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다 하다 앤솔러지 4
김엄지 외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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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애실은 말하고 들었다.

그것을 처음 배우는 사람처럼. 거기에서 즐거움과 유쾌함을 이제 막 발견한 사람처럼. 맞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녀는 기뻤다. 자신에게 위로와 위안을 주는 이 소통이.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것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현서가 자신과는 상반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 김혜진, '하루치의 말' 중에서, p.49


애실은 어머니가 발목이 부러져 깁스를 하게 되자, 연차를 내고 고향집에 내려간다. 주말마다 어머니를 만나러 가다 보니 그곳에서 몇 달 지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다 고향으로 돌아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애실은 어머니가 20년 넘게 꾸려 온 이불 가게를 도맡아 하게 된다. 애실은 사는 동안 그래 왔듯 큰 기대 없이, 욕심 없이 가게를 지켰다. 그러다 이불을 사러 온 손님 현서와 이야기를 나누고, 점점 가까워진다. 우정이 싹트게 된 거였다. 현서는 애실보다 다섯 살이 많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그녀와의 대화가 애실의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두 사람은 함께 저녁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점점 더 친밀해진다. 하지만 얼마 뒤, 현서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진다. 


김혜진 작가는 <하루치의 말>이라는 이 작품을 통해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려 애쓰고, 적절한 반응을 건네는 것까지 포함'된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누군가와 귀 기울여 듣고, 말하는 행위라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듣는 일>은 절대 수월하지 않다고 말이다. 애실은 현서의 실체와 마주하고 나서 생각한다. 살아오며 만나 온 사람들, 마음과 시간을 나눈 사람들, 한순간 멀어진 사람들, 이유도, 까닭도 묻지 못하고 끝나 버린 관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리고 다 기억나지도 않는,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한다. '듣기'라는 것이 단순히 소리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작품이었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사이의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그 동안 가까운 이들에게 했던 말들과, 내가 들어왔던 그들의 이야기들도 이런 거였다면 참 슬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에 수록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듣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일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는 거예요, 그거?」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점점 줄어 가는 통장 잔고와 막막한 앞날이 머릿속을 스쳤고, 순간 집중력이 흐려져 날아오는 공을 놓쳐 버렸다. 흙바닥 위를 데구루루 굴러가는 공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하기 싫은 것도 참고 하는 게 어른이잖아요.」

나는 공을 주우러 가며 답했다.

「그래, 그게 어른이지. 그런데 싫은 것도 정도가 있는 거야. 너무 싫으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 서이제, '폭음이 들려오면, 중에서, p.130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열린 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네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라는 동사를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그 네 번째 책 <듣다>에는 김엄지, 김혜진, 백온유, 서이제, 최재훈 작가가 참여했다. 이번 시리즈는 다섯 편의 이야기들이 고루 재미있었다. 가장 분량이 많은 백온유 작가의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작품은 생각지도 못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서사가 대단히 흥미로웠고, 김혜진 작가의 <하루치의 말>은 '듣다'라는 동사를 가장 일상적으로 와 닿게 풀어낸 이야기였고, 서이제 작가의 <폭음이 들려오면>은 일상 속 소음에서 시작해 '제대로' 듣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다섯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앤솔러지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어떤 작품은 잘 읽히고, 어떤 작품은 잘 와닿지 않고, 또 어떤 작품은 공감되고, 어떤 작품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읽게 되니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같은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장점은 외관이 매우 아름답다는 것이다. 반투명한 트레싱지로 된 표지가 아름다운 이 시리즈는 책배와 위, 아래에 프린트가 함께 되어 있어 책의 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시리즈별로 한 권씩 모으기 딱 좋다.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안다>도 벌써 출간이 되어 곧 읽어볼 예정이다. 마지막 작품 <안다>에는 정이현, 조경란 작가의 작품도 포함되어 있어 더욱 기대 중이다. 어서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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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럽다는 말 - 진화의 눈으로 다시 읽는 익숙한 세계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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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연에서 '답'을 찾으려는 풍조 속에서 진화 과학은 주목받고 있다. 우리가 왜 이런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기원을 알고 싶다면 자연과 그 진화사를 보라! 이 웅장한 메시지에 많은 이가 끌리는 이유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원을 통해 '자연스러운' 인간성의 조건을 이해하고, 또 혹자는 회복하고자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스러움이란 대체 무엇인가?           p.9


우리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일상에서 자주 사용한다.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나는 일이야, 아빠가 육아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아. 여자는 이래야 해. 남자라서 그런거야... 등등 자연스러운 것이 인간의 본성에 가깝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은 항상 좋고, 정상적이고, 또 필연적이어서 우리가 꼭 지키고 따라야만 한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했을 때, 무엇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진화 인류학자 이수지 박사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자연 그 자체와 구별된다고 말한다. 사람의 어떤 행동이나 특성을 자연스럽다고 할 때 전달되는 긍정적 가치와 달리, 자연은 순수하지도, 편하지도, 또 쉽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이 좋다고 외치는 것이 '자연 친화'라면, 그것은 철저히 인간 중심적인 의미에서만 그렇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자연에 대한 동경은 우리가 믿고 싶어 하는 '자연스러움'을 확인하려는 바람에 불과하다고 말이다. 현재 독일 막스 플랑크 인구학 연구소에서 현대 인류의 출산 및 생식 행동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는 생물학, 생태학, 신경 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넘나들며 '본성'이라는 이름 아래 차별과 낙인이 정당화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연을 인간 행동의 근거이자 정답으로 삼을 때, 자연은 오히려 오류의 언어가 된다는 말이 가장 흥미로웠다. 저자는 그에 대한 사례로 “모든 생명은 어미가 새끼를 돌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동성애는 자연 법칙에 어긋난다.”라는 식의 주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자기가 옹호하는 것,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에 부합하는 사례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확증 편향 때문이다. 




인간 본성의 서사도 비슷하게 작동한다. '자연'과 '자연 아닌 것' 사이의 대치 구도를 상정하고, '자연'에 가까운 어디쯤에서 인간 행동의 원형이 발견된다고 가정한다. 우리 행동은 그 원형에 충실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렇지 않으면 ─ 즉 부자연스러우면 ─  적대시된다. 싸우지 않는 남자, 아이를 키우지 않는 여자, 동성을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성전환 수술을 한 사람이 그러하리라. 본성에 충실한 결과 벌어진 전쟁은 더 이상 놀라울 일이 아니다. 이 모두가 '자연'과 '자연 아닌 것'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환상에 기반한다.            p.135~137


지난 해 세계 인구가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치에 도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게 2024년에 세계 인구는 81억 명에 도달했다. 그리고 또 한국이 단일 국가로서는 가장 낮은 출산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0.75명에 이르렀다. 당분간 세계 인구는 매해 신기록을 경신하며 21세기가 끝날 때까지는 100억을 향해 더 늘어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도 빠르게 인구 감소 시대로 들어서고 있다. 한쪽은 '너무 많음'을, 다른 쪽은 '너무 적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사실이 얼핏 모순되어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인구'를 일정한 시공간을 점유하는 개체들의 군집이라고 했을 때, 그 집단의 경계를 어디에 긋는지에 따라 다른 현상이 펼쳐질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한국인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계 시민이기도 하기 때문에, 너무 많고 또 너무 적은 문제를 하나의 몸으로 동시에 사유해야 한다. 물론 한국 사회는 저출생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 하지만 말이다. 


진짜 문제는 인구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자원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방식과 거기에 깃든 불평등의 구조다. 이 책은 '너무 많다'라는 말에 숨은 우생학적 동기에 대해 짚어보고, 기후위기와 환경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며 우리가 천착해야 할 문제는 인구가 아니라 이미 도래한 기후 위기라는 난제를 함께 풀어 나가며 100년 뒤를 맞이할 사람을 키우는 일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제대로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꼈다. 인간이 언제부터 ‘자연’을 도덕의 근거이자 행동의 잣대로 삼아 왔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게 좋다'는 말 아래에 우리가 놓치고 있던 통념에 대해서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럽다.”라는 말 뒤에 숨겨 온 믿음과 편견을 부수고, 제대로 된 단어 ‘자연스러움’을 다시 배우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진화를 생물학의 관점이 아니라 인류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것부터 새로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책이라기 보다 인문학책에 가깝다는 느낌이었는데,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 아래 이렇게나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었다는 걸 몰랐던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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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식물의 문화사
마이크 몬더 지음, 신봉아 옮김 / 교유서가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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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내식물은 몇 년씩, 때로는 몇십 년씩 우리와 동거한다. 어떤 식물은 우리의 배우자보다 오래 생존하고, 여러 세대에 걸쳐 한 가정 내에서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식물을 구입하고 교환하고 때로는 훔치고 선물로 주고받는다. 이러한 실내식물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는 우리 삶에 기쁨과 풍요를 더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르는 식물들은 수세기에 걸친 식물채집 역사의 잔해들로, 대부분 생리적으로 강인하고 집 주인에게 외관상 매력적인 종들로 선별 구성되었다.             p.24~25


밝은 햇빛과 무성한 녹색 식물이 인간을 낙관적으로 변하게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우리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실내로 자연을 들여오는 것에 관심이 많아진 것 같다. 플랜테리어가 유행하고, '반려식물'이라는 신조어가 생기고, 자연환경과 실내 환경이 하나의 장소에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는 인테리어까지 있으니 말이다. 식물을 키우는 사람을 가리켜 '식집사'라고 하는데, 이들에게 식물은 단순한 소품을 넘어 가족 구성원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이렇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식물이든, 방치되어 잎이 누렇게 시든 식물이든 실내식물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 




이 책은 '실내식물의 역사부터 시작해 오늘날 실내식물의 입지와 실내식물 시장의 규모, 실내식물에 대한 연구와 기술의 발전, 실내식물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 그리고 식물의 인류의 공진화까지 다루고 있다. 실내식물의 역사가 우리의 생활방식이 변해온 역사와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로웠다. 이국적인 열대식물이 세계 곳곳의 실내환경으로 그 서식지를 넓혀나간 이야기부터 지금의 신래식물을 있게 한 육종가들의 연구와 기술의 발전, 오늘날 식물을 활용한 실내조경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빅토리아시대의 유리 장식품인 워디언 케이스, 그리고 유전학과 건축학의 절묘한 만남에 이르기까지 식내 식물의 세계를 탐험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분리된 실내에 머무는 시간이 과거 어느 때보다 길어진, 도시의 인간미 없는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원을 소유한 사람들은 줄어들고, 부동산을 임차하는 사람들은 보통 정원을 가꾸는 데 시간을 쏟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실내식물은 반짝이는 녹색 생명에 대한 인간의 내재적 욕구를 반영한다. 실내식물은 대부분 열대지방이나 아열대지방에서 유래한 것이다. 관엽 식물이라 불리는 사계절 내내 초록 잎을 볼 수 있는 식물들이다. 그냥 식물 몇 개 갖다 놓은 게 전부인데도, 그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은 그 변하지 않는 초록컬러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식물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의 차이는 생각보다 큰데, 그 차이는 식물의 생명력에서 온다. 그야말로 초록이 주는 힘이다. 




실내식물의 전통적인 역할, 다시 말해 장식물로서의 역할은 건물의 디자인과 물질대사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는 집안 공기의 질을 개선하려면 왕성하게 잘 자라는 식물을 아주 많이 키워야 하며 이와 관련된 건축적, 공학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패트릭 블랑의 그린 빌딩과 도시 협곡이라는 비전이 더해지고 도시 바이옴의 생활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짐에 따라, 우리는 식물이 방들을 연결하고, 건물을 뒤덮고, 둘둘 말린 채 풍경 속으로 스며드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다. 이것은 진정한 삼차원의 관계이다.             p.147~149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제일 많이 보이는 포인세티아라는 식물이 있다. 잎이 빨간색이어서 그 자체로 크리스마스 트리느낌도 나고, 화사한 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식물이다. 오래 전에 포인세티아를 두 개 데려온 적이 있다. 식물을 꽤 많이 키워왔기에 포인세티아가 데려온 지 며칠 만에 시들어 버려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아니, 절화도 아니고 뿌리가 있고 흙에 심어진 식물인데 왜 이러지 싶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포인세티아는 실은 가지를 잘라 화분에 꽂아둔 것으로 몇 달 안에 폐기 처분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장을 발견했다. 애초에 실내식물로서 키울 수 없는 식물이었던 셈이다. 이런 식으로 식물을 이백 종류 넘게 키워본 식집사로서 나름 식물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자부했었는데, 내가 몰랐던 정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어 더 흥미진진했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삽화와 이미지가 굉장히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어, 굉장히 퀄리티가 뛰어나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각종 식물들의 사진부터 수채화, 목판화 등 시대별 그림들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식물에 관한 작품들과 식물 인테리어를 엿볼 수 있는 사진, 그리고 식물 연구에 관한 각종 자료까지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며 정작 실내식물의 식물학적 역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실내식물이 수동적인 부속품이 아니라 우리 생활공간의 생태와 상호작용하는 생명체라는 점과 실내식물이 가족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종종 개인적인 역사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는 부분에서 밑줄을 그으며 매우 공감했다. 식물이 과거, 현재, 어쩌면 미래와의 연결고리가 될 수도 있다는 관점이 너무도 현실적이면서도 다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거실과 창가와 사무실 선반에 두는 흔하고 평범한 식물이 우리 주변의 일상 환경에서 가장 해로운 독소를 일부 흡수해준다고 한다. 현대인들의 만성 피로증후군이 자연의 결핍에서 온다고 하는 주장도 있다. 지금 당장 우리 주변에 식물과 자연을 두는 삶을 경험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숲 속을 걸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면역력이 강화되고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사실 바쁜 일상 생활 속에서 산책을 즐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자연환경과 실내환경을 결합시키는 거다. 실내 공간에 식물과 적절한 조명을 설치하고 최소한의 노력으로 돌보면서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를 즐길 수 있다면 한번 해볼 필요가 있다. 자, 아름답고 매혹적인 실내식물의 세계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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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교유서가 시집 1
소후에 지음 / 교유서가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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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댔다. 하얀 속살 같은 것도 둥근 씨방 같은 것도 없이 썩을 사람. 잠에 곯아떨어진 남자의 머리맡에서 여자는 왜 나를 속였어, 너는 다 거짓이야. 낮고 스산하게 말하며 사과씨를 투, 투 뱉어댔다. 남자의 볼따구니에 붙은 사과씨들이 꿈틀댔다.              - '나로 말할 것 같은 사과' 중에서, p.60


교유서가에서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가 새롭게 시작되었다. 소후에 시인의 첫 시집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를 받았는데, 책이 너무 예뻐서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도 바로 구매해 버렸다. 시인이 직접 찍은 사진이 담긴 폴라로이드 북마크도 받을 수 있는데, 시집과 너무 잘 어울리는 북마크라 좋았다. 심플한 듯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표지 이미지도 마음에 들었지만, 더 좋은 건 내지에 표지 색과 같은 컬러의 그라데이션을 준 부분이다. 밑줄 긋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붙이며 들고 다니면서 계속 읽고 싶은 예쁜 시집이다.


'타원의 밤'은 일상과 환상의 경계가 미묘하게 걸처져 있어 더 와닿았던 것 같다. 온갖 빚으로 가득한 퍽퍽한 일상 속에서, 아무때나 일기를 쓰고 메개 밑에 숨기고, 또 몰래 해진 일기장을 또다시 들추며, 다리가 흔들리는 밥상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허겁지겁 밥을 먹는 하루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의 후반부에 이르면 '우주가 창을 열면 눈이 시릴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요즘 빠져 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지긋지긋한 가정 속에서 슬픔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두운 밤이 깊도록 부풀어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우리의 반복되는 일상 속 희망처럼 느껴졌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으며 풍경을 묘사한 시 '비도덕적 거울'도 마음에 남았다. '책이 거울이었다면 반복해서 읽었을까', 삶을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삶을 놓고 싶다는 말로 오독했다', 는 문장들과 다리를 절뚝이며 열차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에게 종이를 한 장씩 올려놓는 남자를 끔찍한 것을 본 것마냥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현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내 눈에 일그러진 남자의 표정이 계속 남았던 것은 언젠가, 누구나 한번쯤 경험해 본 적이 있지 않았을까. 




땅에 떨어진 식빵 위로/구름이 지나가고 있다//

슬리퍼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처럼/철거 예정인 주택 골목 안에 덩그러니 놓인//

누구 없어요?/누가 있었더라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오래도록 머물 수 없었던 마음들은/텅 빈 제집 담벼락에 스프레이로/이름과 전화번호를 남겨두었다                  - '희고 말랑한 문' 중에서, p.131


이 시집에 수록된 마흔다섯 편의 시들은 ‘문 NO.365’에서 ‘문 NO.12', ‘문 NO.24', 그리고 '문 NO.∞’로 끝이 난다. 우리가 살아 가는 일년 사계절의 시간처럼 보이는 365에서 시작해 점점 줄어들어다가 결국 무한대 기호로 마무리가 된다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문학평론가의 해설도 있고, 시인의 집필의도도 있겠지만, 결국 시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시를 읽는 이의 마음에 달린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면 문을 열고 우주로 향하는 무한대의 시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일상적 시간들이 시의 단어와 문장들 속에 담겨 있지만, 시공간을 조금 더 넓혀 본다면 우리의 사고를 무한한 우주로 확장해도 좋지 않을까. 


정제된 단어와 은유로 빚어낸 함축적인 문장들이 시라면, 그 사이의 행간에서 끊임없이 무언가 자라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풍성한 시간을 선사해준 시집이었다. 시집 읽기의 가장 좋은 점은 뭐랄까, 마음껏 오독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이다. 소리내어 읽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언어의 리듬도 좋고, 분명 일상 속에서 마주할 법한 풍경인데도 시인의 언어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되는 듯한 느낌도 참 좋다. 이 시집의 제목에 '우주'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어서 시들을 읽기도 전부터 마음에 들었는데, 우주란 그 무엇에도 비유할 수 있고, 그 어떤 것도 은유할 수 있는 거대하고도 무한한 존재이니 말이다. 누구나 자신만의 한 뼘 남짓한 우주를 가지고 있다. 그 존재를 어떻게 키우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푸른 사과처럼 무사한 세계에서, 불안정하더라도 단단한 마음으로, 닫힌 문에 귀를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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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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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멍청한 짓을 하게 되리라는 걸 알면서도 그냥 저지르게 되는 느낌 알아?" 외위스테인이 마지막으로 담배를 빨아들이며 물었다.

해리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서 껐다. "전에 생쥐가 곧장 고양이에게 걸어가서 죽는 걸 봤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도 모르지, 자기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없나?"

"일종의 충동이겠지. 우리는, 아니 적어도 어떤 사람들은 벼랑 끝에 끌리나 봐.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살아 있는 느낌이 강렬해져서라더군. 하지만 빌어먹을, 모르겠어."                p.160


부동산 재벌 ‘뢰드’가 개최한 파티 이후 실종됐던 여성들이 차례차례 사체로 발견되기 시작한다. 서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자 두 명 가운데 한 명이 살해되고 한 명이 실종된 일이 우연일 수 없었다. 하지만 두 여성이 같은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 말고는 전혀 단서가 없었고, 자연스레 뢰드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가 된다. 살인사건의 범인 80퍼센트는 희생자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던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뢰드는 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결백하다는 걸 보여줘야 했고, 따로 수사할 사람을 고용하기로 한다. 최고 일류가 필요했다. 


그렇게 로스앤젤레스의 허름한 술집에서 매일 술잔만 기울이던 해리 홀레가 다시 오슬로로 돌아온다. 이제 경찰이 아닌 해리는 사설탐정이 되어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해리는 죽음을 준비하는 심리학자, 비리 경찰, 택시 기사, 전직 형사가 모여 수사를 시작한다. 끝없이 추락하고 부서지고 상처받아온 해리는 과연 이번에도 범인을 찾고 의뢰받은 일을 해내 한 여인을 구해낼 수 있을까. 



전작인 <칼>에서 요 네스뵈는 차갑고도 무자비하게, 한치의 자비도 없이 날카롭게 해리의 행복을 난도질해버렸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는 언제나 소중한 뭔가를 잃어 왔고, 그러면서 점점 어둠에 잠식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왔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코 최악의 비극이 벌어졌었다. 해리 홀레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죽음을 맞는 것으로 충격적인 포문을 열었던 전작을 기억한다면, 그 이후의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작품 <블러드문>에서 해리는 오슬로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술에 취한 채 등장한다. 신용카드는 한도 초과였고, 텅 빈 통장 또한 그가 알거지라는 걸 보여주었다. 한 푼도 남지 않을 때까지 마셔대는 게 그의 목적이었다. 이제 남은 돈도 인생도 미래도 없었고, 남은 것이라고는 모든 것을 마무리할 용기 혹은 비겁함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가 머무는 숙소 방의 매트리스 아래에 낡은 베레타 권총이 있었다. 노숙자에게 25달러를 주고 산 물건이었다. 총알은 세 발 있었고, 이제 그의 결정만 남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나이든 여인이 술집에서 그에게 말을 건네왔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녀가 실종되었다거나 납치되었다는 소식은 없었다. 그는 두 사람이 무엇을 공유했는지, 무엇이 그들을 연결했는지 깨달았다. 주차장에서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 발생한 외부의 위험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루실에게서 어머니의 모습을 본 것도 아니었다. 그녀는 교실 문간에 서 있던 여자, 그가 다시 구할 기회를 얻어낸 병원 침대 속 여자가 아니었다. 외로움이었다. 그들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지구에서 사라질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p.468


이번에 더 이상의 인생도, 미래도 의미가 없어진 해리 홀레를 다시 사건으로 이끈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에서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던 해리 홀레를 다시 일어서게 만든 사건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해리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인 자신의 고용인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은 채, 사건을 쫓기 시작한다. 사건이 벌어진 지 거의 3주가 지났음에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도, 알리바이를 제시한 오슬로의 특정인을 향한 언론의 마녀사냥을 멈출 단서를 찾아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해리 홀레 시리즈에서 항상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동기'이다. 주도 면밀하게 계획한 살인사건에서 범인은 법의학적 증거들도 모두 없애고, 피살자의 사망 시간에 확실한 알리바이도 세우고, 살인 무기도 모두 버리더라도 사실상 절대 없앨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동기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을 저지르고 있는 범인의 동기는 뭘까.  



요 네스뵈는 한 작품에서 '인물을 소개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인물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가장 은밀한 소망과 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래서 매번 범인의 시점이 거의 처음부터 함께 진행된다. 그의 동기가 무엇인지 독자들은 이야기를 따라가는 내내 조금씩 알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체를 밝히는 것은 극중 수사관들뿐만 아니라 독자들 입장에서도 결코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해리 홀레 시리즈만의 매력이기도 하다. 이 작품 역시 끊임없이 범인으로 보이는 인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마지막의 또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없다. 그렇게 많은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모자이크를 이루며 확실한 사진을 보여주는 건 육백여 페이지를 훌쩍 넘어섰을 즈음이다. 


이번 작품에서 해리 홀레가 꾸린 소박한 수사팀이 의의로 좋았다. 입원 중인 암 환자와 부패 혐의로 조사받는 경찰관, 택시 운전사와 전직 형사로 이루어진 홀레의 팀. 후반부에 사건이 해결된 뒤에 외위스테인이 "그냥 이 모임 계속하면 안 되나? 꼭 사건을 해결할 필요는 없잖아."라고 말했을 때 너무 공감되어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떠나야 할 사람은 결국 떠나고, 우리는 이번 작품에서도 애정하는 캐릭터 한 명을 보내줘야 했다. 시리즈가 거듭될수록 해리 홀레는 나이를 먹어 가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씩 사라진다는 점이 마음이 아팠다. 우리의 실제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요 네스뵈는 여전히 탄탄하고 정교하게 플롯을 만들고, 거듭되는 반전과 치밀한 구성으로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도록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야기는 '블러드문'이라고 불리는 개기 월식이 시작되기까지 이 주 간의 시간 동안 벌어진다. 그 핏빛 블러드문을 실제로 보게 되려면 이 두툼한 페이지의 시간과 밀도를 견뎌내야만 한다. 일단 시작하면 밤새도록 읽게 될지도 모른다. 자, 마음 단단히 먹고, 삼 년 만에 돌아온 해리 홀레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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