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3
이희영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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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말하는 명확한 원인과 결과는 과학에서나 통용된다. 인간의 삶에서는 이것이다, 할 수 있는 정확한 공식과 법칙이 성립될 수 없다. 악한이 꼭 벌을 받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그냥 재수가 없거나 운이 나쁘면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게 우리네 삶이다... 나는 왜 내 얼굴을 볼 수 없을까? 원인이 뭘까? 무슨 이유 때문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장에 뾰족한 결론에 도달할 수 없다. 아마 앞으로도 찾 기 힘들 것이다. 그러니 남들은 멀쩡히 잘만 가는데 나 혼자 넘어졌다고 화낼 필요가 없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그냥 지지리 재수 없었다, 생각하며 툭툭 털어낼 수밖에.            p.25~26


만약 내 얼굴을 나만 볼 수 없다면 어떨까. 다른 모든 것은 다 보이는데 자신의 얼굴만 안 보이는, 그야말로 이해할 수 없는 상태. 거울에 비친 모습도 자신을 그린 그림도 사진도 모두, 얼굴과 관계된 것은 다 볼 수 없다면 말이다. 이 작품 속 주인공 인시울은 여섯 살 때 어느 날,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울 속에서 보이는 건 안개처럼 흐릿했다가, 색색의 블록으로 보이다가, 먹물을 엎어버린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병원을 다녀봤지만 안구나 시력에는 문제가 없었고, 어떤 병원에서도 명확한 원인을 파악할 수 없었다. 


시울은 부모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자신의 얼굴이 보인다는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했고, 이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평범하게, 정상인 것처럼.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교실에서 작은 사고가 생긴다. 하필 그날 사물함을 새로 교체했고, 묵재가 친구들에게 던진 농구공에 맞은 시울이 쓰러지면서 사물함 모서리에 이마를 찍힌 것이다. 상처는 무려 스무 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것이었고, 그렇게 시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굴에 상처가 난다. 그렇게 보기 싫은 흉터가 이마에 생기고 난 뒤, 거울을 보다가 시울은 새된 비명을 지른다. 그 흉터가 시울의 눈에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시울은 난생처음으로 진짜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천천히 손을 들어 흉터를 만져보고, 그 작은 흉터에게 인사를 하는 시울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미가 자신의 진짜 매력을 모르듯, 사람들이 할머니의 소녀 같은 호기심을 못 보듯, 우리는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백지보다 귀퉁이의 작은 얼룩에만 집중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지만, 세상은 볼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때가 되어 기적처럼 내 얼굴과 마주하는 날이 온다면, 그때의 나에게 미안해하지 않을 정도의 얼굴을 만들어가고 싶다. 표독하지 않은 표정과 웃는 주름이 많은 편안한 얼굴이 되길 바란다. 그 얼굴과 마주하는 건 오직 내 노력 여하에 달렸다. 그래서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두렵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위해 정작 보이지 않는 것들을 놓치게 될까봐.               p.172~173


시울에게 상처를 만들어준 묵재는 중2때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꽤 유명했었는데, 이유는 엄마가 알코올중독자로 술에 취해 맨발로 길을 건너다 차에 치였기 때문이다. 이후 묵재는 아빠와 단 둘이 지내고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집을 가출해 한 번 더 학교를 뒤집어놓은 적이 있다. 그 뒤로는 교실 뒤 사물함처럼 조용히 학교에 다니고 있는 데 시울 역시 제대로 말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분명 있는데 전혀 없는 것처럼 그런 존재였던 묵재는 시울에게 상처를 만들어 주고는, 갑자기 존재감이 생겨 버린다. 얼굴에 생긴 흉터가 미안한 묵재는 죄책감을 느끼고 시울에게 사과하지만, 사실 시울이는 흉터를 빨리 지우거나 어떻게든 없애야 하는 그런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묵재에게 전에는 보지 못했던, 보이지 않던 내 얼굴의 아주 작은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다고는 말할 수 없고, 말해줘도 이해 못하겠지만 시울은 자신이 흉터와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묵재와 시울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나누게 되고, 엄마가 죽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아빠와 남게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들으며 시울은 생각한다. 아무도 상대를 완벽히 알 수 없다고. 설령 가족이라 해도 말이다. 그렇게 상처 자국을 통해서만 스스로를 볼 수 있게 된 시울을 통해 작가는 우리가 진짜 제대로 보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구나 자신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기 위해 애쓰지만, 정작 마주해야 하는 것 앞에서는 못 본 척 외면하면서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스스로에 대해서든 타인에 대해서든 보여지는 것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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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4-19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 궁금했는데,,, 잘 읽고 갑니다.