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쓴 것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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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었고 책임감을 가지고 써야 하는 글도 있다고 생각했다. 두렵고 외롭고 허탈할 때가 많았지만 읽고 생각하고 질문하고 기록으로 남기려고 애썼다. 하지만 적의는 호의보다 훨씬 힘이 셌다. 내가 하지 않은 말들이 따옴표 안에 들어가 인터뷰 기사에 실렸고, 내 소설에 있지도 않은 문장과 에피소드가 인터넷 리뷰에 올라왔다. 결국 내가 졌다. 이용당한다는 생각, 절대 가지지 않으려던 그 마음이 드는 순간, 내가 망가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데 분홍신을 신은 발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내 목표는 오직 한 가지, 신발을 벗는 것이었다.      - '오기' 중에서, p.57~58

 

나는 아버지가 가출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는다. 올해 나이 일흔둘, 치매 등 정신 질환도 없고, 정년까지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결근한 적 없었던 아버지이다.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삼남매가 한자리에 모이지만, 딱히 아버지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였다. '내가 살면 얼마다 더 살겠니. 이제라도 내 인생 살고 싶다. 나를 찾지 마라'고 쪽지를 남겨둔 아버지는 저금한 돈도 일부 찾아 나갔다. 이제 엄마 혼자 남겨진 집에는 각종 공과금 수납이며 돈 관리며, 평생 아버지가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도맡아 온 크고 작은 일들을 처리할 사람이 없다. 엄마는 그 동안 딱 살림에 필요한 금액만 생활비로 받아 썼을 뿐 다른 건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아버지의 부재에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나는 간간히 오는 카드 문자로 아버지가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카드는 막내딸인 자신이 아버지에게 주었던 것으로 다른 가족들은 알지 못하는 비밀이기도 했다. 카드의 내역을 보며 나는 아버지도 가족을 떠나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작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쓰기 시작한 글이라고 한다. 각자의 생활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장례식으로 모두 모였는데, 정작 그 상황을 만든 아버지가 안 계신 상황이 기묘하기도, 괴롭기도 한 것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한다. 조남주 작가의 신작 소설집에는 10대부터 80대에 걸친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다양한 나이대의 여성들이 겪는 삶의 경험을 다시 읽고 다르게 읽는 확대된 여성 서사는 여러 시간대에 속한 ‘김지영들’이 연결되며 존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지영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소설집이기도 하다.

 

 

"그런 말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 평생 들었어."
평생 들어도 무뎌지지 않는 말이 있다. 껍데기만 남겨두고 몸 안이 와르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조그맣고 부드럽던 지혜가 그때의 나만큼 자라 거칠게 묻는다. 나한테 왜 그랬어? 대답할 수 없어, 지혜야. 대답하면 나는 껍데기까지 무너져 버릴 테니까. 네 질문과 내 대답은 부메랑이 되어 너에게 돌아갈 테니까.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 '오로라의 밤' 중에서, p.201~201

 

이 책에는 작가가 2010년에 쓰기 시작했던 작품부터 코로나로 일상이 무너졌던 2020년 여름에 쓴 최신작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히 노년의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두 작품, <오로라의 밤>과 <매화나무 아래>를 인상적으로 읽었다. 여든 살의 '나'는 임종을 앞둔 치매 환자인 큰언니를 보며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남편도 보냈고, 아들도 먼저 보내본 나는 곧 큰언니도 먼저 보낼 상황에 처한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게 의미 있는 것인지,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죽을 날을 향해 걸어가고만 있는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한다.

 

쉰일곱의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인 '나'는 10년 전 교통사고로 사망한 남편 대신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손자 양육을 거절한 탓에 워킹맘인 딸과 갈등 중이지만, 오랜 버킷 리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캐나다로 오로라를 보러 떠난다. 아직 노년의 삶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이상하게 공감되고, 이해되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들의 삶은 우리의 미래 모습, 혹은 우리 어머니 세대 여성들의 모습일 것이다. 무엇보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이들 여성들이 연대나 공감을 통해 성숙해지고,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점이 뭉클했다. '사는 일에 별다른 에너지를 쓰지 않으며, 가사 노동에 몸과 마음이 지치지 않으며, 인정과 이해를 구걸하지 않으며, 물 흐르듯 나이 먹을 수(p.232)' 있다면,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 본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작품에 수록된 많은 이야기들이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기도, 그리고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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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두 체험 스콜라 어린이문고 35
정연철 지음, 조승연 그림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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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겉모습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게 많다. 아이들 앞에서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여야 하는 선생님이 툭하면 엄마를 찾는 철부지일 수도 있고, 매일 같이 지각을 하는 버릇없어 보이는 아이가 집에선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어린 동생을 챙기느라 바빴던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상대의 사정을 헤아리고 싶어도, 실제 그 사람이 되어 보지 않는 한 알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영혼이 영혼이 바뀌어 직접 경험이라도 해보지 않는 한 말이다.

 

 

여기 너무도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이 있다. 번개초등학교 4학년 4반 담임 선생님인 김웅, 일명 웅달샘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번개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인 박찬두, 할 일이 엄청 많아 너무너무 바쁜 애어른이다. 두 사람은 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벼락을 맞고 몸이 바뀌게 된다. 어른이 어린이가 되고, 학생이 선생님이 된 것이다.

 

웅달샘은 학생인 찬두가 부러웠다. 학교 오고 싶을 때 오고, 숙제는 안 하면 그만이고, 엄마가 해 주는 밥 먹고 가방 메고 오면 되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 맨날 늦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찬두의 장래 희망은 선생님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완전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질도 마음대로 부릴 수 있고, 애들한테 입 다물라고 소리칠 수도 있고, 귀찮은 일 있으면 심부름 시키면 되고 말이다.

 

 

두 사람은 몸이 바뀐 상태로 각자의 삶을 강제로 살면서, 어른은 어른대로,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결코 삶이 만만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겨우 열한 살인 찬두가 해야 할 집안일이 엄청나게 많았던 것이다. 웅달샘에게 찬두가 되어 겪는 하루는 너무 길고 피곤하기만 하다. 반면 웅달샘보다 더 능청스럽게 선생님 연기를 하는 찬두는 선생님 놀이가 너무 재미있다. 그렇게 찬두는 아이들과 함께 놀아 주는 다정다감한 선생님으로, 웅달샘 부모님에게는 뒤늦게 철든 아들로 완벽하게 변신한다. 하지만 계속 몸이 바뀐 상태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과연 두 사람은 다시 자신의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영혼이 바뀌어 타인의 몸으로 각자의 삶을 체험해본다는 설정 자체는 특별하지 않더라도, 어린이와 어른의 상황을 역전시켜서 만들어 내는 통쾌한 재미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어른 입장에서는 뭐든 부모가 다 해주는 어린이의 삶이 마냥 편하게 보일 것이고, 아이 입장에서는 어른은 뭐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어 부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자유로운 대신 그에 따른 책임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겐 여러 가지 제약도 많고, 나름의 힘든 일들이 있다. 이 작품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고,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그려내어 나와 다른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정연철 작가는 오랫동안 교사 생활을 해 온 이력으로 아이들의 입장에서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려내었다. 철부지 선생님과 애어른 학생의 영혼 변경 소동을 통해 통쾌한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실제로 이렇게 영혼이 바뀌는 일이 생겨서는 안되겠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한 번쯤 상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상대를 이해하는데, 눈에 안 보이는 걸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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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
B. A. 패리스 지음, 김은경 옮김 / arte(아르테)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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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좁은 생각인 건 나도 안다. 사실 그런 생각은 그 힘들던 시간을 떠올릴 때만 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게, 걱정으로 이성의 끈이 끊어지는 게 어떤 건지 남편도 느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악의 상황을 두려워한다는 게 어떤 건지.     p.174

 

애덤과 리비아 부부는 학생 때 아이가 생겨 결혼한 탓에 제대로 된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리비아는 오래 전부터 자신의 마흔 살 생일에는 여러 사람들을 초대한 큰 파티를 열고 싶어 했다. 딸인 마니는 홍콩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중이고, 아들인 조시는 이번 여름에 인턴으로 채용되어 뉴욕으로 떠날 예정이다. 마니는 파티에 맞춰 집에 오고 싶어 했지만 시험 일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에게 깜짝 선물이 되기 위해 마니는 밤늦게라도 집에 오는 걸로 아빠와 따로 말을 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고대하던 파티 당일, 남편과 아내는 딸 마니와 관련된 자신만 알고 있는 사실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사실 리비아는 마니가 파티에 오지 않기를 은근히 바랬다. 왜냐하면 딸이 처자식이 있을지도 모를 남자와 깊은 관계였고, 임신 12주 상태에서 유산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마니는 아빠와 조시가 알게 되는 걸 원치 않았고, 리비아는 딸의 바람을 존중했지만 남편에게 비밀로 한 채 그 사실을 혼자 가슴속에 품고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엄마 몰래 집에 오기로 한 마니를 기다리는 애덤은 휴대전화로 뉴스 속보를 보고는 충격에 휩싸인다. 마니가 탈 예정이었던 비행기가 추락해 승객과 승무원 전원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소식이었다.  게다가 마니와는 계속 연락이 되지 않는 상태였다. 하지만 애덤은 정확한 소식을 알아보기 전에 아내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파티가 아내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오늘 하루를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내와 남편은 각자 상대의 세계가 무너지기 전, 가능한 오래 행복을 지켜주고 싶었던 마음에서 엄청난 비밀을 당분간 혼자 알고 있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그 결정은 앞으로 닥쳐올 파국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이들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당신을 보호하고 싶어서 그랬어. 우리가 갖고 있던 걸 지키고 싶어서 그랬다고!"
"그럼 당신은 언제 말하려 했던 거야? 절대 비밀로 하려 했어? 아니면 당신 파티가 끝나고?"
나는 뒤로 손을 뻗어 베개를 잡았다. "나가!" 베개를 남편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나가서 돌아오지 마! 당신을 증오해. 알아듣겠어? 당신을 증오한다고!"     p.373

 

군더더기 없이 빠른 전개는 첫 페이지를 열면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가게 만들어 주었던 데뷔작 <비하인드 도어>를 만난 것이 벌써 4년 전이다. 사랑받는 완벽한 아내는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이며, 아름다운 저택은 감옥이고, 매 맞는 여자들을 헌신적으로 변호하는 법률가가 실은 사이코패스였다는 전제로 완벽해 보이는 결혼이 실은 완벽하고 치밀하게 조작된 거질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던 역대급 데뷔작이었다. 두 번째 작품인 <브레이크 다운>에서는 정신적, 심리적 폭력이 얼마나 극한의 공포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오싹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고, 세 번째 작품인 <브링 미 백>은 상상조차 못했던 짓까지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반전 스릴러로 여전히 페이지 터너로서의 매력을 보여주었다. 세 작품 모두 6월에 출간되었기에, 여름이 시작될 무렵이면 생각나는 작가가 되어 버렸는데, 어김없이 이번 신작도 6월에 만나게 되었다.

 

B. A. 패리스는 너무도 인상적인 데뷔작을 썼던 탓에 그만큼의 임팩트를 이후 작품에서는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을 계속 읽어 왔던 독자들이나, 유사한 장르의 작품들을 많이 읽어 왔던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는 지점, 금방 눈치를 챌 수 있는 단서들이 많아 상황 파악이 너무 빨리 된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들이 갈등을 겪게 되는 고민에 대한 설득력이 다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제목을 딜레마라고 했는데, 두 가지 사항 중에 어느 쪽도 결정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하면 양쪽의 고민이 비슷한 무게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남편에게 비밀을 가지게 된 이유나, 남편이 아내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독자로서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딸이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많은 유뷰남과 불륜을 저지르고 아이를 가져 유산까지 했는데, 그 상대가 남편의 절친 동생이자 가족들 모두와 친분을 맺고 있는 인물이었다면, 단순히 딸이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고 엄마가 그 사실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될까? 게다가 아내의 마흔 번째 생일 파티를 망치지 않기 위해, 딸이 탔을 지도 모르는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뉴스를 듣고도 파티가 끝나기 전까지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리지 않겠다는 아빠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도, 공감할 수 없었다. 시종일관 비밀을 간직한 두 사람의 시점을 팽팽하게 교차 진행하며 쌓아 올린 긴장감에 비해 결말도 조금 단조롭게 느껴졌다.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B. A. 패리스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틀림없다. 데뷔작만큼 놀랍고, 독창적인 그녀의 다음 작품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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퀀텀 마케팅 - 한계를 뛰어넘는 마켓 프레임의 대전환
라자 라자만나르 지음, 김인수 옮김 / 리더스북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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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순간부터 질 때까지도 모자라 잠자는 순간에도 소비자 관련 정보를 하나에서 열까지 수집하기 위해 안달을 내는 미친 세상이 온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소비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정보 부스러기 하나까지 (아마도 모두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해야겠지만) 끌어모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소비자들은 온순한 또는 게으른 성격 때문에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기업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서명하면서 자신의 정보를 날려 보내고 만다. 참으로 '멋진 신세계'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p.87

 

코로나로 인해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으며, 또 수백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해고를 당했다. 많은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고, 적어도 수십만 곳이 넘는 소규모 기업들이 사업을 접었다. 유가는 곤두박질쳤으며, 사람들은 격리되어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송두리째 바뀌었고, 아마도 우리는 이제 코로나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위기가 우리 생활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위기관리 또한 마케팅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30년간 시장의 온갖 흥망성쇠를 목격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리더이자 최고 마케팅 권위자인 라자 라자만나르는 이 책에서 비즈니스와 마케팅의 미래를 대담하게 내다본다. 발전된 기술과 달라진 일상, 그리고 새로운 가치가 만들어내는 비즈니스의 미래는 어떨까. 저자는 제5의 패러다임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갈 마케팅 전략을 '퀀텀 마케팅(Quantum Marketing)'이라 정의하고, 이 프런티어 전략을 통해 패러다임의 변화를 다루고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마케팅 방법론을 재구성한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맞이한 지금, 기존의 이론, 전략, 관행 등 마케팅의 모든 것이 붕괴하고 있다. '멋진 신세계'를 위한 프레임, 퀀텀 마케팅으로 위기 속의 마케팅을 구할 수 있을까.

 

 

 

오늘날, 평균적으로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8초가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금붕어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한 사람이 평균 하루에 3천 내지 5천 개의 광고 메시지에 노출된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는 천문학적 수준의 정보 과부하이며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 모든 정보를 처리할 수가 없다. 따라서 마케터는 소비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매일 3천에서 5천 개의 다른 메시지들과 경쟁해야 하며, 이런 아수라장을 뚫고 나아가 자사 브랜드와 제품 또는 서비스를 알리고 소비자들이 그 브랜드에 호감을 느끼도록 유도해야 한다.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p.200~201

 

마케팅은 최근 몇 년 동안 극적으로 변화했다. 훨씬 더 데이터 중심적이며 실시간으로 바뀌었다. 개인의 모든 것을 데이터화하는 세상,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가 클라우드로 들어가고 있으며, 기업들은 이를 수집하고 실시간으로 분석해 실행 가능한 인사이트를 얻는다. 사물인터넷부터 웨어러블, 스마트 스피커, 디지털 보조기, 커넥티드 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에 온갖 유형의 센서가 뿌려져 있다. 바야흐로 무한 데이터 시대가 아닐 수 없다. 홍수처럼 밀려드는 수많은 신기술이 소비자들의 삶을 급속하게 변화시키고 있으니, 마케터 역시 새로운 패러다임의 역학을 활용하고 접근 방식 전체를 혁신해야 한다. 재미있는 건 시장이 이렇게 비약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마케터들의 존재감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라자 라자만나르는 지금의 상황이 마케팅에 있어 위기인 동시에 거대한 기회가 될 거라고 말한다. 이 책은 우선 4단계에 걸쳐 진화한 마케팅의 역사를 짚어보고, 우리가 향하는 제5의 패러다임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전망해본다. 그리고 수많은 신기술이 마케팅에 어떤 위협 또는 기회를 가져다 줄지 예측하고, 비즈니스를 이끌어갈 마케팅의 역할을 재정의한다. 거대하고 놀랍도록 빠른 변화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는 '퀀텀 마케터'만이 미래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될 거라고 말이다. 기업의 CEO와 마케터들에게, 그리고 미래의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매우 현실적이고도 유용한 가이드가 되어줄 만한 책이다. 모두가 마케터가 되는 시대, 새로운 시장을 누가 차지할 것인지 궁금하다면, 마케팅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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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정옥희 지음, 강한 그림 / 엘도라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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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는 완벽주의와 성실함을 근본으로 삼는다. 매일같이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이루기 힘든 영역이다. 무용수들은 성실 근면이 뼛속까지 차 있다. 문제는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다 보니 전공생들은 어려서부터 가학적일 정도로 금욕적이고 자기 비판을 내재화하게 된다는 점이다. 자신의 장점보단 단점이 먼저 보이고 크게 보인다.... 나는 발레를 그만두고서도 늘 완벽하려 애쓰는 마음 때문에 제풀에 지칠 때가 많았다. 더 잘하고 싶고, 더 많이 해 내고 싶고, 더 돋보이고 싶은 마음에 나를 갈아 넣으며 몰아세웠다. 남편은 제발 ‘시간표 빈칸 채우기’를 하지 말라고 했다.     p.128~129

 

발레리나라고 하면 누구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핑크빛 발레 슈즈와 사뿐거리는 튀튀, 빛나는 왕관과 보석 장식을 두른 가냘픈 여성의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우아하고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모습 뒤에 감춰진 것은 땀에 절어 소금이 더께 앉은 레오타드, 발가락을 종이 테이프로 칭칭 감고 물집을 터트리고 달래듯 주무르던 손길, 파스 냄새와 땀 냄새가 후텁지근하게 배어 있는 탈의실, 무대 뒤의 하염없는 대기 시간들이다. 매일매일 연습실에서 같은 순서로 몸을 풀고 같은 동작들을 수업이 반복해서 쌓아온 시간들이다.

 

 

저자는 여덟 살 때부터 발레 학원을 다니기 시작해 발레 전공으로 대학 무용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엔 프로페셔널 발레단에서 활동했으며, 현재는 무용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녀는 발레리나에 대한 눈먼 찬사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무언가를 전공한다는 것의 보편적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단순히 즐길 때는 절대 알 수 없는, 그 속에서 오래도록 허우적댈 때 펼쳐지는 애증의 파노라마를 말이다. 발레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이 읽으면 더 재미있는 세계, 모든 발레 무용수들이 겪는 치열한 사투의 현장이 페이지 곳곳에 가득한 아름다운 책이었다.

 

 

포인트 슈즈를 신는 건 부드러웠던 발이 고목나무 뿌리처럼 거칠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체중이 실려 발톱이 까매지고 발가락 마디마디 물집 잡히고 까지는 건 예사다. 아무리 테이프로 발가락을 감싸고 쿠션을 대어도 작품 두세 번 연습하면 피가 났다... 포인트 슈즈 뒤축을 자르고 고무줄로 잇거나 솜을 대거나 온갖 방법을 다 써 봐도 소용없었다. 굳은살이 충분히 쌓이고 나서야 웬만한 연습엔 끄떡없는 발로 거듭났다. 뜨거운 모래에 손을 박으며 단련하는 쿵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단단하고 날카롭게 벼려진 발이 되면 비로소 포인트 슈즈를 신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자유롭게 춤출 수 있달까.     p.191~192

 

공감이 되는 문장들이 많았지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이 부분이다. <‘이 공연을 하다가 죽어도 좋아.’는 아마추어다. 프로에겐 이번 공연이 끝이 아니다. 무대에서 크게 실수하여 울면서 집에 걸어갔더라도, 다음 날엔 여느 날과 같은 모습으로 연습실에 들어온다.> 왜냐하면 한 순간 반짝이며 폭발하는 것보다, 매일 꾸준하게 같은 수준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일 계속되는 공연이니 오늘 하루 실수하더라도, 내일 더 잘하면 되겠지.. 라는 마음은 프로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오늘 공연에 내가 가진 모든 걸 다 쏟아 붓겠어! 라는 마음 또한 프로의 모습은 아니다. 공연에는 비용과 시간을 들여 그것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있게 마련이고, 그들에게는 그날 그 시간의 공연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프로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같은 수준의 기량을 똑같이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일 것이다.

 

 

이 책은 한 켤레에 몇 만원이나 하지만 고작 열 몇 시간 연습에 닳아 버리는 포인트 슈즈, 평생을 지독하게 이어온 다이어트, 박수 갈채를 받았어도 다음 날 또 다시 연습실에서 첫 블록부터 차근차근 쌓아가야 하는 연습의 시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 그만두지 않고 여기까지 온 거지? 나는 어쩌다 그만두지 않았을까. 라는 질문을 매개로 초심자가 베테랑이 되어 가는 1만 시간의 견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무대 복귀를 꿈꾸는 발레리나 엄마를 향한 사회의 포용력과 한계, 남성 무용수들의 레오타드를 향한 왜곡된 시선들, 유색인 무용수가 무대에 설 때마다 체감해야 하는 백인 주류의 문화 양상들, 시대에 뒤떨어진 인권 감수성과 예술성을 사이에 둔 양가적 해석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무대 뒤에 숨겨진 발레의 이슈들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 1만 시간은 하루 세 시간을 꾸준히 투자했을 때 대략 10년이 걸리는 긴 시간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1만 시간을 견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오늘 하루를 치열하게 보낸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을 안겨주면서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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