절을 보낸 프랑크푸르트의 집을 본떠 지은 ‘젊은 괴테의 집’과 괴테가 바이마르에 가서 처음 살던 작은 ‘정원집’도 완공되었다고 한다. 바이마르의 정원집처럼 건물 벽에 장미와 포도를 올리고 나무 시렁을 빼곡히 박아놓았다고 하는데, 연못 뒤의 숲에는 오솔길을 따라 노년의 괴테의 지혜가 담긴 시구들을 담아 작은 판에 새겨둘 생각이라고 한다. 또한 짓지 못하게 된 괴테하우스 본관 터에는 메밀 씨앗을 20킬로나 뿌려두었는데, 혹시 이 집이 지어진다면 그 뜰에 온실도 하나 만들 거라고 한다. 그 안에 괴테가 <식물변형론>에서 다루고 있는 식물 70가지가 들어가게 될 예정이라고 하니, 언젠가 완공될 괴테하우스의 본관도 기대가 되었다. 눈감기 전까지 계속 공부하는 사람이었던 걸로 유명한 괴테처럼, 지금도 공부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다는 노학자가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인생 수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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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5-01-1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테마을 좋았어요.^^
이젠 여백서원을 가려면 주말에 가야해서 괴테 마을에 다녀왔는데,,,, 진열되어 있는 책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풍경도 감상하고 왔습니다.

피오나 2025-01-12 18:22   좋아요 1 | URL
어머낫. 괴테 마을에 다녀오셨다니 너무 부럽습니다! >.< 저도 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