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비극 - 그리스 극장의 위대한 이야기와 인물들
다니엘레 아리스타르코 지음, 사라 노트 그림, 김희정 옮김 / 북스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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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찾던 범인이었다. 수사관과 범인이 동일 인물이었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하인은 왕좌에 오른 나를 보고서 두려운 마음에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 왕을 살해했다고 거짓말했다. 그런데 국왕 살해는 내가 저지른 최악의 범죄가 아니었다. 나, 오이디푸스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했다.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모든 일은 내가 깨닫지 못한 사이에 벌어졌다.              - 소포클레스, '오디이푸스왕' 중에서, p.82


사랑하는 두 사람 앞에 죽음의 신이 나타나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상태를 설득해서 대신 죽게 만들 수 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두 사람 중에 사랑하는 감정이 죽음에의 두려움보다 앞서 선뜻 내가 죽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상대방은 그런 마음을 받아들여 나 대신 죽으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에우리피데스의 초기 비극인 <알케스티스>의 내용이다. 주인공인 아드메토스 대신 아내인 알케스티스가 남편 대신 죽겠다고 자처했고, 남편은 그 제안을 받아들여서 살아 남는다. 알케스티스는 죽어서 저승으로 떠나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녀를 찾아내 다시 이승으로 데려온다. 죽음에서 되살아나 소생한 알케스티스는 다시 돌아온 삶이 행복할지 실망스러울 지 알 수 없었지만, 집으로 돌아왔다는 생각만으로 가슴 벅찬 기쁨을 느낀다. 




기원전 5세기에 찬란히 꽃피었던 그리스 비극은 2,50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공연되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작가로 유명한 사람은 아이스킬로,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로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들의 작품은 33편에 불과하다. 그리스 비극은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인간의 삶에 대한 고뇌와 성찰,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탐구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 책에는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의 작품 8편과 사티로스극(익살극) 1편, 그리고 고대 희극 작가 중 유일하게 완전한 작품이 전해지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원전을 간추려 수록했고, 주인공들을 삽화로 그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그리스 비극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이번 비극은 사랑하는 남편 아드메토스의 심장을 계속 뛰게 하기 위해 자신의 심장 소리를 포기한 젊은 여인 알케스티스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신비롭고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어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는 그 감정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나서 아무도 진실을 의심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처럼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줄 수 있을까?                - 에우리피데스, '알케스티스' 중에서,  p.149~151


세상의 끝, 마지막 경계 아래에 심연으로 떨어지는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있다. 허공을 향해 솟아 있는 바위 꼭대기에는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에 묶여 있다. 제우스의 뜻에 굴복할 생각도, 잘못을 빌거나 충성을 맹세할 마음도 없었던 프로메테우스는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까? 오이디푸스 왕은 나라에 전염병이 퍼지고, 사람들이 죽어 이승의 집이 비어 가고 저승은 흐느낌과 비탄으로 가득 차니 그것이 어떤 범죄에 대한 형벌 같다고 느낀다. 그래서 신이 무슨 이유에서 징벌을 내리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찾아내려던 범인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바로 자신이었으니, 그야말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장님이 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비극으로 끝이 난다. 




그리스 최고 극작가들이 선사하는 그리스 비극 작품들은 전쟁과 죽음, 사랑과 배신, 살인과 희생 등 인간사의 온갖 감정을 다루고 있는 작품들이기에 피 맺힌 복수극과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 등 자극적이고도 웅장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그야말로 시선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해 페이지가 쓱쓱 넘어간다. 


그리스 비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프로메테우스, 헤르메스, 제우스, 오이디푸스, 헤라클레스, 안티고네 등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그리스 비극을 실제로 읽거나 본적이 없더라도 말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작품들이기에 그렇다. 그럼에도 원전 자체는 워낙 분량이 방대해 선뜻 읽어 보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이 책은 분량 자체는 압축했지만 원작의 대사와 표현을 고스란히 살려서 특유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해 좋았다. 게다가 그리스 비극은 여전히 각종 문학 및 영상 작품의 원전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이 책 한 권으로 그 원형을 만나볼 수 있으니 너무 실용적이고 좋은 선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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