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나라 이웃나라 -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의 맛깔나는 음식과 생활 이야기
비카쉬 저스틴 쿠니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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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프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즐겨 먹는 요리예요. 옛날부터 먹던 전통 요리죠. 결혼식 날에도 먹고 축제 때나 사람들이 모임을 할 때 제일 많이 만들어서 먹는 비싼 요리예요... 할머니가 "다들 모야라." 하시면 삼촌들, 이모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팔로프를 요리해요. 한 50명쯤 모이는 것 같아요. 이모는 채소, 삼촌은 고기, 이런 식으로 각자 조금씩 재료를 준비해 옵니다. 팔로프는 시간도 오래 걸리고 만드는 데 힘도 들어서 남자들이 필요해요. 1시간은 넘게 저어야 하거든요. 여자들이 재료를 준비하면 남자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팔로프를 만듭니다.            p.28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 사는 비카쉬 저스틴 쿠니는 우연히 인터넷을 보다가 한국이란 나라에서 원어민 영어 선생님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게 된다. 온라인 인터뷰를 하고 합격한 뒤 한국에 오게 되었고, 아이들을 가르치다 인생의 소울메이트 와이프를 만나게 되어 한국에 예정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지금 그의 꿈은 전망 좋은 곳에 남아공 스타일의 마당이 있는 집을 짓는 것이다.

 

 

홍콩에서 빌딩 숲에 둘러싸인 췬완구에 살며 간호사로 일했던 시우킷이는 이제 한국에 온 지 딱 3년이 되었다. 휴가로 간 영국 여행에서 한국 친구를 만나게 되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친구가 지금의 남편을 소개시켜줘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홍콩에서의 삶을 정리하기 쉽지 않아 고민이 많았지만, 남편을 사랑해서 결국 병원 일을 정리하고 한국에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이들 외에도 몽골에서, 미국에서, 베트남, 시리아,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일본과 중국,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태국, 필리핀에서 온 22명의 이주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외국에서 건너와 한국에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과 고향을 추억할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다른 문화를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우리 집 국시는 차가운 국시입니다. 집간장으로 맛을 낸 시원한 육수에 다섯 가지 반찬인 오이, 계란, 양배추, 파프리카, 고기를 얹어서 먹는 음식이에요. 비빔밥이랑 비슷한데 밥 대신에 면을 넣는 거죠. 키르기스스탄의 여름 햇볕은 매우 뜨거워요. 이곳 날씨와는 달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지만 그래도 더워요. 그럴 때 먹던 찬 국시 맛은 최고였어요.... 재료는 비슷하지만 만드는 방법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국시 비법은 할머니, 어머니, 시어머니와 딸, 며느리로 이어지며 대대로 전해 내려왔어요.            p.148

 

12개국, 22명의 이주민들이 들려주는 소울 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된 과정과 각자 고국에서 먹던 음식에 대해 직접 구술하고 손 글씨로 한글 요리법을 적었다. 낯선 식재료를 사용하더라도 따라 하기 어렵지 않게, 간결하면서도 쉬운 방식으로 알려주는 레시피라 직접 해보고 싶은 요리들이 많을 것이다. 각자 자신만의 요리비법도 함께 알려 주었는데, 현지인이 직접 알려주는 거라 음식의 맛을 제대로 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나라의 대표 음식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요리책은 어디서도 볼 수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각각의 음식에 담긴 사연이 더욱 특별한 요리를 완성시켜주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이 책은 한국의 청소년 39명이 재능 기부로 더욱 의미가 있는데, 이주민이 입말로 전하는 음식과 인생 이야기를 글로 옮겨 적고, 이를 다시 만화로 표현해 주었다. 18명의 서천여고 재학생 및 학교 밖 청소년 들은 몸짓과 손짓을 섞어 가며 이주민에게 먼저 말을 걸고, 스스로 번역기 프로그램을 찾아내 소통하며 이 책을 완성시켰다. 그리고 충남 디자인 예술 고등학교 재학생 및 학교 밖 청소년 21명은 친구들이 글로 푼 내용을 만화로 그려 시각적으로 음식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베이크드 빈 커리, 중국 르자오의 찹쌀 소시지 샹창, 홍콩의 닭다리 요리 샤오 까이, 필리핀의 아도보, 일본의 오코노미야키, 베트남의 반미, 시리아의 팔라펠, 몽골의 반탕 등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음식들과 생소하고 낯선 요리들까지 다양한 음식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각국의 식사 예절도 담겨 있고, 고향 음식에 얽힌 추억도 있어 여러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시간도 선사한다. 각국의 요리 레시피를 보는 즐거움과 일상의 평범한 음식이 주는 위로까지 더해진 이 책을 통해 음식을 통해 나누는 소통과 공감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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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이이지마 나미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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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 현장에서 정신없이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와중에 찡해지는 일도 있었다. 단순히 피와 살이 되는 것, 맛만 좋은 것이 요리는 아니구나, 때로 맛과 냄새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 요리로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그러고 보니 요리란 참 좋은 것이네요. 원작가 아베 야로 씨도 현장을 방문해 돈가스덮밥을 맛보고 좋아하셨다. 만화책에서 이 장면을 읽을 땐 상상도 못 했떤 일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 칭찬 못지않게 항의도 더러 받았다. 심야식당인 만큼 방영 시간대가 심야인지라 '한밤중에 배가 고파져서 아주 곤란하다'는 원망 아닌 원망을 심심찮게 들었다.              p.30~31

 

영화 <카모메 식당>,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남극의 쉐프> 등과 드라마 <심야식당><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하기 좋은 날> 등 많은 작품에서 활약해 온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이지마 나미에의 첫 에세이집이다. 바나나 튀김, 시나몬 롤, 태국풍 닭고기 전골과 미얀마 샐러드, 돈지루와 따뜻한 채소 등 소박하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는 음식의 46가지 레시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각각의 작품이 가진 세계관 속에서 상황에 맞춰 가장 잘 어울리고, 맛있는 장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촬영 현장 안팎의 에피소드들은 그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이야기라 정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영화가 크랭크인하면 감독, 카메라, 조명, 스타일리스트, 메이크업 담당 등 거의 전원이 매일 일하지만, 푸드 스타일리스트는 요리가 나오지 않는 날은 기본적으로 휴일이 된다고 한다. 그럴 때면 촬영지 근처의 맛집 순례를 나서기도 하고, 현지의 요리 교실에 가기도 하며, 준비해야 하는 음식을 위한 견학을 가기도 한다. 태국의 바나나 튀김 노점에서는 뭔가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게 천천히 튀기기 때문에 식어도 파삭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호텔 근처의 미얀마 요리 전문점에서 먹어보고 너무 감동해서 만드는 법을 물어 열심히 받아 적어와 현장에서 활용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 <심야식당>에 대한 에피소드도 인상적이었다. 당시 예산이 풍족하지 않아 아이디어와 절약이 요구되어 기존에 열심히 모았던 그릇 소품들을 창고에서 끄집어내 활용하기도 했고, 버터라이스를 배우가 여러 번 먹을 때 조금이라도 물리지 않게 먹을 수 있도록 변화를 주기도 했다고 한다. 심야식당의 돈지루 레시피는 생각보다 간단해서 언제 한번 직접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 현장은 라이브 감각이다. 아무튼 현장 상황을 보면서 임기응변으로 대응해야 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에노시마 식당에서 했던 촬영이 특히 인상에 남는다. 전갱이 튀김에 소스를 뿌려 한 입 먹는 장면을 몇 테이크나 거듭 찍어야 했다. 한 스무 번은 되지 않았을까. 갓 튀긴 전갱이 튀김을 내놓아야 하므로 '지금 튀길까?' '아직 빠른가?' 등등 분위기와 상황을 봐가며 타이밍을 가늠한다. 식재료도 무한정은 아니라 마냥 낭비할 수 없다. 제작진 쪽에서는 다섯 회분쯤 준비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상적인 신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다 보면 모자랄 가능성도 있다. 내 나름대로 눈치껏 최적의 타이밍에 내놓을 수 있게 튀긴다.         p.153

 

촬영 준비를 하면서 있을 법한데 없는 것이 실은 꽤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있겠거니 했는데, 막상 필요할 때는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검정 손잡이가 달린 빨간색 프라이팬, 하면 바로 이미지가 떠올려질 정도인데, 찾아보니 의외로 전혀 없어서 백화점, 슈퍼마켓, 잡화점부터 도매상가 거리까지 며칠을 뒤지고 다녔다는 거다. 그러다 무심코 들어간 소박한 잡화점에서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빨간 프라이팬을 딱 발견했다고 한다. 그 평범한 걸 찾느라 얼마나 애가 탄 줄은 아무도 모르는 채로, 영화 현장에선 평범한 이미지의 소품으로 잘 활용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배우 얼굴이 잘 보이게끔 약간 큰 식빵을 구하느라 동분서주하고, 사치스러운 돈가스덮밥을 위해 전체가 금색인 금색 그릇을 만드느라 따로 주문 제작까지 했다고 하니 세상에 결코 쉬운 일은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저자는 현장 속도에 맞춰 정신없이 요리를 완성해나가는 와중에 요리란 단순히 맛만 좋고, 피와 살이 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때로 맛과 냄새로 누군가의 기억과 추억을 불러오는 것이라는 점을 깨닫기도 하고, 보통 촬영은 해당 식재료의 제철이 오기 전에 진행하기 대문에 시장에 나오지 않은 식재료를 확보하느라 고생하기도 한다. 한번은 판타지 소설이 원작인 드라마 일을 하는데, 가공의 나라의 가공의 요리를 고안해내느라 동서고금의 요리책을 전부 뒤져가며 작업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밖에 영상 속 힐링 음식의 탄생 비화, 출장지에서의 맛있는 식도락 이야기 등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저자의 음식처럼 정겹고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차 있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읽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소울푸드를 발견한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그 현장 속 생생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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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맨 8 - 초능력 올챙이들의 공격 도그맨 8
대브 필키 지음, 노은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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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조차 푹 빠져서 읽게 된다는 마성의 그래픽노블 <도그맨> 시리즈 8권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개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경찰관 도그맨과 못된 짓만 일삼던 고양이 피티의 아기 고양이 '리를 피티', 그리고 그들의 로봇 친구 애디에칭디까지... 세상의 모든 악당들로부터 도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기자인 세라와 그녀의 푸들 주주, 그리고 서장도 이들의 친구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함께 싸운다. 이번 작품에서는 초능력 올챙이들이 나타나 도시를 공격한다고 해서 또 어떤 재미를 보여줄 지 기대가 되었다.

 

 

우르르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는 쉬워.
덩달아 미워하고 화내기는 더욱 쉽지.
하지만 홀로 맞서는 데는 용기가 필요해.
그리고 착한 일을 하는 데는 다른 그 무엇보다도 큰 용기가 필요하지.               p.184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뇌 좋아 알약'을 도그맨이 시내에 있는 약국을 모두 돌아다니며 전부 수거한다. 그런데 그렇게 잔뜩 모아 둔 약 수레를 놓치는 바람에 그 약들이 전부 올챙이들이 있는 연못에 빠지게 된다. 결국 올챙이들에게 염력이 생기고, 마친 방송국에서 해고 당해 세상을 향해 분노를 터뜨리던 요망한 요정과 만나 일이 커지기 시작한다. 뇌 좋아 알약에는 '으르렁 콱'이라는 화학 물질이 들어 있어서 너무 많이 먹으면 억수로 화를 내게 되는데, 그 '화'가 고스란히 세상을 향하게 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요망한 요정과 엄청난 초능력이 생긴 22마리 올챙이들이 한 편이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으로부터 도그맨과 왕대박 슈퍼히어로들은 어떻게 도시를 지켜낼 수 있을까.

 

 

"플러피가 어린 올챙이 몇 마리 돌본다고 해서 실제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들의 세상은 바뀔 거예요!"           p.221

 

시리즈가 시작될 즈음엔 악당으로 등장했던 피티 또한 사랑스러운 리를 피티덕분에 점점 더 변화하는 중이다. 온통 진흙탕인 세상 속에서도 반짝이는 별들과 꽃이 아름답다고 느낄 줄 아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고, 먼저 사랑이 담긴 행동을 해야 한다고 믿고 있는, 아무리 나쁜 사람도 누구나 다 가슴속 깊이 착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리를 피티덕분에 피티는 나쁜 마음과 착한 마음 사이에서 늘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너무도 천진무구한 표정과 행동으로 가슴이 뜨끔해질 정도로 중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툭툭 던지는데, 누구라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리를 피티가 아빠를 속이고 탈옥한 할버지를 은근히 골탕먹이는 장면이나, 쪼그만 강아지 주주의 중요한 역할,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 플러피가 왕대박 슈퍼히어로 편에서 도움을 주는 등 작은 존재들의 활약이 빛을 발한다.

 

 

그깟 아기 고양이가 뭘 어쩌겠어? 쪼그만 올챙이 한 마리와 작은 푸들 한 마리가 감히 뭘 어쩌겠어? 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건 이 작은 존재들이다. 사랑과 친절한 마음씨가 세상 무엇보다도 강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게 생겨 먹었지만, 이 작은 마음들이 그런 세상을 조금은 살 맛나게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기발하고, 엉뚱하고, 재미있지만, 그냥 한번 웃어 넘기고 덮어 버리는 책이 아니라, 깔깔대고 웃는 이야기 속에 뭉클한 진심과 감동까지 담겨 있는 도그맨 시리즈! 전 세계 45개국에 6000만부 판매되었으며, 아마존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빛나는 작품이다. 2025년에 드림웍스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도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가 된다. 도그맨은 사람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의 본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툭하면 사람들을 핥아 대고 심지어는 오줌과 똥을 아무 데나 싸는 경찰서의 골칫덩어리이기도 해서, 보통의 영웅 캐릭터와는 꽤 다르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고, 매 사건마다 놀라운 기지와 용기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야 만다. 그 점이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다. 유쾌한 상상력이 빚어낸, 색다른 영웅과 함께 단순함이 만들어 내는 통쾌함을 만끽해 보고 싶다면 도그맨 시리즈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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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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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기도 하고, 무쳐 먹기도 하고, 국물을 내는 데도 사용하는 멸치. 우리의 식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식재료 중 하나다. 짭쪼름한 멸치 볶음, 매콤한 멸치 고추장 볶음, 달콤한 견과류 멸치 볶음, 그리고 시원하고 깊은 국물을 내는 데 사용하는 다시팩과 멸치 김밥, 멸치 튀김, 멸치 무 조림... 많기도 하다. 어린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멸치 요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한번쯤 멸치를 다듬어 보거나, 멸치를 다듬는 것을 구경해 본 적도 있을 것이다.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되는 손놀림으로 어느새 수북이 쌓인 멸치들은 깔끔하고, 맑은 국물 요리를 위한 훌륭한 재료가 되어 준다.


 

 

이번에 만난 귀여운 그림책은 바로 그 멸치 다듬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상교 작가의 동시에 밤코 화가가 그림을 그렸다. 멸치를 다듬을 때 부스러기를 받쳐 주는 신문지를 다채롭게 재구성해 재미를 더해준다. '멸치'를 주인공으로 도심 한가운데서 멸치 떼 목격, 마른 하늘에 멸치 떼, 멸치란 무엇인가, 토막상식, 멸치네컷, 메루치의 꿈 등등 오늘의 특종과 기상 예보, 구인 구직 공고 등 아기자기하고 유쾌하게 신문지 속 세상을 멸치의 세계로 색다르게 만들었다. 멸치들은 철새 대이동의 계절에 철새 떼를 따라 이동하기도 하고, 발레리나가 되어 무대 위를 종횡무진 활약하고, 미술관에서 명화의 모티브가 되어 관객들을 만나기도 한다.

 

 

가끔 멸치 조림을 먹다 보면 수북한 멸치들 사이에 정말 손톱만큼 작은 게나 꼴뚜기 등을 만날 때가 있다. 그제야 내가 먹고 있는 것이 바다에 사는 물고기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어쩐지 마른 멸치를 많이 접하다 보니, 멸치가 물고기라는 사실을 자꾸 잊어 버리게 되는데 말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서, 신문지에 누워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이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세상 속으로 향하는 여정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마른 멸치들만 보다가, 비로소 생생하게 살아 있는 멸치들의 움직임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늘을 날고, 무대 위와 명화 속을 거쳐, 우주 공간을 통과해 휴가철 해변까지 정말 세상 곳곳을 종횡무진하는 멸치들의 여정은 귀엽기도 하고, 웃음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멸치의 존재를 피부로 와닿게 만들어 준다.

 

 

아빠와 아들이 사이좋게 앉아서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반복 작업을 하는 과정도 만화처럼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고양이가 와서 방해를 하기도 하고, 끝난 줄 알았는데 한 번 더 한 가득 담겨서 일거리가 오기도 하고, 기지개도 켜고, 몸도 풀면서 부지런히 반복 작업을 한다. 대가리와 똥을 모은 곳과 몸통을 모은 곳을 구분해야 하는데, 반복 작업을 하다 보면 헷갈리기 일쑤다. 그럴 때 짜증도 나지만, 서둘러 다시 옮겨 놓는다. 그렇게 열심히 다듬은 멸치 한 가득은 과연 어떤 요리로 재탄생하게 될까. 엄마는 멸치들을 가지고 어떤 맛있는 한 상 차림을 만들어 줄까. 기대가 되는 시간들이다.

 

읽고 나면 누군가와 함께 멸치를 다듬고 싶어 지는 이 그림책은 우리가 무심코 먹는 식탁 위 맛있는 한 끼를 위한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함께하면 두 배로 즐거운 멸치 다듬기의 세계를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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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켜진 자들을 위한 노래
브라이언 에븐슨 지음, 이유림 옮김 / 하빌리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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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들려줬던 여러 이야기 속에서 부모님은 이주민이자 개척자였고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디딘 사람들이었지만, 어떤 실패를 겪으며 이곳에 남은 유일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어떨 때 언니는 우리가 있는 곳이 남쪽 대륙 외진 곳 어딘가이며, 부모님은 그곳에서 침몰한 배의 유일한 생존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또 어떨 때는 부모님이 완전히 동떨어진 다른 세계에서 공기를 타고, 일반적인 세상의 질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또는 거울을 통해서 이쪽으로 건너왔다고 말했다.              - '두 번째 문' 중에서, p.66~67

 

앞쪽에도 뒤쪽에도 머리카락뿐이어서 어느 쪽이 앞모습인지 구별할 수 없는, 얼굴이 없는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해 딸이 사라진 방에서 들려오는 딸의 노랫소리에 시달리는 남자와 영화 촬영을 위해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짓을 저지르는 영화감독,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을 탐하는 우주 괴물, 돌연변이 생명체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생존자들, 부모님이 어디론가 사라진 텅 빈 집에 남겨진 두 자매, 아내가 실종된 남편의 비극 등 짧게는 단 두 페이지, 길어도 이십 여 페이지 분량의 단편들은 모두 강렬한 잔상을 남기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드라고는 얇은 벽 너머로 들려오는 딸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딸을 깨우러 갔지만 방에는 딸이 있었던 흔적 조차 보이지 않는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방을 정리했으며, 어디로 간 것일까. 게다가 딸의 침실은 그가 전날 밤 그 방을 떠났을 때 그대로 밖에서 잠겨 있는 상태였다. 그는 딸이 방 어딘가에 숨어 있는게 아닐까 싶어 찾아 봤지만, 방은 물론 집 안 어디에도 딸은 없었다. 딸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집 안의 모든 곳을 뒤졌지만 아이는 없었고, 어떻게 봐도 불가능할 것 같지만 자신이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딸아이가 밖으로 나간 게 분명했다. 그는 이웃집으로 가서 혹시 딸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다. 예순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는 산소 튜뷰를 연결한 마른 몸으로 걸쇠가 걸린 사이로 그를 바라본다. 그녀는 여자아이를 보지 못했다며, 아이가 실종되었다면 집마다 돌아다닐 게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건 드라고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그는 과연 딸을 찾을 수 있을까. 평범한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이 이야기는 점차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

 

 

 

"당신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빌라드는 그렇게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살아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제가.. 엄밀히 말하다니요?
"당신은 무언가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당신의 몸은 선체가 부서진 이후에 얼어붙었는데, 꽤 온전한 상태로 보전될 만큼 그 과정이 빠르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뇌를 스캔할 수 있었죠. 당신의 생각을요." 제가 스캔본이라는 말인가요?
"그날 목숨을 잃은 건 당신뿐만이 아닙니다... 혹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목격했습니까? 우리는 그 원인을 알아내야 합니다."           - '마지막 캡슐' 중에서, p.213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고, 낮에 마주하는 상담사가 밤에 집에 나타나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행동하고, 현실의 조각난 틈에서, 숨고 싶은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인가 벌어진다. 우리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지켜볼 뿐이다. 작가는 분노와 수치심, 그리고 강박과 집착에 집어삼켜진 삶들을 그려 보이며 멀쩡해 보이지만 사실은 균열로 가득한 부서진 세계를 창조해낸다. 이 책에 수록된 단편 스물두 작품은 환상과 호러 SF 등의 여러 장르를 보여준다. 미국 언론에서 '스티븐 킹의 팬들이 반길 상당히 유능하고 조금 덜 다작한 작가가 여기 있다'라고 했을 정도로 오싹하고, 강렬한 이야기들이다. 대담하고, 독창적이고, 파격적이며, 특히나 예측할 수 없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일상 속에 교묘하게 감추어진 공포와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환상이 잘 버무려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미국 사변소설계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브라이언 에븐슨은 이 작품으로 2019년 셜리 잭슨상과 2020년 월드 판타지 어워드를 수상했다. 이 책에 수록된 이야기들은 섬뜩하고, 기괴하고, 오싹하다.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어떤 사악한 존재가 어디선가 나를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유혈이 낭자하기도 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등장하기도 하며, 누군가를 심리적으로 압박하는 가스라이팅처럼 공포의 종류도 매우 다각도로 보여진다. 극중 한 인물의 대사처럼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 데에 이유가 없다'는 점이 가장 공포를 자아낸다. 혹시나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건 어떠한 차이도, 변화도 만들어 낼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다. 돌이킬 수 없으며, 의도를 파악할 수 없어 극중 인물들은 자주 혼란스러워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들의 마음은 고스란히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도착한다. "세상은 이상한 곳이야,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이 말은 극중 인물들뿐만 아니라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스티븐 킹과 히치콕, 러브 크래프트와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꼭 만나보길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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