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꽃 - 내 마음을 환히 밝히는 명화 속 꽃 이야기
앵거스 하일랜드.켄드라 윌슨 지음, 안진이 옮김 / 푸른숲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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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몬드리안은 꽃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구상 미술에서 추상 미술로 전환하는 시기에 꽃의 형태를 연구하기도 했고요. 나중에 그는 "꽃의 조형적 구조를 더 잘 표현하려고" 한 번에 꽃 한 송이만 그리는 방법을 선호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사진 속 탁자 위에 놓인 꽃은 나무로 만들어진 꽃이랍니다. 케르테스에 따르면,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실과 "어우러지게" 하려고 그 나무 꽃에 물감을 한 번 칠해두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사진 속의 꽃은 빛과 어둠의 구도 속에서 단연 눈에 띕니다.            p.3



꽃이 피어오르고 여기저기 꽃내음이 가득해지는 계절, 봄이다. 짙어지는 푸른 잎사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꽃봉오리, 들이마시면 아찔해지는 꽃향기까지... 지금 이 계절과 너무 잘 어울리는 책을 만났다. 아름다움의 대명사인 꽃처럼, 아름다운 책이다. 앙리 마티스, 에두아르 마네, 데이비드 호크니 등 예술가 48인이 그린 108가지 '꽃' 그림을 담고 있는 이 책은 고화질 도판과 원예 전문 작가의 해설을 함께 수록하고 있다. 




과감한 색채와 테크닉으로 유명한 마티스가 그린 꽃 그림은 의외로 지중해 바다가 보이는 창문 옆에 세워진 꽃병 속의 장미를 평온하고, 행복하게 그려냈다. 유화물감과 수채물감을 일본의 전통 재료와 혼합해 사용하는 후지타의 양귀비 그림은 꽃이 담긴 노란 물병의 컬러만큼이나 강렬하다. 건축과 인테리어 반면에서 유명한 매킨토시가 그린 아네모네는 너무도 생생해 꽃잎의 질감이 만져질 것 같다. 꽃의 색채와 형태를 매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배경을 최소화시켰던 프랑스 화가 판탱라투르의 그림은 꽃이 주인공이 되어 캔버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빛의 방향을 연극적으로 설정해 극적인 효과를 드러내는 니컬슨의 정물화는 독특한 무늬가 있는 시클라멘의 매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20년 동안 다작을 하다가 51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 에두아르 마네의 생애 말미를 장식한 작품은 꽃 그림이었습니다. 마지막 대작인,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을 완성하고 나서 세계적인 화가가 되었다고 자부하던 마네는, 점점 제약이 많아지는 자신의 삶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혁명적인 화가였던 마네는 미술계에 반발하면서도 비평가들에게 인정받으려는 열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꽃 그림을 그릴 때는 그 순간 눈앞에 놓인 식물에 주의를 집중했습니다. 인상주의풍의 가벼운 붓질은 그 그림들이 빠른 속도로 그려졌음을 보여주죠.              p.125



이 책을 통해 장미, 양귀비, 난초, 백합, 국화, 백일홍, 수선화, 제라늄 등 페이지마다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었다. 화가들이 저마다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표현한 꽃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꽃 그림은 언뜻 보면 꽃의 생명력만큼이나 덧없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꽃 정물화는 사물의 본질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꽃병 속에서 천천히 시들어가는 꽃이든, 흙에서 자라나는 꽃이든, 그 찰나의 순간 포착해낸 꽃의 생명력은 그림 속에서 영원하다. 꽃을 자주 사는 편인데, 아무리 화려하고 값비싼 꽃다발이라도 그 예쁜 모습을 오래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럼에도 이제는 안다. 영원하지 않기에 더 아름답다는 것을 말이다. 




세드릭 모리스의 <관목>이라는 그림은 다양한 색감을 사용해서 정말 화려하다. 썩어가는 빨간 열매를 밀어내면서 풍선껌 같은 분홍색 꽃이 피어난다고, 봄철 꽃사과나무 가지에는 모든 계절이 다 담겨 있다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17~18세기에는 꽃이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특히 네덜란드 사람들이 식물 수집의 선두에 서 있었고, 새로운 꽃 품종이 비싸게 거래되는 만큼 그 꽃을 그린 그림의 가격도 높아졌다고 한다. 덕분에 화가 라헬 라위스는 어마어마한 재산과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유럽 각국의 왕들에게서 의뢰를 받아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책에 수록된 라위스의 <꽃 정물>이라는 작품은 정말 꽃들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 메마른 일상을 바꿔보고 싶다면, 꽃을 한번 사보는 건 어떨까. 한 송이든, 한 다발이든 그 꽃으로 인해 하루의 색채가 완전히 달라질테니 말이다. 꽃은 예쁘지만 금방 시들어버리는 게 아쉽다면, 대신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 책 속에 수록된 꽃들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선사하니깐. 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달콤한 꽃내음이 나는 것 같은 이 책을 통해 꽃이 주는 위로와 기쁨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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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 - 치유의 도서관 ‘루차 리브로’ 사서가 건네는 돌봄과 회복의 이야기
아오키 미아코 지음, 이지수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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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창문' 같다고 늘 생각합니다. 문이 아닌 창문. 손잡이를 돌리면 곧장 다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장치는 아니지만, 창문이 존재하면 지금의 방과는 다른 세계를 느낄 수 있습니다. 창문은 바깥 세계의 부드러운 바람과 강렬한 햇빛, 비에 젖은 흙냄새, 나무와 꽃이 있는 선명한 풍경을 방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책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채로운 풍경과 바람, 그리고 빛을 데려와주는 근사한 창문입니다.           p.23


일본 나라현에 있는 인구 1700명의 산촌, 숲속의 70년 된 고택에 자리 잡은 사설 도서관이 있다. 이 책은 한 달에 열흘만 문을 여는, 세상에서 가장 사적인 도서관 ‘루차 리브로(LUCHA LIBRO)’의 사서가 들려주는 책과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학도서관 사서로 6년간 근무한 저자는 업무와 인간관계의 스트레스, 도시 생활이 주는 위화감으로 정신질환을 얻게 된다. 무너진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남편과 함께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리고 70년쯤 전에 지어진 오래된 집의 일부를 개방해 사설 도서관을 열게 된다. 




책장에 꽂힌 책들은 전부 개인 장서라서 '나눔'이라는 개념으로 공간을 개방한 지 어느새 7년이 되었다. 이곳에 있는 장서들에는 포스트잇이 잔뜩 붙어 있고, 손님들은 그 책들을 대출해 문제의식을 함께 공유하고, 독서 모임을 통해 현재의 고민거리를 함께 생각한다. 그렇게 휴일이면 버스조차 닿지 않는 곳으로,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고 숲을 가로질러 찾아와준 그들과 함께 읽고 생각하며 서로를 돌보고, 혼자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나누게 된 것이다. 고양이 가보스 관장님, 강아지 오크라 주임님과 함께 루차 리브로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상이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누군가가 건네준 책을 펼치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장소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던 녹슨 창문이 반강제적으로 삐걱삐걱 열리며 바람이 들어오고 방 안이 밝아지는 기분입니다. 그 충격은 때로 강풍이나 눈을 찌르는 빛이 되어 저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책을 건네받는 순간부터 왠지 모르게 강풍이 불면 좋겠다, 눈부신 빛에 휩싸이면 좋겠다, 휘청대다가 머리를 부딪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p.204


이 책의 원제는 ‘불완전한 사서’이다. 저자는 아르헨티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유명한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발견한 이 표현을 왠지 좋아한다고 말한다. 보르헤스가 말한 '불완전한 사서'의 불완전함이 뜻하는 바와는 별개로, 자기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으며 사설 도서관을 꾸려나가고 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불완전한 사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도 과제를 껴안은 채로 다른 사람의 과제를 도와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실제로 약을 먹고 자는 탓에 개관 시간이 임박해서 눈을 뜨거나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어 정신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저자를 도와주고, 일이 감당이 되지 않아 폭발할 지경일 때는 '청소 좀 도와주세요'하고 SNS에 호소하는 식으로 운영해왔다. 2022년에만 736명이나 되는 손님이 루차 리브로를 찾아 왔다고 하니, 개관하는 날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어릴 적부터 책의 세계에서 살아온 사서의 에세이답게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같은 어린이 고전부터 역사 문헌까지 여러 도서를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어 넓은 독서를 가능하게 해주며,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지금 우리의 문제와 연결해 고민하게 하는 깊은 독서로 이끌어준다는 점도 이 책의 매력이다.


저자에게 책이란 '여러 가지 풍경을 보여주고 바람을 실어 날아주는 창문'이다. 책을 창문에 비유한 것에 공감한다면, 책을 다른 세계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저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누군가 건네준 책을 통해 등 뒤에서 창문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감각이야말로 책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살아내기 어려운 상황을 살아내기 위해 책을 읽으며 버텨온 저자의 진심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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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되살리는 남자 스토리콜렉터 120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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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일러가 묘한 표정으로 데커를 보았다. "아저씨도 가까운 사람을 잃어보신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데커는 그 젊은 아이에게서 자신의 젊을 적 모습을 보았다. 운동 능력만큼은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 나머지는 아무것도 확신하지 못했던 자신의 모습을. 

"우린 모두 가까운 사람을 잃어봤단다, 타일러. 중요한 건 거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야. 왜냐하면 그걸 망쳐버리면 다른 모든 건 정말이지 의미를 잃고 말거든."                p.88


에이머스 데커는 새벽 3시경 전화를 한 통 받는다. 오래전 오하이오주 경찰서에서 일하던 시절 파트너였던 메리였다. 그녀는 조기 치매 진단을 받고,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참이었다. 매일 자신이 점점 더 사라져가는 듯한 기분이 절망스러워하는 그녀는 급기야 자신이 딸마저 잊어버렸다고 고백한다. 얼마 동안 자신의 머릿속에서 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도 끔찍했다고 괴로워하던 그녀는 데커와 통화 중에 총으로 자살을 결행하고 만다. 친구의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자책 속에 메리의 장례식에 참석한 데커에게 새로운 사건 소식이 전해진다. 


연방 법원 판사와 그녀의 경호원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장소는 부유한 해변 도시에 있는 판사의 집 안이었고, 판사의 시신에는 구멍이 뚫린 검은 안대가 씌워져 있었고, 그 위로 ‘레스 입사 로키토트(Res ipsa loquitor)’라 쓰인 카드가 놓여 있었다. 범인이 카드를 가져왔다면 확실히 계획범죄라는 증거였지만, 경호원이 총탄 두 발을 맞은 것에 비해 판사는 여러 차례 칼에 찔렸으니 무척 모순적인 범죄현장이었다. 판사의 판결에 불만은 품은 누군가가 살인을 저지르고 메시지를 남겨놓은 것처럼 보였던 이 사건은 수사가 시작되면서 점점 더 복잡해진다. 실마리는 되는 대로 흩어져서 제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고, 누군가를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범인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오고, 모든 길이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머스 데커의 탁월한 기억력으로도 사건의 퍼즐들을 하나로 짜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에게 닥친 최대의 위기, 과연 그는 겹겹이 숨겨진 진실을 풀어내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데커는 이 조사 과정에서 보고 들은 모든 걸 떠올리고, 그것들을 다른 모든 것들과 나란히 늘어놓았다. 겹겹이 쌓인 대화의 층들, 겉보기엔 무고한 발언들, 특정한 관찰들, 그리고 온갖 다른 증거들이 데커의 개인 클라우드에서 추출되어 서로 대조 분석됐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깜짝 놀랄 만큼 선명한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은 가장 사소한 세부사항에 있었다. 얼핏 보기엔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가장 마지막 순간에 유일하게 중요한 것으로 변했다...'                   p.558


데이비드 발다치의 '데커' 시리즈 일곱 번째 작품이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괴물이라 불린 남자>, <죽음을 선택한 남자>, <폴른:저주받은 자들의 도시>, <진실에 갇힌 남자>, <사선을 걷는 남자>에 이어 이번에는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로 돌아왔다.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 그 다섯 번째 작품이다. 에이머스 데커, 195센티키터, 몸무게는 135킬로그램에서 180킬로그램 사이를 오가는 거한. 대학 4년 내내 미식축구 선수였고 내셔널 풋볼 리그에 진출했으나, 첫번째 출전한 경기에서 사고로 선수로서의 경력은 끝났다. 경찰로서 20년 근무했지만, 어느 날 오랜 잠복근무 끝에 귀가했다가 아내, 처남, 그리고 딸이 잔혹하게 살해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후 노숙자 보호소를 거쳐 사설 탐정으로 잡다한 일을 하며 밑바닥으로 추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사건 해결에 활약을 하게 되고, 이를 계기로 FBI 미제 수사 팀에서 일하게 된다. 데커는 미식축구 경기 중에 사고를 당했고, 잠깐 동안 죽었다 살아난 댓가로 과잉기억증후군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게 됐다. 거기에 더해 숫자와 색깔이 연결됐고, 시간도 그림처럼 눈에 보이는 공감각 능력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그가 하는 수사란 일반적인 범죄 수사의 패턴과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이 시리즈 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매력이다. 


출간되는 족족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고, 80개국 45개 언어로 출간되어 전 세계적으로 1억 1천만 부가 팔린 작가. 출간 수익을 기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범죄 소설 작가'인 데이비드 발다치의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는 거듭되는 반전과 탄탄한 구성, 그리고 특별한 능력을 가진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시리즈가 여러 권 출간되었을 경우 선뜻 시작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시리즈를 시작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첫 번째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완성도 높고 재미있는 작품에서부터 출발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에이머스 데커 시리즈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작품은 바로 이번 작품 <기억을 되살리는 남자>이다. 데커는 이번 작품에서 오래 함께했던 파트너가 아니라 새로운 파트너와 함께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 기존에 계속 등장하던 인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기에 더할나위없이 좋다. 게다가 거의 600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말해주듯이 사건 자체도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복잡하고, 정교하게 진행되고 있어 구성과 플롯에 거의 빈틈이 없다. 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시리즈를 처음 접하더라도 만족할 수밖에 없는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데다, '아무 것도 잊지 못하는, 완벽한 기억력'을 가진 캐릭터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지고 있으니 시리즈를 시작하기엔 딱 좋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매끈하게 잘 빠진 스릴러를 만나 보고 싶다면, 대중성과 작품의 완성도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범죄 소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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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맨 9 - 못된 고양이 캣맨 도그맨 9
대브 필키 지음, 노은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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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는 거야! 

미워하는 게 항상 나쁜 것은 아니야."

"그래요?"

"아무렴! 미움은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고! 

... 때로는 남는 게 미움뿐일 때도 있다고!!!"

"아빠, 그러면 사랑은 어때요?"         p.110~111



책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조차 푹 빠져서 읽게 된다는 마성의 그래픽노블 <도그맨> 시리즈! 드디어 9권이 나왔다. 이 시리즈는 개 머리에 사람 몸을 한 경찰관 도그맨과 못된 짓만 일삼던 고양이 피티의 아기 고양이 '리를 피티', 그리고 그들의 로봇 친구 애디에칭디까지... 세상의 모든 악당들로부터 도시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도그맨> 시리즈는 전 세계 40개국에 4000만부 판매되었으며 아마존 어린이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독자 리뷰가 무려 15,800여 개가 달린 책이 있다. 드림웍스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시리즈가 흥미로운 것은 도그맨이 보통의 영웅들과는 꽤 다르다는 점일 것이다. 도그맨은 사람 말을 못할 뿐만 아니라 개의 본능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툭하면 사람들을 핥아 대고 심지어는 오줌과 똥을 아무 데나 싸는 경찰서의 골칫덩어리이니 말이다. 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선한 마음을 가졌고, 매 사건마다 놀라운 기지와 용기를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고야 만다. 




이번 9권에서는 사고뭉치 도그맨 때문에 화가 난 시장이 도그맨을 경찰서에서 내쫓으면서 시작된다. 서장이 '시에서 가장 훌륭한 경찰 서장'으로 뽑혀 상을 받는 날이었는데, 도그맨은 시장의 장미밭을 마구 파헤쳐 엉망으로 만들고, 진흙이 잔뜩 묻은 상태로 달려들어 시장의 옷을 흙투성이로 만든데다, 모자를 찢고 결국 시청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사고를 치고 만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시장이 그 자리에서 도그맨을 바로 해고해버린 것이다. 


단짝이었던 서장도, 경찰서 식구들도, 그리고 도그맨도 펑펑 울며 슬퍼한다. 너무 너무 슬퍼서 눈물로 홍수가 날 정도로 경찰서에 난리가 나고, 축 쳐진 도그맨은 집으로 돌아온다. 상심한 도그맨에게 리틀 피티와 애디에칭디는 그림책을 그려주며 위로해주고, 새로운 발명품을 만들어 낸다. 바로 고양이 머리 모자! 그렇게 고양이로 변장한 도그맨은 경찰서로 향하는데, 고양이 머리로 다시 경찰관이 될 수 있을까. 




"아들, 난 못하겠다. 

나는 너처럼 무조건 사랑할 수가 없구나."

"아빠... 

꼭 사랑하지는 않아도 돼요. 

그냥 미워하는 마음을 버려 봐요."                p.198~199



한편, 피티의 아버지이자 리틀피티의 할부지는 교도소를 탈출하기 위해 꾸질이로 변신한다. 그렇게 거미처럼 생긴 이상한 고양이 꾸질이가 도시를 공격하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도 도그맨은 악당을 막고 도시를 구해낼 수 있을까.


닥치는 대로 못된 짓을 하는 악당은 사실 좀 심심하고 외롭다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걸 보던 서장은 악랄한 고양이에게 조수가 필요하다며, 도그맨에게 위장 근무를 지시한다. 꾸질이가 같은 악당이라고 믿을 수 있도록 도그맨은 '나는 못된 고양이'라고 쓰인 명찰을 달고 캣맨이 되어 출동한다. 꾸질이가 너무 외로워서 못된 짓을 했던 거라면, 같이 놀 짝꿍이 생기면 꾸질이도 바르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도그맨이 변신한 못된 고양이 캣맨이 꾸질이를 만나게 되는데, 캣맨은 꾸질이를 속여서 체포할 수 있을까. 




도그맨 시리즈는 '어린이가 직접 쓰고 그린 이야기’라는 콘셉트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어, 글과 그림이 더욱 기발하고, 엉뚱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한번 웃어 넘기고 덮어 버리는 책이 아니라, 깔깔대고 웃는 이야기 속에 뭉클한 진심과 따스함이 숨겨져 있다. 사악하고 못된 짓만 골라서 하는 악당으로 등장한 피티는 아들인 리틀 피티가 나오면서부터 나쁜 마음과 착한 마음 사이에서 늘 갈등한다. 너무도 천진무구한 표정과 행동으로 핵심을 찌르는 말들을 툭툭 내뱉으니 천하의 악당 조차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 불공평하게 생겨 먹었지만, 그런 세상도 움직이는 것은 아주 작은 마음들이다. 아기 고양이 한 마리, 개의 머리를 한 경찰관 등 사랑과 친절한 마음씨가 세상 무엇보다도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들이 있어 조금은 살 맛나는 것 아닐까. 


이 시리즈는 가벼운 유머로 시작되었지만, 갈수록 보편적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시리즈이다. 단순함이 만들어 내는 통쾌함과 유쾌한 상상력, 그리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만들어 내는 뭉클한 진심과 감동은 보너스다. 자, 아이에게 책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 주고 싶다면 도그맨 시리즈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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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과학자의 인문학 필사 노트 - 인문학을 시작하는 모든 이를 위한 80 작품 속 최고의 문장들
이명현 지음 / 땡스B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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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부족해서 문제라고 한다. 진짜 그럴까? 의심이 해소되지 않아 찜찜해하고 있을 때 이 책을 만났다. 내가 어렴풋이 고민하고 있던 문제를 이 책은 정면으로 다룬다. '공감'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명쾌하게 구분 지어서 이야기한다. 특히 이 문장을 만나면서 내가 찾고 있던 개념이 바로 '인지적 공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두루두루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공감의 반경을 넓혀야만 한다. 나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p.40



'과학책방 갈다'를 운영하는 천문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명현 박사가 함께 읽고 쓰면 좋을 책 80권을 큐레이팅한 필사책이다. 저자는 이 책을 준비하면서 200권에 가까운 책들을 다시 읽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은, 책의 내용을 다르게 기억하거나 두 권의 내용이 뒤섞이기도 했고, 마치 처음 읽어보는 듯 생소했던 책도 많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필사는 그런 기억을 더 오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필사 책들은 문학 작품을 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이 책이 기대가 되었던 것은 바로 과학, 인문 도서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였다. <군주론>, <사피엔스> 빅 히스토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침묵의 봄>, <다윈 지능>, <이기적 유전자>, <우주의 구조>, <종의 기원> 등등 과학 인문서들의 문장들을 직접 써보고, 사유할 수 있는 필사책은 이 책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파트를 나누어 문학, 에세이도 함께 수록했으니, 그리 어렵게만 여기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논리적 글쓰기와 감성적 글쓰기의 흐름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이 필사책의 매력이니 말이다. 또한 제목은 들어봤으나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던, 궁금해하기만 했던 책들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이다. 





한때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42'라는 숫자가 우주의 팽창 지수를 나타내는 허블상수라는 말이 돌았다. 이 글에서처럼 우리는 종종 원래 질문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때가 있다. 어쩌면 거의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을까.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면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러나 원래 그 일을 시작한 이유를 계속 인지하고 있으면 초심을 잃지 않게 된다. 가끔은 우리가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240



필사 열풍이 시작된 이유 또한 매일같이 바쁘게 달려 가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자기 자신을 챙길 기력도 없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 때문이다. 필사를 하는 동안 오롯하게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어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기도 하고 말이다.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필사를 시작했다”, "정신없이 일과를 보내다 필사를 하면 시간이 느려지는 것 같아 정서적으로 안정이 된다" 는 등의 필사북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말을 보고 있자면, 지금이 얼마나 각박한 세상인지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한다. 덕분에 필사를 다루고 있는 책들은 정말 종류가 많은데, 문학 작품말고 조금 더 진지한 책들을 필사로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길 추천해주고 싶다.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 딱딱한 펜의 느낌, 글을 써 내려갈 때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잉크냄새... 손글씨를 쓰는 일은 일상에 지친 우리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선사한다. 부담없이, 누구나, 손쉽게 시도해 볼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책방 과학자 이명현 박사는 단순히 명저들을 소개하고 필사해보는 것이 아니라, '책방 과학자의 생각'이라는 코너를 통해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더했다. 인문, 과학, 문학, 예술.. 어떤 책을 만나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은 교양 과학서 24종, 인문서 18종, 문학서 19종, 에세이 19종까지 총 80종이다. 필사를 위해 수록된 인용문을 보고 책을 통째로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몰랐던 책이라도 인용문을 통해 상상의 세계에 들어간다면 그걸로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인용문을 모은 책은 영원히 미완성'이라고 말한다. 그런 만큼 독자들이 파고들 여백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여백은 상상의 영역이고, 독자들에게는 자유의 시공간이다. 원작의 텍스트를 필사하고 남은 여백은 자신만의 사유로 채워 넣어갈 수 있다. 필사를 통해 지적인 쾌감을 느껴보고 싶다면, 어렵게 느껴졌던 인문서들과 친해지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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